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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42회

응급실 대기실에서 한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피해 아이의 부모들은 오지 않았다. 형민은 그들이 일부러 늦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다리면서 초조해하라고. 우린 쉽게 용서해주지 않겠다고. 형민은 접수대 맞은편에 앉아서 다친 사람들의 사연을 들었다. 코피가 멈추지 않는다고 온 아이, 식탁에서 넘어지면서 팔이 부러진 아이, 조기축구를 하다 발등에 금이 갔는데 그것도 모르고 저녁까지 술을 마시다 뒤늦게 온 남자. 그런 사람들이 응급실로 들어갔다. 형민은 지금까지 한번도 응급실에 와본 적이 없었다. 아내는 새벽에 위경련이 일어나 응급실에 간 적이 있었고, 딸은 아기였을 때 장난감 블록의 인형 머리를 삼켜서 간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아이들의 질식사를 막기 위해 진품은 인형 머리에 구멍이 나 있다고 했다. 형민의 딸이 가지고 놀던 블록은 인형 머리에 구멍이 없었고,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형민은 블록을 모두 버렸다. 응급실 안쪽에서 오열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사무치게 들려서 형민은 손바닥을 펴서 가슴에 올려놓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형민의 아내가 형민의 옆에 와서 앉더니 물 한컵을 건넸다. 형민은 종이컵을 받아서 들고만 있었다. 한참을 그러고 있다 울음소리가 그친 다음에야 형민은 물을 마셨다. “도대체 언제 온대?” 형민은 자신의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내가 말없이 형민의 무릎을 손으로 토닥여주었다. 아내는 늘 그런 식으로 말없이 형민의 마음을 달래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형민은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응급실에 있는 아이, 이름이 어떻게 돼?” 형민은 아내에게 물었다. “은주야. 이은주.” 형민은 이은주라고 중얼거려보았다. 딸에게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생각해보니 은주라는 아이 말고도 형민이 기억하고 있는 딸의 친구들 이름은 없었다. “이제야 이름을 물어봐서 미안해.” 형민은 말했다. 피투성이가 된 환자 두명이 들것에 실려 들어왔다. 그리고 아내의 휴대폰으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은주의 어머니였다. 병원 맨 위층에 있는 까페에서 봤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까페에는 은주의 어머니 혼자 앉아 있었다. 자리에 앉기 전에 형민과 형민의 아내는 허리를 숙여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 형민은 그렇게 거듭 사과를 했다. 은주 어머니는 사과를 받겠지만 용서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형민의 아내는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쉽게 용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계속 사과를 드리겠다고. 은주 어머니는 아이스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그리고 한참을 커피잔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영이 어머니.” “네.” 형민의 아내가 숙인 고개를 들었다. “우리 은주는 하영이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급식을 먹을 때 옆자리에 앉는 친구라고요. 학기 초에는 같이 떡볶이도 사 먹었고요. 하영이가 선물로 립밤을 주었다고 좋아하기도 했어요. 하영이는 은주 이야기 안 했나요?” 형민의 아내가 고개를 돌려 형민을 바라보았다. 형민은 아내가 거짓말을 할 것을 알았다. “하영이는 집에서 말을 잘 안 해요.” 그 말을 듣자 은주 어머니가 웃었다. 비웃음이었다.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렇게 믿어야 마음이 편하겠죠.” 은주 어머니가 다시 한번 아이스커피를 마셨다. “우리 애는 하영이에게 생일선물도 주었어요. 그게 사흘 전이에요. 사흘 전.” 설마 생일선물을 받아놓고 그럴 수 있을까? 형민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선물은 받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영이 어머니. 하영이가 하굣길에 롯데마트 지하에 들러 열대어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는 거 알아요? 저는 그것도 알아요. 우리 애가 다 이야기해주었어요.” 그 말에 형민의 아내가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내는 울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르겠어요. 내 딸이지만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들은 은주 어머니가 고개를 끄떡였다.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도 지었다. 마치 모든 걸 이해한다는 듯. 형민은 그런 표정을 싫어했다. 그걸 형민은 상담사 표정이라고 불렀다. 어서 당신의 마음을 고백하세요. 내가 다 들어줄게요. 그런 표정을 짓는 사람과 마주 앉으면 형민은 몸이 굳고 자기도 모르게 말실수를 하곤 했다. 형민이 아내의 무릎에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은주 어머니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때 어느 부부가 까페로 들어오더니 형민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걸어왔다. 그리고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부부가 큰 소리로 말했다. 까페에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형민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형민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민의 아내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 꿇은 사람을 옆에 두고 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은주 어머니가 화를 냈다. “가세요. 가라고요.” 그러자 부부가 울기 시작했다. 은주 어머니가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가라고요. 사과할 필요 없으니 가라고요.” 은주 어머니의 얼굴이 벌게졌다.

형민은 병원 로비에서 아내와 헤어졌다. 아내가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형민은 싫다고 했다. 형민은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노선도를 보니 집으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형민은 맨 처음 오는 버스를 탔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살펴보지도 않았다. 운전자 뒷자리에 앉아서 운전기사가 노래를 흥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수 없었다. 형민은 무릎을 꿇은 부부들이 불쾌했다. 형민은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서 왜 그들 부부가 불쾌했는지를 생각해보았다. 은주의 일기장에는 일곱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했다. 형민은 일곱이라는 숫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많은 숫자였다. 뒤에 서 있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순서를 따질 수는 없지만 형민은 딸이 그중에서 일곱번째로 잘못한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딸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 그런 말을 하는 딸이 비겁하다고 형민은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비겁했다. 형민은 아무 정거장에서 내렸다. 다섯대의 버스를 지나친 다음 형민은 다시 버스를 탔다. 형민은 옆자리에 앉은 청년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 군 입대를 앞둔 모양이었다. 군대에 가기 전에 여자친구와 여행을 떠날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디 헤어지지 않고 오래 사귀길. 형민은 청년의 통화가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려보니 모르는 동네였다. 택시가 지나가기에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형민은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연립을 한바퀴 걸어보았다. 불면증에 걸린 할머니들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동 앞에도 가보았다. 아이가 떨어진 자리에 놓여 있던 꽃 한송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형민은 근처에서 작은 돌 세개를 주웠다. 그걸로 탑을 쌓았다. 돌들이 너무 작아서 바람이 불면 곧 쓰러질 것 같았다. 형민은 집에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