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지금, 어떤 불평등인가

 

불평등 감각의 젠더 차이

성차별 현실에 대한 부정과 인정

 

 

권김현영 權金炫伶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공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미투의 정치학』 『대한민국 넷페미사』, 편저 『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등이 있음.

gokkhy@naver.com

 

 

1. 페미니즘이 대중화된 시대

 

훗날 역사가들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의 한국사회를 어떻게 기억할까. 누군가는 촛불시위와 탄핵, 정권교체로 기억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평화체제가 안정되기 전 격변의 시간으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목소리에 관심을 가진 역사가라면 분명 ‘새로운 여성들’이 등장한 시기라고 이름 붙일 것이다. 이때 일어난 몇가지 중요한 사건만 언급해도 다음과 같다. 2015년 1월 20일 ‘페미니스트’와 ‘증오’가 동시에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테러리스트로 IS에 자원한 김군이 페미니스트에 대한 증오를 동기로 밝혔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탄생한 메르스갤러리는 인터넷에 창궐해 있던 여성혐오의 실태를 고발하는 역할을 했다.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근처 공용화장실에서 무연고살인을 저지른 범인은 살해 대상으로 여성을 일부러 골랐고 살해 동기로 여자들이 자기를 무시해서라고 말했다. 이 사건이 알려지자 젊은 여성들은 강남역 인근에 “여자라서 죽었다” “우연히 살아남았다” “나일 수도 있었다”는 내용의 포스트잇을 붙이고 추모를 이어갔다. 문화예술계 성폭력과 여성혐오문화가 해시태그 운동으로 가시화되며 2017년까지 이어졌다. 2017년은 촛불시위를 통해 바뀐 정부에 여성계가 ‘성평등 인사 및 검증기준 마련’을 촉구했고, 그로 인해 내각의 30%가 여성으로 채워지는 상징적 결실을 얻은 해이기도 했다. 물론 이후 성평등개헌은 개헌 논의 자체가 좌초되면서 유야무야되었지만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에 대한 여성 대중의 열망은 2018년 지방선거로 이어진다. 당시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녹색당의 신지예 후보는 득표율 1.7%, 총 8만 2874표를 얻어 정의당 김종민 후보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이것은 확실히 놀라운 ‘이변’이었다. 2018년은 그야말로 페미니즘이 대중적으로 폭발한 해였다.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를 시작으로 미투운동이 번져갔고, 디지털성폭력 문제를 중심으로 총 6차례, 연인원 20만여명이 모이는 시위가 열렸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낙태죄를 둘러싼 여론이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는 점이 사실상 폐지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1

이 유례없는 페미니즘 대중운동의 시기 동안 여성들은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출몰’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사람들이 작가로 방송인으로 연구자로 활동가로 예술가로 정치인으로 등장하여 목소리를 높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기존과는 다른 형식의 목소리도 새롭게 등장했다. 지지하는 영화표를 구매하여 영혼을 보내는 소비자로, 마스크를 쓰고 머리카락을 짧게 자른 시민으로, 불공정한 언론보도에 항의하는 댓글을 다는 네티즌으로, 해시태그 운동을 주도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인플루언서로, 직접 콘텐츠를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크리에이터로 참여했다. 모두가 남성인 자리에 단 한명의 여성으로 존재하며 여성 전체를 대표해야 했던 상황은 곳곳에서 여전했지만 전체적으로 목소리 자체가 커지니 비로소 여성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의 존재라는 점 역시 가시화되었다. 여성들 간의 입장 차이 역시 첨예하게 드러났다. 사안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의 인식론적 차이부터 운동의 방식과 방향에 대한 다른 의견은 유의미한 차이로서 드러나기도 했고, 정치적 올바름을 둘러싼 선명성을 경쟁하는 과정에서 방향성을 상실하는 곤경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일어난 수많은 움직임들이 이전 시기와는 질적·양적으로 구분될 정도로 ‘다르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이 글에서 나는 여성 대중이 페미니즘을 대중운동으로 만들어낸 지금 성차별 문제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점차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긴급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불평등 감각의 젠더 차이가 외환위기 이후 이십여년 동안 어떻게 심화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2. 더이상 성차별은 없다? 포스트페미니즘 세대가 만들어간 다른 길

 

