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과 현장

 

분단체제와 87년체제의 교차로에서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웃음의 해석학, 행복의 정치학』 『연대와 열광』 『뒤르켐을 위하여』, 편서로 『87년체제론』이 있음. kim.jongyup@gmail.com

 

 

1. 루빈의 꽃병

 

게슈탈트(Gestalt) 심리학에서 자주 예로 제시되는 ‘루빈의 꽃병’이라는 그림은 우리가 배경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형태가 달리 지각됨을 보여준다. 흰색을 배경으로 여기면 화병을 보게 되고, 검은색을 배경으로 생각하면 마주한 두 얼굴을 보게 된다. 이명박(李明博)정부와 박근혜(朴槿惠)정부를 어떻게 지각하는가 또는 김대중(金大中)정부와 노무현(盧武鉉)정부를 어떻게 인지하는가도 이런 게슈탈트 심리학의 통찰에 비추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의 민주파는 87년체제를 배경으로 이명박정부를 파악했다. 어떤 이들은 그의 집권을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어떤 이들은 우려가 없지 않지만 그리 심각하지 않은 일탈로 인지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명박정부의 집권 후 행태 속에서 민주적 법치국가의 파괴를 지각했다. 그래서 총선과 대선에서 진보개혁진영이 승리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서둘러 정상궤도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사태를 파악하게 된 경위는 납득할 만하다. 노태우(盧泰愚)정부로부터 노무현정부에 이르는 과정은 불만족스럽고 우여곡절이 많긴 해도 민주화가 꾸준히 진전된 과정으로 볼 수 있었다. 같은 견지에서 김대중정부 이래의 경과도 간명하게 조명된다. 김대중노무현정부 시기에 사회경제적 민주화에 실패한 것이 보수의 집권을 불렀다. 이제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정부를 수립할 수 있다면, 댓가는 작지 않았어도 이명박정부를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기로 정리하고 갈 수 있다. 2010년 지방선거부터 2012년 총대선에 이르는 과정에서 나타난 민주적 대중의 열띤 참여는 이런 인식과 연계된 것이었다.

그러나 총선 패배, 그리고 이어진 대선 패배는 많은 이들의 인지적 배경을 87년체제로부터 분단체제로 옮겨놓았다. 사람들은 해방 후 우리 사회에서 보수가 집권하지 않은 기간은 고작 민주정부 10년뿐이었다는 것, 우리 사회가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던 것이다. 이런 관점은 2012년 선거 패배의 ‘멘붕’에서 벗어나려는 방어기제의 측면도 있고, 선거 패배의 책임이 있는 민주당(또는 당시 민주당 지도부)의 변명으로도 보일 수 있겠지만, 심리적 동인이나 정치적 아전인수를 떠나 설득력이 있다. 분명 분단체제는 줄곧 민주주의 심화와 전개에 강력한 방해요소로 작동해왔다. 그리고 이제는 사회혁신의 방향 모색에도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루빈의 꽃병’ 체험과 유사한 정신적 당혹감은 민주파 이전에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를 거치며 보수파가 먼저 경험했던 것 같다.1) 분단체제의 수호자인 보수파의 관점에서 보면, 김대중정부의 수립은 외환위기라는 자신들이 자초한 엄청난 위기상황 속에서 한번쯤은 눈감아줄 수 있는 것이었다. 김대중의 급진성은 오랜 탄압과정에서 어느정도 순치되었다고 여겨졌고, 그를 박해한 것에 대한 얕은 죄의식, 그리고 광주와 호남 전체에 대한 부채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은 용인할 수 없었다. 김대중의 당선 같은 일탈은 체제의 탄력성을 위해 한번쯤 수용할 수 있었으나 노무현의 당선은 일탈을 구조로 전환시킬 가능성을 가진 위협적인 사건이었다. 민주파에 박근혜의 당선이 그렇듯 노무현의 당선은 보수파에는 ‘멘붕’을 유발한 사건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보수파의 기이할 정도로 강렬한 적개심은 자신들이 겪었던 ‘멘붕’, 즉 분단체제라는 안정적인 배경을 버리고 불가피하게 다른 인지적 틀을 도입해야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민주화를 원했다 하더라도 분단체제와 양립 가능한 민주화를 원했을 뿐, 그것을 해체하는 민주화를 원한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87년체제가 분단체제를 내파하는 수준에 이르도록 발전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행과 더불어 분단체제가 다시는 이전의 안정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재안정화하려고 하는 보수파, 그리고 분단체제와 87년체제를 함께 고려하지 않고 인지적 배경교체 속에서 혼동을 겪는 민주파 모두 균형감을 잃은 것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 좀더 구체적으로는 지난 총대선이나 현재 우리가 직면하는 박근혜정부의 여러 양태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분단체제와 87년체제라는 이중의 틀을 통해 사태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즉 분단체제가 87년체제 속에서 관철되는 방식과 87년체제가 야기한 분단체제의 구조적 변화를 내적으로 연계해서 사고해야 한다. 이런 조망은 ‘흔들리는 분단체제’라는 평이한 표현 속에 이미 깃들어 있다. 요점은 그 통찰을 활성화하고 상황 속에 더 철저히 적용해보는 것이다.

