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개편과 시민사회 역량강화, 대립하지 않는다

이남주

지난호 창비주간논평 ‘거버넌스론’ 비판을 읽고

이남주 /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백낙청 교수는 지난해 말 발표한 <거버넌스에 관하여>(창비주간논평 2008.12.30)에서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는) 유일한 해답은 남은 4년 동안 대통령으로서 꼭 해야 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을 대통령에게 남겨주면서 나머지는 내각과 입법부, 사법부, 언론, 시민사회 등의 몫으로 배분하는 정교한 사회적 장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나라의 거버넌스 체계를 다시 짜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2월 18일 관훈토론회 강연에서 새로운 거버넌스의 필요성과 방안에 대해 다시 상세하게 설명했다.
 
권력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제안에 대해 지지와 반대가 엇갈리는 것은 어느정도 예견된 일이다. 이 제안을 출범한 지 얼마 안된 정부를 흔드는 행위로 받아들이는 보수세력의 입장은 차치하더라도 진보개혁세력에서도 뭔가 흔쾌하지 않은 느낌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호 ≪창비주간논평≫에 발표된 정상호 교수의 <대안은 거버넌스가 아니라 생활정치다>라는 글은 진보개혁세력의 거버넌스론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나름대로 일목요연하게 제시했다. 이 글에서 현재 진보개혁세력이 처한 상황에 대한 진단과 향후 방향에 관한 제안에는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지만, 거버넌스론에 대한 비판은 이 제안이 제출된 배경과 의미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면이 있어 몇가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위기 극복을 위한 제안, 새로운 거버넌스
 
우선 거버넌스 개편론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이명박정부의 용산참사에 대한 대응 등을 볼 때 “MB정부에 시민사회와의 소통과 협력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거의 불가능한 기대”라는 판단에서 시작된다. 진보개혁진영에서는 이명박정부와 새로운 거버넌스를 만들자는 주장에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거버넌스론은 현정부에 대한 어떤 기대에서 제기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국이 특정 정치세력의 힘만으로는 문제해결이 어려운 방향으로 전개될 경우 진보개혁세력이 이에 어떤 대안을 내놓을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제시된 것이다.
 
경제위기는 진행형인 상황이고 남북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경우 국가와 민족의 원기가 크게 훼손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역량을 결집시키는 것이 필요하며, 그 노력에 정부, 그것도 임기가 4년 가까이 남은 정부를 배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이다. 만약 이명박정부가 이 제안에 진지한 태도로 대응한다면 환영할 일이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진보개혁세력이 국민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더 중요한 비판이자 쟁점은 “거버넌스를 논하기 앞서 연대를 통한 시민사회 내부의 역량강화와 뼈를 깎는 자기혁신이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한 순서”라는 주장이다. 진보개혁세력, 시민사회의 역량이 강화되지 않고서는 거버넌스가 실질적 의미를 갖기 어렵고 실현될 가능성도 낮다는 점은 올바른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진보개혁세력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과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가 상호충돌하는 것인지 아니면 보완적인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거버넌스 논의를 기각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거버넌스는 생활정치의 발전을 촉진하려는 실천
 
정상호 교수는 일자리(비정규직입법), 교육(3불정책), 개방(한미FTA), 경제(수출주도 재벌경제의 극복) 등과 관련한 합의가 생활정치를 발전시키고 진보개혁세력의 힘을 강화하는 데 관건이 된다고 주장한다. 생활정치의 중요성은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이지만 어떻게 생활정치가 발전될 수 있는가는 더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그동안 이 의제들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게 아닌데, 그간의 논의가 국민들의 지지와 관심을 받는 데 왜 실패했는지 더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여러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정파적 이익을 토대로 앞의 의제들에 접근한 탓에 그 논의가 생산적인 결과를 낳기보다 분열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각 세력이 단순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답’을 내놓는 방식으로는 논의를 오래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그 논의의 지평이 변화할 때, 정책연합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 즉 정책적 논의가 진보개혁진영의 자족적 논의에 그쳐서는 안되며, 국민적 요구를 반영하고 국민적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논의를 바탕으로 정책협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그러한 논의의 지평을 제시하는 것이다. 지난 시기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국민들이 진보적 의제에 많은 기대를 함에도 그 의제를 실천하려 노력한다는 진보개혁세력에 실망하게 된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논지에서 보궐선거 등과 관련한 정세적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하나 생활정치에 대한 논의가 정세변화에 대한 대응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싶다. 일자리 창출 등 장기적인 생활정치의 의제는 매우 중요하지만 최근의 용산사태, 언론탄압 등 급박하게 전개되는 정치현안에 대해 소홀할 경우 생활정치라는 구호는 비현실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경제상황이나 남북관계가 더 나쁜 방향으로 발전될 경우에는 생활정치에 대한 주장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정국의 흐름을 차단하기 위한 적극적 실천이 필요하고, 그 중요성이 앞으로 더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거버넌스론은 상황을 대응하는 데 가장 현실적인 방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를 생활정치와 대립하는 것으로 간주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처럼 진보개혁세력이 다양한 수준에서 실천을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내적인 정비작업을 국민적 지지와 신뢰 회복으로 이어지게 하는 데 더 필요한 일일 것이다.

2009.4.1 ⓒ 이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