집합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감정에너지가 상승되고 정의로운 일을 함께해냈다는 도덕적 고양감을 고취하여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전통적인 사회운동의 방식은 그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다.2 신자유주의로 이행된 이후의 자본주의를 두고 ‘대안이 없는 시대’3라고 하는 이유는 이 체제가 너무도 훌륭해서가 아니라 모순이 발견되고 난 후에도, 그리고 그것을 모두가 인지하고 난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변화를 요구한 이후에도 실제로 변하는 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무엇인가 새롭게 다시 부각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가시성과 새로운 감정이 필요하다. 이 시기 대중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성공한 것은 이 두가지 부분에서 적절한 자원을 수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팝 페미니즘, 뉴룩 페미니즘, 셀럽 페미니즘, 디즈니 페미니즘 등은 새로운 가시성을 어디에서 찾았는지를 보여주는 목록이다. 질(R. Gill)은 새로운 페미니스트 가시성은 소셜미디어와 인플루언서 등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는 인력 자원을 통해 가능해지며, 이를 통해 포스트페미니즘의 심리적 삶이라는 조건에서 ‘성차별주의는 없다’고 믿는 대중들의 근거 없는 감정을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고 분석한다. 새로운 정보를 가지고 유포할 수 있는 사람들과 직접적인 상호작용과 즉각적인 반응 속에서 특유의 자신감 문화가 만들어지고 이를 바탕으로 페미니즘이 정당화되면서 페미니스트로서의 소속감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4 즉 새로운 시대 대중화된 페미니즘은 내적인 동력을 만들고 주체가 형성되어 집합적인 행동을 하는 방식이 아니라, 반응적·시차적·감정적 특징으로 움직인다.

반응적이라는 것은 해당되는 액션 이전에 선행되는 사건이 있었다는 뜻이다. 예컨대 앞서 언급한 신지예 후보의 경우 처음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안경을 쓰고 정면에서 측면을 바라보는 포즈로 찍은 포스터가 ‘건방져 보인다’는 이유로 공개적인 비난을 받고 심지어 벽보가 훼손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지지자들이 결집했다. 디지털성폭력규탄집회가 연인원 20만명에 가까운 인원을 모으게 된 동력에는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의 피해자가 남성이라는 점이 밝혀지자마자 용의자를 검거하고 포토라인에 서게 한 편파수사 의혹이 결정적이었다.5 각종 사건사고들이 일어날 때마다 페미니스트에 대한 가시화된 증오심이 분출되었는데 이는 이전에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이라고 망설여온 여성들을 더욱더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6

반응적이라는 점은 한편 시차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만들어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는 스스로의 취향과 입장 그리고 네트워크에 따라 분할된 세계를 만들어냈다. 현실에 대한 인식과 판단 모두 완전히 상이한 세계에서 공통 언어를 통한 소통이 가능할까. 지젝(S. Žižek)은 오직 시차적 관점(parallax view)으로만 “상호번역이 불가능하며, 어떠한 종합이나 매개가 불가능한 두 지점 사이에서 늘 동요하는 현상들에 대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시차적이라는 건 지금이 페미니즘이 목적한 바를 다 이룬 세계에 살고 있다는 말 그대로 ‘시대착오적’ 주장을 하는 안티페미니스트와,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이제야 입밖으로 꺼내 선언해보는 뉴웨이브 페미니스트의 엇갈린 시공간을 묘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젝의 문장을 변형해서 인용하자면 어떠한 종합이나 매개도 불가능한 두 지점 사이에서 상이한 시간성을 가진 이들이 설혹 잠시 만난다고 해도 이것은 동일한 현상의 두 측면이며, 결코 명백한 양쪽으로서 서로를 대면하지 못한다.7 오히려 나는 여성의 봉기 이후 남성의 위기 혹은 당혹을 배치하며 여성과 남성을 서로의 ‘양쪽’으로서 세우는 것이 울퉁불퉁한 단면을 다시 매끄럽게 봉합하려는 반동적인 의지라고 생각한다.

일례로 천정환은 이 시기 페미니즘 봉기에 대처하는 남자들의 반응을 관찰하고 한국 남성의 ‘위기’를 진단하고 있다.8 천정환의 이 글은 이 시기 페미니즘의 반응적이고 시차적인 성격이 좀더 분명하게 짚어져야 할 필요를 환기한다. 여성들의 봉기에 대한 남성들의 반응을 진단하기 이전에, 여성들의 봉기 또한 인터넷에 기거하는 거대한 남초화된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 발화가 어떠한 검열도 없이 대규모로 발흥해온 것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이 다시 짚어져야겠다. 이는 반응의 반응의 반응의 반응으로 이어지는 연쇄에서 무엇이 우선인지를 밝히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생각에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반응적이라는 것 그 자체이고, 그 반응의 실재를 증명할 만한 가시성이 어떻게 획득되었는지이다.

