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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27회

알제리, 아프리카의 대국 _ 3

알제리의 역사와 현재

 

알제리에서의 마지막 밤. 무언가를 결산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알제리 8년 항쟁의 자초지종과 알제리 국부 아메드 벤 벨라의 생애에 관해 알리는 글을 쓰기로 하고, 이에 앞서 알제리의 ‘대국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 경험으로는 남의 단점에 앞서 장점을 이해하는 것은 남에 대한 예의이며 존경이고, 남을 올곧게 이해하는 첩경이다.

 

알제리는 국토의 면적(238만 1,740㎢, 한반도의 10.7배)으로는 아프리카에서 수단 다음으로 큰 나라다. 기원전 1만년경부터 베르베르인들이 사하라사막에서 살아온 흔적이 고대 암벽화와 돌멘 등의 유물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도 발견된 바 없는 거석 유물은 역사의 유구성을 입증한다.

또한 알제리는 일찍이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 교부들이 활동하고 초대 교회와 신학이 꽃을 피운 기독교의 중심지였으며, 주민의 99%가 무슬림이면서도 기독교와 유대교 등이 장기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는 보기 드문 나라다. 알제리는 8년간 끈질기게 무장투쟁을 벌여 130년(1830∼1962)이라는 길고 고통스러웠던 식민지의 멍에를 내던지고 주권을 되찾았다. 전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프랑스어 사용국이지만 식민시대의 잔재를 극복하고 빠른 시일 안에 잃었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프랑코포니(La Francophonie, 국제 프랑스어 사용국 기구)에 참가하지 않고 아랍어화와 이슬람화를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9년제 의무교육과 폭넓은 장학제도 및 무상의료제를 실시하여 평균수명이 73.7세(2008년 기준)로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인구고령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국가군에 속한다.

 

알제리는 아프리카의 자원 대국이다. 세계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아랍석유수출국기구(OAPEC)의 주요 성원국으로서 세계 경제의 흐름에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1955년 사하라사막 일대에서 풍부한 원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됨에 따라 그때까지 포도주 수출에 의존하던 경제·산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1962년 독립 후에는 석유와 천연가스 기업들이 모두 국영탄화수소공사(SONATRCH)로 일원화되었다.

1991년 이후 한때 정치적 소요의 후유증으로 경제가 연속적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위축되기도 하였으나 1995년 이후 국제 유가 상승과 농업 부문의 생산량 증대에 힘입어 5% 내외의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달성했다. 2005년에는 EU-알제리 간 자유무역협정이 발표되었으며, 2007년에는 총 수출액 663억 달러, 총 수입액 261억 달러로 막대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알제리는 외교 면에서도 반식민주의와 반제국주의, 비동맹의 3대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비동맹 중립외교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UN을 비롯한 국제 기구에서 제3세계의 대변인 역할을 하며, 아랍국가연맹에서도 이집트 등 일부 국가들의 독주를 견제하고, 한국(1990년 수교)을 비롯한 세계 광범위한 나라들과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알제리는 알베르 카뮈와 앙드레 지드 등의 세계적 문호를 배출했으며, 식민 종주국 프랑스를 굴복시켜 자성과 고백을 받아냈다. 프랑스 지식인들은 알제리 독립전쟁이 끝나고 40년이라는 긴 침묵 끝에 그들이 알제리에 행한 범죄와 불의에 대해 자성하기 시작하였으며, 2002년 공영방송에서는 3부작 다큐멘터리 「친밀한 적」을 방영해 자국이 알제리에서 범한 천인공노할 학살·고문과 비행을 만천하에 고발하였다.

2007년 프랑스 대통령 사르코지는 소위 ‘지중해연합’을 추진하며 알제리를 방문하여 독립기념관에 헌화하고는 ‘식민지 제도는 근본적으로 부당하다’ ‘식민지 제도는 정의·자유·박애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제발 이것이 진실된 자성이길 바란다. 이제 앞으로 이어질 아프리카 여행길에서는 이런 유의 반성이나 고백을 많이 듣게 될 텐데…

 

노트에 이러한 내용의 메모를 남기고 자정이 넘어서야 자리에 들었다. 이튿날(2009년 1월 14일 수요일) 아침 7시에 호텔을 떠나 20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탑승 전 수화물 검사가 까다롭다. 모로코 카사블랑카(Casablanca) 행 AH(알제리항공) 4012편(좌석 21E)에 탑승해 10시 25분 정시에 이륙했다. 공항에서 탑승 대기 2시간과 알제리-카사블랑카 간 비행시간(1시간 50분)을 이용해 8년간의 알제리 독립 무장투쟁의 전말과 그 시절 존경했던 벤 벨라의 생애에 관한 구상의 얼개를 정리해 노트에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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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 제2의 항구도시 오랑의 시가지 모습.

출처: Maya-Anaïs Yataghène via Wikimedia Commons##

 

비행기가 이륙해 기수를 서남쪽으로 돌려 지중해를 뒤로 하고 아틀라스산맥의 연봉을 넘어설 때, 문득 저 발 아래에 있을 오랑이 떠올랐다. 오랑은 알제리의 서북단에 자리한 제2의 항구도시(인구 약 100만)이다. 알제리 독립전쟁의 가장 크고 중요한 족적을 지닌 도시다. 모로코·스페인과 인접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유럽인 주민이 많았기 때문에 알제리 독립에 반대하던 세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오랑은 10세기 아랍인들이 개척한 이래 스페인인과 오스만터키인, 프랑스인, 기타 유럽인들이 가장 많이 살던 국제도시이다. 2차 세계대전 시기인 1942년에 미군이 진주하여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전략 기지를 설치하고, 프랑스는 인근에 중요한 군항을 건설하였다. 독립전쟁의 전황(戰況) 변화에 따라 혼란이 극치에 달하던 그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꼭 가보아야 할 곳을 빠뜨렸으니, 후회막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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