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자동화와 노동의 미래

 

 

애런 베너너브 Aaron Benanav

시카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하퍼­슈미트 연구원 및 사회과학 담당 조교수

 

 

* 이 글은 New Left Review 2019년 11/12월호에 수록된 “Automation and the Future of Work 2”를 번역한 것이다(일부는 생략). ⓒ Aaron Benanav 2019/한국어판 ⓒ (주)창비 2020

 

 

 

스마트폰과 자율주행 자동차, 주식 자동매매 데스크가 지구 곳곳의 삶을 변형시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요즘, 우리는 현기증 나는 기술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자동화된 미래에 인간은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로운 기계시대가 예시하는 인간 자유의 꿈을 실현하도록 우리의 사회·정치 제도를 개조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그 새 시대가 대량 실직의 악몽으로 변하고 말 것인가? 이전 글에서 나는 자유주의, 우파, 좌파 분석가들이 한결같이 제의하는 새로운 자동화담론에 관해 논한 바 있다.1 이 자동화 이론가들은 인구의 상당 부분이 임금노동의 기회를 잃을 것이기 때문에, 대대적인 기술적 실업을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 UBI)의 지급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2 나는 이런 과열된 담론이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실제 동향, 즉 노동에 대한 만성적 저수요에 대한 대응으로 부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자동화론자들이 제공하는 설명, 즉 끝없는 기술 변화가 일자리를 파괴한다는 설명은 잘못되었다. 지속적인 노동 저수요의 실제 원인은 1970년대 이래 산업시설 과잉이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다른 어떤 대안적 성장동력도 가시화되지 않음에 따라 경제성장이 점진적으로 둔화한 데 있다. 기술에 의한 일자리 파괴가 아니라, 경제성장이 둔화하면서 일자리 창출이 저하되는 바로 이 현상이 노동에 대한 국제적 수요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고용 성과가 중요한 측면에서 자동화론자들의 예측과 달랐다는 사실을 논증하고자 한다. 오늘날의 국제 노동시장의 역학을 분석하고 자동화론자들이 제안한 해결책, 특히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해 논의한 뒤, 이어서 하나의 사고실험으로 탈결핍(post-scarcity)의 미래를 성취하기 위한 대안적 방법을 고려하겠다. 하지만 먼저 현재의 상황이 자동화론자들이 시사하는 임박한 대량 ‘실업’이 아닌, ‘불완전 고용’의 부단한 증가로 특징 지어진다는 사실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불안정 노동의 세계적 전망에 관한 조사를 보면, 부유한 엘리트들은 이 새로운 현실을 이미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더 인간적인 미래로 형세를 일변시키려면, 다수 노동자들이 노동 수요의 지속적 하락과 그에 수반하는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항한 투쟁이 이미 국제사회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다. 만약 이 투쟁이 실패할 경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아마도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형태의 약간 더 높은 사회적 임금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목적을 위해 싸워서는 안 되며, 탈결핍의 지구를 출범시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

 

 

1. 국제 노동시장의 역학

 