여성들의 반응은 페미니즘 대중운동으로 촉발되어 그 자체의 합목적성을 지녔던 반면, 남성들의 반응은 언론 인터뷰와 설문조사 등의 방법을 통해 매우 적극적으로 발굴되는 방식으로 가시성을 획득했으나,9 ‘안티페미’라는 지향 이상의 방향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내지 못했다. 규모 면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안티페미니즘을 내건 집회는 기껏해야 수십명에 이르는 참여도를 보인 반면 페미니즘 집회는 최대 수만명에 이른다. 한마디로 ‘비교불가’다. 이 흐름에 대응하거나 호응하거나 저항하는 남성들의 움직임도 일부 있었으나 이 시기 봉기한 여성들의 대응처럼 대중운동의 성격으로 전환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므로 오히려 페미니즘 봉기에 대한 남성의 반응을 분별하고 거기에서 남성성의 위기를 진단하는 것은 이분법에 기반한 양성체제적 사고방식의 일환으로 여성의 부상에 ‘대응되는’ 남성의 자리를 서둘러 마련한 것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남성의 위기는 소란스럽게 강조되어왔다. 남성은 언제나 위기였고 종말은 정해져 있으나 단지 지연되었다는 진단마저 있었다.10 그중에서도 가장 반동적인 방식으로 남성성의 위기를 말하는 이들은 남성의 위기는 곧 가장의 위기이므로 모두의 위기라고, 이 위기는 여성을 통해 극복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11 외환위기가 찾아오기 일년 전인 1996년 9월에는 경제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남편기살리기운동본부’가 발족되었다.12 1999년 12월 23일 군복무가산점 제도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이라고 판결한 이후로 줄곧 한국의 남성들은 구조의 피해자는 (군대에 가는) 남성들이라고 주장하며 성차별을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고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하거나 전유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점점 더 강화되어갔다. 지난 이십년 동안 “지금 이 시대에는 없거나(옛날얘기다), (다른 나라에는 있을지 몰라도) 이곳에는 없다”라는 시효만료를 선언하는 포스트-페미니즘-감수성이 남성사회의 젠더 담론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13

이는 신좌파(New Left)가 내세우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증오하는 대안우파(Alt-right)가 자국민 우선주의를 내세워 이민자를 추방하고 난민을 배척하면서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는 역사의 단절과 부인(denial)의 정치학과 매우 밀접하게 닿아 있다. 재부상한 페미니즘 이전에 ‘일베’의 남성들은 성차별이 없다고 주장했다. 미러링은 이들에게 비로소 잠시 깨달음을 주는 것처럼 보였으나, 곧바로 태세를 전환한 이들은 그것이 바로 역차별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눈앞에서 맥락이 만들어졌고 바로 자신이 한 말들이 즉각적인 레퍼런스가 되어 무기로 돌아왔음에도 말이다.

단절과 부인이라는 조악한 수법을 가지고 오로지 뻔뻔함으로만 돌파하던 이들은 더욱 강경한 안티페미니즘 전사가 되었고, 특별한 정치적 행동 없이도 모든 정당에서 잡고 싶어하는 중요한 정치적 세력으로 취급받았다. 2019년 1월 23일에는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워마드를 해부한다’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어 20대 남성의 표심을 노렸고, 같은 달 30일에는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20대 남성들의 이야기를 듣겠습니다’라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2019년 2월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는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 요인 분석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20대 남성이 정부 정책을 불신하는 이유를 여성편향성 때문이라고 작성했다.

언론사와 방송사에서, 정당과 단체에서 20대 남성들이 왜 화가 났는지를 너나 할 것 없이 궁금해한다. 남자의 감정은 여자의 감정보다 더 쉽게 주목되고 더 빨리 해결되어야 하는 것일까. 인류학자 지은숙에 의하면 부모를 돌보는 남자돌봄자의 경우 돌봄의 한계를 느끼면 국가를 향해 “자신이 한계에 다다르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경고하는 반면 여자돌봄자들은 한계를 말하는 경우 자체를 본 적이 없다고 한다.14 남자돌봄자들이 한계를 말하면 관련 시설에 좀더 빨리 입소가 가능해진다거나 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 이는 분노라는 감정의 생성과 표출에 있어 성별에 따라 사회가 얼마나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는 새롭게 등장한 여성들이 더이상 말을 고르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겠다며 분노 그 자체를 날것으로 보여주기로 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정희진의 말을 인용하자면 “지금 세대의 여성들은 규범적 평등과 실제적 차별 사이의 간극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세대”15이다. 이들은 더이상 참지 않는다.

 

 

3. 차별의 심화와 혐오정치로의 구조적 이행

 

대중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은 감정-정치적 성격을 띤다. 이는 성공적인 대중운동 대부분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고, 삶의 위기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개인에게 돌리는 신자유주의 통치체제에 저항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일단 잘 관리된 감정을 뒤흔들고 그것을 다시 집단적인 것으로 만드는 정서적 전환 과정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에게 일시적이나마 정치적 소속감을 느끼게 한다. 실제로 정의의 실패와 인정의 실패라는 이중의 곤경 속에서 시위, 사회운동, 혁명 등에서 분노와 같은 감정이 필수적인 정치적 감정으로 재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 분노와 원한은 정치적 저항으로 조직되기보다 개인의 지위유지와 인정욕구라는 정동의 표출로 확산되기 쉽다.16 김보명은 이 시기 페미니즘을 일으킨 조건에 “지난 30년 동안 이루어진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로의) 구조적 이행의 막다른 길”이 있다고 보고, 이 시기 감정 정치의 이름을 ‘혐오’라고 분석한다.17 김보명은 일베와 ‘메갈리아’ ‘워마드’로 이어지는 흐름에는 혐오의 ‘정동경제학’(affection economics)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일베의 지독한 여성혐오에 대항해 시작된 2015년 이후의 페미니즘은 ‘혐오’ 자체에 대항하여 이를 해체하는 데 실패하고 동일한 혐오의 문법 아래 게이남성, 트랜스여성, 난민남성 등 약자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왜 혐오였을까. 그리고 그것을 혐오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맞는 걸까. 혐오가 맞는다면 이 감정은 어떤 ‘반응’ 속에서 등장해왔으며 앞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 것인가.

