책머리에

 

이제는 평화체제를 이룰 때

 

 

한반도에 평화를 향한 움직임이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 밖으로는 전쟁의 위기가 말해지고 안으로는 사회적 갈등의 증폭과 정치개혁의 지지부진함을 개탄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지만, 이럴 때일수록 평화를 향한 우리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한다는 주장이 전에 없이 강화되고 있다. 정전협정체결 이후 화해없는 휴전상태로 반세기를 지내온 안타까움을 오히려 평화기념일 제정운동의 정신적 동력으로 바꾸어낼 정도로 우리 사회의 평화역량이 확대되고 지혜로워진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동북아질서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에 우리 모두가 힘을 모을 때이다.

이런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열리게 된다고 한다. 아직 그 성공여부를 예측하기에는 이르지만 한반도 문제를 놓고 남북한과 주변 4강이 한자리에 만나는 다자적 논의틀이 만들어진다는 사실 자체는 매우 고무적이다. 이라크전쟁 이후 점점 노골화되고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제어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균형잡힌 해법이 마련될 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런 바람이 꼭 근거없지만은 않은 것이 현재 전세계에서 반전평화운동이 강하게 힘을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주변국가들 역시 북한이 제2의 이라크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시대적 과제로 내건 국내 평화세력의 힘이 뒷받침된다면 동북아 평화체제로의 전환을 가능케 할 극적 계기가 만들어질 것도 기대해봄직하다.

생각해보면 우리 사회의 평화운동은 매우 복합적인 과제를 지니고 있다. 군대와 전쟁을 인정하지 않는 헌법 9조를 평화체제의 핵심으로 간주하는 일본에서 평화운동은 헌법수호운동과 종종 동일시되고 있고 서구사회의 평화운동은 주로 반핵운동 및 인권운동을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다. 하지만 한반도의 경우 평화운동은 일차적으로 남북한 분단체제의 변혁과제를 핵심으로 할 수밖에 없다. 대북지원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쟁이 보여주듯 남북관계 진전의 정치경제적 결과는 단순한 예측을 불허할 정도로 다차원적 쟁점을 동반하기 때문에 한반도에서의 평화운동은 복합적인 논리와 대응방식을 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한반도 분단체제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미국 문제도 한반도 평화운동의 중요한 쟁점이 되게 마련인데, 한반도 평화운동의 복합성을 생각하면 반미도 평화의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사고할 문제이지 민족적 자존심의 차원에서 명분론적으로만 접근할 일은 아니다. 평화운동은 분단체제의 변혁과정에서 자칫 과잉될 수도 있는 민족주의 정서를 제어하고 이를 건강한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지나친 자기중심적 고집을 진지한 주체적 역량으로 바꾸고 낡은 외세의존적 정신구조를 세계정세에 대한 지혜로운 판단능력으로 바꾸어내는 일 역시 우리의 평화운동이 강조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한다.

