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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평화국가’ 만들기는 실현가능한 의제인가

유재건

동북아의 새로운 패권주의를 경계한다

유재건 | 부산대 교수, 역사학

지난 8월 10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쎈터 주최로 심포지엄〈이제 ‘평화국가’를 이야기하자-평화국가 구상과 시민사회운동〉이 열렸다. 남한을 ‘평화국가’로 만들자는 제안을 담은 이 심포지엄은 냉전과 탈냉전의 교차점에 서 있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우리 사회의 진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했다.

‘평화국가’ 구상은 올여름을 뜨겁게 달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논란을 염두에 두고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정부가 내세운 군사주권의 온전한 회복을 통한 자주국방은 그 토대 구축을 위해 군비강화와 국방체계의 재편을 과제로 삼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노무현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북한과의 군축협상 등 남북간 실질적인 긴장완화를 위한 지렛대로 표현하긴 했지만 실제로는 자체적 군비강화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이제 자주국방과 안보의 개념에 대한 한층 근본적인 문제제기 또한 필요해진 싯점인 것이다.

이날 제기된 ‘평화국가’ 구상의 핵심은 남한이 기존의 안보국가에서 ‘평화국가’로 국가의 정체성을 바꿔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통일에 강조점을 두는 우리 지식계의 6·15담론을 ‘평화국가’담론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구갑우 〈한반도 분단체제와 ‘평화국가’ 만들기〉)

이미 우리 헌법에는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조항이 있고 대한민국이 평화수호국가라는 정체성도 별로 낯설지 않다. 그런데도 남한의 국가정체성 변화, 근대국가의 근본적 전환을 시도하는 새로운 정치체라는 발상에 근거한 ‘평화국가’ 구상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한 상식적으로 온전한 평화체제의 정착에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통합, 상호군축이 주요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6·15담론을 ‘평화국가’담론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은 또 어떤 뜻일까?

‘평화국가’ 구상의 핵심은 군사력에서 북한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남한의 선도적인 군축에 있다. 대체로 지금껏 군축은 동북아 평화정착이나 남북한의 상호신뢰 구축의 결과로 생각돼왔다. 그런데 이 논리와 순서를 역전시켜야 한다는 과감한 발상을 담고 있으니, 남한이 먼저 ‘평화국가’가 되고 남북한의 상호작용을 통해 북한 또한 ‘평화국가’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북한이 각기 ‘평화국가’로 전환하지 못하는 한 6·15시대는 큰 의미를 지닐 수 없다는 주장이다.

‘평화국가’가 어느 정도 수준의 것인지도 불분명하지만, 남한이 독자적으로 평화국가가 됨으로써 북한 및 주변국들이 평화국가의 정체성을 가지리라는 전망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듯하다. 당장 남한이 그 방향을 취할 때 줄줄이 딸려오는 문제들, 외적으로는 북미간의 긴장부터 내적으로는 일반 대중의 안보불안에 이르기까지 감당해야 할 문제 또한 한두가지가 아니다. 더욱이 6·15담론이 내세우는 남북의 화해협력, 상호신뢰 구축을 통한 점진적 통일 방안은 미국 때문에, 또는 북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고 몰아세우면서, 남한이 먼저 ‘평화국가’가 되면 북이 변하고 미국이(또는 미국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변하리라 예상하는 이런 발상을 합리적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간 보면 탈민족주의든 생태주의든 이런저런 근본주의적인 발상들은 어떤 감수성을 일깨우는 데는 무척 효과적이지만 한편으로 세계사적 연관성을 간과하고, 다른 한편으론 일반 대중의 감정과 욕구를 도외시하는 경향을 갖고 있는데, ‘평화국가’ 구상 역시 이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평화국가’ 구상이 평화정착의 길이 보이지 않는 주변 현실의 절박함과 이에 따른 통일의 어려움에 대한 깊은 고민의 소산임은 부정할 수 없다. 특히 그것은 기존 통일운동이 갖고 있는 두가지 편향을 넘어서고자 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하나는 군축을 비롯한 평화체제를 생각지 않고 화해와 교류만으로 자동적으로 통일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기능주의적 접근의 편향이요, 다른 하나는 낡은 민족주의적 목표에 매달린 안보국가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편향이다. ‘평화국가’ 구상은 바로 이 편향들을 극복하기 위한 한층 근본적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남북한이 각기 ‘평화국가’가 되지 못한다면, 한편으로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도 한계에 봉착할 것이고 다른 한편 강력한 안보국가로의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경계 때문에 통일도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남북한이 각기 ‘평화국가’로 전환하는 일이 어렵다고 할 때, 그것이 안된다고 해서 그 어떤 의미있는 일도 이룰 수 없다고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럴수록 이미 주어진 현실에서 모종의 창조적 가능성의 여지가 없는지 살펴보아야 할 터인데, 6·15담론이 바로 그 모색의 길인 것이다.

6·15공동선언 자체만 보더라도 통일운동 내부의 양편향을 넘어설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국가연합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 추진이 제시되어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6·15담론의 핵심은, 지속적인 화해와 교류를 통해 이루게 되는 느슨한 남북 국가연합이야말로 남과 북이 함께 (‘평화국가’라기보다는) ‘평화적 안보국가’로 전환하는 최선의 실현 가능한 길이라는 점에 있다. 그 길이 동북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와 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는만큼, 주변국가들을 평화적 안보국가로 전환하도록 이끄는 데 기여한다는 점에서도 남한만의 ‘평화국가’ 만들기보다 더 미더운 경로인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겠지만, 순조롭게 이루어진다면 장기적으로 세계사의 흐름과 같이하면서 근대국가의 안보국가적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전지구적 평화체제 건설에 기여하리라 기대해볼 수 있다. 그때는 물론 ‘평화국가’라는 모순된 조어(造語)를 쓰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다.

2006.08.22 ⓒ 유재건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