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글로벌 위기와 중국의 대응전략

하나의 추세, 두가지 보수, 세가지 전략

 

 

원 톄쥔 溫鐵軍

중국 인민대학 지속가능발전고등연구원 교수, 시난(西南)대학 향촌건설학원집행원장. freecity7@hanmail.net

 

 

* 이 글은 2016년 번역 출간된 『여덟 번의 위기』(돌베개)의 중국어판 원서 『八次危機』에 부록으로 실린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필자 원 톄쥔의 요청에 따라 한국어판 단행본에는 싣지 않았지만, 필자와 한국어판 저작권을 가진 돌베개의 동의를 얻어 번역 수록한다. 내용은 원 톄쥔이 월스트리트 금융위기가 한창 벌어지던 2008년에 뉴욕에서 현장 상황을 직접 목격하고 중국으로 돌아와 2010~11년에 주요 전문가들을 모아서 조직한 비공개토론회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 다양한 시각을 가진 여러 사람의 발언을 모아서 정리하다보니 다소 두서없는 부분도 있고,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대일로(一帶一路) 추진,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설립, 위안화 국제화 시도, 중미관계를 포함한 대외전략 변화 등 근래 주목되는 중국의 행위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내적 논의를 거쳐 나온 것인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현재 중국을 이끌어가는 이들의 고민과 딜레마가 어떤 것인지 이해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본문 뒤에 덧붙여진 보론은 이 글이 나오게 된 배경과 의미에 대한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 톄쥔이 추가한 내용이다.

 

 

 

2001년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10년 동안의 국제교류 과정에서 자본 글로벌화에 대해 더욱 깊이있게 인식하게 된 우리는, 21세기 두번째 10년에 중국이 해결 불가능한 세가지 난제에 직면했다고 보았다. 따라서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이에 관해 집중적으로 토론했고, 그 내용을 ‘하나의 추세, 두가지 보수, 세가지 전략’으로 요약했다. 하나의 추세란 글로벌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파시즘화’이고, 두가지 보수란 표면적으로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급진자유주의와 독점적 경제가 사실상 시대를 ‘역주행’하여 이미 경험적으로 실패가 입증된 서구의 19세기 정치와 동아시아적 재벌경제로 회귀하는 것을 가리키며, 세가지 전략은 다음에 제시된 해결 불가능한 세가지 난제에 직면한 중국이 그나마 선택할 수 있는 출로를 가리킨다.

 

 

1. 글로벌화와 파시즘화의 내적 원인은 ‘해결 불가능한 세가지 난제’

 

일찍이 2001년에 우리는 어떤 비공개 토론회에서, 자본 글로벌화가 세계의 파시즘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했다.1

그로부터 10년 후 우리의 인식은 더 발전하여, 자본주의 금융위기 심화 단계의 세계 파시즘이 본래 독일 ‘나치즘’에서 시작된, 서구 식민화 초기 ‘중상주의’ 국가의 범죄적 전통을 계승한 파시즘과 다르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이는 강력한 패권을 이용하여 신용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특권을 얻게 된 패권국가가 세계를 상대로 저지르는, ‘신제국론’의 내용과 부합하는 그런 파시즘이다. 이들은 미·소 양대 초강대국의 지정학적 지배가 와해된 이후 단극 세계패권이 자본 글로벌화를 밀어붙이는 상황에서, 인류에게 패권국가의 금융심화 때문에 발생한 거대한 제도의 비용을 떠넘기고 있다.2

심각한 점은, 신파시즘적 국가범죄라는 본질을 가리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신자유주의적 제도와 시스템에도 전통적 파시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기조정을 할 수 있는 자각적인 제약 메커니즘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제적 범위의 조사연구와 토론을 거치면서 우리는 다음의 세가지 난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첫째, 2008년 금융 쓰나미 이후 경제위기에 대한 미국의 시장구제 과정은, 단극 중심 정치·경제체제하에서는 임시방편적 조치만 가능할 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없음을 잘 보여준다. 신파시즘적 국가들은 화폐발행과 채무를 끊임없이 늘림으로써, 패권을 이용하여 신용을 무한히 확대하는 ‘경로의존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이 제조업 위주의 경제구조로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금융심화를 통한 가상자본의 버블화와 글로벌화라는 이익추구 방식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전세계에 위기의 댓가를 전가해온 추세를 바꿀 리도 없다. 이런 추세는 줄어들기는커녕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신용을 무한 확대하면서 전세계에 금융위기의 댓가를 떠넘기는 이런 추세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나 제도나 메커니즘은 정말 없는가? 없다.

둘째, 현재 전략적으로 가까워지는 중·미관계의 본질은, 군사적 패권을 이용하여 버블화된 화폐 시스템을 유지하고 글로벌 자원 시스템을 통제하는 미국에 중국이 ‘재종속’되는 것이고, 이런 종속관계가 갈수록 깊어지는 것이다.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전세계에 빈부의 ‘2대8 법칙(파레토 법칙)’을 받아들이게 만든 상황에서, 이른바 선진국 클럽이 이를 ‘4대6’ 수준으로 재조정하는 것이다. 중국 인구가 전세계의 20%를 차지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서구적 모델의 현대화가 실현된다면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계에 강요한 ‘2대8’(20%에 불과한 백인 중심의 선진국이 글로벌 자원을 독점)은 이른바 베이징 컨센서스가 이끄는 ‘4대6’으로 바뀌게 된다.

서방세계의 주류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터무니없는 면모는 그 내재적 모순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한편으로 중국에 서구 자본주의 제도로 편입되어 들어오라고 요구한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원이 유한하다는 핑계로 중국이 서구 모델에 따라 현대화를 추진하는 것을 거부하고, 중국이 세계 정치·경제질서에 도전하여 세계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비판한다.

중국에서 일찍이 1957~72년에 진행된 ‘탈종속’의 경험과 비교하면, 세계질서로 ‘편입’되려는 지금의 노력은 사실상 ‘재종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향후 10년 동안 중국은 이런 ‘재종속’ 상황을 바꿀 가능성이 있는가? 역시 없다.

셋째, 과거 제국주의국가 내부의 부르주아계급과 프롤레타리아계급 사이의 대립적 모순과 사회적 충돌은 서방의 산업이 외부로 대거 이전됨에 따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대립적 모순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노동자의 입장이 된 개발도상국의 발언권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두가지 자체 원인 때문이다.