 

 

2.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귀결들

 

해방 후 남한사회의 변동을 분단체제론의 관점에서 살핀다면, 네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815해방에서 한국전쟁을 거쳐 1953년 정전에 이르는 분단체제 형성기다. 두번째는 정전협정 이후부터 제2공화국이 516쿠데타에 의해 붕괴할 때까지로, 분단체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의 사회구조와 발전 패턴을 남한사회 안에 형성하고 관철할지 불확실했던 이행기라 할 수 있다. 자유당 독재하에서 419혁명과 516쿠데타라는 두가지 대안이 형성되고 경쟁했던 시기다. 세번째는 박정희(朴正熙)의 집권에서부터 1987년 민주화 이행 이전까지의 기간으로, 전두환(全斗煥) 집권기를 포함해 ‘긴 박정희체제’로 명명할 수 있는 권위주의적 발전국가체제 시기다. 분단체제론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 시기는 분단체제와 ‘긴 박정희체제’가 상호안정화 관계에 있던 분단체제 안정기라 할 수 있다.2) 이 시기에 분단체제는 박정희체제에 의해 지지되고, 박정희체제는 분단체제로부터 엄청난 지배 정당성과 통치자원을 획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네번째는 민주화 이행부터 현재에 이르는 87년체제다. 87년체제는 박정희체제와 달리 분단체제를 침식하고 불안정화하는 동시에 그것의 발전방향 선택과 조정이 분단체제에 의해서 심각하게 제약되는 관계에 있다. 백낙청() 교수는 이런 상황을 ‘흔들리는 분단체제’라고 명명했는데,3) 우리의 관심은 앞서 지적했듯이 그런 동요의 귀결들을 좀더 깊이 살펴보는 것이다.

 

1) 적대적 상호의존성의 새로운 변형

분단체제의 핵심 특징 가운데 하나는 남북한 기득권집단 사이의 적대적 상호의존이다. 이런 적대적 상호의존성은 분단체제가 존속하는 한 유지되지만 그 분단체제가 흔들리고 있기에 점차 약화된다. 하지만 그것이 적대성의 약화로만 나타나진 않는다. 비적대적 또는 호혜적 상호의존과 상호의존 없는 적대라는 두 방향으로의 변화가 모두 가능하며, 87년 민주화 이후 경험은 두 가능성 모두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적대를 약화시키고 평화로운 상호의존 관계를 만들어가는 흐름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이후 남북한 교류협력의 증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기의 햇볕정책과 두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비해 반대 흐름은 이명박정부 이후 뚜렷하게 감지된다. 분단체제가 안정적이던 시기에 남과 북은 상대방의 위협을 자기 체제 유지를 위한 자원으로 활용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진짜 위기로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분단체제가 흔들리면서 오히려 높은 수준의 적대가 지속되는 것도 가능해진다. 이명박정부 시기의 524조치와 연평도포격 같은 사건들 그리고 올해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일련의 군사적 긴장이 그런 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응해서 ‘독수리연습’을 실행했고, 그 과정에서 B52 전폭기에 이어 B2 전략폭격기가 남한 상공을 비행했다. 당연히 북한은 그런 군사훈련에 강력하게 반발했고, 그로 인해 심각한 위기상황이 조성되었다.4) 그리고 그런 과정의 연장선상에서 개성공단이 폐쇄되었는데,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개성공단 재가동을 둘러싼 협상에서 남북한 당국은 호혜적 상호의존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개성공단마저 상호의존 없는 적대의 맷돌 속에 갈아버릴 듯한 태도를 보였다.5)

전체적으로 보아 분단체제의 동요가 만들어낸 ‘진자운동’의 진폭은 커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분단체제를 재안정화하려는 보수파의 시도에도 분단체제는 전보다 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렇게 심화된 분단체제의 동요는 사회성원들에게 단순화된 인지적 틀을 강요하던 분단체제 안정기와 달리 훨씬 어려운 인지적 과제를 부과한다. 왜냐하면 분단체제 동요기에는 평화의 가능성 및 사례와 긴장의 가능성 및 사례가 동시에 증대되고 양자가 복잡하게 얽히는 과정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인지적 과제를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들이 작동하는 듯하다. 우선 현 국면에서는 주요 언론의 보수파 장악이 중요한 이유의 하나다. 대중매체의 편향은 위기의 사회적 체험을 상당정도 그리고 일정 기간 차단하고 전치(轉置)할 수 있다. 이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대중매체를 통하지 않고서 세계를 관찰하거나 이해하기가 어려워졌다. 『햄릿』의 호레이쇼가 그렇듯이 사람들은 “그렇게 들었고, 그것을 어느정도 믿을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인지의 문턱이 높아지는 경향을 들 수 있다. 분단체제를 살아가는 과정은 장기 예외상태 속에서 예외의 상례화를 경험하는 일이었다. 분단체제하에서 이루어진 사회적 근대화 과정 또한 매우 급속하고 돌진적인 것이어서 숱한 사고와 갈등 들로 점철되었다. 그런 모든 사건들에 대해 민감성을 유지하는 것은 일상생활의 영위를 방해할 정도로 피로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 사회 성원들은 자라에 물린 다음 솥뚜껑에도 놀라기보다는 다시는 자라에 놀라지 않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분단체제 형성과 더불어 형성된 세계사적 현상 유지가 여전히 한반도에서는 독특한 방식으로 관철되고 있다는 희미한 통찰이 대중의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동서냉전은 해체되었지만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의해 형성된 ‘G2체제’는 오히려 분단체제를 낳은 한국전쟁에서의 미중간 군사적 세력균형에 대한 기시감을 형성한다. 북한은 미국에 의한 세계 최장의 봉쇄를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핵문제를 일으켜서라도 현상 타파를 꾀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중은 분단체제의 동요가 미중관계라는 제약 안에 있고 그 선을 넘는 변동이 일어나기란 매우 어려우며 아직 그런 징후는 없다고 판단한 듯 보인다. 이런 판단이 위기에 대한 인지적 문턱을 높이는 심리 그리고 대중매체에 의한 정보 선별 및 통제와 결합해서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2) 반북/친북 도식의 형성과 강화

87년체제의 수립과 더불어 근대적 정치발전과 민주화에 따른 사회적이데올로기적 분화가 정치체제 안에 수용된다. 더불어 정치적 반대파 전반을 ‘빨갱이’로 명명해 숙청하거나 ‘간첩’으로 몰아 사형에 처하는 것은 쉽게 활용할 수 없는 방법이 된다. 그렇게 하기엔 정치적 분화가 깊게 진행되어 보수파가 보기에도 ‘좌파’에 속한 사람이 너무 많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보수파의 입장에서는 그런 정치적 분화를 분단체제의 틀 안에 묶어둘 수 있는 새로운 의미론이 필요해진다. 그런 필요를 충족하는 것이 반북/친북의 구별 도식이다. 이 도식은 정치적 타자를 ‘빨갱이’ 혹은 ‘간첩’으로 정의하고 숙청하는 것이 사회적 신빙성을 상실할 때, 북한에 대한 태도 표명을 강요하는 형태로 분단체제 고유의 적대의 정치를 이어갈 수 있게 해준다.