윤보라에 따르면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여성혐오적 언설은 2011년 일베의 탄생 이후 두드러지게 많아졌다.18 여기에서 여성혐오는 여자를 싫어하거나 좋아한다는 차원이 아니라 남성동성사회의 작동원리로서 misogyny의 번역어를 지칭한다. 여성혐오는 여성을 남성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남성들이 여성들의 가치를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여성은 남성 동맹의 매개로만 존재할 뿐 궁극적으로는 동등한 권리를 가진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 전반을 지칭하는 말이다. 다시 말해 여성혐오의 성립조건은 남성동성사회의 존재이다. 애초에 여성동성사회라는 것 자체가 특수하고 예외적으로만 존재해왔으며 그마저도 없어지거나(총여학생회 폐지 등) 여성을 특별 취급한다는 이유로 공격받아왔다. 남성동성사회는 (여성을 접대의 매개로 사용하거나 비즈니스를 원활하게 해주는 역할로 동원하므로) 여성 없는 사회가 아니라 남성중심사회다. 반면 여성동성사회의 상상력은 일차적으로 남성 없는 사회, 분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분리주의는 급진 페미니즘의 오랜 전략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대중화된 여성운동의 일부 흐름이 남성혐오를 주된 감정정치적 동학으로 사용해온 것은 사실이고, 미러링이 그 전략적 의미를 초과하여 사용되었던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의 반응적 성격이라는 차원을 맥락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있다.

이들은 여성을 보지라고 부르는 일베식 언행을 비판하기 위해 남성을 자지라고 불렀고, 보지라고 불리는 것을 재전유하여 (워마드에서는 자유게시판을 ‘보지놀이터’로 지칭한다) 스스로를 보지라고 불렀다. 이는 특정 신체의 일부로 여성 전체를 환원해서 부르는 성적 타자화를 낙후시키는 방식으로 저항하는 전략이었겠으나 점차 전략이 아니라 정체성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들이 성공적으로 수행해낸 대중봉기의 참여독려 전략은 성원권을 제한하면서 내부 동질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김주희는 이를 가리켜 “동일성의 전술과 차이의 외부세력화”라고 표현한다.19 생식기의 생김새로 여성임을 증명하는 단계에서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 가능”을 시위참여 조건으로 두는 이같은 방식은 트랜스젠더와 난민 중 남성 신체를 가진 이들이 여성을 위협한다는 식의 논리로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른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혐오인가 아닌가가 아니라(당연히 혐오다) 누가 ‘왜’ 혐오를 ‘필요로 했는가’에 있다.20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전유와 재전유의 과정에서 스스로 타자화되는 길을 갔다는 데 있다. 이들은 스스로의 얼굴을 가린 채 혐오라는 프레임 바깥에서 혐오정치를 전략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들은 다시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타자들은 ‘특징이 없는, 즉 얼굴이 없는 채’21로 계속해서 우리의 인지의 배후에서 맴돈다.22 원칙이 무너진 세계에서 개방과 수용이 오직 지배자들의 이익만을 위해 사용될 때,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들의 요새를 만들어 스스로를 지키고자 한다. 이때 모순되고 모호한 회색지대는 필연적으로 ‘우리’와 ‘그들’ 사이에 무자비한 적대감이 발생하고 싸움이 이루어지는 주요한 영토를 구성한다.23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략이 다다른 길이 막다르다는 데 있다. 연인원 20만명에 이르는 유례없는 성공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 목소리는 이토록 쉽게 무시된 것일까. 현실의 지배세력들이 이 여성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김주희는 얼굴을 가린 여성들은 모든 여성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날카롭게 분석한다.24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의 여성 봉기는 얼굴 없는 신체들이 만들어낸 규모의 스펙터클로, 탈코르셋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약호화된 재현으로 이전에는 도달하지 못한 ‘가시성’을 획득했다. 그러나 구별되되 익명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이같은 전략은 여성 범주를 (성기를 중심으로) 환원하고 본질화하고 고정해야만 가능한 방식이었다. 여성혐오가 문화적으로 정당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물적 토대로서 구조화되고 그 바깥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해볼 수 없는 ‘자해적’ 전략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족주의’가 강력한 한국사회에서 여성혐오가 가족구성원 안의 여성까지도 남김없이 모욕할 정도로 퍼졌었는지를 복기해보자. 혐오라는 감정이 ‘권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순간은 대체로 차별이 법제도적으로 금지된 이후이다. 한국의 2000년대는 차별과 혐오와 폭력이라는 연쇄고리 중 그 어느 하나도 제어되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로 급속히 이행되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시기였다. 국가부도라는 초유의 경제위기 상황에서 차별과 폭력이 완전히 법적으로 금지되지도 않고 문화적으로도 수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법의 공백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은 87년체제 이후에 비로소 법으로 규제된다. 성차별과 관련된 중요한 법은 남녀고용평등법과 남녀차별금지법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은 1987년 제정되었고 2007년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에 관한 법률로 개정된다.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은 1999년 제정되었다가 2005년 여성가족부의 관련 업무가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금지업무로 통합되면서 폐지되고 2007년 차별금지법이 대체 입법으로 예고되었지만 극우 개신교 세력과 재계의 반대에 부딪혀 법 제정이 좌초된다. 그러나 이 두개의 법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판례가 있다. 바로 1999년 12월 23일 군복무가산점 제도의 위헌판결이다. 한국사회의 소위 ‘젠더 갈등’은 군가산점 폐지 전후로 그 양상이 달라진다. 배은경은 군가산점 논쟁의 배경에 경제위기의 책임을 여성에게 전가하던 당시 문화적 지형이 있다고 지적한다.25 1997년 구제금융사태는 외환위기 관리에 실패한 엘리트관료들의 무능에서 비롯되었지만, 영향을 받은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었다. 문제는 이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별화된 방식으로 대중동원이 이루어졌고 이때 공유된 감정구조가 이후의 이십년을 지배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그후 한국사회의 성차별 문제는 소위 남녀대결이라는 ‘젠더 갈등’의 감정구조 안에 갇혔다. 차별은 갈등이 되었고 불법의 문제는 위기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궁여지책으로 포장되었으며, 공감할 만한 대상은 철저하게 기존의 문법에 충실한 서사를 가진 이들로 제한적으로 선택되었다. 학령기 아이를 키우는 고개 숙인 아버지라는 식의 재현 말이다.

