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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의 첫 청문회가 남긴 것

이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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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세월호참사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의 1차 청문회가 12월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열렸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 제정된 세월호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에 따른 것이다. 청문회를 열 수 있는 권한을 국회가 아닌 국회 밖의 특별조사위가 행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가 청문회를 위한 장소를 빌려주지 않아 서울 YWCA 강당에서 열렸다.

 

여당 특조위원 전원사퇴 사주한 해양수산부

 

청문회는 그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청문회는 여당 추천 위원 5명 중 4명이 사퇴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그 배경은 이러하다.

 

지난 11월 23일 특조위 전원회의에서 청와대 업무적정성 조사 안건이 최종 통과되자 이헌 부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여당 특조위원들은 위원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들의 사퇴는 한 언론사가 이들의 집단행동을 사전에 지시한 해양수산부의 문건을 폭로하면서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문건에서 해수부는 ‘BH(청와대) 조사 건 관련 적극 대응’을 요구하면서, 여당 추천 위원들이 조사 의결 과정상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필요시 부위원장이 주재하는 전원사퇴 기자회견을 열라는 등, 여당 추천 위원들을 마치 장기판의 말처럼 지휘하고 있다. 또한 이 문건은 해수부 장·차관과 특조위 여당 추천 부위원장이 위원장을 배제하고 여러차례 위원회의 청와대 조사를 막기 위해 비공식 면담을 가져왔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보다 앞서 지난 10월 20일 특조위 진상규명 소위에 세월호 가족들이 신청한 ‘청와대 등의 참사대응 관련 업무적정성 조사에 관한 건’이 상정되었을 때에는 여당 추천 위원들도 전원 동의했었다. 그뒤 갑작스럽게 여당 추천 위원들이 이미 소위를 통과한 안건의 재의를 요청하기 시작했던 것인데 아마도 이 문건의 영향으로 보인다.

 

공중파 방송3사는 여당 위원들이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생중계도 녹화방송도 거부했다. 단신보도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 조사 대상인 정부가 앞장서서 조사 주체인 특조위 의사결정에 간여하고, 이에 따라 여당 위원들이 사퇴하고, 또 그것을 이유로 친(親)정부 언론이 보도를 거부하는, 진상규명 무력화를 위한 잘 짜여진 공조체계가 가동되는 것처럼 보였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여당이 작심하고 협력을 거부하라고 지령한 청문회이니, 출석한 증인들이 질문에 성심껏 대답할 리 없었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할 줄 알았다’는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했다. 심지어 증인이 질문하는 위원들을 상대로 항의하고 언쟁을 벌이는, 국회 청문회라면 가당치 않을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증인들에게 모범답안 일러주는 출처불명의 문건

 

증인들이 특정기관의 지휘 아래 사전에 입을 맞추었다는 정황도 공개되었다. 특조위가 어제(12월 22일) 공개한 문건은 전체 30~40페이지 분량으로, 표지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자료’라는 제목과 함께 ‘대외주의’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본문에는 참사 당시 초기 구조활동, 타 기관 세력 통제 의혹, 전원구조 오보 관련 등 쟁점과 관련된 질문과 대답이 담겨 있다.

 

