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3대 위기를 넘어, 3대위기론을 넘어

 

정치연합, 진보개혁세력 상생의 길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 『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등, 편서로 『이중과제론』(창비담론총서 1) 등이 있음. lee87@skhu.ac.kr

 

 

1. 민주주의, 위기에서 부활로?

 

이명박정부가 출범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라며 민주주의는 냉소의 대상이 되곤 했다. 진보개혁세력 내에서도 이러한 분위기의 형성을 거드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이 과거와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권위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민주화 단계는 끝났으며 이제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민주주의를 진전시킬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하는 ‘포스트-민주화론’은 민주화의 성과를 위협하는 요인들에 대한 경각심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했다.1 그러던 중 2007년 12월 대선과 2008년 4월 총선에서 ‘잃어버린 10년’과 ‘실용’이라는 구호를 앞세운 보수진영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고 민주주의는 계속 악화되어갔다. 이와 동시에 민주주의의 위기와 관련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민주주의가 현실에서는 역진하지만 담론공간에서는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변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정권교체 이후 벌어진 정치변화의 폭이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은 데 있다. 보수진영이 집권하더라도 1987년 6월민주화운동 이후 진행된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과, 특히 권력기구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위기에 직면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많지 않다. 반면 양극화가 현실적이고 시급한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문제는 정치적 민주주의보다 사회경제적 과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증가했던 것이다. 이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희망이 섞인 판단이었다. 사람대접 받기 힘들고 21세기의 한국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권위주의시대로 되돌아가기를 누가 원하겠는가? 그렇지만 희망만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이명박정부의 출범과 함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한 보수는 사람들이 기대했던 보수와는 거리가 멀었다.2 이들은 갖은 수단을 동원해 행정부, 입법부, 국정원, 그리고 언론과 사법부까지 정권의 도구로 만들고자 시도했고,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의 성과를 빠르게 무너뜨려갔다. 이는 한국사회에 두가지 차원의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

첫째, 행정부의 폭주를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작동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행정부의 임기는 5년이지만 그 결정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임기의 제약을 받지 않기 때문에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4대강사업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제도적으로 이를 통제하기 위해 여론감독, 환경평가, 국회심의 등 여러 장치가 존재하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둘째, 절차적 민주주의가 기능하기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는 정치공간에서의 공정한 경쟁도 어려워졌다.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학술문화 영역에서도 비판기능을 거세하기 위한 시도가 노골적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시민사회에도 공안 수단을 동원한 이른바 외과수술식 타격을 가하고 있다. 게임의 규칙도 제멋대로 만들고, 상대의 손발을 묶어놓은 상황을 그대로 두고 정상적인 정치발전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다름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화두가 등장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위기 대응에 나서기 전에 어찌하여 진보개혁세력 내에서조차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적인 태도가 그처럼 널리 확산되었는가라는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2. 민주화 단계는 끝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역진이 이처럼 빠르고 전면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단순히 이명박정부를 이끄는 몇몇 사람의 행태 때문만은 아니다. 중앙집권적 정치제도와 정치문화를 고려하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권부의 행태가 정치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권력기구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상당히 진전되었다고 여겨지던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무시하는 태도가 큰 견제 없이 거의 모든 권력기관으로 쉽게 확산될 수 있게 된 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실 길게 보면 20여년, 짧게는 10년의 민주화를 통해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은 민주주의 발전을 지나치게 낙관한 것이다. 민주주의 제도의 발전을 선도했다는 서구에서도 민주주의의 정착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했다. 부르주아민주주의가 점진적으로 형성된 영국은 차치하더라도 18세기 후반 부르주아민주주의 혁명을 경험한 프랑스와 미국에서도 민주주의적 제도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100년 이상의 세월, 그것도 이를 부정하려는 세력과 수호하려는 세력들 사이의 대립과 투쟁의 시간이 필요했다.3 물론 18,19세기의 정치변화와 21세기의 정치변화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국민주권의 원칙이 수용되고, 국민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물적 토대가 강화된 조건에서 민주주의가 더 빠르게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1세기라고 민주주의 발전에 유리한 조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우리의 경우 분단체제라는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논하기 어렵다.