한국 여성들의 삶의 안정성은 가족과 노동이라는 두가지 축으로 지탱되어왔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이 두가지 축의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여성들은 급격하게 불안정 노동자로 편입되어 저임금 장시간 비숙련 노동력으로 언제든지 대체 가능해졌고, 결혼과 출산은 여성에게만 주어진 성역할에 따른 강제적 이행이 아니라 (삼포세대류의 담론 속에서) 그 자체가 목표로 바뀌게 되었다. 외환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여성들은 가부장적 가장을 중심으로 다시 성역할을 수행하도록 요청받았지만 이것은 더이상 성차별이 아니라 국가적 위기를 함께 헤쳐나가는 시민 됨의 미덕으로 포장되었다. 성차별이 심화되었지만 그것이 차별이라고 말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일부 성차별이 완화되었거나 철폐된 영역은 여성혐오의 근거지가 되었다. 1996년 이후 고등교육에서의 성차별은 적어도 ‘기회’의 측면에서는 완전히 철폐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성경제활동은 교육 정도에 비례해서 증가하지는 않았다. 바로 이 지점이 여성들을 비난하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여성이 경제활동에 참여할 때 남성과는 달리 고려하게 되는 변수가 있다. 바로 혼인시기와 출산계획 여부이다. 이 변수가 가족 내 남성과 여성의 성차별적 지위를 정상상태로 인지하는 가부장적 가족 규범과 만나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올라가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기혼 유자녀 여성은 경제활동에 참여하고자 할 때 자녀를 돌봐주는 비용을 염두에 두고 그를 제외한 나머지를 ‘순 시장임금’(net market wage)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사와 육아에 지출하는 돈 이상의 임금을 벌 수 있는지가 경제활동을 결정하는 주요한 동기가 된다는 뜻이다. 교육 정도는 경제활동 참가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고학력 여성은 저학력 여성보다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시기에 경제활동에 덜 참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고학력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더 소득이 높은 남편과 혼인하며, 남편의 경제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아내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떨어지는 문제와 연동된다.

고등교육을 받은 아내가 독박육아를 하며 남편의 회사 근처로 유모차를 끌고 나갔다가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에 ‘맘충’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는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장편소설, 민음사 2016)의 장면은 바로 이러한 현실을 묘사한 것이다. 기껏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임신·출산으로 경력이 끊긴 여성들은 고등교육의 쓸모에 대한 회의와 독박육아의 설움 사이의 트랩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2019년 2월 정부 출연 국책 연구기관에서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정책 의제 발굴 목적으로 개최한 자문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활발한 토론을 주고받던 도중에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한 교수가 열변을 토했다. 그는 미투운동이 문제가 아니라 저출산과 저성장이 문제라며 애도 안 낳고 직장도 안 가지는 한국 여성의 팔자가 전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주장했다. 고등교육을 받고 결혼한 여성들이 집 안에만 있으려고 하는 정신을 바꾸어야 한다고 계속 주장을 이어가자 회의석상의 다른 여성이 본인은 아이 낳고 재취업하는 데 꼬박 삼년이 걸렸다며 말을 중단시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교수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4. 불평등 감각의 젠더 차이가 만들어진 배경

