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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딜’로서의 민영화

황정아
황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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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도 괴로운데 영화까지 골치 아픈 걸 봐야 하나,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되고 나 스스로도 그런 심정이 될 때가 많다. ‘항상 깨어 있는’ 사람이 되기에 우리의 현실은 도대체 어지간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현실도피성 이야기보다 현실을 직면하는 이야기야말로 그런 현실을 감당할 수 있게도 해준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 오면 이 또한 일종의 ‘리얼리즘의 승리’라 여겨도 좋지 않나 싶어진다.

 

제목부터 컴컴하기 짝이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 「블랙딜」(이훈규 연출, 2014)도 그런 의미의 ‘힐링’ 영화로 볼 수 있을 듯하다. ‘7개국 민영화 리얼 탐방기’라는 소개답게 민영화가 세계 곳곳에서 야기한 끔찍한 사고와 심각한 사회문제, 그리고 민영화에 개입된 ‘블랙 딜’(black deal), 곧 검은 뒷거래를 다룬 이 영화의 어디에 힐링의 요소가 숨어 있으랴, 의심이 앞서는 이들에게 크게 두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는 민영화의 폐해

 

먼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곳에 나서 이런 부패와 파렴치를 보아야 하나 한탄하는 중이었다면, 눈 하나 까딱 않고 거짓말하는 부류들이 이 땅에만 있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이 영화를 통해 전생의 죄가 특별히 깊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을 구성하는 교차편집 장면들에서 우리는 민영화를 통해 철도요금이 ‘다양’해졌고 열차들이 ‘제시간’에 다니게 되었다는 영국 전(前) 전략철도청 홍보팀장의 말이 끝나는 즉시, 철도승객들의 목소리에서 그때의 다양함은 ‘대폭 인상’을 의미하고 제시간이란 ‘제멋대로’의 시간임을 알게 된다. 프랑스의 거대 물기업 쑤에즈(SUEZ)의 아르헨띠나 지사장이라는 자가 계약이 파기된 이유를 아르헨띠나 경제의 혼란에 뒤집어씌운 다음 순간, 부에노스아이레스 수도공사 관계자가 등장하여 이 기업이 수도공급을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았는지 곧바로 일러준다.

 

거짓말뿐 아니라 ‘막말’ 또한 보편적 현상이라는 증거도 역시 초국적 기업답게 이 쑤에즈사(社)가 제공해준다.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관리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이 기업의 전 CEO는 물은 공공재이고 아껴 써야 한다는 상식을 조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에 부패가 없었던 때가 있었는가를 물으며 부패가 있다고 발전이 없는 건 아니라는 신념을 당당히 피력한다. 이 분이 감옥을 들락거리면서도 여전히 이 신념을 고수하는 데는 실로 부패를 통해 발전을 거듭한 본인의 자산상태가 큰 뒷받침이 되었으리라 영화는 꼬집고 있다.

 

민영화가 낳을 결과와 의미에 대해 더는 고민하지 않고 판단할 수 있게 해주는 점은 영화 「블랙딜」이 주는 두번째 (위안 아닌) 위안이라 할 수 있지만, 불행히도 여기에 이르기까지 숱한 안타까운 사연들을 거치게 된다. 국민연금이 한마디 상의 없이 민간연금으로 바뀌는 바람에 하루하루가 빠듯한 노인들과 공교육 포기로 인한 등록금 인상으로 고생하는 학생들. 그래서 연금투쟁과 교육투쟁이 끊이지 않는 칠레의 상황은 차라리 나아 보인다. 아르헨띠나에서 민영화는, 예고 없이 며칠 동안이나 전기가 끊기는가 하면 노후하고 더러운 열차가 문도 닫지 않은 채 달리는 조마조마한 광경마저 만들어냈다. 이어진 대형사고의 장면, 그리고 아르헨띠나 정부가 그 며칠 동안 실종자를 ‘찾지도 않고 있었다’고 전하는 사망자 어머니의 증언에 이르면 그 참혹과 무책임의 기시성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참으로 익숙한 저 무책임과 기만

 

기시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필두로 의료영리화와 인천공항 매각 등을 끝내 단념하지 않을 태세면서도 절대 민영화는 아니라는 정부의 답변은 대운하는 아니라 했던 지난 정권의 얄팍한 해명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블랙딜」에서 다룬 태백시 상수도사업의 사례는 ‘뒷문으로’ 들여온 민영화가 어떤 것인지 단적으로 일러준다. 환경공단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의 준정부기관에 수도사업을 위탁함으로써 민영화의 외양을 취하지 않은 채 향후 이 공단이 아무런 제약 없이 민간기업에 사업을 재위탁할 길을 마련하는 식이다.

 

「블랙딜」에 실제로 등장하는 ‘블랙 딜’은 아르헨띠나의 마리아 훌리아 전 환경부장관과 기업들, 그리고 프랑스의 쑤에즈사와 그르노블 전 시장 사이에 오고 간 뒷거래 등 일부 사례에 국한되기에 처음에는 영화의 제목과 내용이 약간 어긋나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일러주는 바는 민영화에 으레 검은 거래가 따른다는 사실뿐 아니라 국민을 기만하며 민영화를 기어이 뒷문으로라도 들여오려는 시도 자체가 검은 거래라는 것이다.

 

공공기관의 정상화란 말 그대로 그것을 공공기관답게, 실질적으로 공영화한다는 의미여야 한다. 「블랙딜」이 보여주듯이 물과 전력과 의료와 교육과 철도의 민영화는 그로 인한 피해가 고스란히 공공(公共)에 귀속된다는 사실을 통해 거꾸로 이런 것들이 언제나 공공재임을 증명해준다. 아직도 누군가 공공기관의 부채를 빌미로 민영화를 말한다면? 고개 들어 4대강을 보게 해야 한다.

 

 

황정아 / 문학평론가, 한림대 한림과학원 HK교수

2014.7.9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