하나는 노동자집단의 전반적인 발언권 상실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이끌고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세계 최대의 제조업 국가고, 중국의 노동자집단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방대한 집단이다. 소련 모델의 세계 공산주의 시스템이 와해됨과 동시에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 개혁을 시작했다. 이 개혁이 완수된 후 중국의 노동자계급이나 노동자집단에게, 동원능력이 있는 자신의 담론이나 활동공간이 남아 있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서방 주류담론을 통해 배양된 지식인들이 의식하지 못한 채로 서방 이데올로기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일찍이 서구에서 시작된 노동자계급운동은 ‘노동자가 세상을 창조했으므로 노동자는 신성하다’는 이념을 파생시켰다. 노동자계급은 권익을 쟁취하기 위해 자유와 민주를 표방하는 사회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하여, 착취자인 자본보다 정치적·도덕적으로 더 우위를 차지했고, 각 계층 모두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보편적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서방이 산업을 외부로 이전하자, 도덕적 우위를 갖는 이 깃발은 서방에서 새로이 사회주체가 된 중산층에게 넘어갔고, 심지어 독점금융자본의 이익을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악용되었다. 그렇다면 중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의 노동자계급에게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그들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전통적인 이데올로기와 담론이 신자유주의가 사용하는 무기와 같아져버리지 않았는가? 현재 개발도상국의 억압당하는 민중운동이 외치는 구호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담론과 매우 유사하다. 인권이니 자유니 민주니 정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서방이 산업 이전으로 수익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세계에 널리 퍼진 담론인데, 이는 더이상 개발도상국 노동자의 이익을 지켜주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도상국과 그 노동자집단에 새로운 담론을 형성할 가능성이 남아 있는가? 맑스(K. Marx)가 살았던 시대에는 들불처럼 일어난 노동자집단의 투쟁이 자본의 확장을 억제했고, 노동자집단의 대규모 투쟁이 사회 진보를 이끄는 주요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노동자집단의 투쟁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이 소실되었다. 그런데도 노동자집단의 투쟁을 통해 자본을 억제할 수 있는 역량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가? 역시 불가능하다.

앞의 세가지 난제가 모두 해결될 수 없다면, 서방이 주도하는 금융자본 글로벌화는 아무런 제약도 없이 질주할 것이다. 이런 글로벌화에 내재하는 위기는 ‘단극패권세계’가 파시즘화로 치닫게 할 것이고, 결과적으로 세계의 자기파괴가 초래될 것이다.

이런 암울한 답안이 바뀔 가능성은 정말 없는가?

 

 

2. 세계질서의 변화 추세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현재의 세계질서가 상당 기간 변하지 않을 것이고 통제 불가능한 위험이 증가할 것이라고 보았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⑴ 계속 심화되는 글로벌 자본주의 위기

 

자본주의 문명사의 산업자본 단계에 서구의 노동자집단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벌인 투쟁은 산업자본의 비용 내부전가를 억제하는 힘이 되었다. 국내의 저항이 커져서 제도의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자 이를 해소할 수 없었던 산업자본은 1970년대부터 대규모로 서구를 벗어나게 된다. 금융자본 단계에 들어선 이후 노동자집단의 투쟁은 더이상 내부적 제약 요인이 되지 못했다. 금융자본의 심화와 확장은 자국 사회와 대중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해외사업의 수익을 대거 흡수하여 자국 대중이 글로벌 자본화의 이윤을 공유하게 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두번째 10년에 들어서자 전세계는 정부 채무에 대해, 특히 선진국의 부채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2008년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발생했을 때 전세계 정부 부채의 총규모는 36조 달러였는데, 2010년에는 40조 달러로 10% 이상 늘어났으며, 2011년에는 약 50조 달러에 이르러 25% 이상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금융위기가 폭발한 2008년에 선진국의 채무는 세계 각국 정부 채무 총합의 70% 이상이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선진국의 부채 증가는, 산업 해외이전으로 경제구조에서 지출의 경성 제약3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다. 선진국의 부채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는, 선진국이 위기의 댓가를 전세계에 떠넘기는 행위가 아무 제약도 받지 않은 채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외부에 댓가를 아무리 떠넘겨도 선진국 자신의 위기는 여전히 심화되고 있다.

우리는 선진국의 위기가 금융위기에서, 고비용의 정치체제와 내부적으로 관련된 재정위기로 바뀌고 있다고 본다. 2009년 유럽연합의 재정적자가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6%를 넘었다. 규정된 한도인 3%의 두배인데, 조만간 세배에 이를 것으로 예측된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모두 재정을 동원하여 금융위기를 벗어나려고 하는데, 정부 신용을 무한 확대하는 이런 조치는 다음번 재정위기를 불러올 잠재적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4

이는 또한 갈수록 더 전세계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개발도상국 가운데 오직 중국만 재정적자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 이하다. 나머지 국가의 중앙정부는 모두 3%라는 경계선을 넘어섰다. 러시아나 베트남 같은 고도성장국가도 그렇다. 따라서 다음번 채무위기는 개발도상국이 재정으로 과도하게 채무를 부담하려다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사회주의적 요소를 유지한 채 친(親)민생적 제도를 운용하는 곳에 심각한 타격을 안길 것이다.

향후 전세계로 파급될 이런 재정위기는 정치위기고 구조적 성격의 위기다. 서방국가의 고령화와 강화된 복지제도는 위기의 영향을 심화시킬 것이다. 게다가 선진국의 경제적 토대는 이미 본질적으로 ‘탈공업화’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사회적 비용으로 인해 공업사회로 회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⑵ 미국의 내부 위기 심화에 따른 군사행동 가능성

 

미국이 세계경제를 이끄는 힘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이에 대한 미국 국내의 위기감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는 여론조사에 잘 나타난다. 그런데 이는 중국이 21세기 두번째 10년에 군사적 충돌에 직면하게 될 위험이 크게 증가함을 의미한다. 미국은 경제력 이외에도 인류 역사상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고, 전세계 80여개 지역에 군사기지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군사적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2010년 4사분기 GDP 성장률은 3.6%고 그해 전체는 3%에 근접했다. 그러나 설비가동률은 전혀 오르지 않고 평균 72% 선에 그쳤다. 이는 예전에 없던 일이다. 미국의 경제회복이 취업을 확대하지 못하는, ‘제조업 성장’이 없고 ‘취업 확대’가 없는 회복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을 통해 미국경제의 핵심 문제를 이해할 수 있고, ‘금융위기→재정위기→산업위기→사회위기’로 이어지는 미국의 기본적 추세를 예측할 수 있다.

금융위기 폭발 이후 미국은 갈수록 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정치·경제질서를 수호해온 비교적 이성적인 면모는 인플레이션을 외부로 대거 떠넘기는 등 부정적인 쪽으로 변했다. 국제사회는 미국의 금융정책에서 예측 불가능한 행위가 확대되는 것을 우려한다.

역사상 로마제국 이래 미국처럼 전세계를 장악하는 강력한 군사력을 확보한 나라는 없다. 이처럼 막강한 군사 시스템이 역량을 패권 유지에 사용하면 얼마나 파괴적이 되고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강대국 흥망성쇠의 역사를 보면, 장기간 쇠퇴하는 과정에 있는 강대국은 전략적 모험을 선택하려 한다. 미국도 모험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5

그런데 반대로 미국이 통제와 위협 능력을 상실하여 세계 각 지역의 대국들이 저마다 확장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그것은 더욱 심각한 재난이 될 것이다.

