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다시 장편소설을 말한다

 

장편소설의 현재와 가족서사의 가능성

 

 

백지연 白智延

문학평론가. 평론집 『미로 속을 질주하는 문학』이 있음. cyndi89@naver.com

 

 

1. 장편소설의 현재를 바라보다

 

근래 한국문학의 현장에서는 유례없이 많은 장편소설이 출간되고 있다. 몇년 전부터 문예지 및 온라인 공간에서 장편연재가 고정된 형식으로 자리잡고 신인과 중진을 대상으로 한 장편소설상이 신설되면서 장편소설의 활황은 어느정도 예측했던 것이기도 하다. 드라마나 영화 등 각종 문화산업과의 관련 속에서 부각되는 서사장르의 다양화 역시 장편소설에 대한 기대와 필요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무엇보다도 문학현장에서 장편소설에 대한 관심과 주문은 독자와의 폭넓은 공감과 소통을 확보하는 활력있는 이야기 형식으로서의 소설문학에 대한 기대를 반영한다.

장르문학과의 접합,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 파괴, 역사 소재의 가공 등 다양한 형식이 꾸준하게 시도되고 있지만 그중 뚜렷하게 부각되는 현상 중의 하나는 가족서사를 다룬 작품들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독자의 각별한 관심을 받은 신경숙(申京淑)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2008)와 김애란(金愛爛)의 『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2011)을 포함하여 윤성희(尹成姬)의 『구경꾼들』(문학동네 2010), 강영숙(姜英淑)의 『라이팅 클럽』(자음과모음 2010), 천명관의 『고령화 가족』(문학동네 2010), 최진영(崔眞英)의 『끝나지 않는 노래』(한겨레출판 2011), 김이설(金異設)의 『환영』(자음과모음 2011), 성석제(成碩濟)의 『위풍당당』(문학동네 2012) 등 가족 이야기를 다룬 많은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다.

장편소설의 역사에서 19세기 이래 ‘가족’은 ‘성장’과 더불어 가장 익숙하고 친근하게 다루어져온 소재 가운데 하나다. 장편소설이 감당해야 하는 ‘긴 이야기’의 시간적 흐름을 생각한다면 가족의 탄생과 변화, 쇠락의 과정은 인간사의 굴곡을 담아내기에 좋은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1) 물론 개인과 사회의 긴밀한 관계를 담아내는 주제의식이 강력하게 작동했던 근대적인 가족서사와 비교한다면, 근래 한국의 장편소설이 보여주는 가족서사는 확실히 다른 변모의 지점들을 보여준다.

한 예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는 각기 다른 서술 시점을 활용하여 가족의 변화와 쇠락이라는 흐름 속에서 ‘엄마’에 대한 기억을 담아낸다. 서사의 중심이 되는 엄마의 생애는 단일한 줄거리로 환원되지 않고 각자의 기억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복합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 소설을 감싸는 애도의 곡진한 정서적 효과는 다성적인 목소리에 의해 변주되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펼쳐보이는 데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이 보여주는 가족의 이야기 역시 주인공 소년의 기억과 상상 속에서 입체적으로 구성된다. 이 소설은 따뜻한 연민의 시선을 통하여 부모 세대의 위계적 서사를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해체하며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위계적 가족서사의 해체와 더불어 최근의 장편소설은 가족 연대기의 흐름을 허구의 새로운 원천으로 적극 활용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천명관이나 김연수(金衍洙), 최진영과 김이설의 소설에서 활용되는 가족서사는 개인의 정체성 찾기의 과제로만 수렴되지 않는, 그 자체로 증식하고 확장하는 이야기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인물의 탄생과 성장에 얽힌 사회적 연대기를 담아내면서도 그것의 기원이 되는 가족관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 소설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허구의 이야기 세계가 그 어느 때보다도 확장되지만 정작 이것을 변주하는 시선의 한편에 파국과 종말의 상상력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도 현재 장편소설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2) 김사과, 최진영, 안보윤과 백가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