 

한국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017년 현재 OECD 41개국 중 23위이다. 1990년대 들어 여성들의 교육 정도와 혼인 여부에 따른 경제활동 참가율 차이 역시 거의 사라졌다. 1985년에는 미혼여성이 기혼여성에 비해 경제활동 참가율이 높았지만 1995년에는 차이가 거의 사라졌고, 고학력 여성들의 취업 역시 급속하게 증가하여 고학력이 덜 취업하는 현상 역시 없어졌다.26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연간 2.5% 수준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생각보다 상승세가 가파르지 않은 이유는 때마다 여성노동력을 가장 쉽게 처분할 수 있는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경공업 중심 초기 공업화의 주요 노동력이었던 10대 여성들은 1980년대 중공업화가 이루어지면서 노동시장에서 물러난다.27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단행된 구조조정 바람은 대학교육을 받은 여성들의 소위 ‘좋은 일자리’들을 없앴다. 군복무가산점 제도를 둘러싼 갈등은 공무원 시험이 그나마 당시 여성들에게 남은 ‘차별적이지 않으면서’ ‘고등교육의 쓸모를 증명하는’ 영역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했다.28

미국발 경제위기로 기억되는 2008년은 흔히 중산층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평가된다. 여성들에게 있어 2008년은 인터넷 여성혐오 환경이 본격적으로 구축된 때이다. 이 시기 한국의 인터넷/미디어 환경은 급속도로 여성혐오 문화에 침윤된다. 또한 이명박정부에서 인터넷신문발전기금과 지역신문발전기금을 대폭 삭감하고 서버 공용임대, 멀티미디어 및 소프트웨어 장비 대여, 보안 및 회선 사용 지원 등 간접 지원조차 금지한 시기다. 그러자 영세한 인터넷언론사는 2008년 이후 어뷰징(abusing, 동일한 기사를 계속 복사해서 제공하는 행위)을 통해 조회수를 늘리는 방법으로 광고수입을 유지하고자 했다. 특히 네이버 기사 아웃링크제도가 시행된 이후 급격하게 어뷰징이 늘면서 네이버 차원에서 어뷰징 방지 공문을 협력사에 보낼 정도였다.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게이트키핑도 데스킹도 거치지 않은 기사들이 쏟아진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리고 남녀갈등을 부추기는 기사와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취급하는 기사, 여성혐오를 조장하는 기사들은 언제나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주작’(‘조작’을 뜻함)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혐오스러운 여성(‘연봉 오천 남자를 바라는 김치녀’ ‘버스기사 무릎 꿇린 버스녀’ 등)들은 여성혐오 세계의 인기콘텐츠로, 얼마든지 혐오할 만한 정당성을 제공해주는 증거가 되어 인터넷 세계에서 집단적인 괴롭힘을 당하다가 추방되었다. 김수아가 지적했듯이 “나쁜 여성이 정말로 있다”는 식의 주장을 통해 여성혐오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문제인데도 여성혐오의 발화자들은 이런 비판을 수용하지 않았다.29

성차별과 젠더 기반 폭력은 2000년대 이후 명시적으로 금지되었지만 입법상의 공백과 더불어 행정상의 무능과 무지가 겹친 상태에서 사실상 방치되었고, 법이 만들어진 이후에 오히려 차별과 폭력에 대해 문제 제기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권리만 주장하지 의무는 다하지 않는다’는 군가산점 위헌 결정 이후 형성된 인터넷 남초문화의 여성 인식30은 소위 ‘가성비 전쟁’으로 이어졌다. 일베에서 유행한 보○○치 등의 단어는 성별을 자원 삼아 남성을 선택하는 여성에 대한 분노를 담은 말이다. 그 이전에 만들어져 유통된 된장녀나 김치녀 등은 모두 과소비하는 여성을 비난하는 말인데, 이러한 멸칭을 만들어낸 배경에는 이성애 데이트 관계 전반이 불공정한 거래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2011년 전후 스마트폰이 급속하게 대중화되고 휴대폰 보조금제도가 복잡하게 만들어지면서 호구가 되었는가의 여부, 가성비를 따지는 행동 등은 남초커뮤니티의 중요한 인증-놀이문화가 되었는데 이것과 데이트문화에 대한 불만이 결합하면서 여자친구에게 얼마나 돈을 안 썼는지를 자랑하는 놀이문화가 만들어진다. 이는 2015년 이후 ‘봉기’한 여성들이 구남친들의 가성비 타령을 너도나도 폭로하면서 알려지게 된다. 유튜브에서 가성비(cheap boyfriend)를 검색하면 「사랑비」를 다음과 같이 개사한 노래가 나온다. “생일선물이라며 건넨 다이소 상잘 열어 (…) 그저 웃고 고맙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나를 칭찬했죠 넌 정말 개념녀라고 (…) 가성비가 좋은 그런 여자.”31