 

 

3. 새로운 세기 두번째 10년에 중국이 직면한 위험과 제약

 

⑴ 1970년대 이래 중·미의 전략적 협력 강화와 중국의 수익 및 비용

 

1950년대에 소련의 원조를 받아 국가공업화의 토대를 구축할 때, 중국은 투자국인 소련에 객관적으로 ‘종속’되었다. 그러다가 1958년 이후 소련이 전략적 원조를 중단하자 중국은 국내 자원을 동원하여 ‘탈종속’을 실현했고, 자주적이지만 매우 고통스럽게 공업화를 위한 원시적 축적을 완수했다.

1970년대 초 중국이 미국, 일본, 유럽 등 서방을 향해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마침 서방에는 달러와 금의 태환을 중단하고 산업을 해외로 이전하는 등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중국은 서방의 산업 이전을 받아들이고, 미국 주도의 금융자본 심화 추세에 편승하여, 90년대부터 국내의 자본화와 화폐화 속도를 올렸다. 중국의 막대한 무역흑자로 자본이 대거 흘러들어오고, 미국이 확대 발행한 화폐까지 중국의 자본수지 흑자에 따라 유입되자, 이는 중국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자본 역량이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세가지 측면으로 미국에 ‘재종속’되었다.

첫째, 금융 심화의 필연적 결과다. 세계 어느 나라도 더이상 귀금속을 화폐 발행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 화폐는 정치권력을 토대로 해서만 발행되고, 정치권력이 화폐에 국가 신용을 부여해야 비로소 화폐의 신용이 생긴다. 달러가 전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화폐이자 전세계 외환보유고의 2/3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미국의 군사적 힘과 담론의 힘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의 정치적 패권이 달러 시스템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국내에서는 단일한 정치체제의 국가권력을 통해 화폐 시스템을 뒷받침하여 금융신용을 형성했고, 독점적 지위를 통해 안정적으로 이익을 확보해왔다. 그러나 대외적으로는 산업자본 확장 단계에 글로벌 체제로 편입되었으나, 자신에게 금융자본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정치적 패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게임의 규칙을 지배하는 국제 금융자본과 경쟁할 수 없어서, 미국의 글로벌 패권의 지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금융자본이 합법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지 없을지가 국제 금융자본 시스템을 사실상 만든 미국의 동의 여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국가주권이 여전히 산업자본의 집단적 이익을 위한 인질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산업자본의 조방형(extensive mode)6 확장은 전세계 자원과 에너지에 대한 거대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시장경제의 일반적 논리에 따르면, 이는 국제 지정학 전략의 형세에 중요한 변화를 초래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국제 정치·경제질서의 실상을 보면, 세계의 에너지와 원자재와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중국(중국 대부분 기업의 수입의존도는 이미 50%를 초과)은 여전히 중·미 간의 전략적 협력 강화와 쌍방이 인정하는 ‘동반자 관계’에 매달리고 있다. 산업자본의 필요라는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미국이 장악한 세계 자원과 운송로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셋째, 확대 발행된 달러가 대부분 중국으로 흘러들어오고, 중국도 자국 화폐를 확대 발행하여 이에 대응하기 때문이다. 경제의 금융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중국 중앙정부는 갈수록 더 화폐화에 의존하면서 그에 따른 수익을 많이 점유한다. 중·미 양국 금융자본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 시스템도 화폐화 진행 과정에서 모두 더 많은 이익을 얻는다. 즉 양자의 이익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내에서 화폐에 대한 권리를 독점한 중앙정부가 누리는 이익은 중·미 간의 전략적 협력 강화를 통해 확보되는 역사적 성격의 ‘제도의 수익’인 셈이다.

수익이 그에 따르는 비용과 분리될 수 없다면, 중국은 막대한 ‘제도의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이 경우 제도의 비용은 다음의 세가지 측면으로 발생한다.

첫째, 미국이 부담을 남에게 떠넘기기 위해 시행한 ‘양적완화’ 조치로 확대 발행된 화폐의 절반 이상이 국외로 흘러나갔는데, 그 대부분이 에너지와 곡물과 원자재 선물시장으로 흡수되었다. 미국이 그렇게 만들어낸 유동성 과잉은 각종 간접적 방식으로 중국에 유입되어, 중국에서 물가 폭등과 화폐 확대 발행을 초래했다. 그렇게 증폭된 중국의 ‘외래형 인플레이션’은 중국 내에서 ‘당랑거철(螳螂拒轍)’식의 일면적 긴축정책으로 도저히 해소할 수 없다.

둘째, 미국에서 국채 발행을 늘리면 주로 중국과 일본 같은 무역흑자국이 그것을 매입해야 한다. 일본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하여 미국에 점령당한 후 일찌감치 국가주권을 포기하고 미국을 추종하는 국가가 되었다. 반면 미국정부 채권의 최대 구매자가 된 중국은 주권을 온전히 지켜야 하기 때문에 미국의 말을 무조건 따를 수도 없는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7

셋째, 근래 중국은 국제 금융자본 경쟁에서 서 있을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 미국이 달러와 국채를 남발하는 상황에서, 투자국이자 채권국인데도 발언권을 전혀 갖지 못했다. 염가상품을 대량으로 수출하면 덤핑을 해서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비난받았다. 천신만고의 노력으로 무역 이익을 확보하여 미국 채권을 사들이면 미국경제를 망가뜨릴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비난받았고, 그 돈으로 개발도상국의 에너지와 자원에 투자하면 신식민주의라고 또 비난받았다.

문화적 소프트파워와 정치적 스마트파워를 형성하지 못한 중국은 하는 일마다 욕을 먹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 있다. 설령 미국의 말을 충실하게 따른다고 해도, 국제 정치·경제질서에서 담론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인정해줄 리 없다.

중국은 글로벌 체제에 편입된 이상, 미국 금융자본과 거기서 파생된 채무경제에 대해 ‘재종속’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산업자본 원시적 축적 초기 단계에 중국은 소련에 종속되어 있다가, 1960년대에 본의 아니게 ‘탈종속’의 형태로 공업화를 완수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금융자본 글로벌화 단계에 접어든 후, 1950년대 공업화를 위한 원시적 축적 시기에 소련과 맺었던 것 같은 종속관계를 미국과 맺게 되었다. 금융자본 초기 단계에 진입한 중국의 ‘재종속’인 것이다.

산업자본 원시적 축적 시기 중·소 간의 전략적 협력처럼, 금융자본 초기 단계에 접어든 중국은 미국과 경제적으로 ‘상호 보완과 협력’을 하고 있다. 따라서 중·미 간에는 상대적으로 협력적인 경제적 관계와 상대적으로 긴장된 정치적 관계가 뒤섞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서구 네오맑스주의의 ‘세계체제론’적 시각으로 보면, 미국은 중심국가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중국은 여전히 ‘준주변’국가로서 중심국가에 종속된 지위에 처해 있을 뿐이다.