결국 평화운동은 우리의 근대적 경험 전반을, 우리 내부와 외부 모두를 깊이 성찰하고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총체적 기획과 연결된다. 무반성적으로 달려온 근대화의 과정을 되돌아보는 일은 물론이고, 반북친미의 오랜 관성에 안주하면서, 또는 이에 대한 단순반대 논리에 익숙해져서, 진정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을 가로막아온 우리 내부의 관행이나 제도와도 싸워나아가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사회의 갖가지 문제들, 예컨대 위기와 위험을 확대재생산하는 속도주의, 이기적인 심성을 심화시키는 무자비한 경쟁구조, 출세의 도구로만 간주되는 교육, 환경파괴에 둔감해진 개발지상주의 등을 넘어서는 대안적 삶의 양식을 고려하는 문화운동으로까지 진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에 대한 우리의 사고가 더욱 넓어지고 깊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다양한 사회세력 및 전지구적 차원의 운동과 연대하는 일이 필요하다. ‘선으로 악을 이겨라’는 말처럼 겸허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힘으로 평화를 위한 선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 일이 긴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호는 ‘평화’를 특집의 화두로 삼았다. 지난호에 동북아경제중심론을 검토한 것도 그렇거니와 평화체제와 평화운동에 대한 이번호의 특집도 21세기 한반도가 그려봄직한 발전전략을 모색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한기욱의 「변혁기의 반전평화운동」은 세계체제가 위기국면에 처한 현싯점에서 반지구화운동세력과 반전평화운동세력의 대두가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특히 한반도의 반전평화운동이 외세나 언론의 장단에 수동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중장기적 변화 속에서 체득한 지혜와 창의력을 발휘해 보인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런 힘이 우리 삶의 전영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연대와 운동의 방식이 좀더 유연해지고 창의적으로 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사회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강상중은 한반도의 평화가 동북아시아 전체의 지역안보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고 북일 평양선언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햇볕정책의 역사적 의의를 살려나아가야 할 것을 특히 강조한다. 동북아시아에 평화의 ‘공동의 집’을 세우자는 그의 구상은 평화체제와 관련하여 한국과 일본이 공유해야 할 과제를 숙고하게 만든다. 한반도의 군사적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하면서 실질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욱식의 글은 평화운동의 중요성과 함께 내부적 성찰의 중요성을 또한 지적하고 있다. 평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외부의 요인 때문만이 아니라 내부의 역량과 지혜 부족에서도 온다는 반성은 우리 평화운동의 내적 성숙과 발전을 위한 좋은 자산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평화주의는 또한 군사주의적 사고 속에 담긴 남성주의 문화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캐서린 문은 한국과 미국에서 각기 나타나는 애국주의의 남성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궁극적으로 평화의 문제가 페미니즘적 관점과 접맥됨을 지적하고 있는데, 특히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한편 지구화 기획이 미국의 일방주의에 의해 위기에 처한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 필리핀 사회학자 월든 벨로는, 부시의 정책이 지구화 기획보다는 일방주의를 선호하고 반환경주의 성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결국 정당성 없는 제국경영의 형태로 빠져들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현시기 평화구상이 세계화와 세계자본주의체제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도 분리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평화체제의 정치경제학을 구상함에 있어서 필수적인 쟁점들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논단에서는 새만금 문제와 한전 민영화를 다룬 글을 실었다. 김석철은 본지를 통해 기왕에 제안했던 대안을 다듬으면서 한반도의 새로운 공간전략을 ‘복수의 준국가적 경제권역 형성’에서 찾을 것을 강조한다. 특히 동북아 경제중심과 지방분권은 같은 말이며 지방분권이 해양과 농촌, 지방도시 등을 아우르는 새로운 생활공간 창출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서울집중과 지방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고려해야 마땅한 관점이 아닐까 싶다. 한전 민영화 논의를 통해 공기업 민영화라는 처방전이 위험할 수 있음을 지적한 김경식의 글은 신자유주의적 시장화의 문제점을 부각한다. 정보화라는 기술주의적 사고가 ‘학생생활기록부’ 형태의 평가방식과 결합될 때 어떤 위험이 나타날 수 있는지를 지적한 심성보의 시평과 경제개혁조치가 어떤 이유로 늘 지지부진해지는지에 대한 전성인의 경제시평은 현 노무현정부 하에서 진행되는 변화들의 성격과 의의, 그리고 한계를 생각하게 만든다.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인터넷을 통해 원고를 공모하고 있는 현장통신에는 네이스 논란과 관련한 두 분 선생님의 글과 매향리 농활을 다녀온 학생의 글을 실었다. 교육의 본질이 왜곡되고 관료적 형식주의가 주도하는 교육현장의 문제를 지적한 이계삼·이철호의 글은 교육개혁의 시급함을 새삼 일깨워줌과 함께 학생평가방식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가 절실함을 잘 보여준다.우리에겐 낯선 인도의 현장을 소개한 이화경의 글도 우리의 현장감각이 전지구적일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준다. 한편 인권영화제의 성취를 다룬 박신규의 문화평과 소설가 이남희의 영화평은 문화영역에서 새로이 진행되고 있는 변화와 각성의 모습을 알려주고 있다. 언제나 글의 길이에 비해 상당한 공력이 들어가는 글쓰기로서, 이번호의 촌평도 하나하나 음미할 만한 글들이 되었음을 기뻐한다.

이번호에 좋은 작품들을 싣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올해 만해문학상 수상자 박범신의 역작을 비롯하여, 혁명가 부모의 삶과 나의 현실을 동시에 그러안는 한 개인의 성찰의 도정을 보여준 정지아의 자전적 중편이, 젊은 작가 백민석의 재기 넘치는 작품 및 신진 강영숙의 실험적인 단편과 잘 어울린다. 아울러 현기영의 장편연재가 작가의 공직취임으로 당분간 어려워진 것에 대해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하며 속히 연재가 재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 또한 시는 원로 황동규에서 신인 안주철까지 개성있는 작품을 보내주었다. 특히 오랜만에 시단에 복귀한 최민이 반갑다. 최근의 평론활동을 점검하면서 비평의 새로운 과제를 제시한 임규찬과 시적 형상을 자상하게 분석한 정남영의 글 들은 각기 이론비평과 실제비평의 흥미로운 예를 보여준다.

지난호 동북아경제중심 특집에 관한 이수훈·이일영의 글, ‘검은 아테나 논쟁’에 관한 오흥식의 글을 비롯하여 애정어린 여러편의 논평과 의견으로 이번호 ‘독자의 목소리’가 풍성해졌다. 독자의 목소리가 그 자체 참신한 토론과 논평의 장이 되기를 기대하는 창비로서는 투고해주신 여러분들의 조언을 명심할 것이다.

 

창비가 오랜 마포 용강동 생활을 끝내고 파주의 심학산 기슭 문발리에 자리잡은 출판도시로 이주하였다. 시련과 성장의 마포 용강동 시절을 기억하면서 이제 새 터전에서 또한번의 도약과 갱신을 다짐한다. 이미 디지털창비 웹진을 통해 최원식 주간이 밝혔던 바대로 파주라는 실험도시, 살아 있는 지방의 눈을 겸하여 새로운 시대를 함께 준비할 것이다. 아울러 편집진의 보강과 쇄신을 위해 이번호부터 김종엽 자문위원을 편집위원으로, 문학평론가 임홍배 서울대 독문과 교수를 새 자문위원으로 모셨음을 밝히며, 독자 여러분의 배전의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린다.

[朴明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