20대 남성들이 여성혐오와 안티페미니즘 등의 이슈에 결집하는 이유는 보통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의 이행 이후 남성적 특권이 보장되기 어려운 상황을 불안해하는 남성들이 겪는 위기의식의 단면이라고 해석되어왔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것은 남성(성)의 ‘위기’라기보다는 ‘변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즉 남성들은 이제 자신을 생계부양자 혹은 유일한 임금수입자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이상 거기에서 권력이 나온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차별을 통해 특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는 저물었다. 이러한 조건의 변화 속에서 남성들은 인터넷상에서 가장이 아니라 개인으로,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자신을 정체화하기 시작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차별은 팔지 않거나 차등가격을 매기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진 것이 있건 없건 지금 남성사회가 가장 두려워하고 욕하는 여성 형상이 ‘꽃뱀’인 이유다.

차별로부터 특권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고 믿는 이 세대의 남성들은 자신들이 오히려 역차별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차별의 증거는 사실 별로 없거나 대부분 억지거나 아니면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 한정된다. 큰 단위의 통계에서는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적고, 직업 선택의 기회나 승진에서 차별받는 것, 경력단절을 비롯한 육아 고충의 문제, 성폭력을 비롯해 젠더 폭력의 희생자 비율에서 여성이 압도적인 것 등등 우리 사회는 명백하게 여전히 성차별적이다. 하지만 믿지 않는다. 자신이 그런 차별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있어 세계는 곧 자기 자신이다. 이들은 듣지 않고 보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성평등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반복 인용함으로써 성평등 달성을 어렵게 하는 안티페미니즘 담론 전략은 성차별을 이들 남성들에게만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32 ‘젠더 갈등’ 프레임은 우리 사회에서 성차별의 비가시화 담론 전략 중의 하나다. 페미니즘이 부상하는 동안 내내 반복적으로 ‘젠더 갈등’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등장했고, 짝으로 이루어 등장하는 문구는 ‘20대 남성의 분노’다. 성차별과 젠더에 기반한 폭력 등이 문제가 될 때마다 ‘모든 남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남성 역시 구조의 피해자’ ‘잠재적 가해자 취급받는 것 불편’ 등등의 반응이 나온다. 적극적 무지에의 열망이라고 할 만한다.

 

 

5. 결론을 대신하며, 성차별은 ‘있다’

 

이는 단순히 인터넷 가짜뉴스와 SNS 기반 공론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54개 매체를 포함한 뉴스검색사이트(bigkinds.or. kr)에서 지난 삼십년간 페미니즘을 어떻게 보도했는지 찾아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페미니즘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본 결과 1987년부터 2014년 이전 총 기사의 수는 연간 이삼백개에 불과했다. 2015년 이후 페미니즘 관련 기사는 연간 오백개 이상으로 늘어났고, 2018년에는 3,487개에 달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서 페미니즘이라는 키워드로 기사가 검색되는 것은 2018년부터다. 세 신문 모두 페미니즘을 문화면과 연예면에서 다루었고, 참고로 한서희씨 관련 기사가 중앙일보가 최초로 페미니즘을 다룬 첫달의 기사 11개 중 5개를 차지했으며,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해외에서 미투운동에 우려를 표한 여배우의 기사부터 페미니즘의 폐해를 다루는 기사, 펜스룰 관련 기사에서 매우 부정적인 방식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을 의무교육으로 해달라는 국민청원이 20만명을 넘긴 것이 2018년 1월이다. 그쯤 되니까 겨우 지면에서 여성들이 제기한 문제들이 다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야 가시성이 확보된 상황이다. 그런데도 성차별이 없다고? 2018년이 되어서야 페미니즘에 대해 삼대 중앙일간지에서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성차별은 ‘있다’. 그리고 혐오는 그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지금 겨우 우리 사회가 도달한 자리다. 이 모든 혁명적 소동을 거쳐서 말이다. 언제까지 성차별은 있다/없다라는 허구적 이분법 사이에서 맴돌 것인가.

 

 