 

⑵ 중국의 경제 고성장을 가로막는 요인

 

중국경제의 고성장을 적극적으로 기대하고, 중국의 고성장으로 중미관계가 바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수치만 놓고 보면 그런 판단이 틀렸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전문가는 향후 중국의 경제발전에서 다음과 같은 경성제약이 점점 더 문제가 되리라고 본다.

첫째, 국내 기본자원 제약이다. 특히 수자원 부족은 치명적인 제약 요인이다.

중국의 수자원은 세계 총량의 6.5%에 불과하다. 그러나 소비량은 15.6%다. 지하수를 과도하게 뽑아 써서 호수나 저수지가 줄어들고 지표면이 사막화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수자원은 불변의 환경이므로 이런 경성제약 요인을 수입으로 해결할 수 없고, 물을 끌어와서 해결하기도 어렵다. 그런 와중에 경제성장으로 물 사용이 급증하니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제11차 5개년계획’은 농업용수 사용량 동결을 전제로 발표되었다. 그러나 최종계획은 사용량을 늘리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지 않으면 곡물생산 목표 5.4억 톤을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세계 수자원 사용량의 15%를 사용하면서 세계 농산물 생산량의 25%를 생산해내고 있다. 채소 생산량을 더하면 비중은 30%까지 올라간다.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효율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둘째, 전략성 자원과 에너지 공급 제약이다. 여기서 수입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국가 경제안보가 타인의 손에 좌우될 위험이 있다.

중국은 막대한 수입과 수출 때문에 경제안보 대외의존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중국에 부족한 자원으로 만들어진 물품을 시장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이런 상황의 이면에는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향형의 길로 계속 나아가면 해외 에너지와 원자재에 의존하는 추세는 갈수록 심화될 것이고, 중국이 의존적 지위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어질 것이다.

산업자본 외향형 확장이라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발전 경험을 따르지 않고, 구조조정을 통해 내수를 확대하는 길로 갈 수도 있다. 즉 서부 대개발과 신농촌 건설 등 내수 위주로 갈 가능성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메리칸드림식 발전과 소비주의 모델을 흉내 내어 급진적인 도시화를 확대하는 길로 간다면, 자원과 에너지와 식량 등의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국내 자동차 판매량이 1800만대가 된 2010년에 중국의 원유 대외의존도는 전년 대비 3%포인트 증가하여 55%에까지 이르렀다.

국제경쟁이 여전히 민족국가라는 체제를 통해 전개되므로, 자원환경의 제약은 중국에 피할 수 없는 병목이 된다. 이런 제약 요인은 중국 내에서 계속 확대되고 있는 소비주의적 발전 추세와 첨예하게 충돌한다.

셋째, 중국 내 제도의 비용 누적이다. 개혁개방 후 30년 동안 중국에는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업자본이 형성되었는데, 동시에 유례없이 심각한 모순도 누적되었다. 소극적으로 ‘구조조정’을 한 데 따른 제도의 비용이 적극적인 구조개혁의 경우보다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누적된 모순이나 제도의 비용을 어떻게 통제할지가 대외개방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다.

 

⑶ 향후 중·미 간 전략적 협력 강화에 따라 예상되는 수익과 위험

 

중국은 향후 10년 동안 더욱 큰 규모의 해외수요를 얻을 수 있고, 이로 인해 국제 지정학 전략에 큰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도전에 대응하고 자원을 획득할지 아직 준비하지 못했다. 이에 관한 토론에서는 참석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어떤 학자는 장기적으로 중국이 의존할 수 있는 것은 중앙아시아와 중동의 석유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농업 및 광산 자원뿐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이 해외자원을 대량으로 획득하는 것을 유럽연합이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에 자원이 많지 않고 아프리카는 전통적으로 유럽의 세력범위였으니, 중국이 아프리카에 손을 뻗친다면 유럽의 이익과 충돌하여 아프리카에서 중·유 간의 자원쟁탈전이 격화될 수밖에 없다.

2011년 남수단 독립 국민투표의 배후에는 미국과 유럽 양대 제국주의 세력의 대립이 있지만, 중국도 관련이 있다. 중국국영석유가스공사(China National Petroleum Corporation)가 1995년에 수단 남부에서 석유자원을 개발한 이래, 수단은 중국의 여섯번째 석유 수입국이 되었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유럽의 전통적인 세력범위로서 여전히 식민주의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이고, 이 국민투표도 배후에서 유럽이 주도했다. 어떤 이는 다르푸르(Darfur) 내전도 유럽인들이 배후에서 획책했다고 본다. 그렇게 보는 학자들은 경제논리를 근거로, 중국과 유럽이 여기서 충돌하면 미국이 중국을 지지하리라고 추측한다. 현재 단계에서 중국의 실물경제 성장이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총체적으로 부합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국제무대에서 줄곧 안정을 중시해왔고, 중국의 해외 석유 확보에 반대하지 않았다. 중국의 석유 확보가 미국에 필요한 실물상품 공급사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즉 중국이 실물상품 생산을 위해 필요한 에너지와 원자재를 수입하려 하면, 미국은 그와 관련된 중국의 해외이익을 보호해주었다.

따라서 중·미 간 전략적 협력 강화의 배경이 되는 이런 ‘재종속’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면, 중국이 현재 산업자본 고성장을 통해 잠시 누리는 ‘호시절’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중·미 간의 이런 상호관계를 통해 중국과 미국이 교환하는 전략적 이익은 결국 다음과 같은 형태로 미국 금융자본의 패권을 유지하게 된다.

첫째, 동아시아의 순저축이 투자 등의 형태로 계속 미국에 유입된다. 2010년 미국은 400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그중 중국에 대한 적자가 2540억 달러였다. 2010년 11월에는 중국에 대한 무역적자가 전체 적자의 68%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과 멀어질 수 없다.

둘째, 중국은 달러 패권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점을 계속 약속해야 한다. 위안화가 블록화되거나 국제화되면 달러의 쇠락 속도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달러가 안정적으로 국제화폐로서 역할을 해야 중국도 세계 각지에서 필요한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달러의 안정은 중국에 실보다 득이 크다. 그러므로 어떤 전문가는 달러 패권 덕분에 중국과 같은 발전모델의 명맥이 유지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 금융자본 단계에 진입한 중국이 ‘재종속’으로 인해 미국에 양보하는 것은 객관적 현실이지만 중·미 간 전략적 협력 강화 이면에 잠재된 위험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있다. 과도하게 미국에 의존하면 경제안보 측면에서 지배당하는데, 현재 중국이 미국과 다른 발전 단계에 처해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상호 보완관계는 얼마든지 다른 나라로 대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누적된 제도의 비용이 표출되면 중국의 이른바 ‘비교우위’는 약화될 수밖에 없다. 중국 제조업의 글로벌 확장은 혁신능력과 자원의 우위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제도적 노력으로 낮은 수준의 산업 우위를 유지한 결과일 뿐이다. 그러나 중국은 그저 단기간의 제도의 수익만 생각할 뿐 계속 쌓이는 제도의 비용은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예컨대 현재 사회적 충돌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그동안 누적된 사회적 비용을 하층 취약집단이 더이상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존에 너무 낮게 책정된 생산요소가격이 정상화되면 잠재된 문제들이 표출되어, 그동안 중국이 생산요소 측면에서 누리던 비교우위는 사라질 것이다. 환경요인도 마찬가지다. 중국도 환경보호를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제조업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중국 제조업은 모두 여타 개발도상국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중·미 간 전략적 협력 관계는 의미가 크게 줄어든다. 미국은 언제든 전략적 조정을 시행하여 일반 제조업을 중국 대신, 미국에 도전하지 않을 개발도상국에 넘길 수 있다. 아시아에는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등 인구밀도가 높으면서 노동력 가격은 중국보다 저렴한 국가들이 즐비하다.