반복적으로 활용됨으로써 반북/친북 구별 도식이 매우 폭넓게 퍼져나갔다는 사실은 최근 ‘일베’ 현상에서 보듯이 청소년층에게까지 이런 구별 도식이 파고들어 공격적 언어유희의 자원이 된 것에서 엿볼 수 있다. 이런 확산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반북/친북의 구별 도식이 강화된 형태로 적용되고 그로 인해 남남갈등이 남북갈등 못지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심화되는 현상인데, 이 점을 두가지 예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는 ‘종북’이라는 단어의 출현이다. 타자의 정신적 노예성을 직접 문제 삼고 있는 이 말은 ‘친일’ 같은 말을 훨씬 상회하는 모욕적 함의를 지닌다.6) 그렇기 때문인지 감히 보수파조차 사용하지 못한 이런 말이 민주노동당의 분열 속에서 진보진영 내부에서 출현했는데, 그것은 세가지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 같다. 첫째, 반북/친북이라는 적대적 구별이 보수파뿐 아니라 민주파 속으로도 관류하며, 더 격렬한 형태로 관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런 단어가 진보정당 내부로부터 발원했기 때문에 보수진영이 그것을 ‘즐겁게’ 전유했으며, 그로 인해 그것이 쉽게 헤게모니적 힘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종북이라는 표현이 가진 강한 모욕성 때문에 자주파가 북한과 관련해서 드러낸 심각한 과오를 정치적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오히려 가로막힌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한 분열의 그림자는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열에 이어 지난해 통합진보당의 분열에도 드리워졌다.7)

특히 마지막 측면은 적지 않은 정치적 후과를 낳았다. 통합진보당의 내분은 눈 위에 내린 서리처럼 민주당 중심의 ‘혁신 없는 통합’에 대한 대중의 실망을 야권 전방에 대한 환멸로까지 이끌었다. 그로 인해 야권의 총선 패배 수습과 노선 및 조직 정비를 더 힘겹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은 야권정치 전반이 안철수(安哲秀)라는 개인에게 과도하게 몰입하게 하는 계기도 됐다.

종북 문제가 진보진영 내부까지 반북/친북 도식이 깊게 가로지른 양상을 보여준다면, 보수파에 의한 이 도식의 적용은 마땅히 지켜져야 할 한계를 넘어 폭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지난 몇달간 우리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논란이다.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과 그것이 함축하는 박근혜정부의 정당성 위기를 덮기 위해서 여권은 지난 620104정상회담 대화 발췌록을 공개했다. 이어 624일 국정원장이 직접 국정원판 대화록 원본을 공개했다. 국정원장의 ‘쿠데타적’ 행동이 불러온 심각한 정치적 갈등의 종식을 명분으로 72일 국가기록원 원본 열람이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쳐졌다. 그리고 의원수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열람을 위해 여러차례 검색이 시도되었음에도 원본을 찾지 못했으며, 결국 여야 합의로 국가기록원에 104정상회담 대화록 원본이 없다는 결과가 722일 발표됐다.

이렇게 전개된 사태에는 불법성과 경중을 논하기 이전에 발생 자체만으로 경악스러운 일이 너무나 많다. 국정원의 수장이 직접 비밀을 ‘까발리는’ 작태는 해외 언론들마저 놀라움을 표한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필자에게는 두가지가 더 인상적이다. 하나는 국정원판 대화록 ‘원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를 읽어낸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의 이데올로기적 난독증인데, 이는 반북/친북 도식을 상대편에게 적용하려는 강박이 스스로에게 야기한 맹목성이 어느 정도인가를 보여준다. 다른 하나는 자기 진정성 입증에 매몰된 탓인지 국가기록원 소장 원본 열람 및 공개를 주장하고 나선 민주당의 행동이다. 박근혜정부와 새누리당의 선동 그리고 보수신문과 방송의 호도에도 불구하고 국민 다수가 국정원판 원본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를 읽어낼 수 없다고 현명하게 판단한 상황 속에서 민주당이 그런 입장을 취한 것은 그들의 정치적 판단능력이 매우 우려스러운 수준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런 모든 과정을 떠받치고 있는 사실, 즉 반북/친북 도식을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통치행위에도 직접 적용할 수 있으며 그렇게 했다는 사실이다. 분단체제하에서 이제껏 갖은 정치공작, 그것도 유력한 정치인을 향한 공작들이 있어왔다. 민주화 이후에도 김대중 당시 야당 총재를 겨냥한 1989년 ‘서경원(徐敬元) 의원 밀입북 사건’이나 1992년 ‘이선실(李善實) 간첩단 사건’ 등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 정치인을 간첩사건 등에 엮어넣으려 했지 그들의 정치행위를 직접 친북행위 또는 이적행위로 몰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대통령으로서 한 행위, 그것도 대통령에게 맡겨진 평화통일 노력이라는 헌법적 소임에 터한 최고 수준의 통치행위마저 반북/친북의 구별 도식에 종속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두가지가 전보다 더욱 선명해졌다. 하나는 보수파가 집요하게 반북/친북 도식 적용을 시도하는 근본 목적은 오로지 남한사회 내에서 보수파의 기득권 유지뿐이라는 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설령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더라도 그것을 어떻게든 숨기려 하는 것이 정상이며, 그것이 비밀로 분류되어 있다면 꺼내어 흔들 이유는 더더욱 없다. 다른 하나는 분단체제의 동요가 보수파를 좀더 유연한 집단으로 만들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보수파의 핵심 이익이 분단체제의 유지 없이 지켜지기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8) 그들은 지금까지 성공했던 지배 및 정적숙청 방식에 집착하며, 그런 시도가 적합성을 잃어가는 상황에서도 그런 방식의 성공 가능성을 마지막 한방울까지 쥐어짜려 할 것이다. 그런 성향에 비춰볼 때만 앞서 지적한 이데올로기적 난독증도 이해 가능하다.

