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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참여형 통일과 민간통일운동

백낙청

백낙청 | 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북의 미사일 발사 이후 한반도 정세는 또 한번 중대한 국면을 맞았다. 미국의 대북압박이 한층 강력해졌음은 물론, 남북 당국의 관계도 온통 싸늘해졌다. 남측의 쌀과 비료 지원 유보에 맞서 북측은 이산가족 화상상봉계획과 금강산 면회소 건설작업을 중단했다. 그 결과 남쪽 사회에서는 협력관계의 조속한 복원을 염원하는 소리도 들리지만, 저런 사람들을 상대로 아직 남아 있는 민간교류조차 계속할 필요가 있느냐는 비난의 목청이 오히려 드높아진 느낌이다. 하지만 이런 때일수록 한반도의 통일과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를 차분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식 통일을 ‘시민참여형’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반시민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역사과정이 어느 경우에나 바람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리라고 볼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객관적 조건으로서, 베트남·예멘·독일 등 각기 ‘시민참여형’에서 벗어나거나 그에 미달하는 통일의 선례들이 한반도에서는 되풀이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남북의 느슨한 연합조차 마다한 채 ‘개량된 분단체제’를 꿈꾸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 모르는 몽상가들이다. 신자유주의와 신군사주의가 판을 치는 오늘의 세계에서 분단된 한반도는 미사일 위기, 핵 위기 등 온갖 위기가 속출하는 위험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으며, 종국에는 그냥 위기가 아닌 엄청난 재앙을 당할 확률이 높다. 이런 파국을 피하기 위한 통합이 점진적·단계적 진행말고는 방도가 없다는 사실에서 생활하는 시민들의 폭넓은 능동적 참여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둘째, 한반도에는 이러한 가능성을 현실로 옮길 주체적 역량과 여건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판단이다. 베트남, 독일 또는 예멘과 달리 한반도에서는 남북의 정상들이 2000년 6월에 이미 평화적이고 자주적일 뿐 아니라 ‘연합제 내지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과정을 거치는 점진적 통일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그뒤로 6년, 북미관계가 아직껏 풀리지 않았고 이에 따라 남북의 화해에도 한계가 있었지만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는 동안 상호접근의 큰 흐름은 이어져왔으며, 통일 전의 동서독일과 달리 통일문제가 사회 각계의 활발한(때로 격렬한) 논의대상으로 자리잡았다. 북녘 민중생활의 변화는 다른 차원에서 검토할 문제지만, 적어도 남녘에서는 시민참여의 기본여건이 갖춰지고 있는 셈이다.

 

남쪽의 경우 정부나 재계로부터 상당한 독립성을 갖는 민간통일운동이 성장하여 ‘6·15정신’을 표방하며 폭넓은 연대기구를 구성한 점도 중요한 주체적 조건이다. 통일사업에의 시민참여가 ‘운동’으로 국한될 수는 없지만, 시민참여형 통일과정에 대한 통찰과 자부심을 지닌 민간통일운동의 존재는 필수적이며 그러한 운동이라야 한반도식 통일에 뜻있는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운동의 입지를 좁혀놓았다는 것이 이번 미사일 사태의 불행한 결과 가운데 하나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만 하더라도 남북교류사업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기가 한결 힘들어졌음은 물론, 일반시민들로 하여금 6·15선언을 이해하고 지지하며 그 실천에 자발적으로 동참하게 만드는 본연의 작업이 상당한 후퇴를 겪게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교류사업 자체로만 본다면 민간의 비중이 도리어 높아진 바도 없지 않다. 북측은 개성의 경제협력추진위 공동사무소의 근무자들을 철수시키면서도 민간 인원은 남겨두어 민간교류는 계속할 뜻을 분명히했다. 실제로 오는 7월 29일 금강산에서 남북 문인들의 최초의 상설연합기구인 6·15민족문학인협회가 결성될 예정이며, 6·15민족공동위원회가 평양 개최에 합의한 올해의 8·15민족통일대축전도 준비가 한창이다.

 

하지만 민간통일운동이 당국간의 경색국면에 일종의 ‘백업’ 기능이나 하는 종속변수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물론 작년 6·15 이전이나 현재와 같이 당국간 대화가 막혀 있을 때 그 복원의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만 해도 결코 작은 역할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된 기능이라면 시민참여형 통일이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해진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민간운동이 통일과정에서 온전한 독립변수로 작용하기 힘든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남쪽 당국은 민간의 일정한 독자성마저 부인하지는 않지만 정작 사정이 다급해질 때는 야당이나 대형 언론매체들에 비해 덜 신경써도 되는 상대로 보는 것 또한 분명하다. 북의 경우는 체제의 성격상 국가전략으로부터 독립된 민간운동을 상정하기 힘든데, 이번 미사일사태에서도 보듯이 그 전략의 최우선순위는 북미관계에 있기에 남북관계는 부차적일 수밖에 없으며, 남북관계에서도 당국자들이 주역이요 민간에는 이런저런 지원기능 이상을 부여하지 않는 구도인 것이다.

 

한반도의 현실이 북·미 두 정부 사이의 타협과 남북 당국자들의 합의만으로 아름답게 정돈될 수 있다면 민간운동이 굳이 주역이 되기를 고집할 까닭이 없다. 그러나 미국의 성의있는 대응을 끌어내기 위해서도 한반도식 통일을 가로막는 외세에 대한 남쪽 민심의 지탄이 중대한 변수려니와, 앞에 지적한 대로 한반도 주민들에게는 시민참여형 통일 이외에 다른 활로가 없기 때문에 민간운동이 영원히 종속변수로 남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북미관계 및 남북의 당국자관계가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일면 안타깝기는 하나 ‘타격을 가장한 선물’인 면도 없지 않다. 민간통일운동이 아직껏 한반도식 통일과정의 한 주역으로서의 자기 위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주역으로 행동할 준비도 부실한 마당에 더욱 단련되고 성장할 시간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당국관계에 대한 보조기능도 주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훈련일 수 있다. 다만 이런 기회를 얻고도 제대로 성장해서 그 몫을 해내지 못한다면 한반도식 통일의 실패에 따른 책임을 외세나 정권에만 돌릴 수 없을 터이다.

 

*이 글에 나온 ‘시민참여형 통일’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5·18민중항쟁 제26주년 국제학술대회 강연문 〈한반도식 통일과정과 시민사회의 역할〉에 좀더 자세히 나와 있다-편집자.

 

2006.07.25 ⓒ 백낙청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