이윤 추구를 위한 기술적 약진과 일자리 감소라는 과거의 경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기술 발전만으로 인간의 고된 노동을 완전히 극복한 적은 없다. 하지만 기술 발전이 특정 산업에서 주기적으로 일자리의 전면 파괴를 초래한 것은 사실인데, 특히 그것에 기대어 기업들이 산업 발전에 대한 오랜 저항을 무너뜨릴 수 있을 때 그러했다. 예컨대 농업은 현대적인 생산 방법에 의해 변형된 최초의 분야 중 하나였다. 15~16세기 영국의 시골에서는 인클로저 농장(enclosed farm)에서 행해진 새로운 형태의 목축업이 작물의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윤작 농법과 결합되었다. 그러나 경작지의 고르지 못한 지형과 계절의 순환으로 인해 농업은 기계화하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었고, 수세기 동안 계속해서 고용의 주요 원천이었다. 그런데 1940년대에 들어 인공 비료의 출시, 작물의 교배, 농기구의 기계화로 산업화된 형태의 농업 생산이 가능해졌고, 운영 원리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농장이 노천 공장과 비슷해지면서, 노동생산성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농업 생산물 수요 증가에 대한 한계를 고려하여, 농업 부문에서 곧 엄청난 속도로 노동자 감원이 이루어졌다. 1950년까지만 해도 전체 노동인구에서 농업 부문의 고용은 각각 서독 24%, 프랑스 25%, 일본 42%, 이딸리아 47%를 차지했다. 2010년에 이르러 이 모든 비율은 5% 이하가 되었다. 1950년대와 60년대의 녹색혁명 기간 동안 산업화된 농법이 열대기후 지역에 적용되었고, 그 결과 국제 농업고용은 충격적으로 변화했다. 1983년만 해도 세계 노동자의 다수가 농업에 종사했지만 이후 그 수치는 25%로 떨어졌다.3 20세기 국제사회에서 주요 일자리 파괴범은 ‘실리콘 자본주의’가 아니라 ‘질소 자본주의’였다. 노동시장 내부에는 농업에서 상실한 일자리의 숫자만큼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의 창출을 보장할 어떤 메커니즘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업들은 여전히 산업화의 장애물을 극복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성장속도가 전반적으로 둔화되고 노동시장이 일반적으로 침체된 작금의 시대에 이러한 기술 혁신 탓에 노동자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 힘든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국제 규모의 전자제품 조립, 의류·신발 업계의 기계화는 엄청난 타격이 될 것이다. 이 업계가 세계적으로 많은 숫자의 사람들을 고용하는 부문인 데다 다른 방도로는 돈을 구할 길 없는 경제에 외환을 조성하는 부문이기 때문이다. 특히 봉제업계는 기술 현대화에 오랫동안 저항해왔다. 봉제업은 섬유를 다루는 세밀한 작업을 요하므로 기계로 조작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 마지막 주요 기술 혁신은 1850년대의 씽어(Singer) 재봉기였다. 그보다는 신종 산업이긴 하지만 전자제품 조립 작업도 작은 부품들의 섬세한 조작을 요하기 때문에 노동 절약형 기술 혁신에 저항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고도로 기계화된 대규모 생산공정 내부에 있는 기술 정체 분야로서 이 직종들은 1960년대 세계화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다. 소매, 의류, 전자제품 기업들은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저임금 국가의 공급자들과 계약을 맺었다. 이들 업계는 산업 공급 사슬의 첫 연결고리로서 여전히 중요하며, 그 공급자들 간의 맹렬한 경쟁에 영향을 받는다.

1990년대 이후 이런 직종의 상당 부분은 중국으로 이전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의 임금이 상승하고 다른 나라들도 더 많은 경쟁력을 띠게 되면서 진전된 로봇공학이 기계화에 대한 이들 분야의 오랜 저항을 마침내 무너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폭스콘(Foxconn)은 저임금 국가의 전자제품 조립회사들의 경쟁을 따돌리기 위해 ‘폭스봇’(foxbot)을 배치하고 있다. 중국과 방글라데시 의류 회사들은 ‘쏘우봇’(sowbot)과 새로운 편물 기술을 이용하고 있는데, 이 기술은 신발 제조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이 이들 부문의 완전 자동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단시간에 수많은 일자리를 제거할 수 있고, 가령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더 낮은 임금의 국가들이 국제경제에 접근할 가능성을 차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4 이러한 기술 발전이 십년 후의 일이 될지 이십년 후의 일이 될지는 미지수이며, 혹은 어떤 규모로도 전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동화의 주된 진전 없이도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 전통적인 제조업 생산방식에 IT 시스템을 결합시켜 지능형 생산체제로의 기술 혁신을 꾀하는 산업정책—옮긴이), ‘스마트팩토리’(smart-factory) 같은 기술은 연관 서비스업과의 지리적 인접성 속에서 산업 클러스터링의 이점을 증가시킬 것이고, 그 결과 제조업 일자리는 국제적으로 분산되기보다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주요 노동력 흡수 기능을 해온 부문들에서 기계화의 장애물이 극복된다면 신기술은 노동 수요를 낮추는 원인 중 부차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현상을 설명하는 열쇠는 특정 부문에서 일자리 파괴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그 파괴가 얼마나 급속히 일어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가 사라질 때 더 넓은 범위의 경제에서 그에 상응하는 속도로 고용 창출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핵심은 자동화론자들의 주장처럼 생산성 증가율의 상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산업 생산 능력의 증식과 이와 연관된 자본의 과잉축적과 제조업 확장률 및 전반적인 경제성장률의 저하로 인한 불충분한 생산물 수요에 있다. 이러한 요소들이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노동시장 침체의 주된 경제적·사회적 원인이다.

