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는 물건입니까?

김지혜
김지혜

김지혜                             

‘생명체는 물건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을 느끼면서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불편을 느끼면서도 대답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법조인일 확률이 높다. 법조인이 싸이코패스이거나 쏘시오패스라서는 아니다. 우리 민법은 인(人)에게 권리와 의무의 주체로 살아갈 자격을 주었는데 인은 사람과 법인격을 갖는 단체로 한정하고, 인을 제외한 나머지 중에서 유체물과 관리 가능한 동력을 물건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가진 인간은 물건이 아니지만 생명을 가진 동물은 물건이라서, 법조인이라면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법무부가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규정을 포함한 민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팔이 네개였다면 네 팔을 모두 벌려 환영했을 것이다. 그런데 동물이 물건의 지위에서 벗어나는 순간을 앞두고, 어느 보호소에서 복날 즈음하여 평소라면 입양이 거의 되지 않는 대형견 십수마리가 입양을 갔고, 그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필연적으로 보수적인 법마저 진일보하는 이 순간에도 ‘복날’이면 ‘개’의 생명이 가벼이 여겨지는 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동물들은 동물인 사람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데, 사람은 왜 다른 동물을 하찮게 여기곤 할까. 생각하다보니 반려견 똘이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게 된다. 9년 전 누군가가 가정에서 태어난 믹스견을 분양한다기에 동생과 함께 달려갔다. 보호자는 생후 두달가량 지난 노란 믹스견과 하얀 몰티즈처럼 보이는 믹스견을 데리고 나와서 ‘둘 다 한 어미 밑에서 태어났는데 노란 애는 책임비 5만원, 하얀 애는 몰티즈나 다름없으니 책임비 10만원’이라며, 몰티즈처럼 생긴 애를 데려가라고 했다. 나와 동생은 품종견처럼 보여 책임비가 올라간다는 데 꽤나 반발심이 들어 노란 믹스견을 데리고 와 똘이라고 이름 지어주었고, 지금까지도 노란 믹스견의 누나 노릇을 하고 있다. 믹스견과 순종견의 금전적 가치에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불편하다. 우리는 사람의 혈통이나 인종에 따라 가치를 매기지 않고, 또 그래선 안 된다고 배우는데 왜 유독 동물에 대해서는 가치를 매기고 차별하는지 모를 일이다.

 

얼마 전 다른 사람의 과실로 반려견이 죽어 손해배상과 위자료를 청구한 사건을 대리했다. 의뢰인은 50만원을 주고 반려견을 입양하여 6년을 키웠는데, 상대방의 부주의로 반려견이 사망했다. 상대방은 ‘반려견은 나이가 들수록 가치가 떨어져 거래가 되지 않으니 50만원 전부를 배상할 수 없고, 위자료도 반려견의 분양 금액인 50만원 이상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송에서 어떻게든 금액을 낮춰보려는 의도였겠지만, 그 서면을 보고 있자니 아홉살인 똘이가 누군가의 과실로 죽게 된다면, 노령견은 ‘거래대상’이 아니어서 그 생명은 ‘가치’가 없고, 그 슬픔은 입양 댓가인 5만원이 된다는 뜻인가 싶어 ‘과몰입’ 대리인이 되어 손을 떨면서 반박서면을 썼다.

 

동물이 물건이 아니게 되면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일은 아주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30년 전 엄마에게 ‘애견숍(그 당시에는 펫숍보다는 애견숍이라고 불렀다)에서 파는 30만원짜리 요크셔테리어를 사달라’고 졸랐던 나는 책임비 5만원을 주고 입양한 믹스견 똘이와 9년째 반려하며 함께하고 있다. 그 사이 ‘애견’을 ‘반려견’이라고 부르게 되고, 사는 개에서 입양하는 개로, 돌보아주는 대상에서 함께 사는 대상이라고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대단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반려동물’이라고 말하고 있었고, 미디어에서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입양’하여 키운다고 표현하니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용어와 생각이 서서히 바뀐 것이다.

 

우리나라는 1991년에 동물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반려동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를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하기까지 20년가량 걸린 듯하다.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익숙해질 무렵 동물학대범죄 처벌 강화 목소리가 등장했다. 실제 동물학대범죄에 관한 판례를 찾아보면 90년대에는 재물손괴만 인정하여 30~50만원의 벌금을 선고하거나 벌금을 선고하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경우가 많은데, 최근에는 벌금형에 머물렀던 처벌 수위가 징역형까지 오르고, 집행유예 없는 실형이 선고된 사례가 등장했다. 처벌의 수위가 강화된 것에도 의미가 있지만, 판결 이유에 동물권을 언급하면서 동물을 실질적인 보호가 필요한 대상인 생명의 주체로 인정하는 판시(判示)가 등장했다는 점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 종전의 판례처럼 판결 이유를 간단하게 적을 수도 있었는데 굳이 이러저러한 사유를 기재한 것은, 국민의 동물권 신장 및 동물보호 요청에 법원이 응답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려 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이러한 판결을 법원이 시대의 요구를 읽고 공감한 첫 신호로 해석한다.

 

이제 법무부가 동물이 물건이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 두번째 신호가 나타났다고 감히 평가해본다. 사람들의 관심 밖에 머무르던 동물권이 논의의 장으로 등장했을 때 ‘동물보다 사람이 먼저’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기도 했다. 민법의 개정이 이루어져도 여전히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20여년 사이에 ‘사고파는 애완견’에서 ‘입양하는 반려견’이 된 것처럼, 천천히 ‘물건’에서 ‘생명’으로서 지위의 회복이 이루어지리라 예상한다. 그때에는 동물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소송의 당사자로 등장할 수도 있을 터다. 그 과정이 여전히 불편하고 어색하겠지만, 동물을 우리와 같은 존재로 인지하고 부당한 상황에는 지적과 시정의 목소리를 내야 동물을 위한 두번째 움직임이 더욱 큰 보폭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제야 겨우 동물이 물건이 아니게 된 정도의 권리를 되찾게 되었지만, 머지않은 때에 동물권 본래의 개념대로 모든 동물이 존중받고 고통 받지 않을 권리를 갖기를 기대해본다.

 

 

김지혜 / 변호사, 동물권연구변호사단체PNR 전문가회원

2021.8.4. ⓒ창비주간논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