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점검 | 의료대란과 의료개혁

 

국민과 함께하는 의료개혁을 위해

 

 

황상익 黃尙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의학사 전공.

 

 

R선생에게.

지난 8월말이었나요? 태풍이 몰아치고 폭우가 쏟아지던 보라매공원에서 우리가 만난 것이. 그리고 그것이 몇해 만이던가요. 하지만 아쉽게도, 서둘러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야 한다기에 그날 집회에 대해서 또 요즈음의 ‘의료사태’에 대해서도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네요.

나는 올해 들어 학생들, 전공의들 그리고 교수들 집회에 몇차례 참석해 보았지만, 그렇게 큰 모임은 그때가 처음이었지요. 보라매공원이 가득 찼으니까 2만명, 아니면 3만명쯤 되는 건지. 그리고 점점 더 거세지는 강풍과 폭우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혹은 연사들의 연설에 혹은 학생과 전공의 들이 벌이는 공연에 눈과 귀를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그러한 놀라움은 한편으로는 그 규모와 열기 때문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 사회의 반응과의 커다란 차이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지금 ‘파업’과 ‘수업거부’에 직접 참여하거나 심정적·재정적 지원과 동조를 아끼지 않는 대부분의 의사나 의과대학 학생들과, 그것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냉담한 적지 않은 일반 국민들 사이에는 깊은 심연이라고 할 수 있는 괴리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적지 않은 의사들이 그러한 점 자체를 부정하거나, 현상은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정부와 언론과 시민단체의 농간이나 왜곡 때문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말이지요. 나는 지금의 의사파업이 진정 ‘국민을 위한’ 그리고 ‘국민과 함께하는’ 올바른 ‘의약분업’과 ‘의료개혁’을 이루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라면, 우선 이 괴리에 대해 의사들이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의사들이 내세우는 명분에 합당할 뿐만 아니라 ‘투쟁’에서 ‘승리’를 거두는 길이 될 테니까요.

관찰자마다 견해가 똑같지 않겠지만, 나는 의사들이 그동안의 폐·파업 투쟁으로 우리 사회 보건의료의 산적한 문제점들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의사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는 점을 일정 정도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넉달이라는 기간이, 다급한 환자들과 그들에게 곧 돌아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진 의사들에게는 엄청나게 긴 세월이지만 사회적 투쟁의 측면에서 보자면 길다고만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의사들의 대의명분을 국민들에게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대단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R선생도 80년대 학창시절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참여해서 그런 사정을 잘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지금은 정신이 나가거나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다 그 정당성을 인정하는 반파쇼투쟁이나, 인간 세상에 그것도 문명국가라고 자부하는 사회라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반인간적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싸운 노동운동의 대의를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그들에게서 지지를 얻어내는 데에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요.

나는 1980년 봄, 연건동 캠퍼스를 박차고 서울역과 종로를 향해 의연히 달려나가던 의과대학 학생들의 모습과 그것을 감격스럽게 지켜보던 나 자신을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의 이해에 직접 관계있는 것만 챙긴다며 우물안 개구리, 반지성적·몰역사적인 비겁자라고 다른 학과 학생들로부터 오해(?)와 지탄의 대상이 되기만 하던 연건의 학도들이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없이는 제대로 된 의학도 의사도 없다며 말 그대로 ‘똘똘 뭉쳐’ 일어나던 그 모습을 말입니다. 또 최루탄과 곤봉으로 시가전을 방불하던 1987년 6월의 거리에서도 구급낭을 등에 걸머진 자랑스런 모습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연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인 것이었지요. 나는 오늘날 의사들의 투쟁이 그러한 모습에 연결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온갖 비난과 손실을 무릅쓰고 투쟁에 나서고 있는 지금의 모습이 말이지요.

우리는 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국민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1980년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사흘 동안의 이른바 ‘가두투쟁’의 결과는 어땠나요? 학생들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명분과 방법의 투쟁이었지만 국민들은 뜻밖에도 냉담하였지요. 정말로 뜻밖이었지요. R선생은 당시에 고등학생이라 분위기를 잘 알지 못하겠지만, 그때는 그랬답니다. 나는 당시 우리 학생들의 실망어린 눈빛, 아니 그보다는 국민들을 원망하는 소리가 눈과 귀에, 아니 가슴에 지금도 선합니다. 내 마음도 터질 지경이었으니까요. 1987년 6월은 어땠나요? ‘6·10항쟁’ 전날, 아니 당일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신문과 방송은 ‘과격’ ‘난동’ ‘반민주’ ‘무질서’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단어와 그보다 더 폭력적인 표현으로 도배질되었지요. 그러나 국민들의 반응은 7년 전과는 전혀 달랐고, 결국 승리했지요. (기만적인, 이른바 ‘6·29선언’이라는 것말고 무엇을 얻어냈는가라며 냉소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요.)

나는 의사들도 6월항쟁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86, 87년 어간의 국민의식과 동떨어지고 오히려 현학적이라고나 할 ‘투쟁노선’으로 6월을 치렀다면 결과는 어땠을까요? 직업적 활동가가 아니라면 알아듣기조차 어려운 구호와 전략·전술로 승리가 가능했을는지요. 나는 ‘직선제 쟁취’라는 대중적 구호와 목표를 내세우고 거기에 걸맞은 전략·전술을 구사했기 때문에 6월항쟁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1980년 5월, 10만의 의식화된(?) 학생들이 서울역과 남대문 일대에 집결했을 때 군부독재정권은 끝장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기도 했지요, 우리는. 그러나 6월의 현장에서야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