둘째, 미국은 중국과 유럽·일본 사이의 실물경제 및 제조업 분야 경쟁에서 후자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 국제관계 변화 때문에 일시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금융자본이 대립하기도 하지만, 중국과 유럽과 일본과 한국이 함께 경쟁하는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은 결국 유럽연합과 일본, 한국의 편에 서게 된다. 그들은 장기적인 전략적 동맹 관계고, 중국과 미국은 그저 ‘협력적 동반자 관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과 유럽연합이 계속 제조업을 한다고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큰 해가 되지는 않지만, 중국이 시장에서 일정한 몫을 형성하는 것은 미국에 큰 걱정이 된다. 이 점에 대한 중국 학자들의 연구가 부족하다.

국가의 전략적 이익은 경제적 이익보다 중요하다. 미국과 중국이 전략적 이익을 놓고 충돌하면, 미국이 자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안정에 대한 중국의 기여를 생각해서 기존의 중·미 간 전략적 협력관계를 계속 유지하겠는가? 미국은 총체적 국가이익이 경제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해왔고, 따라서 잠재된 위험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현재 중국에는 중·미 간 협력관계에서 벗어날 수동적 권한밖에 없는데, 그 권한을 행사하면 비싼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4. 중국의 전략적 대응책

 

⑴ 혁신 역량을 국가의 핵심 경쟁력으로 삼아야 한다

 

일부 학자들은 중국의 새로운 비교우위를 혁신 역량이라고 강조한다. 국제 통계에 따르면 2011년에 중국이 신청한 특허 건수가 미국을 넘어섰고, 자주적 혁신 역량을 나타내주는 기초특허 건수도 2012년에 미국을 넘어서게 될 것이라고 한다(물론 누적 건수는 아직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과학기술 혁신과 기술특허의 증가는 자원환경 측면에서 중국이 받고 있는 경성제약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것이다.

 

⑵ 두가지 보수주의적 사고를 경계해야 한다

 

중국에서 오랫동안 지속된 ‘탈정치화’ 경향을 분석하면서 일부 학자들은 현재 중국에 나타나는 두가지 경향을 지적한다. 내부 정치 측면에서 19세기 서구가 추진한 민주정치를 지향하는 움직임과, 대외경제 측면에서 산업자본 확장 시기 제국주의의 해외 식민지 전략을 모델로 삼아 발전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두가지 방향은 서구에서 보수주의에 속하는데, 현재 중국에서는 거꾸로 ‘급진’ 개혁이라는 탈을 쓰고 있다.

 

① 근래 서구에서 진행되는 정당의 ‘탈정치화’와 ‘국가화’

어떤 학자들은 현재 세계에서 서구 민주주의 모델에 근본적 위기가 발생했다고 본다. 사회 전반의 구조 변화 과정에서 다당제 의회민주주의의 기본 틀이 더이상 실질적인 민주주의로 작동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중국이 현재 추진 중인 정치개혁에도 큰 위기가 잠재해 있다. 중국 정치권의 주류는 정치제도 개편에서, 서구의 19세기 산업화시대에 구조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다당제 민주주의를 모델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를 중국에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중국의 공업화는 아직 완수되지 않았고, 글로벌 정치구조는 더이상 전통적인 정당 대표성이라는 논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추세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19세기식 다당제 정치의 경쟁논리에 따른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추진한다면 결국 새로운 독점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런 정치모델에 따른 어떤 실천 사례도 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일본 등에서 그 결과는 모두 새로운 과두제였다.

서방에서 20세기 후반까지는 다당제 정치의 경쟁논리가 확고한 헌정질서 위에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는 서방의 정당이 더이상 진정한 정치적 경쟁을 하지 않고 있다. 정당이 경선의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정당정치에 근본적 변화가 발생하여, 정당 자체의 대표성이 불분명해지고 정당과 국가의 이익이 갈수록 일치하는 정당의 ‘탈정치화’와 ‘국가화’가 진행되고 있다.

 

② 글로벌 채무위기와 서구 정당정치의 내재적 관계

서구식 정당정치라는 배경에서 파생된 글로벌 정부채무는 어느 나라든 뿌리가 같다.8 현재 모든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의 정부채무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데, 이유는 전부 동일하다. 서구식 정당정치의 정권교체 메커니즘 때문에, ‘후임자가 전임자의 빚을 갚지 않는’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모든 정부는 이후 어떤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든 개의치 않고 임기 중에 한껏 돈을 빌려서 써버린다. 따라서 중국은 이런 채무위기를 통해 서구식 현대 정치체제 모델의 위기를 간파해야 한다. 그래야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꿀 수 있고, 정치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새롭게 구상할 수 있다.

 

③ 중국공산당 체제 전환의 기본 방향과 도전

중국 헌법에는 공산당이 집권당으로서 영도적 지위를 갖는다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중국에서 정당은 사실상 국가기구의 일부다. 그런데 현재 중국은 정당의 국가화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정당이 국가와 거의 동일한 구조가 되고, 사회의 위계구조와 거의 동일한 구조가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중국 정치개혁의 기본 방향은 정당을 통해 국가의 조정능력을 높이고, 기층사회에 대한 대표성을 높이며, 공평을 지향하는 쪽으로 구조 개편을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이런 재정치화의 길에는 많은 곤경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고통을 참아내면서’ 자본과 멀어지고 경제활동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예컨대 각급 지방 당위원회와 그 책임자들이 절대 ‘자본 유치’에 나서지 못하게 해야 한다. 또한 중국공산당 자체의 정치성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국가가 진행하는 사회적 조정을 도와야 하는데, 그래야만 국가기구의 구성부분으로 존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사회 역량을 조정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직접민주주의를 종합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직접민주주의는 과거와 같은 대중운동이 아니라, 정당을 일정한 방식으로 사회에 개방하여 기층 사회운동이 정당의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정당 내부 정책에 영향을 주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⑶ 핵심적인 세가지 전략적 관계를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

 

① 개혁개방 후 30년 동안 누적된 노·자 모순에 대한 통제

21세기 중국 내부의 모순구조는 세계의 네가지 주요모순이 모두 존재할 정도로 복잡하다. 그중 가장 주목할 부분은 자산계급이 대표하는 유형노동과 노동자계급의 무형노동 사이의 대립, 즉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이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산업자본이 형성되었다. 이는 중국이 이룩한 가장 큰 경제적 성과지만, 그로 인해 정치에서 전에 없던 노동과 자본 사이의 구조적 모순이 누적되었다. 이 모순을 어떻게 완화해 풀어놓을 것인지는 개혁개방보다 더 어려운 과제다.

