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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35회

주차타워는 배상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었다. 차량수리비는 그쪽의 보험사에서 지급되었다. 그 보험사는 곧 민규가 일했던 까페 사장을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했다. 까페 사장은, 민규를 파견한 용역회사를 상대로 마찬가지 조치를 취했다. 그날, 주차기계가 오작동한 원인 중에 주차원의 부주의가 일정 부분 포함돼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차량의 핸들이 좌측으로 15도쯤 틀어진 상태로 주차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 상태가 컴퓨터의 오작동을 유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배제. 민규에게 그 말을 전해준 사람은 민규가 속한 용역회사가 고용한 변호사였다. 그는 병실에 주스 한 상자를 들고 왔다. 오렌지맛과 포도맛 주스가 각 네병씩, 알로에 주스는 세병 들어 있는 박스였다. 그의 간병인이 상자에서 주스들을 꺼내어 냉장고 안에 넣었다. 민규는 왜 다른 주스는 네개인데 알로에 주스만 세개일까를 생각했다. 그들은 복도로 나왔다.

변호사는 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해도 된다고 말했다.

“뭘 말입니까?”

민규는 간신히 물었다.

“그날 있었던 일 말입니다. 씨씨티비로 보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어요. 한창 바쁜 시간이었으니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아닙니다.”

“정말 실수한 게 아니라는 거지요? 확실하지요?”

변호사는 마치 그가 실수했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보였다. 민규는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사실은 바퀴를 어떻게 해놓고 내렸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의 일들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나버린 유리잔처럼 수천개의 파편들로 점점이 흩어졌다.

“평소처럼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그때 추락을 했을까요?”

“네?”

그것은 민규가 몇번이고 소리쳐 묻고 싶은 질문이었다.

“평소엔 별 고장이 없었다고 하는데요. 사고의 다른 징후도 없었고.”

“그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자신의 미덥지 못한 목소리가 복도 끝까지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김민규씨가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으면, 길고 복잡한 다툼이 될 겁니다.”

그 남자의 말이 협박일까, 조언일까, 민규는 이해할 수 없었다.

“회사 입장도 복잡합니다. 정규직도 아니고, 또 이미 가족대표와 합의도 한 상태고.”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의 형이 가족대표라는 이름으로, 회사와의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적지 않은 합의금을 받아갔다는 사실도.

다음날 그는 바로 휠체어를 스스로 밀고 원무과에 갔다. 입원비 중간정산서를 떼어보았다. 어마어마한 숫자가 찍혀 있었다. 원무실은 2층이고 그의 입원실은 13층이었다. 혼자 힘으로 13층에 올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환자용 승강기는 번번이 꽉 차 있어 여러대를 그냥 보내야 했다. 휠체어에 앉은 채로 그는 그저 바닥만을 바라보았다. 문득, 어제 변호사가 사 들고 온 주스 상자가 떠올랐다. 다른 주스들은 네개인데, 알로에 주스만 세개인 데에는 대단한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일이란 대개 그런 식이었다. 하필 다른 운전자가 아니라 그가 거기 있었을 때, 주차리프트가 추락한 데에 아무 이유가 없는 것처럼.

 

민규는 산재처리를 받지 못했다. 민규의 회사에서는, 사고차량의 수리비용을 지급하는 것으로도 의무 이상의 것을 다했다고 여겼다. 민규의 수술비를 포함한 병원비는 민규의 몫으로 남겨졌다. 그 과정에서 그는 시속 120km/h로 달리는 차의 타이어가 밟고 지나간 어린 짐승처럼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납작하게 짜부라져버렸다고 느꼈다. 다섯달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퇴원했을 때 그에게 남겨진 것은 살짝 절게 된 왼쪽 다리, 그리고 모아놓았던 돈을 탈탈 털어 넣고도 이천만원에 가까워진 빚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