올해로 한국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이하는데, 3년여의 치열한 전쟁이 남긴 상처와 휴전협정이라는 불안정한 ‘평화체제’하에서 유지된 냉전체제는 한국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민주주의적 규범을 수용하는 진보-보수의 분포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민주주의적 규범에 적대감을 보이는 이념적 경향들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들었다. 이는 좌우 양측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특히 반공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국가건설이 진행된 남한에서는 수구냉전적 보수이념의 영향력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과잉대표되어왔다. 민주화가 진행되며 한국정치가 냉전이데올로기의 제약에서 조금씩 벗어나기는 했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단위에서는 상황이 크게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분단체제하의 기득권세력이 상층권력을 장악하자,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던 수구냉전세력이 적극적으로 호응하며 민주주의적 원칙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행태들이 가능해진 것이다. 물론 분단체제하에서 민주주의가 진전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현대사가 잘 보여주는 것처럼 분단체제하의 기득권세력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진행되었고, 또한 상당한 성취를 이루기도 했다. 특히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은 민주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으며, 이후 2000년 6·15선언으로 이어지면서 분단체제를 동요시키고 그 극복의 길을 앞당겼다. 그러나 여전히 분단체제의 제약이 엄연하고, 민주화의 성과를 위협하는 기득권세력의 정치적·경제적 역량도 진보개혁세력보다 우위에 있다.

또한 짧은 민주화의 역사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충분하게 발전하지 못했는데, 이 역시 민주주의가 현재 퇴행적 반격에 무기력한 원인이다. 지금까지의 민주화는 엘리뜨정치 수준에서의 변화가 중심이었고 시민사회의 발전도 주로 중앙정치를 상대로 목청을 높이는 활동에 주로 의지해왔다. 이런 현상도 분단체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분단체제하에서 과도하게 발달된 중앙집권적 권력구조를 정상화하는 것이 지난 시기 민주화의 주된 과제였기 때문에 지역적 차원에서는 그 성과가 축적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에 더해 반공이데올로기로 노동운동 등 계급운동의 발전이 지체되었고, 노동운동이 발전기에 들어선 직후 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화하고 구조조정 압력에 직면하며 성장에 제동이 걸린 것도 민주주의의 조직적 토대를 취약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10년간의 민주정부하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은 주로 중앙정치 차원의 제도개혁을 매개로 시민단체와 민주정부가 상호작용하면서 진행된 것이다. 그런데 민주정부라는 축이 사라지자 시민사회는 자신의 의제를 관철시킬 다른 수단이나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문제의 심각성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이미 밝혀진 바 있다. 참여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이 강하기는 했지만 구청장 25명 전원, 서울시의원 116명 중 102명의 당선자가 한나라당 후보들이었다는 상황은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결과다. 물론 상황이 절망적인 것만은 아니다. 촛불항쟁이 보여주었듯이 새로운 유형의 풀뿌리조직들이 꾸준히 발전해왔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대의정치의 발전과 선순환을 이루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분단체제의 제약하에서 냉전수구세력의 과잉성장과 풀뿌리 민주주의의 취약성 등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지나친 낙관은 이러한 요인들이 한국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장기적이고 복합적 과제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간과한 데서 비롯되었다. 물론 민주주의의 위기를 이야기하며 지나친 비관론에 빠지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앞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현실이 담론공간에서 민주주의를 부활시키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민주주의의 부활이 단순히 담론 수준에서만 진행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지난 2년 동안 민주주의 위기에 대응하는 시민들의 만만찮은 역량이다. 의회 내에서 다수를 앞세운 일방주의를 저지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이러한 정책들의 비민주성에 대한 저항들이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지속적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해방후 민주화투쟁의 유산, 특히 지난 10년 동안의 민주화가 쌓은 성과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는 없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지평도 크게 넓어졌다. 1987년 이전에는 민주화운동이 주관적 의지와는 관계없이 ‘군사독재 종식투쟁’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으나 현재는 그동안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확보한 여러 정치적·사회적 공간에서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자 하는 동력이 만들어졌고 그 실천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진전을 추구하는 것이 ‘민주 대 독재’ 전선으로의 퇴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근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전히 우리는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려는 힘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힘 사이의 겨루기가 팽팽하게 진행되는 국면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에는,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론이 높아지며 진보개혁세력들이 민주주의의 성과를 지키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한 협력에 소홀한 채 자신의 의제만을 앞세우는 분열적 움직임에 나서게 만들었다. 반면 현재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아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작은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역시 자신의 의제만을 앞세우며 정치적인 분열을 촉진할 우려가 크다. 이 힘겨루기 국면은 우연적으로 혹은 일시적으로 출현한 상황이 아니라 분단체제의 제약하에서 구조화된 것이다. 물론 이러한 국면을 발전적인 방향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우리의 노력에 따라서 그 전환 속도가 빨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단계를 건너뛰어 어떤 정치적·사회적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 발상이다.