중국에서 입지를 다진 산업자본은 자기 입장을 대변할 정당과 결합하여 변신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준비작업은 거의 완료되었고, 인텔리겐치아와 예술가들을 포함한 중산층 집단이 이런 산업자본의 계급화 과정에 편승하여 이익을 얻고 있다.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보면, 이런 속물적인 ‘경제와 정치의 결합’은 유럽에서도 있었던 자연스러운 사회적 전환 과정이다. 노동자집단은 ‘바링허우’(80, 1980년대에 출생한 세대—옮긴이) 세대의 경우 중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인 사람이 95%나 되므로, 20세기 초 공산당이 노동운동을 할 때 외부 지식인에 의존해야 했던 것과 달리, 노동자집단 자체의 정치엘리트가 맑스주의 계급투쟁이론으로 무장하고 자각적 저항에 나서고 있다. 총체적으로 보면, 중국의 자각한 신노동자계급은 자산계급보다 먼저 정치화 과정을 직접 수행하며 노동자집단의 정치조직을 만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정치개혁을 하려면 우선 인민(농민·노동자)에게 진 빚부터 갚으라’고 주장해왔다. 이들을 제대로 달래지 않고 자산계급 엘리트와 손을 잡는 정치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 지금처럼 통신수단이 널리 보급된 상황에서, 전면적인 정치위기는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

2008년 9월 월스트리트 금융 쓰나미가 폭발했을 때 지적했듯이, 외부에서 위기가 발생하면 경제적으로 대응할 수는 있지만, 중국에 더욱 중요한 것은 그 위기가 사회화하지 않게 막는 것이다. 중국 내에 누적된 악성채무는 대략 20조 위안이고, 그 대부분의 상환시점이 2012~13년에 몰려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새로운 지도부가 권력승계를 완료한 후인 2013년에 중국에서 대규모 채무형 금융신용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 중국의 외부, 특히 유럽과 미국도 채무로 인한 금융위기가 동시에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 러시아와 같은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면 결과는 러시아보다 훨씬 참혹할 것이다. 구소련과 동유럽 국가에 비해 중국은 자원과 환경 측면에서 훨씬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② 중국 금융화 과정의 기로: 금융자산과 실물자산의 관계

2010년에 중국이 국내외에 보유한 금융자산은 대략 100조 위안에 이른다. 비금융 실물자산은 수백조 위안 규모다. 그러므로 중국은 과도한 금융버블에 해당되지 않는다. 미국의 버블화된 금융자본이 들어왔을 때 중국은 화폐발행을 확대하여 이에 대응할 수 있었다. 또한 중국의 화폐 시스템은 외부를 지향하지 않기 때문에, 위안화가 해외에서 달러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중국과 미국은 현재 의도하지 않은 ‘공모’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이 금융자유화라는 전략적 구상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중·미 쌍방에 모두 꺼려지는 일이다. 적절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현재 잠정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는 중·미 간 전략적 관계가 결정적으로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위안화는 언제 달러와 균형을 맞추는 화폐가 될 수 있을까? 달러와 유로라는 버블화된 양대 화폐가 서로 싸우다가 함께 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그렇지는 않다. 서방의 금융자본 단계로부터 교훈을 얻은 중국은, 자신을 포함하여 연계된 경제체들이 구조적인 차원에서 미국과 균형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중국이 중·미 간 전략적 관계를 해체하고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할 수도 있다. 만약 ‘두 다리로 해외 진출’(兩條腿走出去, 투 트랙 전략—옮긴이)이라는 대외전략을 택한다면, 중국은 산업자본의 대외경쟁력과 실물경제 영역의 상대적 선도 지위를 유지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개발도상국을 이끌고 비금융적 발전의 길로 갈 수도 있다.

중국의 근대 경제 발전사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중국이 금융심화에 진입한 시간이 매우 짧았음을 지적한 바 있다. 서방에서는 1929~33년 대공황으로 인플레이션과 귀금속 가격 폭등이 일어났고, 이어서 귀금속 비축 시스템의 변화가 진행되었다. 그 여파로 중국의 화폐화 과정은 민국 시기에 철저하게 실패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에는 금융자본의 논리에 따르는 글로벌 화폐화 시스템에 진입하지 못하여, 중국의 화폐화가 중단되었다. 대신 제2화폐인 증표(사회주의 계획경제 시기에 생필품 수요공급 균형을 맞추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배급용 생필품교환권—옮긴이)를 통한 분배 시스템이 화폐경제를 대체했다. 그 덕분에 민국 시기 은본위제에서 지폐제도로 건너뜀으로써 초래된 파멸적인 장기 인플레이션 위기가 해소되었다.

1992년에 이르러서야 중국에서 40년 동안 지속된 증표제도가 폐지되고, 위안화가 독립적인 화폐가 되었다. 화폐가 상품의 일반적 등가물로서 교환기능을 수행한다는 『자본론』(Das Kapital)의 내용이 중국에서 비로소 명확하게 구현된 것이다. 그러나 화폐화가 다시 시작된 1993~94년에 심각한 3대 적자(재정, 금융, 외환 적자—옮긴이)와 악성 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이 위기는 철완총리 주 룽지(朱鎔基)가 매우 큰 댓가를 치르는 거시적 조정과 대규모 ‘존량개혁(存量改革)9을 시행함으로써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다.

중국은 1993년에 화폐를 대규모로 확대발행하기 시작한 후 10년이 걸려서 비로소 진정으로 시장경제에 부합하는 상업 은행을 갖게 되었다. 즉 2002년 국유은행 상업화 개혁으로 이 과제가 완수되었다. 그런데 이후 10년도 지나지 않아서 오늘날과 같은 금융자본 과잉이 나타났다. 중국의 금융화 과정은 처음에는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일단 시작되자 대단히 빠른 속도로 금융심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전에 국민 전체가 반세기에 걸쳐 축적한 실물경제 자산의 화폐화가 완수되기까지 20년도 걸리지 않았다.