  1. 「7년 만에 심판받는 낙태죄… 국민은 ‘폐지’로 기울었다」, 한겨레 2019.4.9.
  2. 랜달 콜린스 「사회운동과 감정적 관심의 초점」, 제프 굿윈 외 엮음 『열정적 정치』, 박형신·이진희 옮김, 한울아카데미 2012, 49~56면.
  3. 새처리즘(Thatcherism)의 승리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에 대안은 없다’라는 믿음을 강화시켰다. 특히 자발적인 점령시위 등이 벌어진 뒤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서 대안이 없는 시대라는 정서가 널리 퍼졌다. 샹탈 무페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 이승원 옮김, 문학세계사 2019, 15면 참고.
  4. Rosalind Gill, “Post-Postfeminism? New Feminist Visibilities in Postfeminist Times,” Feminist Media Studies 16(4), 2016, 610~30면.
  5. 「마지막 ‘혜화역 시위’… 성 편파 수사 규탄, 그 발단과 논란」, 뉴시스 2018.12.22.
  6. 「20대 여성 절반 “나는 페미니스트”, 남녀 모두 성차별 문제 큰 관심」, 경향신문 2019.1.15.
  7. 슬라보예 지젝 『시차적 관점』, 김서영 옮김, 마티 2009, 13면.
  8. 천정환 「강남역 살인사건부터 ‘메갈리아’ 논쟁까지: ‘페미니즘 봉기’와 한국 남성성의 위기」, 『역사비평』 2016년 가을호 353~81면.
  9. 「20대 남자, 그들은 누구인가」, 『시사 IN』 604호(2018.4.15); 「여자를 혐오한 남자들의 ‘탄생’」, 『시사 IN』 418호(2015.9.17); 「정의의 파수꾼들?」, 『시사 IN』 467호(2016.8.25).
  10. 한윤형 「왜 한국 남성은 한국 여성들에게 분노하는가: 여성혐오,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어떤 특수성」, 『문화과학』 2013년 겨울호 185~201면.
  11. 「아무 일이라도 주세요: 주부 IMF 시대 생활고 못 이겨 취업 발동동」, 한겨레 1997.12.10.
  12. 이 운동은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아.나.기)’이라는 단체에서 2012년 10월 ‘남편과 아버지 기살리기 클럽’을 창립하는 등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같은 해 3월 비영리민간단체공모지원사업을 통해 ‘남편 기살리기’ 사업을 지원했다. 「“오죽했으면…” 여성단체, 남편 기살리기 나섰다」, 뉴시스 2012.10.29.
  13. Rosalind Gill, “Postfeminist Media Culture: Elements of a Sensibility,” European Journal of Cultural Studies 10(2), 2007, 147~66면.
  14. 지은숙 「가족돌봄자는 한계를 말할 수 있는가?: 젠더와 세대로 본 한국/일본 부모돌봄자의 ‘자기성실성’」. 옥희살롱 오픈크로스세미나(2019.7.13).
  15. 정희진 「“메갈리아는 일베에 조직적으로 대응한 유일한 당사자”」, 한겨레 2016.7.30.
  16. E. Brighi, “The Globalisation of Resentment: Failure, Denial, and Violence in World Politics,” Millennium: Journal of International Studies 44(3), 2016, 411~32면.
  17. 김보명 「페미니즘의 재부상, 그 경로와 특징들」, 『경제와사회』 2018년 여름호 100~138면; 김보명 「혐오의 정동경제학과 페미니스트 저항: ‘일간베스트’, ‘메갈리아’ 그리고 ‘워마드’를 중심으로」, 『한국여성학』 34권 1호 2018, 1~31면.
  18. 윤보라 「일베와 여성혐오: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진보평론』 2013년 가을호 33~56면.
  19. 김주희 「페미니즘 대중화와 여성 봉기: 동일성의 전술과 차이의 외부세력화」, 한국여성학회 여름캠프 ‘여성학 죽이기: 안티페미니즘의 역습과 여성학의 현주소’(2018.8.16~17) 주제발표문.
  20. 한채윤 「왜 한국 개신교는 ‘동성애 혐오’를 필요로 하는가?」, 정희진 엮음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교양인 2016, 191면.
  21. Zygmunt Bauman, Modernity and Ambivalence, Polity Press 1993, 55면.
  22. Arlene Stein, The Stranger Next Door: The Story of a Small Communitys Battle over Sex, Faith, and Civil Rights, Beacon Press 2002, 196면.
  23. 지그문트 바우만 「목표와 이름 찾기의 증상들」, 지그문트 바우만 외 『거대한 후퇴』, 박지영 외 옮김, 살림 2017, 55면.
  24. 김주희, 앞의 글.
  25. 배은경·박홍주·권김현영·김정열·김창수 「군가산점제: 소동에서 논쟁으로」, 『여성과사회』 11호 2000, 92~190면.
  26. 장지연 「여성인구변동과 노동시장」, 『한국인구학』 21권 2호 1998, 5~36면.
  27. 1975년 여성 15~19세의 47.6%가 주로 공장 등에 취직하여 경제활동에 참가했는데 1995년에는 15~19세 여성 중 경제활동에 참가하는 비율이 11%로 20년 동안 4분의 1 수준으로 대폭 떨어졌다. 장하진·김엘림·장미경 외 『근로여성 50년사』, 한국여성개발원 2001.
  28. 「만점받아도 불합격 ‘이상한 공무원 채용’: 군복무가산점 성차별 논란」, 경향신문 1998.9.16.
  29. 김수아 「온라인상의 여성혐오 표현」, 『페미니즘 연구』 15권 2호 2015, 279~317면.
  30. 관련해서는 권김현영 외 『대한민국 넷페미사』, 나무연필 2017, 40~45면 참고.
  31. www.youtube.com/watch?v= HNQo9McK0mM(검색일 2018.8.2)
  32. Rosalind Gill, “Post-Postfeminism? New Feminist Visibilities in Postfeminist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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