 

 

3. 반MB연대와 변혁적 중도주의

 

최근 민주주의의 위기는 반MB연대의 필요성을 높이고 있다. 이는 특히 선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처럼 야권이 분열된 상태로는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 필요성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무엇에 반대한다’는 정치목표로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반MB라는 구호에 이미 성장제일주의에 대한 반대, 민주주의적 규범의 수호, 4대강사업 같은 파괴적 개발에 대한 반대 등의 가치가 집약되어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정치적 구호가 반MB에 머물러서는 안된다는 문제의식은 중요하지만, 현재 반MB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치적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은 자신이 뛰어오르기 위한 발판을 스스로 치워버리는 격이다.

반MB연대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와 관련해 소위 민주연합론과 진보연합론 사이의 논쟁이 다시 출현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그중 어느 것도 반MB연대가 나아갈 방향이 되기는 어렵다.

반MB연대라고 하면 일단 민주대연합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그 일차적인 목표가 민주주의의 역진을 막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반MB연대가 과거의 ‘민주 대 독재’라는 정치전선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우리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가 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실천이 독재반대라는 목표로 모아질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앞에는 민주주의의 위기 이외에도 민생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등 3대 위기의 극복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지 않은가?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위기가 3대 위기에만 그치지 않을 것이며 당장 4대강사업으로 인한 생태의 위기, 그리고 반칙과 말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권력자들의 행태로 인한 도덕의 위기도 추가할 수 있다. 따라서 연대의 목표가 민주주의 위기의 극복으로만 제한된다면 연대의 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민주당 같은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에만 의존해서는 이러한 과제들을 해결할 수 없으며 민주주의, 생태, 민생, 남북의 화해와 협력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세력이 모두 힘을 합치는 연대를 만들어가야 한다.

진보대연합도 반MB연대가 나아갈 방향이 되기 어렵다. 이론적으로만 보자면 민주대연합과 진보대연합은 반드시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와 진보는 동전의 양면과 같기 때문이다. 대중의 참여를 강화하는 민주주의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진보적 정책이 실현될 길이 없다. 반대로 진보적 정책이 실현되지 않으면 민주주의의 토대도 취약해질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후자의 상황과 어느정도 관련이 있다. 민주정부 10년 동안 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민주와 진보 사이의 연결이 약화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민주주의라는 목표를 방기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양자 사이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거나 민주주의가 분배의 정의에 부정적인 영향만 미쳤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민주정부 시기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도입되는 등 사회보장제도의 기본틀이 만들어졌고 사회보장 관련 재정지출도 꾸준히 증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의 진전이 없이는 얻기 어려운 성과다. 현존하는 제도를 강화하는 편이 제도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는 쉽기 때문에 이 시기에 사회복지제도의 기본골격을 구축한 것은 장기적으로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가는 데 중요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문제는 세계화와 기술혁신에 의한 산업구조 및 고용구조의 급격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사회보장제도 구축과 재정지출 증가도 이러한 새로운 변화에 의해 촉발된 양극화 추세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특히 양극화와 고용불안정의 문제들에 적극적인 대응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시점에서 한미FTA라는 의제를 던져 초점을 흐리고 진보개혁진영의 내부 분열을 가속화한 점은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이 문제들을 해결해가는 데도 민주주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 신자유주의 반대를 앞세우는 진보세력들도 이 문제에 설득력있는 대안을 제시했다고 보기 어렵다. 현실사회주의체제의 붕괴 이후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찾는 것은 어떤 선험적이고 총체적인 사회경제 모델에 기댈 수 없는 상황이다. 대중의 참여를 보장하는 새로운 민주적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새로운 주체들과 삶의 모델을 형성해가는 것으로써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진보적 정치세력들 역시 자기혁신이 필요하다. 정치적 민주주의 진전은 이러한 실천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결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반MB연대는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동시에 그 성과를 기초로 한국사회가 직면한 다양한 과제를 달성해가기 위해 다양한 정치세력이 힘을 합치는 전략이 되어야 하지 민주대연합이나 진보대연합 중 어느 하나로 귀결되어서는 안되며 그래서는 성공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복합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것이 ‘변혁적 중도주의’다. 신자유주의 극복을 위한 변혁을 추구하지만 분단체제의 제약을 고려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주장을 내거는 것은 진정한 변혁에 도움이 되지 못하며, 동시에 변혁적 전망을 아예 갖지 못한 자유주의적 혹은 순응주의적 개혁전략이 기득권 획득을 넘어서 근본적이고 복합적인 과제 해결로 나아가기를 기대하기도 힘들다.4 변혁적 중도주의는 분단체제의 제약을 고려하며 우리 앞에 높인 복합적 과제들의 해결을 위한 현실적인 길을 찾는 방식으로 진보진영의 공허한 급진주의를 극복하는 동시에, 남한 내의 개혁을 분단체제의 극복(다시 강조하지만 “무조건적 통일〓분단극복”이 아니다)이라는 변혁적 과제의 해결을 촉진하는 동력으로 만들어가면서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의 불철저성을 극복해가는 것이다. 반MB연대는 어느 하나의 가치로 다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가치가 건강한 긴장관계를 형성해가면서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다양한 세력이 이러한 변혁적 중도주의의 길로 결집해야 반MB연대는 유지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5

