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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 『용감한 친구들』

백상웅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용기
-줄리언 반스 『용감한 친구들』

 

 

yonggam아서 코난 도일과 조지 에들지

 

몇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다. 이 소설 『용감한 친구들』(한국어판 한유주 옮김, 다산책방 2015, 전2권)의 원제는 ‘아서와 조지’(Arthur and George)이다. 영국 소설가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의 2005년 작품으로 우리나라에는 최근에 출간되었다. 원제에 나오는 두 이름은 실존인물의 것이다. 아서는 ‘셜록 홈즈’ 씨리즈를 쓴 아서 코난 도일이고, 조지는 인도계 혼혈인 조지 에들지이다.

 

아서의 아버지는 무능력했고 어머니는 자상했다. 아서는 기사도정신을 덕목으로 삼고 살았다. 운동에 능했고 학업에도 충실했다. 안과의사가 되었으나 ‘셜록 홈즈’를 내고 더 큰 부와 명예를 얻었다. 그러나 ‘셜록 홈즈’를 길게 끌었던 것은 순전히 열성 독자 때문이었다. 아서는 홈즈를 꽤나 죽이고 싶었고 사실은 역사소설을 쓰고 싶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아서는 심령연구협회에 가입했다. 조지의 아버지는 영국으로 건너온 파르시(조로아스터교도)이며 목사,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인이다. 조지는 목사관에서 성장했다. 절제를 배웠고 아버지를 통해 판단력을 키워갔다. 운동은 하지 않았으며 친구는 없었다. 조지는 사무변호사 최종시험에서 2등상을 받았다. 그 뒤 기차 탑승객을 위한 『철도법』을 냈고 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저자 줄리언 반스가 아서와 조지라는 두 인물이 만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전에 그랬듯이, 책을 읽는 동안 두 주인공의 삶을 오래 지켜볼 수밖에 없다. 두 인물은 영국인이라는 것 외에, 그리고 제목에서 드러나듯 언젠가는 만날 거라는 예상 외에 접점이 없다. 작가는 아서와 조지가 만나게 되는 한 사건과 판단을 위해 두 인물의 삶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이를테면, “홈스도 모리아티도 저자의 성급한 손끝 아래 끝없이 추락”했던 무렵, 아서의 아버지 “찰스 도일의 부고를 한 줄도 싣지 않았던 런던의 신문사들은 존재하지 않는 탐정의 죽음을 실망스러워하는 항의기사를 잔뜩 실었다.” 아서에겐 “이 세계가 미쳐 돌아가는 듯 보였다. 아버지가 얼마 전에 땅에 묻혔고, 아내는 죽어가고 있는데, 시티의 젊은이들은 셜록 홈스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모자에 상장을 달고 있었다.”(1권 131면)

 

이건 또 어떤가. 조지의 집안은 괴롭힘에 시달린다. 살해협박편지뿐 아니라, “목사관이 말도 안되는 조건을 제시하는 하숙집이 됐다는 광고”가 신문에 실리거나 조지가 “안과의로 개업했다고 알려진다.” 또 “전투함을 움직이고도 남을 양의 석탄이 배달”되기도 한다.(1권 93면) 조지의 아버지는 조지에게 “앞으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미개한 사람들과 마주칠 수도 있다”(1권 89면)며 ‘파르시’로서 장애를 만날 수 있다고 넌지시 충고하지만, 조지는 자신은 파르시가 아닌 영국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일어날 사건, 혹은 당장 닥친 사건을 분석하기 위해 꼭 삶을 낱낱이 뒤적일 필요는 없다. 죄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법정은 한 인간이 가진 삶의 증거가 아닌 사건의 곳곳에 명확하게 드러난 증거를 원한다. 삶의 어떤 지점에 가면, 과거는 더러 참고용 자료일 뿐이다. 『용감한 친구들』은 ‘더러 참고용 자료’가 되는 두 인간의 과거를 벽돌처럼 쌓아간다. 두 과거가 만나면 어떤 삶이 펼쳐질지, 단단한 건물이 될지 결국은 무너져버릴지 아무도 모른다. 아서와 조지는 이윽고 만나게 된다.

 

우리는 대표자가 될 수 있을까

 

조지의 어머니 말을 들어보자. “그애는 불의에 맞서기로 결심했죠. 하지만 그게 그애가 원하는 전부예요. 그애는 주목의 대상이 되길 바라지 않아요. 어떤 대의명분을 떠맡고자 하는 게 아니에요. 그애는 어떤 대표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저 다시 일하고 싶은 것뿐이죠. 그애는 평범한 삶을 원해요.”(2권 47면)

 

조지는 감옥에서 삼년을 살다가 나왔다. 이른바 ‘그레이트 웨얼리 잔학행위’의 범인으로 지목된 조지는 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레이트 웨얼리의 가축들을 잔혹하게 살해했다는 혐의 때문이었다. 조지와 그의 가족은 억울했으나 경찰, 검찰, 판사는 조지를 믿지 않았다. 감옥에서 나온 조지는 ‘셜록 홈즈’를 쓴 아서에게 편지를 썼다. 당시 아서는 전국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받고 있었다. 심지어 ‘아서 코난 도일 댁 셜록 홈즈 귀하’라고 쓴 편지도 있었다. 아서는 조지의 편지를 읽었고 그의 사건을 돕기로 마음먹는다.

 

위에 적은 조지의 어머니 말은, 아서가 그의 비서 우드를 데리고(마치 셜록 홈즈와 왓슨처럼) 은밀히 조지의 집에 찾아가 어머니에게 들은 말이다. 이 말은 중요하다. 우리가 만일 불의에 맞서는 일이 생길 때, 권력의 부당함 앞에서 싸워야 할 때 대표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래야 사건이 풀릴 수 있는가. 평범한 삶 속에서도 불의를 이길 수 있는가. 조지는 불의에 맞서기로 결심했지만, 그것뿐이며 어떤 대표자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 아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는 생각했다. 이 일이 끝날 때쯤이면 에들지 사건은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보다 더 유명”해질 거라고(2권 78면). 아서와 조지는 사건의 결말에 대해, 생각은 다르지만 함께하기로 한다. 이제 아서와 조지는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용감한 친구들』에 등장하는 사건은 실화이며, 조지 에들지 사건은 영국 사법시스템에 상고법원을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각각의 삶이 만나 결말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진정 그들은 승리했는가. 한번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사람들의 영웅이 되었는가. 혹은 그레이트 웨얼리에서 가축을 죽인 진짜 범인은 누구인가. 국가의 판결은 정당한가. 이런 몇가지의 궁금증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이다.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았던 아서와, 신앙심 깊은 집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배웠으며 영국이라는 시스템 속에 편입하고자 했던 조지. 두 인물이 살다 간 세상을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한다. 한번으로만 재판이 끝나던 세상은 3심으로 진행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불의는 좀 사라지고, 권력의 힘은 좀 약해졌는가. 불의를 당한 사람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 정치인은 늘었는가. 과연 명예와 용기가 남아 있는 삶인가. 이 소설을 읽으며 무엇을 읽고 무엇을 보았는가. 하지만 읽기 전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결코 정당하지 않다는 체념은 필요하다. 슬프지만,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희망은 생긴다.

 

 

백상웅 / 시인

2015.5.6 ⓒ 창비주간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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