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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과 평화

서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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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1주년을 맞아 평화를 생각한다. 23차에 걸쳐 시민 1700만명이 만들어낸 집회와 시위는 평화였다. 화염병이나 각목 같은 폭력적 도구를 사용하지도 않았다. 경찰과의 물리적 폭력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은 요한 갈퉁이 말한 ‘부정적 평화’였다. 하지만 이런 평화적 수단만을 부각시킨다면 그것은 촛불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이다. 동시에 촛불은 ‘적극적 평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구조적 폭력을 해체하고 소통과 상생의 공간을 열어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주말의 촛불은 성, 젠더, 나이, 인종, 국적 같은 인위적 기준에 근거한 차별을 살라버렸다. 그리고 모든 시민을 그 자체로 존중하고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었다. 촛불은 평화였던 것이다. 

 

촛불시위의 혁명성을 온전히 살리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촛불시민혁명이 열어준 평화성은 인류가 국가주의와 초국가주의로도 해결하지 못한 폭력 문제를 풀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백낙청이 지적했듯이 분단체제의 구조적 폭력인 ‘이면헌법’ 폐기가 시작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주의의 폭력성이 다시 광풍을 일으키고 있는 지금, 그 가능성은 태풍 앞의 촛불마냥 위태롭다. ‘안보위기’가 촛불을 꺼뜨릴 것인가, 촛불이 평화를 지켜낼 것인가?

 

국가는 정당한 폭력의 독점적 담지자인가?

 

촛불의 평화성이 지닌 세계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시민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하며 국가주의로도, 초국가주의로도 풀지 못한 평화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이다.

 

국가주의는 베스트팔렌조약으로 공식화되기 시작하여 세계로 퍼졌다. 그 조약은 17세기 30년전쟁을 비롯해 유럽에서 지긋지긋하게 벌어지던 종교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유럽인들이 고안한 창의적 해결책이었다. 일정한 영토 안의 정치 단위를 주권적 국가로 인정하고 외부에서는 그 내부의 일에 일체 간섭하지 말자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합의였기 때문이다. 이 국가가 어떠한 권력을 얼마나 가져야 하는지는 뜨거운 논란의 대상으로 남았지만, 막스 베버에 이르러 국가는 “주어진 영토 안에서 물리적 폭력의 정당한 사용을 독점”하는 행위자로 규정됐다.

 

하지만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탄생한 주권국가는 20세기 들어 세계전쟁을 두차례나 벌인 주체가 되고 말았다. 전쟁을 하지 말라고 만들어놓은 주권국가가 더 파괴적인 전쟁을 벌인 아이러니에 놀란 유럽 지도자들은 전후 초국가주의를 시도했다. 주권을 국가보다 더 높은 층위에 올려놓자는 것이었다. 결국 유럽연합으로 귀결된 초국가주의는 유럽에 평화를 가져오는 듯싶었지만 최근 밑으로부터 흔들리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민주주의 결핍’이 문제였다. ‘위로부터의 통합’ 과정에서 소외를 느낀 여러 유럽 시민들이 초국가권력에 대한 반대를 여러가지 모습으로 밑에서부터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촛불에 비춰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국가가 정당한 폭력을 독점한다는 그의 논리는 제1차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의 재건을 배경으로, 통치자의 입장에서 설파된 것이었다. 물론 그가 나치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이 정당한 선거 과정을 통해 국가를 장악하고 독점적으로 폭력을 행사하여 세계를 파국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지도자의 덕목 결여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더 큰 원인은 그에게 시민이 없었다는 점이 아닌가. ‘피통치자’만이 있는 베버 식의 논리에 기초한 국가주의나 초국가주의는 이미 한계를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시민이 역사의 주인으로 등장해 평화의 공간을 일구어낸 촛불혁명은 이렇게 세계사적 지평을 열고 있다. 사회화되고 정치화된 시민, 자유로운 개인이면서 동시에 소통하는 집단으로서의 시민이 사회의 주인이 되는 것은 사회를 평화롭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국가주의와 초국가주의가 풀지 못한 전쟁을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해체해나갈 주체가 등장한 것이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

 

그래서 다시 묻는다. 과연 바뀐 것이 있는가? 촛불로 평화의 공간을 연 지 1년이 지난 오늘, 우리의 삶은 얼마나 더 평화로워졌는가? 한반도는, 동북아는 평화를 구가하고 있는가?

 

오히려 지금 동북아에서는 국가 폭력과 위협이 태풍처럼 횡행하고 있다. 그 태풍의 핵은 한반도이다. 그리고 그 핵을 지배하는 힘은 국가주의다. 북은 자국의 군사력을 이렇게 정당화한다. “우리의 총창우에 평화가 있다.” 미국은 화답한다. 매티스 국방장관의 입을 빌려서 말한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 한국정부도 동참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가 (…) 한국 국민에게도 많은 희망”이 된다고 한다. 한국과 미국 국방부는 안보를 위해서 군사훈련을 계속한다고 천명했고, 북은 군사훈련이 계속되면 자신의 핵무기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한다. 중국은 세계 일류 군대 건설의 꿈을 꾸고 있고, 차제에 일본은 평화헌법의 족쇄를 풀고 국군을 보유하여 해외 군사력 행사가 가능한 ‘보통국가’로 매진하고 있다.

 

이렇게 모두가 더 큰 위기를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다. 전쟁을 준비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 올림픽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헛된 꿈이다. ‘전략자산’이라는 핵무기 투발수단을 휘두르면서 외교적 해법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평화를 위해 군사훈련과 핵미사일 시험을 계속해야 한다는 주장은 구조적 폭력을 확대 강화하겠다는 선언일 뿐이다.

 

이제 그 태풍을 맞아 촛불이 꺼질 것인가, 그 한가운데서 다시 촛불이 살아날 것인가? 위대한 평화의 가능성을 열었던 촛불이 군사력 위협의 충돌 속에 소멸될 것인가, 위협을 안에서부터 녹여내는 힘으로 살아날 것인가? 한반도를 오랫동안 에워싼 분단과 전쟁이라는 구조적 폭력의 위세에 촛불이 사그라질 것인가, 그 구조적 폭력을 해체하는 역동성을 발휘할 것인가?

 

평화는 가능하다

 

촛불의 사활이 걸린 지금, 벌써 아스라이 잊힌 과거를 상기한다. 한반도와 동북아에 훈풍이 불던 때가 있었다. 1994년 제네바합의에서 출발하여 2000년 북과 미국은 정상회담을 얘기하는 수준까지 관계가 발전했고, 남북은 실제로 정상회담을 두차례 가졌다. 한일관계도 상승 무드를 타고 1998년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하고 2002년에는 월드컵을 사상 최초로 공동개최하기도 했다. 북일관계도 힘을 받아 2004년에는 코이즈미 수상이 김정일과 회담을 갖고 평양선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한중관계도 순풍에 돛 단 듯 2003년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 2008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진전했다. 남북 대화와 교류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전변의 선순환을 확대재생산하는 핵심이었다.

 

평화는 가능하다. 촛불이 제대로 선다면 이전보다 더 깊고 더 진한 평화도 가능하다.

 

서재정 / 일본 국제기독교대학 교수, 국제정치학

2017.11.1.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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