중국은 근대에 들어선 이래 두번 금융화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모두 장님이 눈먼 말을 타듯 위태로운 경험이어서, 아직도 그 과정을 제대로 정리하여 설명하지 못한다. 21세기의 두번째 10년에 중국은 계속 글로벌 자본주의의 질주에 따라 금융자본 심화의 길을 가야 하는가, 아니면 조정을 해야 하는가? 만약 중국이 미국 주도의 금융자본 심화의 길로 간다면 종속적 지위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 10년 동안 중국에서는 금융자산 총량과 사회의 실물자산 총량이 1대1을 이룰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사회의 실물자산 총량이 더이상 확대되지 못하고, 금융자산이 단기간에 빠르게 증가한다면 버블화를 피할 수 없다.

 

③ 도시화 과정의 기로

향후 10년 동안 중국에서는 또 하나의 1대1 국면이 전개될 것이다. 도시와 농촌의 인구비율이 그것인데, 이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현재 중국의 발전모델은 중요한 기로에 처해 있다. 계속 미국식의 앵글로-아메리카 모델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독일식의 라인강 모델을 따를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혁신형의 동아시아 모델을 따를 것인가? 도시화와 소비주의라는 ‘아메리칸드림’의 길을 간다면 생산력과 금융화를 위한 제도혁신 역량은 강화되겠지만, 이로 인해 수요가 과잉성장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이 어려워질 것이다. 중국의 급증하는 자원소비에 대해 이미 세계가 모두 우려하고 있다.

현재 세계는 ‘2대8’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은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따라서 중국이 현대화에 진입하면 세계가 ‘4대6’의 구성으로 바뀌게 된다. 세계 인구의 40%가 현대화에 진입하는 것은 현재 지구의 자원과 환경으로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미국이나 서방의 모델에 따라 현대화에 진입하는 것은 중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결코 아니다.

우리는 중국에서 건국 이래 60년 동안 발생한 경제위기를 수용해온 그릇이 광활한 농촌이었음을 입증해왔다. 경제위기가 발생하면 가장 큰 문제는 실업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인데, 중국에서 가장 큰 인구 저수지이자 노동력 저수지가 농촌이므로, 농촌은 중국 경제위기를 수용하는 그릇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급진적인 도시화가 자본주의적 현대화의 주된 추세지만, 중국처럼 불가피하게 자국의 힘만으로 글로벌 위기를 막아내야 하는 국가가 그런 길을 갈 수는 없다. 중앙정부는 과도하게 도시화를 앞당기면 안 된다. 도시와 농촌의 인구 비율이 1대1이 되었을 때, 이 비율을 경솔하게 깨뜨린다면 위기에 대응할 제도의 비용은 감당할 수 없게 커질 것이다.

 

 

보론

 

2008년 늦여름 미국에서 월스트리트 금융 쓰나미가 폭발했을 때, 나는 세계 금융자본의 중심인 뉴욕에서 유엔개발계획(UNDP)이 주최하는 중국의 경험 소개 강연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실상을 직접 목격했다. 귀국 후 나는 서둘러 관련 전문가들을 모아서 ‘글로벌 경제위기와 그것에 대한 중국의 대응전략’이라는 주제로 비공개토론회를 열었다. 21세기 들어서 10년 동안 반년에 한번씩 정례적으로 전문가 비공개토론회를 열어왔는데, 이 사건 때문에 긴급 임시토론회를 소집한 것이다. 이후 2년 동안 ‘중국인민대학 지속가능한 발전 고등연구원’ 명의로 연달아 도합 다섯차례 비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참석자는 중국의 주요 전략연구기관, 중국사회과학원, 베이징대학, 칭화대학, 인민대학, 베이징항공대학, 베이징사범대학 등에 소속된 학자와 전문가들이다. 다만 비공개토론회이기 때문에 참석자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는다.

여기 수록된 내용은 우리가 2년 동안 다섯차례 개최한 비공개토론회의 논의 가운데 마지막 토론회의 논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즉 다섯차례 토론회 전체를 종합하는 성격을 갖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토론회는 2011년 1월에 ‘중국인민대학 지속가능한 발전 고등연구원’이 ‘무허회의(務虚會)10의 형태로 개최했다. 토론회의 좌장은 사전에 홍콩과 중국 안팎의 여러 학자들과 의견을 교환하여, 인류가 기존에 창조한 정신적 자산과 현행 제도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세가지 난제를 논의 주제로 제기했고, 참석자들은 이를 중심으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토론을 진행했다. 시간이 좀 지나기는 했지만 현재 중국이 직면한 핵심적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여전히 의미 있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글로벌 경제 위기와 그것에 대한 대응전략’에 관한 깊이있는 전략적 토론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거시적 정책과 발전전략을 연구하는 중국 학자들이 다른 경우와 달리 글로벌화라는 도전에 직면한 중국의 구체적인 국내외 문제를 놓고 고민할 때 상대적으로 이데올로기의 제약을 덜 받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는 사람의 인식이 선험적일 수 없고 점진적인 발전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켜준다.

거스를 수 없는 경제법칙에 대한 인식에 집중하여 전개된 우리의 토론은 다음의 몇가지로 그 내용이 정리된다.

첫째, 금융자본주의의 중심 지역에서 발생한 2008년의 위기는 서방 현대화 문명의 내생적 모순이 해소될 수 없는 것임을 잘 보여준다.

애초 우리 가운데 일부는 세계를 뒤흔든 2008년 경제위기를 일반적인 수준의 위기로 인식하고 있었다. 즉 대다수 주류 학자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전형적인 구조적 위기로 여겼다. 글로벌 금융과잉의 압력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었던 금융자본 버블화 위기로 파악했다. 그러나 여러번의 토론을 거친 후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서방의 정치 현대화로 인해 내생적으로 초래된 정부 채무위기이고, 위기에 대한 직접적 대응 조치가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제조업을 외국으로 대거 이전한 후 서방 국가는 정부가 신용을 확대하여 위기의 댓가를 외부에 전가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고 글로벌 인플레이션까지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객관적 입장으로 과학적 연구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적확하고 도전적인 논점을 유지해야 한다. 서방 자본주의 문명이 이미 실현한 현대화라는 목표와 거기서 파생된 현대적 체제는 스스로 도저히 해소할 수 없는 내생적인 내부모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발도상국과 취약집단에 위기의 댓가를 대거 전가해야만 자본이 주도하는 국가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는 현재 온 힘을 다해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는 개발도상국(이미 발전의 함정에 빠져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제3세계의 정치가들을 포함한)에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새로운 교훈을 준다.11

둘째, 서방 중심의 글로벌 지정학 전략의 중대한 조정에 직면한 중국은 경로의존성으로 인해 진퇴양난에 빠졌다.

여러번의 토론 과정에서 다수의 학자들은 이 점에 관해 주류 학자의 분석과 마찬가지의 인식을 보였다.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따라야 하고, 미국에 염가상품과 자본을 계속 수출해야만 미국 주도의 지정학 전략 속에서 생존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식민주의 시기의 글로벌화라는 특징을 전형적으로 갖는 이런 외향형의 추종적 발전과정이 필연적으로 국내 자원환경을 악화시키고 사회모순을 격화시킬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어떤 전문가는 대안으로 도시화 과정을 앞당겨야 한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이 설령 내수를 진작하는 작용을 할지라도, 자원과 사회 양 측면의 내생적 모순이 초래한 곤경을 벗어나는 길은 되지 못한다.