그러나 ‘반쪽짜리 청문회’라는 이유로 주류 언론의 외면과, 외부 사주를 받은 증인들의 노골적인 비협조 속에 치러진 청문회였지만 첫 청문회에서 밝혀진 진실은 결코 적지 않다. 첫째로, 퇴선지시와 관련, 당일 사고해역에 가장 먼저 도착한 해경 ‘123’정 정장을 비롯한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 김수현 해경서해청장, 김석균 해경청장, 그리고 각급 상황실 관계자 어느 누구도 퇴선을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 특히 사고 직후 123정장은 사고 이후 퇴선지시를 여러번 내렸다고 허위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 허위 기자회견을 김문홍 당시 목포해양경찰서장을 통해 김석균 해경청장이 지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청문회에 출석한 목포서장, 서해청장을 비롯한 구조지휘부는 하나같이, 퇴선명령이나 해경에 대한 승선명령은 ‘아랫사람이 알아서 했을 것’으로 생각해서 구체적으로 지시하거나 확인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는데, 이들 고위 지도부는 청와대 등에서 요구한 현장영상 보고에 대해서는 반복적이고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점검했음이 드러나 청문회장에서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당시 123정장이, 배가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고 배 안에는 반수 이상의 승객들이 있다는 사실을 공용무선망(TRS)으로 알렸기 때문에 상황실의 모든 이들이 그 내용을 듣고 있었지만, 그에 맞는 지시를 한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와 관련해서 123정장 재판 1심 재판부는 이미 ‘퇴선명령이나 승선명령은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현장에서 반드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조치임에도 이를 하지 않은 것은 유죄’라고 판결한 바 있고, 항소심에서는 그 윗선의 공동책임을 인정하여 123정장의 형량이 감형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고위 지휘부가 ‘아랫사람이 알아서 했으리라’고 여겨 점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퇴선·승선명령은, 현장은 물론 구조지휘부 모두가 반복적으로 확인해야 할 상식이었던 것이다. 사고 당일 구조지휘부가 청와대의 영상요청에 대해 반복적으로 점검하고 지시한 만큼 현장의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점검했다면, 수많은 아이들이 해경이 도착한 것을 알고도 선내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속절없이 스러져간 참극을 막을 수 있었을 터이다.

 

추가로 밝혀진 사실들, 이것은 끝이 아니다

 

둘째, 123정장 등은 선원을 먼저 구조하고도 선원인 줄 몰랐다고 부인해왔는데, 이번 청문회를 통해 허위진술임이 사실상 밝혀졌다. 청문회를 통해 구조된 선원 15명 중 9명이 해경에게 자신들이 선원이라고 밝혔다는 사실, 이들 중 일부가 정장이 있는 조타실에 머물렀고 정장의 핸드폰을 통해 자신의 집에 전화를 한 기록까지 공개되었으며, 심지어 그 일부는 초기 구조작업에 해경과 같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해경 매뉴얼에 따르면, 구조활동 직후, 구조된 사람의 신원에 대한 간단한 질문을 하도록 명기하고 있다.

 

셋째, 대책본부가 사고 전후 구조세력 투입규모를 과장하는가 하면, 충격상쇄용 기사 아이템 개발에 치중했다는 정황도 밝혀졌다. 당일, 희생자 가족들은 사고해역에서는 보트 몇대만 있는 등 구조상황이 거의 없었던 것을 알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당일 잠수한 인력이 네명에 지나지 않음에도 당국은 참사 당일 200명 가까이 잠수인력을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4월 17일 잠수가 중단됐고, 고무보트조차 발견할 수 없었지만 정부는 잠수부 500명이 투입되었다고 발표했다. 구조와 수색에 대한 안전감독관 제도가 있지만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계획도 집행도 없었음이 드러났다. 요식적으로 임명한 안전감독관은 직책도 낮고 주요감독 대상인 부서원이어서 유명무실한 제도였다. 위기관리매뉴얼에는 ‘충격상쇄용 기사 아이템 개발’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어서 재난과 참사에서 오히려 여론만 신경 쓸 뿐 생명을 살리는 데 얼마나 무능한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3일간 열린 첫 청문회는 비록 무수히 많은 방해와 의도적인 외면 속에 진행되었지만, 진실을 향한 작지만 소중한 출발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문회에 앞서 일어난 여당 추천 위원들의 집단행동으로 크게 낙담했던 가족들도 3일간의 청문회 이후 다시 무언가 더 밝힐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에게 지난 3일은 그날의 아픔과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진실규명이 어떤 보상보다 더 큰 보상이고 위안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태호 / 참여연대 사무처장,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2015.12.23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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