 

 

3. 박정희체제와 87년체제

 

앞서 분단체제의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박정희체제였음을 지적했다. 87년체제는 분단체제를 흔들었지만 여전히 존속하는 분단체제에 의해서 제약된다고 할 때, 그 제약은 앞서 지적한 적대적 상호의존의 새로운 변형과 반북/친북 구별 도식의 강화 못지않게 87년체제가 탈피하지 못한 박정희체제로부터도 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87년체제와 분단체제라는 이중 틀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조명한다는 것은 87년체제 내부에 구조적으로 관철되는 박정희체제를 살피는 것과 접맥된다. 생각해보면 분단체제를 재안정화하고 87년체제의 행로를 분단체제의 가두리 안에 묶어두고자 하는 보수파의 시도는 박정희체제에 대한 향수를 경유함으로써 성공할 수 있었으며, 박정희의 경제적 아들 이명박과 그의 친딸 박근혜의 집권은 그것의 분명한 예증이다. 그러므로 87년체제를 더 나은 체제로 지양하려는 시도는 탈피하지 못한 박정희체제와의 대결을 요청한다.

박정희체제는 권위주의적 발전주의체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행은 사회의 다양한 세력이 권위주의적 국가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할 수 있게 해주었다. 국가-은행-대자본의 삼자동맹에서 권위주의적 국가의 하위파트너였던 대자본 분파는 자유화 프로젝트를 통해 탈권위주의를 추구했고, 삼자동맹 아래 배제되었던 민중부문은 민주화 또는 민주주의의 심화라는 프로젝트로 그것을 추구했다. 이 두가지 프로젝트의 경합이 87년체제를 특징짓는다.

그런데 이런 박정희체제로부터 탈피하려는 두 프로젝트는 모두 그 체제의 한축인 권위주의에 대해서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지만, 다른 한축인 발전주의(또는 성장주의)에 도전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민주파도 보수파도 발전주의의 헤게모니 아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발전주의가 그런 힘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1) 발전주의

근대 사회는 일반적으로 체제 운영에 사회성원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그 성과를 배분받을 수 있다고 내세운다. 따라서 사람들은 모두 정치적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러기를 요구한다. 근로의욕을 표명하고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으며 그렇게 참여하면 생계비가 보장되는 것이 정상적인 사회라고 믿는다. 학습능력이 있으면 의무교육을 이수할 수 있으며 최소한의 의료서비스가 가능해야 하고 종교적 신념을 택할 수 있거나 혹은 종교를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사회에 포함되어 있는 상태가 제공하는 기회를 개인이 활용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런 기회를 처음부터 개인으로부터 박탈하고 그를 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실제 체제 운영은 사회적 정당화 원리를 충분히 실현하지 못할 때가 많다. 즉 영양상태가 나쁘거나 문맹이거나 직업이 없거나 수입이 없거나 신분증이 없거나 사법기관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주거불안에 시달리거나 하는 일이 때로는 소규모로 때로는 대규모로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사태는 체제에 대한 불만을 축적하고 때로는 체제의 위기를 불러온다.

따라서 이런 불만을 진정시키기 위한 두가지 의미론이 발전된다. 하나는 체제 성과를 분배할 수 없는 특정 집단을 적시하고 그 이유를 규범적으로 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주조하는 것이다. ‘배제의 정당화’(justification of exclusion)라 명명할 수 있는 이런 방식은 성차별주의나 인종차별주의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현재의 배제상태를 ‘아직 포함되지 않은 상태’로 규정하고 다가올 미래에 포함이 실현되기를 약속하는 것으로 ‘포함의 시간화’(temporalization of inclusion)라고 명명할 수 있다. 이런 포함의 시간화가 사회적 설득력을 얻으면 현재 겪는 배제에서 생겨나는 불만이 체제에 도전하는 힘으로 발전하기 힘들어진다.

