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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연재

49회

형민이 진구였을 적에 진구의 짝은 늘 이렇게 물었다. 어제 뭐 했어? 자리에 앉아 가방을 풀기도 전에 먼저 그것부터 물었다. 그러면 진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낮잠 잤어. 짝은 포기하지 않고 또 물었다. 그 다음엔? 일어나 하늘을 봤지. 그 다음엔? 비가 와서 빨래를 갰어. 그 다음엔? 몰라. 진구가 모른다고 대답해야 질문은 끝났다. 진구의 짝은 별다른 역할이 없었다. 마치 어제 뭐 했어?라고 묻기 위해 등장하는 것처럼. 형민이 고등학생이었을 때, 비가 오면 학교를 결석하는 아이가 있었다. 이름이 성호였다. 담임 선생님이 어제 왜 학교에 안 왔냐고 물으면 늘 똑같이 대답했다. 오려고 했어요. 그런데 비가 오잖아요. 성호는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비가 그칠 때까지 걷는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어디 만화방에 처박혀 있던 거 아냐. 그렇게 말했다. 성호는 만화책을 읽지 못한다고 했다. 네모 칸이 어디로 연결되는지 헷갈린다는 거였다. 소설책을 못 읽는 사람은 봤어도 만화책을 못 읽는 사람은 처음 봤다며 담임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태풍이 왔을 때 성호는 5일이나 결석을 하기도 했다. 성호는 키가 커서 뒷자리에 앉았고 그래서 중간쯤에 앉은 형민과는 가깝게 지낼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둘이 체육시간에 열외가 되어 운동장 벤치에 앉게 되었다. 형민이 전날 음식을 잘못 먹어서 배탈이 났기 때문이었다. 성호는 늘 체육시간에 열외였다. 체육선생은 열외인 학생들을 교실에 두는 것을 싫어했다. 다른 아이들이 뛰고 있을 때 빈 교실에서 공부를 하는 건 반칙이라는 거였다. 그때, 벤치에 앉아서 반 아이들이 배구 경기를 하는 것을 구경하다가 형민이 성호에게 물었다. 어제 뭐 했어? 그러자 성호가 대답했다. 걸었어. 그 다음엔 뭐 했어? 비가 그쳐 집에 돌아왔어. 그 다음엔 뭐 했어? 잤어. 그 다음엔 뭐 했어? 라면 먹었어. 그렇게 말하고는 성호가 형민을 바라보았다. 넌 어제 뭐 했어? 형민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전날 뭘 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낮잠 잤어. 형민은 거짓말을 했다. 그 다음엔 뭐 했어? 일어나 하늘을 봤어. 그러자 성호가 다른 질문을 했다. 하늘 색은 어땠어? 붉은 노을이었어. 아름다웠어? 성호가 다시 물었다. 형민은 노을이 지는 저녁 하늘을 상상해보았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다른 대답이 나왔다. 슬펐어. 성호는 체육복 윗도리를 걷어 가슴을 보여주었다. 가슴 한 가운데 수술 자국이 보였다. 내가 이래서 체육 수업을 안 하는 거야. 다른 친구들한테는 비밀이야. 그날 이후로 형민과 성호는 아침마다 서로에게 어제 뭐 했어? 하고 물었다. 어제 뭐 했어? 길가다 천원을 주웠어. 그걸로 뭐 했어? 쌍쌍바를 사 먹었지. 반으로 잘 쪼갰어? 아니, 그래서 슬펐어. 규칙을 정한 것은 아닌데 마지막 문장은 늘 슬펐어,로 끝났다. 성호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다른 반으로 갈라졌다. 대학 입시에 실패한 성호는 이모가 산다는 동남아의 어느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그걸로 소식이 끊어졌다. 확인할 수 없는 소문들만 돌았다. 그중에는 부모님이 재벌이어서 세계 여행을 하면서 산다는 소문도 있었다. 형민은 애써 성호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보다 소문을 믿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형민은 야근을 하고 늦게 귀가하는 날이면 전 세계를 떠도는 성호를 상상해보곤 했다.

