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온라인 연재

43회

형민은 출근길에 토스트 포장마차 앞에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열었구나. 형민은 반가워 자기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했다. 지나가던 사람이 고개를 돌려 형민을 보았다. 아침을 먹었는데도 포장마차를 보니 배가 고파왔다. 형민은 포장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중년 부부가 아니라 처음 보는 청년이 요리를 하고 있었다. 주인이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청년이 그렇다고 했다. “그럼 먼저 주인은 어디 갔어요?” 형민이 물었다. “아주머니가 아프세요.” 청년이 대답했다. 조카의 결혼식에 갔다가 올라오는 길에 교통사고가 났는데 조수석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크게 다쳤다고. 목숨은 건졌지만 아마 걷지는 못할 것 같다고. “그런데 어떻게 아는 사이예요?” 형민이 물었다. 청년이 아들의 친구였다고 대답했다. 형민은 계산을 하고 샌드위치를 받았다. “맛이 똑같아야 할 텐데. 맛없으면 말해주세요.” 토스트를 건네주면서 청년이 말했다. 형민은 걸어가면서 토스트를 먹었다. 반쯤 먹었을 때 회사에 도착했고, 먹다 만 토스트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형민은 자리에 앉자마자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괜찮아? 아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민은 오전 중에 두번 더 메시지를 보냈다. 세번째 메시지를 보내고 삼십분 후에 답이 왔다. 지금 바빠. 저녁에 연락할게. 직원 중 한명이 모친상을 당했다고 해서 장례식장에 간다는 직원에게 부의금을 부탁했다. 물을 많이 마시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자꾸 요의가 느껴져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그렇지만 막상 오줌을 누려하면 오줌이 나오지 않았다. 부장이 형민을 불렀다. 할 말이 있으니 점심이나 같이하자고 부장은 말했다. “이따 희원으로 와. 열두시에.” 형민은 식당 이름을 듣는 순간 뭔가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곳은 회사 근처에서 몇 안 되는 고급식당 중 하나였는데, 거기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둘 중 하나를 의미했다. 승진을 하거나 퇴사를 하거나.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가보니 부장과 송상무가 앉아 있었다. 형민이 자리에 앉자 상무가 형민의 잔에 청주를 한잔 따라주었다. 형민은 술을 한모금 마시고 매생이죽을 먹었다. “난 이상하게 매생이가 싫더라.” 상무는 그렇게 말하면서 죽을 남김없이 다 먹었다. 그리고 상무와 부장은 다른 부서의 곽과장이 대상포진에 걸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상포진이 목으로 왔는데 얼굴이 아니라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얼굴에 대상포진이 걸리면 뇌졸중 위험이 있다네요.” 부장이 말했다. 형민도 그 기사를 본 적이 있어서 고개를 끄떡였다. 기사에 의하면 시력도 잃을 수 있다고 했다. “예방접종이 있대요. 상무님도 맞으세요.” 형민이 상무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부장은 작년에 통풍으로 고생한 뒤로 술을 줄였다. 해산물 모둠이 나왔다. 해산물이 여덟종류나 되는 걸 보니 칠만 오천원짜리 코스인 듯했다. 그 코스에는 갈치회가 나왔다. 형민은 비린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는데, 갈치내장젓갈에 갈치회를 찍어 먹는 것은 좋아했다. 상무는 해삼을 먹다 이가 부러진 다음부터 딱딱한 해산물은 먹지 않게 되었다며 멍게만 집어 먹었다. 송상무는 형민이 대리였을 적에 경력직원으로 입사한 사람이었다. 부장으로 입사를 했는데, 매일 두시간씩 회의를 하는 바람에 회의중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적이 있었다. 회의를 할 때마다 직원들에게 이것밖에 못하나,라는 말을 했다. 회의를 마칠 때면 자존심이 다친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형민과 동료들은 저녁마다 인근 치킨집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상사의 욕을 하곤 했다. 그러다 한 여직원이 회의 중 뛰쳐나간 일이 있었다. 뛰쳐나가기 전에 여직원은 자리에 앉은 채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아래층 사무실에서 일하던 직원들 몇몇이 놀라 뛰어올라오기도 했다. 커피잔을 들고 있던 직원 하나는 놀라 잔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암튼, 그 직원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탈모가 되었고, 휴직을 했다가 몇달 후 사표를 냈다. 여직원은 머리카락이 빠져 휑해진 정수리 사진을 상무에게 보냈다. 하루에 한번씩. 그렇게 서른번의 메시지를 받은 다음 상무는 미안하다는 답을 보냈다. 그 일로 송상무는 조금 달라졌다. 직원들에게 중요한 말을 전하게 될 때마다 일식집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도 그 이후였다. 상무가 형민에게 아이가 몇살인지 물었다. 형민은 딸이 하나 있는데 고등학생이라고 대답했다. “딸이군. 아들은 소용없어.” 상무가 말했다. 상무의 딸은 과학고등학교에 들어갔다가 2년 만에 조기졸업을 하고 명문대에 들어갔다. 상무는 딸 자랑은 종종 했지만, 늦둥이로 낳았다는 아들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아들이 문제죠. 아들이.” 부장은 둘째 아들이 힙합가수가 되는 게 꿈이라며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힙합 경연프로그램마다 신청을 하는데 모조리 예선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도 자네 아들은 꿈이라도 있잖아.” 그렇게 말하고 상무는 술을 한잔 마셨다. 평소 같으면 형민은 딸 이야기를 하면서 몇마디 거들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종업원이 메인 회를 가지고 들어왔다. 형민은 다시 한번 상무에게 술을 따르면서 물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하시라고. 그러자 송상무가 두 손으로 마른세수를 한 다음 말했다. “주말에 이런 투서를 받았네. 박대리가 조과장이 물건을 빼돌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해. 그걸 눈감아 주는 조건으로 조과장에게 돈을 받았고. 자네는 박대리가 그런 걸 알면서 덮어주었다는데.” 형민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누가 그 따위 이야기를 합니까?” 형민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게 만약 사실이라면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겠다고도 말했다. 송상무가 알았다고 고개를 끄떡였다.