체제능력의 한계를 보완하는 이 두가지 방식은 2차대전 이후 수립된 미국 헤게모니하의 세계체제 아래서도 확인된다. 월러스틴(I. Wallerstein)에 따르면 미국은 전후 복구를 위해 세계적 규모의 복지국가 기획을 가졌다. 하지만 이런 계획은 체제능력의 한계로 인해 트루먼정부 시기부터 철회된다. 냉전은 세계적 규모의 복지국가 프로젝트의 일차적 배제 대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고 배제된 지역을 군사적으로 봉쇄하는 장치였다. 다른 한편 사회주의 진영이 아닌 미국 헤게모니 아래 놓인 지역에 대해서는 포함의 시간화가 제시되었다. 그것이 그 시대 지구문화의 형태로 제시되고 자리잡은 발전주의다. 그에 따르면 모든 국가들은 미국이 형성한 정치경제문화적 표준을 향한 추격발전의 선상에 놓이는 것이다.9) 박정희체제가 내건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슬로건은 미국 헤게모니 아래서 제시된 지구 차원의 추격발전 모델의 국내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박정희체제의 시도는 분단체제하 남한의 발전주의였기 때문에 두가지 특징이 부가된다. 하나는 미국이 한국전쟁을 통해 냉전의 첨단에 서 있던 남한사회에서의 발전주의 성공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미국의 한국에 대한 지원은 실제로 제3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들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다른 하나는 분단체제하에서 남한과 북한의 통치집단이 각기 자기 체제의 정당성을 높이기 위해서 발전주의에 깊이 헌신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차원과 한반도 차원 모두에서 남한의 발전주의는 체제경쟁의 형태로 수행된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남한의 경제성장과 발전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발전주의가 높은 성과를 내면 그 체제 안의 개인들은 현재를 과거보다 나은 것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의 계속되는 축적은 미래의 개선에 대한 기대를 형성한다. 박정희체제의 경제발전 성과는 매우 높았기 때문에 발전주의에 기초한 기대도 안정화되었다. 이렇게 한편으로 기대가 뚜렷한 경험적 근거를 가지고 다른 한편으로 경험이 기대에 비추어 해석됨에 따라 발전주의는 체계통합을 넘어서 사회통합 수준으로 침투하게 된다.10) 이런 사회통합은 두가지 특징을 띤다. 한편으로 그것은 애초에 발전주의가 목표로 한, 현재의 배제 또는 불평등을 머지않아 이룩될 포함으로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은 개인의 경험과 기대를 결속하는 통합, 즉 시간적인 동시에 개인화된 통합이기 때문에 발전주의의 진행과 더불어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하거나 그것이 중심의제로 부상하는 것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 그로 인해 낙수효과 같은 이데올로기적 개념이 쉽게 사회적 신빙성을 얻게 된다.

 

2) 발전주의의 실추와 복지 프로젝트

체제 운영의 성공에 의해서만 사회통합이 성취되는 사회는 전자가 충족될 경우 강한 통합력을 갖지만, 역으로 체제 운영의 실패는 고사하고 성과 하락만으로도 곧장 사회문화적 위기로 치닫는 취약성을 보인다. 그럴 경우 경험과 기대의 결속이 풀려버리고 그 벌어진 공간으로 불안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성공할 경우에조차 바로 그 때문에 성장률 하락을 겪을 수밖에 없는 발전주의도 그럴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내장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성장률만이 개인과 가족에게 과거보다 나은 현재를 보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60년대 중반 이래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우리 사회도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성장률이 둔화되기 시작했으며, 그로 인해 발전주의에 대한 회의가 커지게 되었다.

그런 회의를 부추기는 것은 발전의 성과로 환영받던 근대화의 파괴적 결과가 가시화되기 때문이다. 환경, 주택, 교육, 의료, 노년 등 고도성장에 의해서만 문제가 해결되던 사회적 재생산 영역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방법을 잃고 허우적거리기 시작한다. 그런 파괴적 결과의 축적으로 출산율 세계 최저, 자살률 세계 최고 등의 지표에 직면하게 되는데, 적어도 부정적인 결과의 면에서 우리 사회는 더이상 추격할 대상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소득 2만달러, OECD 가입, 선진화 등 추격발전의 새로운 상징들이 제시되어도 예전 같은 사회적 열정을 끌어낼 수 없었다.

발전주의가 애초에 결합하고 있던 집합적 프로젝트와 개인적 프로젝트도 분열된다. 외환위기는 이 점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사회의 기간부문에서 유지되던 ‘평생직장’의 붕괴는 발전의 성과를 개인사로 실어 나르는 핵심 전도 벨트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인/가족과 사회를 묶어주던 가느다란 끈이 끊어지게 되고 전체 사회가 저성장 사회로 진입함에 따라 발전주의에 의해서 은폐되거나 전치되었던 갈등이 표면화된다. 낙수효과의 허구성이 폭로되는 동시에 가계들 사이의 분배갈등도 격심해진다. 모든 가계가 지위 상승의 전망보다 지위 하락의 전망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각도를 달리하며 의제화된 여러 문제들, 예컨대 극심한 교육경쟁, 상속에의 열정, 경제적 양극화와 갑/을 관계, 청년실업과 연애출산결혼을 포기했다는 ‘삼포 세대’의 출현 등은 격심해진 분배투쟁에 연원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11)

그렇다고 해서 발전주의의 신빙성 상실과 그것에 근거한 신뢰의 철회가 즉각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발전주의가 성공적이던 시절의 좋았던 추억은 끊임없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이와 함께 발전주의의 환상을 유지하는 두가지 보완적 방법들이 작동된다. 하나는 미래를 착취하는 것이다. 과거보다 낫기 힘들어진 현재를 그렇지 않게 느끼기 위해서, 즉 (경제적으로 간결하게 표현하면) 소득과 지출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 신용카드 사용과 대출을 늘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적 기획이었던 발전주의를 개인의 수준에서 더 체계적으로 적용하고 관철하는 것이다. 나에게 투자하고 나를 관리하고 나를 혁신하는 것인데, 2000년대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자기계발서 열풍은 바로 이런 경향을 대변한다.

발전주의에 대한 향수나 발전주의를 보완하는 기법에 힘입어 등장한 것이 이명박정부였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기간에 발전주의는 사회적 신빙성을 거의 모두 상실하게 된다. 발전주의에 깊이 연계되었던 토건(土建)은 과거의 기능적 맥락을 완전히 상실하고 4대강사업에서 보듯이 엄청난 예산의 매몰 그리고 거대한 자연파괴로 나타났다. 미래 착취의 경우 우리 사회를 광범위한 대출사회로 진입시켰을 뿐이며12) 각기 1000조원 수준으로 상승한 가계대출과 정부 및 공기업 채무에서 보듯이 빠르게 지속 불가능성에 직면했다. 발전주의의 개인화도 마찬가지다. 자기계발 같은 금욕적 실천이 사회적 보상과 연결될 개연성은 매우 낮고 그저 강도 높은 자기착취에 머무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것, 자기계발의 보상을 가장 확실하게 받은 이는 자기계발서를 팔아 부자가 된 저자뿐이라는 사실이 널리 인지되기 시작했다.13) 더불어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의 헤게모니 위기를 더욱 분명하게 부각시킨 동시에 발전주의(그리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구문화적 합의를 붕괴로 이끌었다.14)