 

 

4. 정치연합은 상생의 길이다

 

반MB연대가 변혁적 중도의 길을 열기 위해서는 이를 끝까지 밀고나갈 조직적 토대가 있어야 한다. 만약 반MB연대가 자유주의 개혁세력인 민주당에만 이익이 된다면 곧 중도의 길과 멀어지는 것이다. 진보대연합을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우려가 적지 않다. 당장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연합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고 반MB세력이 효과적으로 연합하지 못하면 진보개혁세력 전체가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정치연합이 실질적으로 진전되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사실 정치연합이라는 것은 약자가 강해지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수단의 하나이며, 강자의 무기만은 아니다. 정치영역에서 힘의 열세를 우세로 전환시킨 가장 극적인 사례는 마오 쩌뚱(毛澤東)이 이끈 중국공산당이다. 중국공산당은 중국국민당과의 두차례 합작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과 기반을 확장할 수 있었고 결국 중국국민당에 정치적·군사적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특히 1936년 제2차 국공합작이 없었더라면 중국공산당은 옌안(延安)이라는 편벽한 지역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세력에는 이념적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이념을 현실적인 정치역량으로 전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치연합이 유력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진보진영 내에 정치연합을 부정하거나 소극적인 경향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민주당 같은 자유주의적이고 기회주의적 정당은 극복대상이지 연합의 파트너가 될 수 없다는 이념적 반대론이 있다. 이러한 입장을 견지한다면 정치연합에 대한 논의는 진전되기 어려울 것이고, 유권자들의 선택에 의해 자신의 주장을 검증하는 길밖에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실험이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지난 20여년간 계속되어온 것인데도 정치적 측면에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은 필요할 것이다. 특히 정당이라는 현실정치에 참여한 세력으로서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 그 책임을 외부로만 돌리는 것은 자기 위치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명박정부 출범 이후의 변화된 상황은 이러한 원론적인 부정론을 약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진보진영에는 민주당 같은 기회주의적 세력이 정치연합의 성과를 독식할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여전히 크다. 이러한 불안감은 정치연합에 능동적으로 나서는 것을 가로막거나 나서더라도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그들의 피해의식에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새로운 정치를 내걸고 자유주의정당에 합류한 인사 혹은 세력들이 기존의 보수적 정치문화와 정치노선을 바꾸는 데 실패하고 기득권구조에 흡수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피해의식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동안 진보정당의 성장과 민주당 같은 자유주의정당의 발전은 제로썸 관계가 아니었으며 자유주의적 개혁정당과 진보정당의 세력 확장과 후퇴는 유사한 싸이클을 그려왔다. 예를 들어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에서는 양자의 세력 확대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확장될 때, 즉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약화될 때 진보적 정치세력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도 확대되었다. 반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결과가 보여주는 것처럼 보수주의적 정치세력이 강화되고 자유주의적 개혁세력이 약화될 때 진보정치세력도 동시에 위축되었다.6 이는 정치연합이 반드시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에 불리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이를 촉진할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의식적으로 자유주의적 개혁정당들과 정치연합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들은 선거에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확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어왔다. 그 결과 대부분의 선거에서 둘 사이의 경쟁관계만 존재했고, 그 과정에서 자유주의정당이 진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가로막는 주요 장애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왔다. 그러나 이는 정치연합의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연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데서 비롯된 문제다. 따라서 실제로 이루어지지 않은 정치연합을 놓고 진보정당의 발전에 긍정적이었는지 부정적이었는지 따지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물론 모든 정치연합이 진보정당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에 적합한 전략과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적어도 현재는 상생의 길을 찾는 것이 어느 때보다 유리한 정치지형이라 할 수 있다. 진보정당을 포함한 소수정당들은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에 거의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정국주도력의 회복을 위해서 주요 광역자치단체장선거에서의 승리가 절실하다. 소수정당들의 정치적 진출과 민주당의 주요 이익을 교환하는 방식의 연합이 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물론 여러 다른 현실적인 이유로 이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도 정치연합의 경험은 적지 않다. 가깝게는 DJP연합, 노무현-정몽준연합이 있다. 한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1990년의 3당합당과는 달리 공개적인 방식 혹은 여론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진전된 것이었고 선거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번에 정치연합이 이루어진다면 과거보다 진일보한 의미를 갖는다. 우선 연합과정에서 정책에 대한 논의가 다른 때보다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으며, 그 성과가 축적된다면 이번 지방선거를 넘어 다음 총선, 그리고 대선까지 더욱 효과적이고 발전적인 정치연합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보수세력을 끌어들인 연합이나 자유주의적 개혁세력 사이의 연합과 달리 이번에는 진보적 정치세력, 자유주의적 개혁세력, 시민운동 사이의 연합이 될 것인데, 이는 한국정치사에서 초유의 사건이라 할 수 있으며 변혁적 중도주의의 길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이다.

