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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2회

김PD가 그의 어머니 가게에 처음으로 들른 날, 그날 아침 형민은 어머니에게 학교 끝나고 가게로 가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가게에 오는 것을 싫어했다. 절대 안 돼. 어머니가 말했다. 그는 빈집에서 혼자 노는 게 싫었다. 가게가 자리를 잡으면 태권도학원도 주산학원도 모두 보내준다고 어머니가 말했다. 그가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어머니가 약속을 해주었다. 그러니 만화방이나 오락실로 새지 말고 얌전히 집으로 와야 한다. 어머니가 말했다. 전날 내린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웠다. 그는 학교 가는 길에 두번이나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다. 엉덩이에 묻은 눈을 털었을 뿐인데 손톱 밑이 금세 더러워졌다. 아침 조회시간에 그는 손톱에 낀 때를 빼내려다 선생님의 지적을 받았다. 점심이 되자 눈이 녹아 운동장이 질척해졌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걸으니 신발에 진흙이 달라붙어 무거워졌다. 그는 철봉에 매달려 두 발을 흔들었다. 진흙은 떨어지지 않았다. 철봉은 차가웠다. 손이 철봉에 달라붙는 것 같았다. 철봉에서 내려오니 손바닥이 화끈거렸다. 그는 손바닥을 볼에 대보았다. 차가웠다. 그는 더 높은 철봉에 매달려보았다. 더 차가운 것 같았다. 그리고 이내 손바닥이 데인 것처럼 화끈거렸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뭐하니? 누구인가 봤더니 얼마 전 앞집에 이사를 온 형제들이었다. 얼굴도 다르고 키도 달라서 형제인 줄 알았는데 이란성 쌍둥이라고 했다. 그는 쌍둥이 형제들과 같이 만화방에 갔다. 거기서 떡볶이를 사먹었다. 돈은 그가 냈다. 쌍둥이 형은 길을 걸을 때면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동생은 다리를 절었다. 어째서 다리를 절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만약 형제들이 그에게 넌 왜 아버지가 없니?라고 묻는다면 그때 넌 왜 다리병신이 되었니? 하고 복수할 생각으로 궁금한 걸 꾹 참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문 닫은 빵집 앞을 지나면서 형제들에게 빵집 주인 여자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서 도망갔다는 소문을 들려주었다. 너네 고로케 먹어봤어? 난 여기서 하루에 하나씩 사먹었는데. 그는 쌍둥이 형제들에게 거짓말을 했다. 쌍둥이 중 동생이 창에 이마를 붙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쌍둥이 중 형이 가게 문을 흔들어보았다.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들어가볼까? 쌍둥이 형이 말했다. 어떻게? 그가 물었다. 쌍둥이 형이 자물쇠를 몇번 만지작거리자 자물쇠가 열렸다. 셋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케이크를 넣어두었던 냉장고가 켜져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케이크가 들어 있었다. 문을 닫은 지 두달이 넘었는데 케이크는 마치 어제 만든 것처럼 하얬다. 그때 쌍둥이 형이 그에게 말했다. 저거 먹어봐. 그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 쌍둥이 형이 냉장고 문을 열고 케이크를 꺼냈다. 그리고 장미꽃잎 하나를 떼어내 입에 넣었다. 다 먹고 나자 또 하나를 먹었다. 혓바닥이 빨개졌다. 쌍둥이 형이 빨간 혀를 내밀었다. 너도 먹어. 그도 꽃잎 하나를 먹었다. 달았다. 그거 말고. 쌍둥이 형이 맨손으로 케이크를 한조각 떼어내서는 그에게 내밀었다. 싫어. 그가 말했다. 먹기 싫으면 갖고 있는 돈 내놔. 쌍둥이 형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싫어. 그가 말했다. 그러자 쌍둥이 형이 그의 입안에 강제로 케이크를 집어넣었다. 쌍둥이 동생이 기괴한 소리를 내며 웃었다. 케이크를 억지로 삼키면서 그는 식중독으로 자신이 곧 죽게 될 거라 생각했다. 죽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죽을 거 복수라도 하자. 그는 쌍둥이 동생에게 소리쳤다. 다리병신. 넌 병신 새끼야. 쌍둥이 동생이 웃음을 멈추더니 기괴한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 울지 마. 울지 마. 형이 동생에게 다가가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순간 그는 쌍둥이 형의 얼굴을 향해 케이크를 집어던졌다. 그리고 쌍둥이 형의 배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한번. 두번. 세번. 쌍둥이 형이 배를 움켜쥐고는 쓰러졌다. 그는 빵집을 나와 어머니의 가게까지 뛰어갔다. 뛰면서 그는 생각했다. 시시해. 별것 아닌 놈들. 처음에는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진정한 남자가 된 듯했다. 하지만 이내 케이크를 억지로 삼키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겁한 놈. 누가 그 사실을 알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가 어머니의 가게로 들어갔을 때 그의 눈빛엔 부끄러움과 뿌듯함이 한데 섞여 있었다. 어머니 앞에서 자랑을 하고도 싶었고 어머니 품에 안겨 울고도 싶었다. 그를 본 어머니가 그의 등을 한대 치면서 말했다. 여기 오지 말라고 했지. 거지새끼처럼 얼굴은 또 이게 뭐야. 그러고는 테이블을 닦던 행주로 그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행주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토하고 싶었다. 그때 한쪽 구석에서 혼자 술을 마시던 김PD가 그를 불렀다. 얘야, 이리 와봐. 김PD는 그의 얼굴을, 특히 그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울면 안 돼. 그는 눈물을 참으려고 쌍둥이 형의 배를 걷어찼을 때의 느낌을 떠올려보았다. 김PD는 양복 안주머니에 손수건을 꺼내 그의 얼굴을 닦아주며 말했다. 너 아저씨랑 같이 방송국 구경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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