이런 과정에 대한 반응이 이명박정부하에서 빠른 속도로 부상한 복지담론이다. 복지도 근본이념은 발전주의와 마찬가지로 모두의 포함이다. 하지만 복지는 발전과 두가지 면에서 다르다. 우선 복지는 그 과제를 발전처럼 시간 속에 투영하기보다는 수평적인 사회적 연대로 이전한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과 달리 개인화된 프로젝트가 될 수 없다. 다음으로 발전이 체계통합의 성과를 사회통합으로 확산하는 경향이 있다면, 복지는 사회통합의 성과를 체계의 재설계로 구성해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복지 프로젝트로의 전환에 요구되는 도덕적 통찰과 사회적 연대감 축적은 우리 사회에서 아주 미약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높은 수준의 역동성과 속도를 가지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복지담론 또한 매우 빠르고 폭넓게 확산되었다. 이 점은 노무현정부 시기만 해도 진보정당의 테두리 안에 갇혀 있던 복지담론이 민주당을 넘어서 새누리당으로까지 파고들어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모든 정당에 전면적으로 수용된 점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 의미에서 2012년은 발전주의가 붕괴하는 동시에 대안적 담론이 확장되는 국면이었으며, 그런 만큼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해볼 만한 상황이었던 셈이다.15)

하지만 야권은 그런 가능성을 실현할 기본적 토대인 정치적 다수 형성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정당 운영능력과 리더십을 비롯한 여러 면에서 야권은 열세를 보였다. 특히 대통령 선거는 리더십 문제를 전면화했는데, 모두가 기억하다시피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은 물론이고 문재인(文在寅)-안철수 후보단일화 과정 그리고 공식 선거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중의 눈높이와 기대에 부합하지 못했다.

이런 과정 전반에 스며 있는 더 기본적인 문제는 분단체제의 제약을 정확히 가늠하며 87년체제에서 열리는 가능성을 실현하여 분단체제의 내파로 이끌어가는 지적 일관성과 조직적 응집력의 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보수파가 동원하는 적대의 정치를 꿰뚫어보는 안목이나 중단기적 정책과 장기적 비전을 결합함으로써 대중의 신뢰를 얻는 능력은 분단체제의 동요가 부과하는 인지적 복잡성을 감당할 만한 통합적 사유와 노선을 필요로 한다. 이런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민주파 내에서 논의와 논쟁을 더욱 활성화할 필요가 있거니와, 그것을 위한 실마리 마련을 위해 마지막 절에서는 백낙청 교수가 제기한 변혁적 중도주의를 다시 검토해보고자 한다.

 

 

4. 변혁적 중도주의

 

보수파는 민주화 이행 이후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적 압력에 발전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으로 대응했듯이, 지금 87년체제로부터 생성되는 사회적 위기에 대해서는 발전주의, 신자유주의 그리고 잔여적 복지, 즉 보편적 권리로서의 복지가 아니라 취약계층에 대한 구호적(救護的) 복지의 결합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목표는 민주화와 복지 프로젝트를 분단체제와 양립 가능한 범위 안에 묶어두는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민생’이라는 말의 내포이다. 하지만 민주 없는 민생 또는 잔여적 복지로 채워진 민생을 통해 체제를 제어해가기 위해서는 이명박정부가 닦아놓은 방송장악 같은 반민주적인 관행을 버릴 수 없다. 아니 방송장악 없는 보수파의 통치를 상상하기 이미 어려운 상황이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마저 정치공작의 대상으로 삼은바, 남북관계에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 싸이트를 돌아다니며 ‘대북심리전’을 수행하고 반북/친북 도식을 부단히 가동하는 일에서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보수파는 모든 정책 레퍼토리와 통치수단을 동원해 분단체제 재안정화를 시도할 것이나, 그것을 성취할 수는 없다. 오히려 보수파가 가동하는 그 모든 수단들은 흔들리는 분단체제의 산물이며, 분단체제를 더욱 깊이 동요시키는 작용을 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자체로부터 그것을 타개할 힘들이 저절로 응집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적 위기가 더 심해지고 일상적 삶이 더욱 짙은 불안으로 물들어감에 따라서 사람들은 움츠러들고 혁신과 모험을 기피하고 작은 안전을 위해 기꺼이 굴종을 댓가로 지불하려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퇴영을 막기 위해서는 민주파의 혁신이 매우 중요하다. 백낙청 교수는 이미 지난해 411총선에서의 야권 패배와 통합진보당의 분열이 발생한 직후 민주파의 혁신을 위해 변혁적 중도주의론을 재차 제기한 바 있다. 거기서 백교수는 우리 사회의 여러 정치 및 사회운동 노선들과 변혁적 중도주의의 차이 그리고 그것들이 안고 있는 약점에 대해 논했다.

 

1) ‘변혁적’ 중도주의기에 ‘변혁’이 빠진 개혁노선 내지 중도노선과 다르다. 다만 이때의 변혁대상은 분단체제이므로 국내정치에서의 개혁노선과 얼마든지 양립 가능하다. 그러나 분단체제의 근본적 변화에 무관심한 개혁주의로는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중도’에 이르지 못한다.

2) 변혁이되 전쟁에 의존하는 변혁은 배제된다. ‘변혁’이라는 낱말 자체는 전쟁, 혁명 등 온갖 방식에 의한 근본적 변화를 포괄하지만, 오늘날 한반도의 현실에서 그런 극단적 방법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변혁적 ‘중도주의’인 것이다.

3) 변혁을 목표로 하되 북한만의 변혁을 요구하는 것도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니다. 남한도 변하고 한반도 전체가 같이 변하지 않으면서 북측만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일뿐더러, 남한사회 소수층의 기득권수호에 치우친 노선이지 중도주의도 아닌 것이다.

