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교수.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2003년 동대학원에서 「D. H. Lawrence의 근대문명관과 아메리카」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 『개념 비평의 인문학』 『다시 소설이론을 읽는다』(편저서), 역서 『패니와 애니』(공역) 『도둑맞은 세계화』 『쿠바의 헤밍웨이』 『이런 사랑』 『종속국가 일본』(공역)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등이 있다.
계간지 글
- [계간 창작과비평 133호]우리의 미국인식, 고정관념을 깨자
- [계간 창작과비평 137호]윤지관 엮음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
- [계간 창작과비평 143호]신형철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
- [계간 창작과비평 144호]묻혀버린 질문
- [계간 창작과비평 146호]이방인, 법, 보편주의에 관한 물음
- [계간 창작과비평 151호]박민규,라는 문학 발전소
- [계간 창작과비평 155호]재앙의 서사, 종말의 상상
- [계간 창작과비평 157호]대세에 어울릴 새로운 스토리를 기대하며
- [계간 창작과비평 158호]‘이미 와 있는 미래’의 소설적 주체들
- [계간 창작과비평 162호]이야기의 주인공을 바꾸어야 할 때
- [계간 창작과비평 163호]류준필 『동아시아의 자국학과 자국문학사 인식』
- [계간 창작과비평 164호]리얼리즘과 함께 사라진 것들
- [계간 창작과비평 167호]희망은 아래로부터 채워지는 것
- [계간 창작과비평 169호]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 [계간 창작과비평 171호]동물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 문학의 질문과 『엘리자베스 코스텔로』
- [계간 창작과비평 174호]문화자본 재분배를 위한 인문학
- [계간 창작과비평 175호]민주주의는 어떤 ‘기분’인가
- [계간 창작과비평 179호]세상의 기준은 이미 변했다
- [계간 창작과비평 180호]문학성과 커먼즈
- [계간 창작과비평 181호]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 [계간 창작과비평 182호]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 [계간 창작과비평 183호]조성환 『한국 근대의 탄생』
- [계간 창작과비평 185호]불평등의 재현과 ‘리얼리즘’
- [계간 창작과비평 186호]‘국정운영자’는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가
- [계간 창작과비평 189호]팬데믹 시대의 민주주의와 ‘한국모델’
- [계간 창작과비평 192호]미사여구와 냉담을 넘어
- [계간 창작과비평 193호]황수영 『근현대 프랑스철학의 뿌리들』
- [계간 창작과비평 198호]미래를 도모하는 문학
- [계간 창작과비평 199호]미래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
주간논평 글
- 미래에 관해 알고 있는 것들
- 미사여구와 냉담을 넘어
- 팬데믹이 우리를 바꾸지 못한다면
- 트럼프라는 재난, 또는 과제
- ‘경알못’입니다만… 간섭하겠습니다
- 어떤 ‘코로나 서사’를 쓸 것인가
- ‘국정운영자’는 무엇을 욕망해야 하는가
- 우리만으로는 역부족이야: 코레에다 히로까즈의 「어느 가족」
- ‘좋은’ 엄마와 ‘나쁜’ 시민의 조합: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와 「쓰리 빌보드」
- ‘인간-되기’가 어려운 이유: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며
- 차라리 감정 없는 삶?
- ‘삼성공화국’과 ‘주식회사 대한민국’
- 과학을 저버린 저급 ‘공상소설’을 읽다
-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 ‘유서대필’을 말한 자들
- ‘대박’ 통일을 위한 스파이론
- 변화의 골든타임이 남아 있다면
- ‘블랙 딜’로서의 민영화
- 괴물도 아닌, 광대도 아닌
- 살아 있는 각하들의 이야기
- 문화의 진보성?
- 에밀리에게는 장미를
- 삶을 기만하는 몇가지 방식: 영화 「윈터 슬립」
- 예외를 정당화하는 고전적인 방식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종북 프레임
- 희망은 아래로부터 채워지는 것
- [노란봉투]가 담은 것
- 표절 논란, ‘의도’보다 ‘결과’가 본질이라면
- 이미 복종한 자는 더더욱 복종하게 되리라
- 현재 위치에서 반드시 이동하라, 단 1%의 힘으로
- 동아시아, 질문이 시작되는 곳: 2016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회의 참관기
- 가족을 내버려두라!
- 돌봄의 위기와 ‘사라진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