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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를 말한다

  • 창비의 역사는 한국 민주화의 역사다. 판매금지와 회수, 강제 폐간의 역경에도 창비는 굽히지 않았다. 창비가 주창한 분단체제론과 민족문학론은 70년대 이후 한국 지식인사회를 움직인 동력이자 정신이었다.

    중앙일보

  • ‘창비’는 한국사회 민주화의 실천적 담론과 문학을 생산해왔고, 구비구비 새로운 역사에 대한 전망들을 제시해왔다.

    한국일보

  • ‘창비’와 함께해온 이름들을 뺀다면 70·80년대 우리의 문학과 지성사는 얼마나 허술하고 참혹했을까. ‘창비’가 없었다면, 그 혹독한 시절을 살아온 이들의 정신의 서재는 또 얼마나 초라했을까. 이 끔찍한 상상만으로도 ‘창비’가 일궈온 성취는 입증된다.

    경향신문

  • 1966년 창간호가 서점에 깔린 뒤 『창작과비평』의 목차를 훑다가 주저없이 한권을 사들고 나왔다. 편집상의 특징도 상당히 침착·세련되어 보였지만, 문학과 사회와 역사를 하나의 유기적인 그물로 파악해 들어가는 백낙청 교수 등 생소한 필진들의 정연하고 진지한 입론이 내게는 여간 신선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진섭 (언론인)

  • 『창작과비평』이 한국 문학과 지성계에 끼친 공로와 영향은 지대하다. 우선 한용운 선생 시의 고격을 한층 드높였으며 김광섭 선생의 만년 시편들의 진가를 알아보게 했을뿐더러, 흙속에 묻혀 있던 신동엽의 시를 캐내었고, 모더니스트로만 간주되던 김수영의 시에서 치열한 동시대성을 찾아내 보여주었다. 창비는 표류하는 암울한 시대의 등대였으며 방향타였다.

    황명걸 (시인)

  • 지난 시대 『창작과비평』은 내게 하나의 교과서였다. 고난 속에서도 결코 굴절되지 않는 문학정신을 입력해주었으며 또 무엇보다도 새롭고 다양한 읽을거리를 통해 세상살이의 참된 이치를 일깨워주었으니 말이다.

    손춘익 (아동문학가)

  • 『창작과비평』에 실린 리영희 선생님의 글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밖을 보지 못하도록 쳐놓은 검은 장막을 걷은 느낌이랄까? 베트남전쟁을 보는 시각, 중국대륙에 대한 인식, 한·미·일 안보체제의 파악 등 대학 강의실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해찬 (정치인)

  • 70년대만 해도 문화적으로 암흑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진 않지만 『창작과비평』을 읽는 것 자체가 정치적 행위이자 문화적 행위였다.

    정희섭 (문예아카데미 기획위원)

  • 80년대 이후 일련의 역사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나는 ‘창비’의 모든 책들을 통해 그 어려운(?) 역사, 사회, 문화적인 고민들을 해결해나갔다. 창비는 분명히 내 문학과 삶을 갈고 닦게 해준 학교였던 것이다. 입학도 없고 졸업도 없는 영원한 학교 말이다.

    김용택 (시인)

  • 이웃 학교에 최루가스가 터질 때, 명동성당에서 노동자들이 단식투쟁을 벌일 때, 동료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장론 교재에 데모 안 하는 것이라고 자조적인 문구를 새겨가지고 다닐 때, 나는 터벅터벅 내 방으로 돌아와서 ‘창비’ 합본호를 베개 삼아 베고 한권은 가슴에 올려놓고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복을 누릴 수 있었다.

    신경숙 (소설가)

  • 『창작과비평』이 디뎌온 발자국마다 한국문학사는 우뚝한 산맥으로 행복하게 솟아올랐다. 시대와 불화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그 문학의 봉우리들이야말로 창비 30년사를 자랑스러운, 그리고 최상급의 경의로 되돌아볼 수 있게 하는 당당한 이유다.

    김도현 (소설가 / 전주우석대 기계·자동학과 교수)

  • 『창작과비평』의 계간지로서의 성격을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 것인가. 이와나미 쇼뗑(岩波書店)의 『세까이(世界)』 『시소오(思想)』 『분가꾸(文學)』를 하나로 묶은 것이라 말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분량은 적지만 세계사를 크게 파악하는 것은 한층 명료하고, 더구나 사회에 뿌리내린 자세도 더 명확하다.

    타끼자와 히데끼(瀧澤秀樹 / 일본 코오난대학 교수, 경제학)

  • 우리가 『창작과비평』만한 잡지를 가졌다는 것은 분명 지성사의 축복이다.

    연대 앞 서점 ‘오늘의 책’이 신입생들에게 주는 글 가운데

  • 『창작과비평』은 한국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여러 부침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지켜낸 우리의 소중한 지적 자산이자, 작가들의 ‘운동(運動)-장(場)’ 같은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실제로 많은 의미있는 사회운동과 문학적 고투가 발생했다.

    김행숙 (시인)

  •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급진적 민주주의 이론에 대한 지적 갈증도 컸던 시기에 창비는 그러한 갈증을 공식적으로 해결해주는 매체였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 『창비』의 출현은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일종의 ‘사건’이자 지성사의 사건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창비 50년, 통틀어 창비 1세기는 예단할 수 있건대 분명히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낼 것이다.

    고은 (시인)

  • 『창작과비평』은 일본의 『세까이(世界)』와 서구의 『옥토버』(October) 같은 세계적인 잡지를 놓고 봤을 때에도 굉장히 자랑스럽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