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인터넷 글쓰기의 가능성

창비무명인의 미당론을 중심으로

 

 

한기욱 韓基煜

문학평론가. 인제대 영문과 교수. 주요 평론으로 「지구화시대의 세계문학」 「대중문화 속의 소설과 영화」 등이 있음. englhkwn@ijnc.inj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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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지식인과 문인들 사이에 두루 활용되면서, 디지털 글쓰기와 출판 방식이 주요한 사회적 쟁점이나 문학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른바 ‘인터넷혁명’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홈페이지와 인터넷신문, 전자책이나 웹진과 같은 신종 매체들은 인터넷 특유의 쌍방향성과 신속한 전파력으로 말미암아 문단이나 지식인 사회의 풍속도를 상당히 바꿔놓고 있다. 특히, 싸이버 자유게시판에서 이뤄지는 새로운 글쓰기 방식과 의사소통 형태는 디지털문화가 지닌 가능성과 폐해를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몇년 전부터 몇몇 인터넷 홈페이지의 자유게시판을 기웃거리면서 인터넷상의 논의와 글쓰기 방식을 눈여겨보았고 또 간간이 실전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한동안은 이 새로운 문화현상을 반겨야 할지 개탄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네티즌 대다수에게 인터넷 글쓰기와 논쟁은 상당한 성취감과 아울러 적잖은 상처와 모멸감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가령, 자유게시판에 처음 글을 올렸을 때, 그리고 그 글에 곧장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 반응을 보였을 때의 가슴 설레던 기억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만약 그 댓글이 자신의 진의를 알아줬다면 그때의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디에 있는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글의 미덕을 알아보고 공감을 표시하다니, 마치 염화시중의 미소를 만나는 기분인 것이다. 그러나 자기 글이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부당한) 야유나 조소를 받거나 심지어 쌍욕을 들을 때 그 분노와 모멸감이란! 밤을 하얗게 새며 치밀한 반론을 준비하거나, 아니면 제 성질을 못 참아 즉각 보복과 응징을 가하기 마련이다. 그러다보면 십중팔구 자유게시판에서의 토론은 막말과 욕설이 오가는 기세싸움으로 끝나버린다.

자유게시판은 익명·실명의 온갖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인지라 별의별 사건들이 일어난다. 예측불허의 진행이 흥미를 강하게 유발하지만, 다른 한편 생산적인 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한둘이 아니다. 이념적 성향, 관점,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불신, 근거 없는 비방이나 야유, 무의미한 장난질이나 몰상식한 도배질 등등 곳곳에 암초가 널려 있어 어렵사리 시작된 논의라도 중도에서 난파하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이런 장애들 틈새에서 가끔씩 뜻깊은 논의와 훈훈한 대화의 꽃이 피어난다. 이럴 때면 게시판이 돌연 숙연한 빛을 띠며 네티즌들은 귀를 쫑긋거린다. 이 사람 저 사람 끼여들면서 치열한 비판과 날카로운 논평이 다방면·쌍방향으로 순식간에 오가는 흥미진진한 다자간 논쟁 역시 활자 지면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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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글쓰기의 가능성에 반신반의하던 내가 점차 그 가능성을 엿보게 된 것은 창작과비평사 홈페이지(www.changbi.com)의 자유게시판을 통해서이다. 지난 1,2년간 이 싸이버 공간에서 의료분쟁, 김윤식 사건, 박남철 사건, 신경숙 표절시비, 안티조선과 문화권력 논쟁 등 우리 사회의 민감하고 중요한 쟁점들에 관한 뜻깊은 논의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경숙의 「부석사」에 대한 포에지의 평론이나 satgatlim의 영화평 등 뛰어난 평문들이 적지 않았다. 창비 쪽에서는 편집인 백낙청이 2000년 7월〜2001년 4월에 열 차례 ‘편집인의 글’을 올림으로써 자유게시판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앞장섰다(‘지난 자유게시판’ 참조) .

그러나, 내게 인터넷 글쓰기의 가능성을 확인케 해준 결정적인 계기는 올해 6월 24일〜7월 3일 10회로 분재된 창비무명인의 「국화꽃의 비밀」(‘추천글방’ 참조)이다. 200자 원고지 300매를 넘는 방대한 분량에다 철저한 자료조사, 치열한 문제의식, 일관된 논리전개, 파격적인 주장, 힘찬 글발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온통 사로잡았다. 흔히 인터넷 글쓰기 하면 즉흥적이고 경쾌·경박한 스타일을 연상하게 되지만, 이런 통념과 전혀 다른 진지하고 치열한 글이 장장 한달여간 게시판의 분위기를 압도하면서 다양한 이념적 성향의 네티즌들로부터 따뜻한 격려와 예리한 논평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중요한 쟁점에 대해 사려깊게 씌어진 논의가 게시판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런 요인들이 결합되어 토론의 활력이 생겨난다는 사실이 인터넷 글쓰기에 대한 내 의구심을 상당히 걷어낸 것이다.

창비무명인의 글이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된 까닭은 그것이 우리 문학사의 첨예한 쟁점을 정면으로 건드린 탓도 있다. 『창작과비평』 지난호에 고은의 「미당 담론」이 발표되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 미당 시에 대한 평가 문제는 사실 우리 문학사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핵심사안이라 할 수 있다. 고은의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