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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시작

정홍수

정홍수 /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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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터넷으로 뉴스를 훑다가 「이 분노에 답한 독일의 기립박수」(중앙일보 2014.1.29)라는 기사에 눈길이 멎었다. 기사를 읽고는 링크된 방송 동영상까지 보게 되었고, 몇 안되는 숫자지만 트위터 친구들에게 리트윗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홀로코스트의 날’을 맞아 독일 연방하원에서 ‘레닌그라드 봉쇄’ 생존자인 러시아 작가 다닐 그라닌(Daniil Alexandrovich Granin, 1919~ )의 연설이 있었다. 1941년 9월부터 900일간 독일군에 의해 진행된 이 봉쇄작전에서 공습과 포격 외에도 굶주림과 질병, 추위로 인해 약 100만명이 사망했다. 희생자의 다수는 어린이와 여성이었다.

 

무서운 기억과 마주한 이들

 

노작가는 느리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단지 항복을 기다리면서 무수히 많은 이들을 죽어가도록 내버려둔 독일인을 아주 오랫동안, 또 누구보다 더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연설이 끝나자 독일의 대통령과 총리, 헌법재판소장, 의원들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는 모습을 방송은 보여준다. 작년에 메르켈(A. Merkel) 총리가 뮌헨 근교 다하우(Dachau) 강제수용소를 찾아 속죄의 헌화를 하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떄 총리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 찾아보았다. “이 수용소가 나를 말할 수 없는 슬픔과 수치로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겹치는 또다른 장면도 있다.

 

강제수용소 생존자들의 증언을 담은 끌로드 란쯔만(Claude Lanzmann) 감독의 다큐멘터리 「쇼아」(Shoah, 1985)에는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의 행정 부책임자였던 독일인에게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당신은 당신이 기차에 태워 보낸 사람들이 정말 어디로 가는지 몰랐습니까?” 점잖게 생긴 이 전직 독일 관리는 전염병이 창궐하던 바르샤바 게토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당시 유대인의 집단 재배치는 불가피했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사죄와 참회의 말을 기대하는 감독에게 말한다. “사태는 당신이 생각하듯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는 끝내 감독이, 그리고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종전 후 그는 등산 관련 책을 내는 출판인으로 변신해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듯했다. 그는 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었는데, 단정한 말들에는 묘한 냉소가 서려 있었다. 생존자들의 고통스러운 증언들 못지않게 이 장면은 한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물론 모를 일이다. 그가 란쯔만 감독의 인터뷰에 응했다는 사실 자체가 얼마간 자기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는 자세였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가 보인 태도는 지성의 자기확신에서 우러나오고 있는 것 같았고, 그래서 더 섬뜩하고 착잡했다.

 

인간의 끔찍한 마비

 

하나의 장면이 더 있다. 엔도오 슈우사꾸(遠藤周作)의 장편 『바다와 독약』(1957, 한국어판 박유미 옮김, 창비 2014) 이야기다. 이 소설은 1945년 5월 생포된 미 B29기 탑승원 8명(재판 없이 사형을 선고받음)을 인계받아 생체실험을 자행한 ‘큐우슈우 대학 의학부 사건’을 밑그림으로 인간 양심, 죄의식의 향방을 묻는다. 소설은 의대생 신분으로 생체실험에 가담했던 스구로와 토다, 그리고 간호사 우에다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들의 시선과 언어로 체념과 무력감 속에 마비되어가는 인간 양심의 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들의 양심과 죄의식을 마비시키는 ‘독약’의 근본적인 출처는 토다의 말 “뭘 하든 똑같으니까. 모두가 죽어가는 시대 아이가”에 담긴 것처럼, 광기와 비인간의 전쟁, 그것이다(아니 더 정확히는 군국주의 일본이 일으킨 침략전쟁일 테다). 그런데 그 마비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토다는 생체실험 후 포로의 생간을, 회식을 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가져다주면서도 거의 아무런 느낌도 갖지 못한다.

 

그는 가책과 통증, 후회를 원했으나 그런 감정은 일어나지 않는다. 토다는 말한다. “벌이라면 세상의 벌 말이가? 세상의 벌만으로는 아무것도 안 변한다.” 법정진술서 형식으로 소설에 들어 있는 내면고백을 읽으며 토다가 조금은 총명하고 예민한 아이로 자라났다는 것을 알기에 끔찍한 마비에 대한 우리의 탄식은 더욱 증폭된다. 아마도 소설 제목의 ‘바다’는 이 ‘독’의 세계 너머, 어떤 ‘은총’과 ‘사랑’의 지평을 함의하는 것이리라. 그 초월적 ‘바다’를 향한 순교와 배교의 이야기를 다룬 엔도오 슈우사꾸의 또다른 대표작 『침묵』(1966)의 무대 나가사끼 현에는 ‘침묵의 비(碑)’가 있다고 한다. 비문은 이렇다. “인간이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도 파랗습니다.”

 

용서를 시작하는 몇가지 길

 

러시아의 노작가가 독일 의회에서 ‘용서할 수 없었다’고 연설하는 순간, ‘용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독일 총리가 홀로코스트의 현장에서 ‘슬픔과 수치’를 고백할 때 또다시 ‘용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바르샤바 게토를 관리했던 한 독일인의 섬뜩한 자기합리화와 자기기만의 세계, 토다의 마비에 대해서는 우리 역시 한동안 저 파란 바다 쪽을 바라봐야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앨리스 먼로(Alice Munro)의 자전적 단편 「디어 라이프」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자책을 곱씹으며 이렇게 끝을 맺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일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혹은 우리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용서한다. 언제나 그런다.”(『디어 라이프』, 정연희 옮김, 문학동네 2014) 아마도 이 또한 ‘용서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현실의 바다 건너에서 들려오는 소식을 접하며 생각해본 것들이다. 아베 정부는 일본군위안부의 실체와 그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코오노(河野洋平) 담화'(1993)를 사실상 폐기하려 하고 있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사죄한 ‘무라야마(村山富市) 담화'(1995)가 그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기는 한 걸까. 하긴 바다 건너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다. 상고까지 했다고 하니,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면 강기훈씨의 23년에 대한 사죄의 이야기는 그때 시작된다는 걸까.

 

2014.2.26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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