 

 

5. 감동의 정치가 필요하다

 

정치연합을 실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승자독식의 현행 선거제도하에서는 그 방법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연합의 활성화를 위해 선거제도 개혁을 정치개혁의 핵심 과제로 삼자는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어왔다.7 그러나 올해 지방선거에 새로운 선거제도를 도입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현 선거제하에서 정치연합을 실현시킬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 후보공천에서의 국민배심제 도입, 공동지방정부 구성 등 여러 방안이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어떤 방안도 폭넓은 합의를 만들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먼저, 국민배심제 공천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정치연합의 주도권이 정당으로 넘어가 시민사회가 주변화되는 것을 방지하고, 시민사회의 정치적 역할을 강화하고 새로운 정치의 흐름을 만들어낼 가능성을 주목한다.8 그러나 이 방안에 대해서는 시민사회가 정당의 기능을 대체하게 되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견해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 차원에서 이를 추진하는 것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과 같은 정도의 결단을 필요로 한다. 시민사회의 역량이 이러한 변화를 만들어낼 정도도 아니다. 다만 이 방안을 제한적이고 선택적으로 추진할 수는 있다. 예를 들면 민주당이 자신의 텃밭이자 대안적 정치세력이 어느정도 기반을 갖춘 지역에서는 정당공천을 포기하고 국민배심제 공천을 선거법의 틀 내에서 도입한다면 상당한 관심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또는 한나라당 강세지역에서도 반한나라당 진영의 연합을 촉진하는 방식으로 채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전국적 차원에서 정치연합이 진전될 때 그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지방정부 구성은 정치연합의 성과를 공유하는 주요 방안의 하나가 될 수 있다.9 이는 정치연합을 의석 배분 같은 기계적 결합에서 정책을 공동 집행하고 그 책임과 성과를 공유하는 화학적 결합으로 발전시키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지역 차원에서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어가고 새로운 사회경제적 실험을 함으로써 사회진보를 촉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10 그러나 정치연합에 참여하는 세력들 사이의 신뢰관계가 약할 경우 이러한 방안은 실현가능성이 낮고 공동정부가 구성되더라도 효율적으로 기능하지 못해 장기적으로 정치연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이 역시 국민배심제와 마찬가지로 선택적으로 시도해볼 만하기는 하지만 당장 정치연합을 위한 보편적 모델이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현재 정치연합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참여하는 정치세력들이 전국적 차원에서의 선거공조 방안에 합의를 해내는 것이다. 앞으로 정치연합과 관련해서는 다음 세가지 씨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첫째, 조기협의를 통해 선거연합을 성사시키고 지방선거에 공동대응하는 것이다. 아마도 가장 합리적인 방안일 것이다. 여기에는 후보단일화 이외의 국민배심제, 공동정부구성 등의 방식이 모두 포함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우선 민주당은 자신의 텃밭을 다른 정치세력에 개방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자기희생이 있어야 민주당이 내세우는 정치연합 구호의 진정성이 인정받을 수 있고 동시에 자기들이 사활을 걸고 임하는 지역에서 선거공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이외의 정치세력은 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 후보 결정과 조정에서 가장 객관적인 기준은 지지도일 수밖에 없다. 