4) 북은 어차피 기대할 게 없으니 남한만의 독자적 혁명이나 변혁에 치중하자는 노선도 변혁적 중도주의가 아니다. 이는 분단체제의 존재를 무시한 비현실적 급진노선이며, 때로는 수구보수세력의 반북주의에 실질적으로 동조하는 결과가 되기도 한다.

5) 그렇다고 변혁을 ‘민족해방’으로 단순화하는 노선 또한 변혁적 중도주의의 분단체제 극복론과는 다르다. 이 또한 분단체제와 세계의 실상을 무시한 비현실적 급진노선으로서, 수구세력의 입지를 강화해주기 일쑤다.

6) 세계평화, 생태친화적 사회로의 전환 등 전지구적 의제를 추구하며 일상적인 실행 또한 게을리하지 않더라도, 전지구적 기획과 국지적 실천을 매개하는 분단체제 극복운동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었다면 변혁적 중도주의와는 거리가 있다.16)

 

이런 여섯가지 노선 가운데 2)와 3)의 입장은 민주파의 자기혁신과는 별 관련이 없다. 관심을 가질 부분은 1), 4), 5), 6)인데, 각각 온건개혁주의, 평등파, 자주파, 생태주의와 대략 일치하는 노선들이다. 이들에 대한 백낙청 교수의 비판을 지금까지 논의를 따라 다시 정리하면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들 모두 흔들리는 분단체제가 부과하는 인지적 복잡성을 감당하지 못한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흔들리는 분단체제 상황에서는 자신의 노선에 매몰되어서는 스스로 설정한 목표 성취 자체가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이 때문에 그들의 구체적 선택과 행동이 어떤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에 대한 분별력 또한 약하다.

이런 문제를 세세히 사례를 들어 적시하기보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민주파의 혁신은 이런 약점들을 극복하며 서로 융합해가는 것에 있다는 점이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어떤 용도를 갖는다면, 우선 위의 네 노선 그리고 그것과 연계된 사회운동 및 정치집단 들이 각자의 맹점을 정정하고 서로의 과제를 연계하며 협동할 수 있는 인지적 틀 형성에 기여하는 데 있을 것이다. 변혁적 중도주의가 그렇게 작동한다면, 예컨대 개혁주의는 분단체제라는 조건 속에서는 민주적 법치의 제도화조차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 따라서 개혁과 변혁이 연계되어야 한다는 인식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평등파라면 현재 우리의 고통으로부터 직접 분단모순을 사유할 수 있는 길을 분단체제론을 통해 열어감으로써, 매일매일 닥쳐오는 북한문제들에 대해 소박한 보편주의의 깃발을 흔드는 무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자주파는 분단체제 극복의 근본 동력이 이제는 더이상 상처받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남한사회 내부 민주화의 진전이라는 인식을 더욱 예민하게 가다듬을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생태주의는 생활양식의 문화적 레퍼토리로 그치지 않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범속한 대중의 욕구와 연결되는 동시에 더 변혁적인 비전과 연결될 필요를 깨닫게 될 것이다.

끝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매개로 한 민주파 내의 여러 집단의 자기성찰의 제고에는 이 글에서 조명한 발전주의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도 깊이 고려되어야 할 사안임을 지적하고 싶다. 분단체제 극복을 향도할 가장 중요한 동력이 남한 민중과 민주파에게 주어져 있는 한, 저성장이 사회적 불안과 경쟁 강화의 부싯돌이 되지 않게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계할 점이 있다. 발전주의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저성장에 대항하는 일차적 기획은 복지담론으로부터 주어졌지만 많은 이들이 쉽게 기대하듯 북유럽 복지국가를 향한 추격발전의 궤도를 따라서 그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우리는 이미 무엇인가를 추격발전할 단계를 한참 지난 사회이며, 추격발전이라는 발상 자체를 떠받치던 미국 주도의 세계체제 자체가 심대하게 변형되었다.

복지담론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것은, 배제 없는 포함의 근대적 기획을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실현하는 것이 복지이며 그것의 실현이 높은 수준의 도덕적 연대감을 필요로 한다는 기본적 통찰뿐이다. 그리고 이 통찰에 기초한 복지를 실현하는 것은 창의적 실험이지 모델 복사가 아니다. 그 창의적 실험이 반드시 뚫고 나가야 할 과제는 사회 전반에 하비투스(habitus)처럼 침전된 성장 중독을 넘어서는 것이다. 즉 저성장이라는 현실을 탈성장주의 또는 탈발전주의적 태도로 담대하게 수용하고 전환하는 생태주의적 감수성이 필요한 것이다. 역으로 생태주의는 바로 이렇게 발전주의에 대항하는 복지 프로젝트 자체를 혁신하는 매개항이 될 때 사회적 신빙성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1) 보수와 진보 혹은 우파와 좌파 같은 용어들은 정치적 구별의 용어이다. 이런 구별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맥락을 수용하기 위해 필자는 보수와 진보 대신 보수와 민주라는 구별을 사용했다. 이런 구별은 ‘민주정부 10년’ 같은 표현에 잠재된 것이기도 하다. 물론 민주파보다는 진보개혁파 또는 진보개혁진영 같은 표현이 더 널리 사용되며, 그런 표현도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필자는 민주파라는 용어가 간결함 이상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구별의 두 항은 각각 상대가 아닌 것을 통해서 의미를 획득한다. 보수/진보의 구별도식에서 진보는 보수가 아닌 것이고, 보수는 진보가 아닌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보수/민주에서 보수는 민주가 아니고, 민주는 보수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별하면 분단체제 아래서 보수가 민주적 법치를 온전하게 수용하지 않는 집단임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런 보수를 수구라고 명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수구라는 말이 보수 내의 일부 집단(우리 사회 보수 내에서 헤게모니를 가진 집단이지만)을 넘어서서 그 집단 전반을 지칭하기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된다.

