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신예소설가특선
이승은 李承恩
1980년 서울 출생. 201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vinoshy@naver.com
왈츠
차는 집 앞 골목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가 먼저 운전석에 타고 그녀가 조수석에 탔다. 자리에 앉은 후에 시동을 걸자 차의 진동이 느껴졌다. 그는 막 출발할 것처럼 벨트를 매고 기어를 바꾸었다.
누구 차지? 못 보던 건데.
앞차를 가리키며 그가 말했다.
어서 출발해. 바람 좀 쐬고 싶어.
그녀는 창문을 열고 티셔츠를 살짝 위로 올려 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그녀는 반소매 셔츠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굽이 낮은 샌들을 신었다. 발목에 거는 가느다란 끈은 풀어둔 채였다. 그녀의 발뒤꿈치와 발바닥에 분홍빛이 돌고 햇살을 받은 팔과 다리는 하얗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각도가 안 나오겠는데.
그는 운전대에서 손을 떼었다. 앞뒤로 차가 바짝 서 있는 상태에서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골목에는 평소보다 많은 차가 꼬리를 물듯 주차되어 있었다.
차에 연락처가 있겠지.
그녀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차에서 내린 그는 앞차의 운전석과 조수석을 살폈다. 세차 상태가 불량했지만, 이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검은색의 고급 차종이었다.
저 차가 빠져야 가든지 말든지 하지. 근데 저 차에는 아무것도 없어.
다시 차에 올라탄 후 그는 욕을 섞어 앞차 주인을 험담했다. 그가 입은 회색 티셔츠는 구겨져 있었고 뒤통수의 머리카락은 뻗쳐 있었다.
거울 좀 봐봐.
그녀가 손가락으로 그의 입가를 가리켰다. 룸미러로 입을 살펴보던 그는 혀와 손톱을 이용해 치아 사이에 낀 것을 빼내려고 애썼다. 오늘 아침에도 어젯밤에도 그는 양치를 하지 않았다.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술에 취해 있었다. 그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는 거실 바닥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맑고 화창한 일요일 오후였다. 정오를 넘긴 햇살이 집 안에 가득 차 TV 화면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부셨다. 커튼을 치자 햇살이 사라지면서 거실이 어두워졌다. 집에는 어제 먹고 남은 술이 있었다. 그들은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시다가 술이 떨어진 후에 차에 올라탔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어떻게 할 거야?
그가 물었다.
저 집 차일 수도 있어. 얼마 전에 새로 이사 왔거든.
그녀가 말했다. 그들이 사는 삼층짜리 빌라 바로 옆에는 좀더 낡은 빌라가 있었다. 외벽의 벽돌이 몇군데 떨어진 건물로, 사람들이 잘 나오지 않아 아직 얼굴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대시보드 위에 쌓인 먼지를 손으로 닦아내고 바지에 문질렀다. 햇볕이 내리쬐는 차 안이 점점 달궈져 겨드랑이에도 땀이 차기 시작했다. 그들은 벨트를 풀었다.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그때 옆집의 고동색 문이 열리고 누군가 나왔다. 남자 한명이 골목을 가로질러 맞은편 집 담벼락으로 향했다. 담벼락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자루가 매달려 있었다. 남자를 지켜보던 그는 차 문을 열었다. 차 주인인지를 확인하고 차를 빼달라고 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녀가 어깨에 손을 올렸다. 멈칫하는 사이 남자는 손을 털며 고동색 문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봤어?
그녀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는 남자가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황급히 자루에 던져넣는 것을 보았다.
저 사람, 바이올린을 버렸어.
그녀가 말했다. 그는 핸들에 몸을 기대며 남자가 턱시도를 입고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앞차의 운전석에 앉아 있는 모습도 떠올려보았다.
그가 차에서 먼저 내리고 그녀가 따라 내렸다. 그들이 사는 빌라로 들어서 계단을 올랐다. 삼층에 다다랐을 때 그녀가 그를 붙잡았다.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그와 그녀를 비추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는 계단을 도로 내려갔다.
몇분이 흐른 뒤에 그녀는 맥주가 든 봉투와 바이올린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거야. 이걸 버린 거라고.
진짜 바이올린이네.
그가 낡고 작은 바이올린을 들여다보았다. 그녀의 손가락이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갔다. 갈색 몸통과 양쪽에 알파벳 f 모양으로 뚫린 구멍, 끝에 달린 소용돌이 형태의 조각이 그녀의 눈길을 끌었다. 여전히 윤이 나는 부분도 있고 칠이 벗겨져 나무의 속살이 드러난 곳도 있었다.
소리가 제대로 날까?
기다란 활을 살피며 그가 물었다. 그녀는 맥주를 한모금 마시고 바이올린을 어깨에 올렸다. 자세를 잡고 활을 줄에 대고 밀었다. 소리는 끔찍했다. 날카로운 뭔가가 귓속을 긁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미소 지었다.
이건 멀쩡해. 버릴 물건이 아니야.
그녀는 기뻐했다. 소리 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팔아도 돈이 되겠는걸.
그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우리 연주회 갔을 때 기억나?
그녀가 갑자기 큰소리로 물었다.
클래식 연주회 갔을 때. 끝나고 와인 마셨잖아.
맥주를 들이켜던 그가 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우리 연애하던 때 말하는 거지?
그가 물었다. 그녀는 환하게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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