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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위한 나라는 없다?

정지은

정지은 /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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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구나.” 이것이 박대통령의 담화 영상을 본 첫 느낌이었다. 국민 앞에 선 대통령의 표정은 지나치게 비장했고 말투는 딱딱했으며 목소리에는 날이 서다 못해 신경질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을 비상시국으로 인식하고 대처해나가겠다”는 대변인의 설명도 이상했지만, 감정을 절제하기로 유명한 대통령이 저렇게 손을 떨며 화를 낼 정도의 사안인지는 더욱 의문스러웠다. 오죽하면 ‘부르르 담화’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며 화사한 한복을 입고 활짝 웃은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듣기에는 민망스러운 말이다.

 

처음에는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이기에 대통령이 생중계로 대국민담화를 하는지 궁금했다. 사안을 확인한 후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인허가권과 법령 제정․개정권을 어느 부처에 두는지가 그만큼 중요한 사안인가? 물론 대통령과 새 정부가 일하기 위해 정부조직법 개정은 시급한 현안이지만, 그러나 정부조직법 처리와는 별개로 이번 담화를 통해 대통령의 소통 능력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위성미(위스콘신·성균관대·국가미래연구원)’나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같은 별명이 붙은 인사 스타일, 경제민주화를 비롯한 핵심 공약이 흐지부지되는 상황 등을 보면 더욱 그렇다. 대통령의 첫 담화에서 국민들이 기대한 내용은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공약이 왜 후퇴했는지에 대한 설명이지 않았을까.

 

‘대통령 박근혜’ 국민과 소통하고 있나

 

새누리당이 어려울 때마다 박대통령이 ‘선거의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내보이며 잘못했다고 사과하고, 앞으로 잘할 테니 한번 더 기회를 달라고 동의를 구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선거의 여왕이 드디어 집권한 지금, 국정 현안은 손이 부르틀 정도로 악수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정치는 끊임없이 동의를 구하는 과정의 연속이고, 대통령은 그 과정을 가장 많이 겪어야 하는 자리다. 군림이나 명령이 아니라 설득을 통해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내야 하는 의무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대국민 담화를 보니 70년대 유신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면서 ‘박대통령이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을까’란 걱정이 절로 들었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이 1979년부터 ‘복지사회 건설’을 강조했다는 것, 현재의 머리와 의상 스타일, 그리고 화법까지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도 떠올랐다. 70년대 유신시절의 퍼스트레이디 박근혜와 2013년 대통령 박근혜 사이에는 과연 얼마나 거리가 있는 것일까, 과연 달라진 것이 있긴 한 것일까 새삼 궁금해졌다. 한번 그런 생각이 들자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대통령이 34년 전부터 생각했다는 ‘복지사회’와 작년 대선 공약으로 내건 ‘복지사회’는 같은 개념일까? 국민행복시대의 ‘행복’도, ‘100% 대한민국’의 100%도 국민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데 같은 단어니 생각까지 같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측하는 건 아닐까? 그게 사실이라면 대통령의 소통 능력에, 정책 전달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틀렸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해프닝이 주초에 있었다. 박근혜정부의 첫번째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한 안건 중의 하나가 ‘과다 노출을 하면 5만원, 타인을 스토킹하면 8만원, 암표를 팔면 16만원의 범칙금을 물린다’는 경범죄 처벌법 시행령 개정안이었다. 이 소식은 ‘유신시대 미니스커트 단속 부활’이냐는 설왕설래를 거쳐 박근혜정부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번져나갔다. 법안이 신설되는 것이 아니라 규정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라고 마무리되는 분위기이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씁쓸한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 이명박정부보다 더 나쁜 정부가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될 것”이라던 누군가의 예상이 틀리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우리에게는 복고 대신 미래가, ‘아버지를 위한 나라’ 대신 ‘국민을 위한 나라’의 대통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2013.3.13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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