물론 민주당이 선거의 상징적 승리를 가장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단지 지지도만 따질 게 아니라 다른 세력들에 더 많은 배려를 할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정치연합이 현실적인 힘의 분포를 완전히 무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는 힘들다. 따라서 민주당 이외의 정치세력들은 현실정치로의 진입과 정치신인의 육성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역시 민주당 이외의 정치세력들이 얼마나 진지한 태도로 정치연합에 임하는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원칙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민주당이 텃밭을 개방한다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이 좋은 후보를 내지 못할 경우 무소속 등으로 출마한 낙천 후보자, 경우에 따라서는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민주당이 별로 가능성이 없는 지역만을 개방할 경우에도 연합이 성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협의에 속도가 붙으려면 막연한 원칙에 대한 논의를 넘어 민주당도 다른 정치세력들에 개방할 수 있는 지역을 좀더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민주당 이외의 정치세력들도 후보의 지지기반 등을 고려해서 연합이 이루어질 경우 선거승리의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선택해 민주당의 양보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은 이 목록을 보고 어느 정치세력이 정치연합에 더 진정성이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각 정치세력이 독자적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선거과정에서 후보단일화 등의 공조를 모색하는 것이다. 첫째 씨나리오는 소수파 정치세력이 자신의 가능성을 검증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는 점에서 이들에게 쉽지 않은 선택이다. 특히 일부 지역에서 인물을 통한 돌파라는 가능성을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소수파 정치세력의 선택을 존중해줄 필요가 있다. 이 경우에도 최선의 방법은 사전에 후보단일화 방식과 시점에 대해서 미리 합의를 하고 선거운동에 임하는 것이다. 후보단일화 방식과 관련해서는 이미 지난해 10월 안산 보선 때 민주당, 시민사회, 그리고 민노당·진보신당·창조한국당이 공동으로 지지를 선언한 임종인 후보 등이 합의했던 단일화 방안을 활용할 수 있다. 임종인 후보의 사전발표가 빌미가 되어 실현되지 못했지만 누가 단일화에 더 적합한가를 묻는 적합도 조사와 단순지지도를 묻는 지지도 조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지지도가 낮은 정당의 후보에게도 기회를 주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선거운동은 따로 진행하더라도 첫번째의 조기협의 씨나리오에 가까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합의 없이 선거운동에 돌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소수파 정치세력이 가능성에 대한 도전을 선택하는 것은 자유지만, 이러한 선택이 치러야 할 비용을 인식할 필요도 있다. 즉 사전에 연합방안에 대한 일정한 합의 없이 선거전에 돌입하면 지지도에서 앞서는 후보에게 양보를 요청하기 어려울 것이고 후보배분 협상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선거 막판에 공동정부구성 같은 방식으로 후보단일화를 하는 것이 남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합의에는 포함되기 어렵겠지만 비례투표와 지역구 투표에서 비민주당 후보에게 보상투표가 이루어지는 정치환경도 만들어낼 수는 있을 것이다.

