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연재

1회

1장

 

 

10월의 첫번째 토요일 아침, 나는 좀 늦게까지 잠을 잤다. 조그맣게 알람이 울릴 때마다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가 토요일이라는 걸 깨닫고 안도하며 다시 달콤한 잠 속으로 스르르 빠져들기를 반복했다.
   방 안을 채운 공기는 서늘했다. 창밖에서 새소리도 들려왔다. 마침내 가을이 온 것이다. 나는 흡족한 기분으로 솜이불을 끌어당겼다. 지난 6월 말, 여름이 시작될 때 이 가을이 오기를 얼마나 고대했는지. 첫 출근을 준비하던 아침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욕실에서 허리를 숙여 머리를 감으며 모든 일이 끝난 뒤, 그러니까 삼개월 뒤에 똑같이 이 자리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나를 떠올려보았다. 이 순간을 회상하며 그때 그랬었지, 가벼운 감회에 젖은 나를 말이다. 하루하루 지내다보면 어느덧 그때가 되어 있을 거야. 그날 아침 나는 생각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금이 그 순간이었다. 고생 많았어. 나는 스스로 위로했다. 잘했어, 정말.
   완전히 일어났을 때는 아홉시였다. 집 안은 조용했다. 룸메이트들은 벌써 나갔는지 아니면 아직 자고 있는 건지 방문이 전부 닫혀 있었다. 나는 밥을 담고 반찬을 꺼내 식탁에서 혼자 아침을 먹었다. 출근하는 날은 아니지만 가야 할 곳이 있었다.

 

*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는데, 눈앞에서 마을버스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나는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평일이었다면 무척 짜증이 났을 터였다.
   토요일 아침의 대학가는 조용했다. 지난밤 여기저기서 열렸을 떠들썩한 술자리의 여운이 묻어나는,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뒤의 조용함이었다. 이쪽 길에도, 건너편 보도에도 오가는 사람이 눈에 띄지 않았다. 경사진 도로 위편에서 내려오는 자동차들의 흐름도 평소보다 여유로운 듯했다.
   지난 삼개월간 매일 아침 이곳에서 마을버스를 탔다. 한여름에는 이른 아침부터 숨이 막히는 열기였고, 장대비가 며칠간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도 있었다. 버스에 오르면 그때부터 여정의 시작이었다. 청량리역에 내려 지하철과 광역버스를 갈아타고 파주의 회사까지 가는 데만 한시간 이십분가량이 걸렸다. 왕복 세시간이었다. 그래도 주말에는 전처럼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면 익숙한 주방과 룸메이트들이 있었고, 해 질 무렵 캠퍼스를 산책할 수도 있었다.
   곧 떠난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맞은편 치킨집과 중국집, 돈까스와 세숫대야 냉면을 파는 식당은 전부 문이 닫혀 있었다. 자주 드나들던 가게들이었다. 그 안쪽 골목으로 들어가면 어떤 가게들이 있는지도 눈에 훤했다. 삼개월 뒤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인턴이라서 이사를 할 수조차 없다고 불평했지만, 실은 유예기간이 필요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는 내게 두번째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서울에 온 뒤로 쭉 캠퍼스 근처에서 살았고, 식사나 쇼핑, 그밖에 은행 업무 같은 모든 일들을 대학가에서 해결했다.
   새삼스레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버스가 다가왔다. 청량리역에서 하차해 플랫폼으로 내려갔을 때, 이번에는 간발의 차이로 지하철을 놓치고 말았다. 굽어진 터널 속으로 사라지는 전철의 꽁무니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다음 열차가 어디쯤 오고 있나 전광판을 확인했는데, 아래쪽이 텅 비어 있었다. 주말이라 배차 간격이 넓어서였다. 갑자기 시간이 아슬아슬해졌다. 부장님과 금촌역에서 만나기로 한 시각은 열한시였다. 용산역까지 가서 경의선으로 갈아타야 했다.
   그때부터는 토요일 아침 나들이라도 가는 듯하던 여유와 끝없이 가지를 뻗어나가던 달콤한 상념이 싹 사라지고 손에 쥔 휴대전화를 눌러 강박적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용산역에 내릴 때, 경의선 열차 도착까지는 팔분이 남아 있었다. 이번 열차를 놓치면 다음은 오십분 뒤였다. 환승할 수 있겠지.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침착하게, 그러나 재빠르게 에메랄드색 선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무빙워크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는데, 어찌 된 일인지 그 끝에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올라와보니 바깥은 사람들이 오가는 광장이었다. 식은땀이 났다. 나는 목적지를 찾아가는 감각이 거의 없다고 할 만큼 형편없어서 종종 이런 일을 겪곤 했는데, 정말이지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이렇게 다급한 순간에는 특히나 그랬다.
   휴대전화로 검색해보니 용산역 1호선과 경의선 플랫폼은 서로 떨어져 있었다. 그러니까 잘못 나온 건 아니었다. 지상으로 완전히 나온 다음 경의선 역사로 들어가야 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만치 떨어진 곳에 둥그런 입구가 보였다. 넓은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나처럼 급히 내려가는 사람들이 두어명 더 있었다. 개찰구를 통과할 때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플랫폼은 텅 비어 있었다.
   어떡하지.
   두 손이 싸늘하게 식었다. 몇초간 멍하니 선 채 괜히 휴대전화 화면만 켰다가 끄기를 반복했다. 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늦는다고 말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차마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러기가 싫었다. 늦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제 막 정규직 직원이 되었고, 부장님은 나를 위해 금쪽같은 토요일 낮에 호의를 베푼 것이었다. 금촌역에 내리면 부장님이 나를 픽업해 자신이 사는 아파트 상가의 부동산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적당한 방을 몇개 보여달라고 미리 얘기를 해두었다고 했다.
   텅 빈 플랫폼에 서서 잠시 생각하다 밖으로 나갔다. 반대편 길가에 외떨어져 있는 택시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가보니 운전석 문이 바깥으로 열려 있었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기사가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듯했다. 파주까지 갈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 손으로 안경을 내려 쓰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훑어보더니 수락했다. 나는 뒷좌석에 올라탔다. 그리고 택시가 출발하자 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장님, 금촌역까지 나오지 마시구요, 아파트 이름 알려주시면 제가 바로 찾아갈게요.”
   “지향씨, 택시 탔어?”
   부장님이 단번에 알아차리고 물었다.
   “부장님,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별일이 아닌 듯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실은 당황스럽고 몹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이 사람아, 지금 어디야? 택시비 많이 나올 텐데.”
   “중간에서 탄 거라 괜찮아요. 곧 뵐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가을날 아침, 커피를 사서 여유롭게 경의선 전철을 타려 했던 일정이 어그러진 것이 못내 아쉬우면서도, 과거의 나라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빠른 행동력이었다는 생각에 내심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신호에 멈춰 섰던 택시가 다시 출발하면서 몸이 뒤로 쏠렸다. 어느덧 용산역 주변의 번화가를 빠져나와 넓고 텅 빈 길을 달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