형민의 딸은 병원에서 이틀을 지낸 뒤 퇴원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상담을 받기로 했다. 딸을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가면서 형민은 비가 오면 결석을 하던 친구 이야기를 딸에게 해주었다. 그리고 성호와 매일 했던 어제 뭐 했어? 놀이에 대해서도. 그러자 형민의 딸이 갑자기 물었다. “아빤 어제 뭐 했어?” 형민이 한참을 생각하다 대답했다. “일했지.” “그리고?” “잔치국수를 사 먹었지.” “그리고?” “배불렀지.” 그러자 딸이 말했다. “재미없어.” 딸이 다시 물었다. “엄만 어제 뭐 했어?” 형민의 아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어느 집 담벼락에 핀 장미꽃을 구경했지.” “그리고?” “꽃이 예뻐 한송이 꺾었지.” “그리고?” “장미에 찔려 피가 났지.” 형민의 아내가 오른손을 들었다. 집게손가락에 밴드가 감겨 있었다. 형민은 이대로 여름휴가를 떠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트렁크에는 아이스박스가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과일과 고기가 들어 있을 것이다. 목적지는 남해라고 하자. 형민은 생각했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아내와 딸이 계속 말장난을 했으면 좋겠다고.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인가 4학년 때인가 통영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무려 세시간 동안 끝말잇기를 했다. 형민은 회사를 그만두고 캠핑카를 사서 전국 일주를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내와 딸을 태우고. 낮에는 차 안에서 수다를 떨고, 저녁이면 영화를 볼 것이다. 그리고 자기 전에 삼십분씩 하늘을 올려다봐야지. 프로젝터도 사고 천체망원경도 살 것이다. 형민은 불가능한 일인 것을 알면서도 자기 전에 캠핑카의 가격을 알아보았다.

딸에게 어제 뭐 했어?라는 질문을 듣고 난 뒤 형민은 아침마다 그 질문을 자신에게 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대답을 만들어냈다. 어제 뭐 했어? 퇴근길에 버려진 운동화 한짝을 봤지. 그래서? 그 신발을 어느 집 담벼락에 세워놓았지. 어제 뭐 했어?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었지. 그래서?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둘이 서로의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주는 걸 구경했지. 그래서? 그 장면이 예뻐서 울었지. 어제 뭐 했어? 아침부터 비가 오길래 회사를 무단결근해봤지. 그래서? 부재중 전화가 열통이나 왔지. 그래서? 전원을 꺼버렸지. 퇴근길에 맥주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가 형민은 쌍쌍바를 발견했다. 이게 아직도 있다니. 반가워서 하나를 샀다. 그리고 편의점 파라솔에 앉아서 쌍쌍바의 껍질을 벗겼다. 막대바가 하나밖에 없었다. 형민은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가 직원에게 불량품인 것 같다고 말했다. 막대가 두개여야 한다고. 그러자 직원이 쌍쌍바 포장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잘 보세요. 포장지를 보니 혼자 먹는 쌍쌍바라고 적혀 있었다. 쌍쌍바를 먹은 다음 날, 형민은 이렇게 묻고 대답했다. 어제 뭐 했어? 쌍쌍바를 사 먹었지. 반으로 잘 쪼갰어? 아니, 더이상 반으로 쪼개지지 않아. 그래서 슬펐지. 그렇게 말하면서 형민은 다시는 슬프다는 말로 문장을 끝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예뻤지. 좋았지. 기뻤지. 행복했지. 그런 말만 하겠다고. 하지만 그 결심은 지켜지지 않았다. 어제 뭐 했어? 밤에 혼자 울었지. 왜 울었어? 어떤 아나운서가 죽어서 울었지. 많이 슬펐어? 아니, 슬프지 않아. 화가 나서 운 거지. 형민은 그렇게 말하면서 이마의 상처를 만져보았다. 이제 사회자 이마에 난 상처는 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