식당을 나와 형민은 회사 반대편으로 걸었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세 정거장. 그렇게 걸어도 혼자 조용히 있을 만한 공간은 보이지 않았다. 형민은 편의점 앞에 설치된 파라솔에 앉았다. 거기에는 먹다만 핫바가 올려져 있었다. 형민은 잇자국이 난 핫바를 가만히 보았다. 박대리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박대리가 할 말이 있다고 찾아왔을 때. 짐작은 했지만 듣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을 알면 피곤해지니까. 한 남자가 편의점에 나오더니 형민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담배를 한대 피웠다. 담배연기를 뱉으면서 남자가 씨발, 씨발, 하고 욕을 했다. 형민은 오래간만에 욕을 들어보았다. 왠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 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회사 쪽으로 걸어갔다. 한 정거장, 두 정거장, 세 정거장, 그러다 포장마차가 보여 다시 그곳으로 갔다. 청년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궁금한 게 있어서요.” 형민은 왜 과거형으로 말했냐고 물었다. 왜 아들의 친구였다고 말했냐고. 아들의 친구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청년이 넓적한 뒤집개로 철판을 닦아내면서 말했다. “없으니까요. 등산을 갔다가 조난을 당했는데, 저는 살았고 그 녀석은 그러지 못했죠.” 형민은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손님 한명이 와서 달걀토스트를 주문했고 청년은 능숙하게 만들었다. 처음 장사를 하는 솜씨 같지가 않았다. 토스트를 전해주면서 청년은 맛없으면 말해주세요, 하고 말했다. 손님이 간 다음 형민이 말했다. “미안해요. 그런데 솔직히 맛은 예전만 못해요. 그래도 저는 계속 사먹을 거예요.” 청년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