세번째 씨나리오는 정치세력 사이의 선거연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결국 유권자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이 경우도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유권자들이 MB에 반대하는 가장 유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방식으로 정치연합의 효과를 거둘 가능성도 있다. 그렇지만 진보개혁세력 내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방관한다면 이들에게 정치적 미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주요 정치세력 사이의 연합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많다. 제도 미비, 신뢰 결여, 리더십 부족 등이 정치연합에 회의적인 주요 이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민심이 원하고 있다. 2008년 4월 경기도 교육감 선거, 4월 재보궐선거, 10월 재보궐선거 등 촛불항쟁 이후 모든 선거에서 어려운 정치환경이었음에도 한나라당과 이명박정부에 반대하는 흐름이 이어져온 것이 그 증거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명박정부의 독주를 저지하는 데 결코 적지 않은 성과도 거두었다. 일부에서 국민은 관심이 없다, 연합을 해도 승리의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이 어디서 민심을 확인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물론 문제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이나 민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확인된 민심을 어떻게 수렴해갈 것인가에 있다. 정치적 전환기에 믿고 갈 것은 민심이고, 일시적인 성패와 관계없이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그리고 감동은 어떤 거창한 구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민심에 부응하며 자신의 기득권을 내놓는 결단에서 나오는 것이며, 이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정치세력 앞에 미래가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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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장집 교수의 “20년 전이라면 모를까 이제 민주화가 됐지 않습니까, 그런데 무슨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있습니까. 이제 정책과 내용으로 정당을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내용 면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중앙일보 2007년 2월 21일자 인터뷰)라는 발언은 당시 상당히 넓은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다. 2007년 6월 8일 원광대 명예박사 수여식 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 청산과 개혁은 상당 수준에 간 것 같습니다. 지금 특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권력기관이 아니고 오로지 언론 하나가 남아 있습니다. 시장지배 권력은 아직 잘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지요”(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415297)라고 말한 것도 정치적 민주주의에 대한 낙관적 태도를 보여준다.
  2. 필자는 2007년 12월 11일 『창비주간논평』을 통해 발표한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이미 시작되었다」에서 이에 대한 불안감을 “역사적으로 볼 때 해방후 40여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장을 완벽하게 거부해온 세력이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하며, 이들이 불과 20년을 갓 넘은, 그것도 힘겨운 발걸음을 거듭해온 민주주의를 무화시킬 가능성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즉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수구동맹을 만들어내기 위한 조건들은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이번 대선을 맞이하여 본격적 가동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3. 1910년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선거권은 성인인구의 14~22%에게만 부여되어 있었다. 쌘드라 핼퍼린(Sandra Halperin)은 이를 근거로 20세기초 유럽에서 민주주의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고 있었다는 생각은 서구 민주주의의 신화라고 지적했다. 샌드라 핼퍼린 『유럽의 자본주의: 자생적 발전인가 종속적 발전인가』, 최재인 옮김, 용의숲 2009, 7장. 프랑스의 경우만 보아도 20세기초 1894년부터 1906년 사이에 진행된 드레퓌스 사건을 거치며 비로소 왕정복고주의자, 극우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영향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공화제가 어느정도 정착하게 되었다.
  4. 백낙청 『어디가 중도며 어째서 변혁인가』, 창비 2009, 322면.
  5. 변혁적 중도주의의 개념은 백낙청이 2006년 창비홈페이지(www.changbi.com)에 발표한 「6·15시대의 대한민국」(2006.1.1)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2006년 5월 출간한 사회평론집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에 실린 「변혁적 중도주의와 한국 민주주의」(2006.3)에서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6. 87년체제하에서 이러한 메커니즘의 작동에 대해서는 김종엽 「87년체제론의 관점에서 본 사회체제논쟁」, 『민주사회와정책연구』 2010년 상반기호, 80면.
  7. 이와 관련해서는 비례대표제의 도입이나 비례성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중요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최태욱 「무엇을 위한 정치연합인가」, 『창비주간논평』 2009.11.9. 그밖에 프랑스식 결선투표제 도입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8. 박원순이 2009년 11월 18일 한 토론회에서 국민공천을 제안하면서 이와 관련된 논의가 시작되었다. 고원은 이를 시민사회의 전국적 선거전략으로 제시했다. 고원 「연합정치의 가능성과 시민사회-정치사회의 관계 변화」, 희망과대안·희망정치연구회 공동주최 심포지엄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새 패러다임 모색: 연합정치와 시민정치운동’(2009.11.26). 이와 관련해서는 김대호 「2010 희망의 새바람을 불러올 〔국민배심제 연합공천〕 운동 제안」, 『좋은정치포럼』(2009.12.23, www.goodpol.net/discussion/ progress.board/entry/296)도 참조.
  9. 이 논의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2010년 1월 7일 신년기자회견에서 공동지방정부를 제안하며 시작되었다.
  10. 이런 실험은 현재 사회경제체제의 문제점을 발본적으로 해결할 대안모델을 탐색하는 세력들에게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즉 국가나 중앙정치 차원에서는 정치세력간 관계, 거시경제적 환경 등의 제약으로 이들의 문제의식이 실행되기 어렵지만, 지역 차원에서는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이나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에 대한 실험이 상대적으로 쉽게 시도될 수 있고, 그 성과가 축적되어야 진보적·변혁적 주장이 국민들의 폭넓은 동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