이에 관해서는 건국 이후 60년 동안 발생한 여덟번의 위기에서 ‘삼농’(농촌, 농업, 농민—옮긴이)에 ‘의존’하여 ‘연착륙’을 실현한 경험에 관해 서술한 책 『여덟 번의 위기』를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 나는, 중국이 내부화 메커니즘을 통해 국내적 산업과잉과 국제적 외부성 리스크에 대응해왔다고 보는 시각을 제시했다. 즉 도농 이원구조라는 체제가 사실상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농촌에 다양한 형태로 자본을 투입하고 특히 기초자본 건설 투자를 확대함으로써, 향촌사회의 구조적 안정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기의 국가전략 조정을 뒷받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초대형 대륙국가고 도농 이원구조라는 독특한 기본 체제를 가지고 있는 중국은, 위기에 대응할 때 서방과는 명확하게 다른 경험을 축적했다. 중국이 성공적으로 위기에 대응하고 ‘연착륙’을 실현한 것은 농촌과 내륙 지역에 투자를 대폭 확대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 연구자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부분은, 정부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는 이런 방식이 언제까지나 그리고 얼마나 더 넓은 범위에서도 지속될 수 있는가이다. 만약 학자들이 이런 시공간적 조건까지 감안하여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자주적이고 혁신적인 면모를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번역: 김진공(金震共)/인하대 중국학과 교수

 

 

  1. 원 톄쥔 「글로벌화와 세계 파시즘(全球化與世界法西斯主義)」, 『우리가 바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我們到底要什麽)』, 화샤출판사(華夏出版社) 2004(제1판).
  2. 미국의 ‘신제국론’은 냉전이 종식된 후 유행하기 시작하여, 21세기 초 미국정부가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단극안정론’(William Wohlforth), ‘선제공격론’(George W. Bush), ‘주권제한론’, ‘민주평화론’은 신제국론의 네가지 이론적 중심축이다. 윌리엄 월포스는 제일 먼저 ‘단극안정론’이라는 관점을 제기했다. 그는 구소련 해체 이후 미국이 유일한 초강대국이 되었고, 미국과 독자적으로 맞설 수 있는 국가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본다. 세계체제를 이끄는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국제적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은 더이상 일어날 수 없게 되었고, 국제관계에는 미증유의 ‘단극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양 윈중(楊運忠) 「‘신제국론’—21세기 미국 패권의 이론적 패러다임(‘新帝國論’—21世紀美國稱覇的理論範式)」, 『당대아시아태평양(當代亞太)』 2003년 제1기, 3~10면; William Wohlforth, “The stability of a unipolar world,” International Security Vol. 24, No. 1 (1999), 5~41면 참조.
  3. 헝가리 경제학자 코르나이(Janos Kornai)는 사회주의체제의 기업 또는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지원을 믿고 예산을 방만하게 운용하는 현상을 가리켜 ‘연성(soft) 예산제약’이라고 불렀다. 이는 외부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 예산을 엄격하게 운용해야 하는, 즉 ‘경성(hard) 예산제약’하에 있는 자본주의 기업의 경우와 대비된다. 여기서는 ‘경성 제약’을, 외부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엄격한 제약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옮긴이.
  4. 동 샤오단(董筱丹)·쉐 추이(薛翠)·란 융하이(蘭永海)·원 톄쥔 「선진국 글로벌 금융자본과 현대적 정치체제의 이중적 위기(發達國家全球金融資本與現代化政體的雙重危機)」, 『중공중앙당교학보(中共中央黨校學報)』 제15권 제6기, 2011.12.
  5.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지금 전세계가 아시아의 굴기, 특히 중국과 인도에 관해 많은 논의를 하고 있는데, 러시아를 빼놓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취할 때 그것에 대항하고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러시아기 때문이다.
  6. 생산요소 대량 투입을 통한 GDP 위주의 양적 경제성장 방식. 성장속도를 중시하는 대신, 고비용과 저효율 등의 부작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성장의 질을 중시하는 저비용과 고효율의 경제성장 방식을 집약형(intensive mode)이라고 한다—옮긴이.
  7. 미국은 달러와 국채를 확대 발행하여 금융과 재정 위기를 해소하려 하고, 이로 인해 동아시아에 ‘달러풀’(dollar pool)이 형성된다. 미국이 세계를 통치하는 전략적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여기에 달려 있다.
  8. 현재 글로벌 채무위기의 본질이 서구 현대화의 위기라는 점에 관한 분석은 『여덟 번의 위기』 제2장 참조.
  9. 존량(存量):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그때까지 생산되거나 누적된 생산물, 화물, 저축, 자산, 부채의 총량을 가리킨다. 일정 기간 내의 변동량을 가리키는 유동량(流量)과 대비된다. / 증량개혁(增量改革): 기존의 계획경제체제 내에서 시장메커니즘이 자산의 증량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배치하여, 증량 부분을 끊임없이 확대함으로써 전체적으로 계획경제의 비중이 점차 축소되게 하는 개혁 방식. / 시장경제와 법치 시스템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행되는 개혁은 대체로 세단계를 거친다. 첫째, 증량개혁 단계로, 기존 이익관계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사영 부문을 빨리 발전시키는 것이 중점 과제다. 중국의 경우 1978년 개혁개방 시작부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폭발 시점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존량개혁 단계로, 개혁을 존량 부분으로까지 확대시켜 국유기업과 정부기구 개혁에 주력하고 기반시설 건설과 시장환경 정비에 치중하는 것이 중점 과제다. 중국이 WTO에 가입한 2001년 전까지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 종합개혁 단계로, 시장화 속도를 높이고 글로벌화 추세와 자유시장경제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 중점 과제다. 중국의 WTO 가입 이후 현재까지가 이에 해당한다—옮긴이.
  10. ‘무허회의’란 ‘무실회의(務實會)’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중국에서 각급 정당, 정부기관, 군대 및 각 사업단위의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간부들이 정치, 사상, 정책, 이론 등 각 방면으로 향후의 방침을 정하기 위해 조직하는 토론이다. 대개 새해 초반이나 어떤 사업의 시작 전에 목표와 방향을 정하기 위해 개최하며, 그와 반대로 어떤 사업이나 단계의 마무리를 위해 개최하는 회의는 ‘무실회의’라고 한다—옮긴이.
  11. 동 샤오단·원 톄쥔 「빈곤의 제도경제학 연구—제도의 비용과 제도의 수익의 비대칭성 연구(致貧的制度經濟學硏究—制度成本與制度收益的不對稱性分析)」, 『경제이론과 경제관리(經濟理論與經濟管理)』, 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