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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소리와 앓는 소리

서효인
서효인

서효인                             

시인이 된 동기를 말하자니 역시나 쑥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인생의 앞부분에서부터 기억을 끌어올리자면 아마도 1988년 광주 청문회일 것이다. 뭘 알 만한 나이는 아니었고 그저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1학년 꼬맹이였을 따름이지만 할머니가 운영하던 함바집에 모여 작고 둥그런 브라운관을 함께 보던 어른들의 모습은 생생하다. 화면에는 피해자의 가족이 나와 증언을 하고 있었는데, 한껏 주눅 든 모습에 죽음에 맞섰던 그들의 가족을 떠올리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걸 보는 어른들의 앓는 소리가 가끔 들렸고 나머지는 그저 침묵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은 채 동생이나 조카의 죽음을 말하는 이들과 그들의 죽음이 드디어 세상에 알려지는 순간, 뱉을 것은 신음뿐이던 사람들.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들.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 죽음의 곁에 있던 사람들. 이미 한번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들. 그들의 삶과 죽음에 비해 내 시와 글은 턱없이 불량하고 미천하겠지만, 어쨌든 그날부터 무엇이든 쓰기로 한 것 같다. 그들이 살았던 곳이 내 고향임은 나의 자랑이며 나의 슬픔이다.

 

엄청나게 미친 소리를 들은 후, 미치긴 매한가지이지만 아까의 미침보다는 조금 덜 미친 것 같은 소리를 들으면, 가끔은 그게 멀쩡해 보일 때가 있다. 내게는 무식한 범죄자와 영악한 사기꾼 듀오처럼 붙어 등장하는 ‘북한군 개입설’과 ‘유공자 명단 공개 주장’이 그렇다. 1980년 5월 수백명의 북한군 게릴라가 서울, 인천, 부산 모두 패스하고 광주까지 내려와 폭동을 일으켰다는 주장은, 이렇게 문장으로 써놓은 자체가 부끄럽고 처량하다. 명단 공개를 주장하는 자들은 말 그대로 이른바 5‧18 가짜 유공자가 많으니 명단을 공개하라는 것인데, ‘가짜’라는 말에 도사린 의도가 몹시 뻔뻔하다. 전형적인 흠집 내기이며 악랄한 조롱이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혐오인가. 어디서 비롯된 미친 소리인가. 정말이지 그것이 알고 싶다. 동시에 그깟 거 알고 싶지도 않다.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5‧18 관련 내용을 검색하면 혐오 발언과 음모론이 별다른 여과 장치 없이 난무한다.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되어버린 유튜브는 가짜뉴스의 온상이 된 지 오래다. 온라인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보량을 남기던 망언이 이제는 제도 정치권에서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거기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어깨에는 태극기가 매달려 있었다. 놀랍게도 5‧18 희생자의 주검을 덮었던 그 태극기와 틀림없이 같은 문양의 태극기였다.

 

한줌의 표나 권력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정처를 잃은 분노 때문이거나 미스터리한 생리작용 탓일 수도 있다. 어떤 이유건 그들은 가짜 뉴스를 양산하여 퍼트리고, 색깔론으로 무장한 혐오세력이 되었다. 그들은 되지도 않을 대통령 탄핵이나 총선 승리를 외치지만 그들이 할퀴고 두들기는 건 반대 정파가 아니다. 40년 가까운 시간 전라도라는 지역과 빨갱이라는 멸칭에 묶여 ‘피해자다움’을 유지하려 애쓴 사람들의 상처는 그들에 의해 다시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군부독재에 목숨을 걸고 항거해 지금 체제의 밑바탕이 된 현대사의 주요한 페이지를 삭제하거나 더럽혀 역사의 수레를 뒤로 돌리려 하고 있다. 다시 1988년으로 돌아간다. 청문회가 있기 전에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음모론은 ‘서울올림픽 개막식을 위해 들여온 비둘기가 지금 전국 각지를 장악한 비둘기의 조상이다’ 하는 정도의 수준일 것이다. 그리고 탑골공원의 비둘기보다 망언을 일삼는 자들이 더 유해해 보인다.

 

12·12사태와 5‧18 민주화운동, 그리고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실과 확정된 가치를 여기서 다시 논할 생각은 없다. 그들의 거짓됨과 허황됨 또한 여기서 진지하게 평할 일은 아니다. 요며칠 사이의 5·18 망언은 논평할 가치가 없는 일이기에 논평다운 글을 쓰기에 지극한 어려움을 느낀다. 그저 자랑스러운 일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만큼의 슬픔을 잊지 않으려 노력할 뿐이다.

 

앞서 나는 내 고향에 대한 자랑과 슬픔을 고백했다. 한 도시를 가둬놓고 자행되었던 학살과 저항이 수많은 사람의 노력과 투쟁에 의해 폭동이 아닌 운동으로 복권되었을 때에야 자랑과 슬픔은 내 도시에서 내 나라에까지 확장될 수 있었다. 당신은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나라가 자랑스러운가? 내 나라가 슬픈가? 나는 저들이 말하는 ‘애국’에서 어떠한 자랑도 슬픔도 느낄 수 없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병이다. ……어디서 앓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나머지는 그저 침묵이다.

 

서효인 / 시인

2019.2.20. ⓒ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