2) 1961년에서 1987년 민주화 이행 이전까지를 ‘긴 박정희체제’라고 부르는 것은 불편하다. ‘군사독재체제’나 ‘61년체제’라는 명칭을 쓰는 것이 더 나은 면이 있다. 하지만 군사독재체제는 문자적 의미로는 군부가 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을 장악한 후 군부라는 틀을 유지하며 독재를 한 남미 사례에 가장 잘 맞는다. 그래서 이 표현을 쓰려면 계속 따옴표를 써야 한다. 61년체제의 경우 지칭의 면에서는 깔끔하지만, 박정희의 부정적 유산과 대결이 필요한 우리 상황이 요청하는 역사의식을 형성하기 어렵다. 그래서 난점이 있지만, 박정희체제라는 표현을 택했다. 이하의 모든 박정희체제라는 표현은 ‘긴 박정희체제’를 지칭한다.

3) ‘흔들리는 분단체제’에 대해서는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창작과비평사 1998 참조. 그리고 분단체제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시대구분에 대해서는 백낙청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창비 2006, 46~48면 참조.

4) 최근 북미간 그리고 남북간 긴장고조 과정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서재정 「북의 3차 핵시험과 한반도 비핵화 평화체제의 전망」, 『창작과비평』 2013년 봄호, 386~411면 참조.

5) 필자는 2010년 발표한 「이명박 시대, 민주적 법치와 도덕성의 위기」(『창작과비평』 2010년 봄호, 15~35면)에서 이명박정부가 자신의 통치위기를 남북관계의 경색을 조장함으로써 돌파하려고 하지만 “2000년 615정상회담을 계기로 해체기에 들어선 분단체제를 재안정화하려는 시도가 성공할 수 없”으며 “이명박정부조차도 민주정부 시기에 부설된 철로를 장기간 이탈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보면 민주정부 10년의 성과는 쉽사리 이탈할 리 없는 철로 위에 우리 사회를 올려놓았다 말하기 어려워 보인다. 민주정부가 마련한 것은 철로라기보다는 도로였고, 우리 사회는 운전사가 바뀌면 그 도로에서 이탈해 다른 길을 갈 수 있는 자동차 같다고 할 수 있다.

6)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근현대사는 정치적 타자를 식별하는 동시에 경멸하기 위해서 ‘친일’ ‘친미’ ‘친북’(일부 집단에게는 ‘친노’라는 말도 여기 포함된다) 같은 단어를 써왔다. ‘종북’과 달리 이런 단어들은 모두 사회적 연결망을 참조함으로써 타자를 비판한다. 예컨대 ‘친미’의 문자적 의미는 미국인과의 인간적 관계, 미국에 대한 개인적 경험 그리고 그것에 발원하는 정서적 태도 등 가리킨다. 비판은 그런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조직된 개인적 이익들이 민족적 이익을 거스르며 작동한다는 함축적 의미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렇게 직접 대상을 비판하지 않고 함축된 의미를 경유하는 비판은 상당히 절제된 것이다.

7) 2012년 통합진보당의 분열에는 2008년 민주노동당 분열, 그것도 잘못된 방식으로 진행된 분열의 유산이 자리잡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당내 갈등에서 평등파는 자주파의 ‘종북주의’를 비판의 초점으로 삼았는데, 그로 인해 자주파의 패권주의 문제가 논쟁 중심에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 통합진보당의 분열은 이때 논쟁대상이 되지 못한 패권주의 문제의 사후 폭발적 성격이 있다. 민주노동당 분열에 대한 상세한 연구로는 정영태 『파벌: 민주노동당 정파갈등의 기원과 종말』, 이매진 2011을 참조하라.

8) 분단체제하에서는 보수파가 민주파의 정책들을 민주파보다 더 과감하게 채택하는 오프싸이드 플레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졸고 「보수파의 오프싸이드 전략과 분단체제」 (창비주간논평 2011.5.25) 참조.

9) 좀더 상세한 것은 이매뉴얼 월러스틴 『자유주의 이후』, 강문구 옮김, 당대 1996 참조.

10) 체계통합은 시장이나 국가처럼 행위자들의 개인적 선택이나 규범적 내면화에 의존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통합이며, 사회통합은 가치와 규범을 경유해서 이루어지는 통합이라는 뜻으로 사회학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인바 여기서도 그런 뜻으로 썼다.

11) 우리 시대의 특징은 장래희망이 특정한 직업이 아니라 ‘정규직’ 혹은 ‘갑’이 되어버린 대학생들에게서 엿볼 수 있다. 한 광고홍보학과 학생은 무엇이 하고 싶으냐는 필자의 질문에 광고를 하고 싶은데, 광고회사에 가고 싶지는 않고, 대기업 광고담당 부서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갑인 정규직이 되고 싶은 것이다.

12) 대출 사회의 발달과 그것이 일으킨 문제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제윤경이헌옥 『약탈적 금융사회』, 부키 2012를 참조하라.

13) 이런 자기계발의 구조적 한계에 대한 분석으로는 서동진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 돌베개 2009를 참조하라. 그리고 몇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한 ‘힐링’ 열풍은 자기계발의 자기파괴적 경험과도 관련된다.

14) 이매뉴얼 월러스틴 『미국 패권의 몰락』, 정범진한기욱 옮김, 창비 2004 참조. 금융위기의 효과에 대해서는 로빈 블랙번 「세계 경제위기의 신호탄, 서브프라임 위기」, 『뉴레프트리뷰』, 서용순 외 옮김, 길 2009, 68~128면 참조.

15) 이런 상황에 부응하려는 담론적 기획의 대표적인 예로는 백낙청 『2013년체제 만들기』, 창비 2012를 참조하라.

16) 백낙청 「2013년체제와 변혁적 중도주의」, 『창작과비평』 2012년 가을호, 22~23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