 

대규모 불완전 고용

현재의 자동화담론의 핵심에는 하바드대학 경제학자 바실리 레온티예프(Wassily Leontief)가 ‘장기적인 기술적 실업’이라고 부른 개념이 있다. 자동화와 일자리 감소의 구체적인 사례로부터 추론한 바에 따라 이 개념은 경제 전반에 걸친 현상으로 묘사된다. 에릭 브린욜프슨(Erik Brynjolfsson)과 앤드루 매커피(Andrew McAfee)는 『제2의 기계 시대』(The Second Machine Age, 한국어판 청림출판 2014)에서 인간의 수고가 ‘고래 기름’이나 ‘말의 노동’처럼 ‘오늘날의 경제에서 공짜로 제공된다 해도 더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5 언젠가 완전 자동화가 성취된다면, 그 결과 초래되는 일자리의 전면적 파괴로 인해 임금노동이 더이상 중심에 놓이지 않도록 사회생활을 재조직해야 한다는 것이 곧 입증될 것이다. 하지만 자동화담론이 암시하는 것처럼 노동 수요의 하락이 실제로 실업률 증가를 동반한 적이 있었던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평균실업률은 80년대와 90년대에 상승했고, 2008년의 위기를 맞아 다시 상승했다. 그러나 지난 십년간 실업률은 과거의 경기 후퇴 이후보다 느린 추세이긴 해도 대체로 다시 하락했다. 이 데이터는 때로 노동 수요가 장기적으로 볼 때 하락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채택된다. 오히려 요점은 노동 수요의 하락이 표현되는 형식이 실업으로부터, 측정하기가 더 어려운 갖가지 종류의 불완전 고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6 많은 논자들이 인식하고 있듯이, 우리는 ‘일자리 없는’ 미래가 아닌, ‘좋은 일자리가 없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 즉 ‘노동자들은 먹고살기 위해 계속 일해야 하고, 따라서 눈에 띄는 대로 아무 일이나 한다.’ 설령 그 일이 급여가 낮고 노동시간도 제한되어 있고 근로조건이 형편없다 해도 말이다. 자동화론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무대 뒤 어딘가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술적 실업 증가의 결과로 해석한다. 실상은 생산의 급속한 자동화는 무대 뒤든 어디서든 좀처럼 일어나지 않고 있다.

1970년대 초 실업률이 처음 상승하고 이후 수십년간 끈질기게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각 나라 정부는 노동시장 보호정책의 약화를 추진하고 실업수당의 규모를 줄였다. 소극적 소득 지원 시스템 대신 실업자들을 다시 일하도록 만드는 ‘근로복지’ 정책이 실직에 대한 주요 제도적 대응이 되었다. 미국, 영국, 독일 같은 나라에서는 노동자들이 외관상으로나 숫자상으로나 오랫동안 실업 상태에 처해 있는 예가 드물다. 대신 그들은 전형적으로 파트타임, 임시직, 혹은 그밖의 불안정한 일자리를 찾아 노동시장의 신참 대열에 합류한다. 더 나은 일자리를 전혀 제공하지 못하는 경제에서 별수가 없기 때문이다. 불안정성이 총노동력에 확산되는 정도는 각 나라마다 다르다. 증거자료를 가장 찾기 쉬운 미국의 경우, 노동조합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노동자들은 기본적인 고용 보호를 받지 못하며 노골적인 차별의 경우가 아니라면 마음대로 고용될 수도 해고될 수도 있다. 이처럼 실직자들은 재흡수되었지만, 임금 정체와 근로조건의 악화라는 댓가를 치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노동 보호제도가 더 강한 일부 유럽이나 부유한 동아시아에서는 노동력의 중요한 부문이 실직 기간과 연관된 시장 압력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이곳의 정부 전략은 노동자 내부에 소외계층이 출현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이 ‘비표준’ 노동자들은 고용 보호의 기회가 없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현실에 맞추어 임금인상 요구를 완화하지 않을 수 없다. 1985년에서 2013년 사이에 전체 고용에서 ‘비표준 고용’(non-stand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