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변화하는 시민사회와 새로운 민중운동

 

노동운동의 성숙을 위해

 

 

김종엽 金鍾曄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저서로 『연대와 열광』 『시대유감』 『에밀 뒤르켐을 위하여』 등이 있음. jykim@hanshin.ac.kr

*이 글을 쓰는 동안 대화상대가 되어주었고, 여러 논점을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준 노중기 교수에게 감사드린다.―필자

 

 

1. 2004년 7월 하계투쟁의 풍경

 

지루하게 내리던 빗속에서 진행된 노동자들의 7월 하계투쟁이 마무리단계로 들어갔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아직 대구지하철 및 LG칼텍스 분규가 계속되고 있지만,8월 중순 이전에 어떤 식으로든 매듭이 지어질 것이다. 김선일씨의 납치에 이은 피살사건, 사소한 규모였지만 많은 논란을 야기했던 서해에서의 남북한 교전, 그리고 충격적인 연쇄살인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어수선하여 언론매체의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올해 7월 하계투쟁은 주의깊게 바라봐야 할 측면이 있었다. 산업계가 작년에 통과된 주5일제 근무 법안에 따라 근로조건과 임금을 모두 새롭게 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으며,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정치적 환경변화가 노동자들의 투쟁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거리였고, 민주노총 제4기 지도부의 투쟁과 협상 능력이 시험대에 오른 국면이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민주노동당의 원내진출이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과 투쟁에 별다른 도움이 될 수 없음이 드러났고, 비정규직 문제나 파병문제 같은 사회적 의제를 더 선명하게 제시한 민주노총의 투쟁 또한 큰 사회적 반향을 얻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하계투쟁은 다른 측면에서 여전히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익숙한 풍경과 익숙하지 않은 풍경들이 뒤섞여 나타났기 때문이다. 익숙한 풍경부터 살펴보자. 우리 사회가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90년대를 거치며 반복해서 목격한 것은 자본과 노동 사이의 양보 없는 줄다리기에 이어지는 단체협상의 결렬, 시민의 불편과 산업적 파급력을 걱정하며 정규직 노조의 이기심을 질타하는 보수 언론매체들의 맹공, 공권력 투입을 예고하며 으름장을 놓는 정부, 적당한 임금인상과 근로조건 개선을 통한 타협 혹은 공권력 투입에 이어지는 노조 간부의 수배와 체포 등의 풍경이었다. 올 여름에도 정부가 직권중재라는 강수를 내민 지하철 노조의 파업과 LG칼텍스 파업은 그런 패턴을 반복했다. 두 경우 모두 노동자들의 상대적 고임금이 여론의 역풍을 맞았으며, 전자의 경우 노동조합 내의 자중지란으로 파업철회와 작업장 복귀로 종결되었고, 후자의 경우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정부의 경찰력 투입까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풍경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계가 오랫동안 열망해온 것이 산별노조의 건설이고 산별교섭이었는데, 올해 단체협상에서는 그런 모습들이 한결 뚜렷하게 나타났다. 금속노조의 산별교섭이 큰 갈등 없이 타결되어, 기업 쪽은 지난해 노동자들의 분신사태를 초래했던 손배가압류를 중단하기로 했고, 최저임금을 상향조정하여 보장키로 했다.13일간의 파업이라는 난항을 겪기는 했지만 병원노조가 올해 처음으로 산별교섭에 성공했다. 민주노총 산하 노조는 아니지만 금융노조의 경우에도 산별교섭은 큰 장애 없이 이루어졌다.1 물론 이런 산별교섭이 그 자체로 산업평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아직은 대규모 사업장들을 포괄하며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산별교섭 내용이 개별 사업장에서 그대로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병원노조의 경우 산별교섭에도 불구하고 사업장별 교섭에서는 갈등이 많았으며, 서울대병원에서는 노조와 병원측 간에 대립이 격화되어 장기 파업사태가 빚어졌다.

현재 노동운동에서 이렇게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뒤섞여 있는 현상은 어떤 이행의 상황을 표시하는 것일까? 이런 이행은 이전의 노동체제로부터 얼마만큼 발걸음을 내디딘 것일까? 50%를 넘어설 정도로 늘어난 비정규직으로 대변되는 노동 내부의 분화, 답보상태의 노조조직률, 전투적 조합주의와 사회적 합의주의 너머의 대안 부재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다고 이야기되는 한국 노동운동에 이 이행의 방향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그 이행은 성공할 수 있는 것일까? 혹은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인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압력 속에서 급변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노동운동이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고 어떤 사회적 희망을 줄 수 있을까?

 

 

2. ‘87년 노동체제’의 질곡

 

앞서 지적한 익숙한 풍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형성된 노동체제의 성격을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87년 6월항쟁이 열어젖힌 민주화의 공간 속에서 민주노조운동은 7,8월 노동자대투쟁이라는 대공세를 통해 자신들의 활동영역을 확장했고,90년대 초까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민주화의 효과로 국가는 유신시대나 5공 때와 같은 물리력에 기반한 억압적 노동체제를 더이상 유지할 수 없었고, 기업 역시 노조활동을 봉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상실하게 되었다. 시민권을 확보한 노동운동은 노총을 대신하는 전국적 노동운동단체를 조직했다. 더불어 90년대 초반을 경과하면서 노동자의 실질임금도 상당히 향상되었다.

그러나 87년 투쟁을 통해서 형성된 ‘87년 노동체제’2는 노동과 자본 모두 만족하지 못한 불안정한 체제였다.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저임금에 근거한 성장을 경험해온 자본으로서는 강력하게 조직된 기업별 노조의 투쟁능력이 매우 부담스러웠다. 어느정도 물질적 양보 여지를 가진 대기업과 공공부문 그리고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제외하면 이런 변화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없었으며, 양보의 여지가 있던 기업들조차 값싼 노동력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는 못했다. 따라서 노자(勞資)간의 대립은 불가피했는데, 이는 국가의 빈번한 개입을 불러들였다. 요컨대 87년 노동체제는 작업장의 갈등이 전체산업의 갈등으로 항상 전이될 수 있는 체제였고, 그런만큼 노동운동은 사회운동적 성격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87년 노동체제는 기업별 노동조합만을 허용하는 체제였다는 점에서 노동자로서는 매우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노동자는 노조를 통해서 작업장 수준에서는 어느정도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지만, 기업별 노조를 넘어서는 사회적 연대로 나아갈 수 없었고, 기업별 노조에서의 조직력과 비타협적인 투쟁만을 유일한 무기로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조직력을 통해서 해당 기업으로부터 임금이나 근로조건의 향상 같은 물질적 양보를 얻을 수 있었지만 정치적·사회적 시민권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96년 말 노동법 개악을 통해 이런 불안정한 노동체제를 바꾸려는 자본과 국가의 시도는 시민사회의 지원을 받은 노동운동의 강력한 저항에 의해서 무산되었다. 하지만 노동체제 전체를 자본에 유리하게 재편하려는 시도는 일정한 한계에 부딪혔다 해도 기업단위에서 자본의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계속되었고 90년대 초부터 중소기업 사업장에서는 점차 노조들이 해체되기 시작했다. 또한 대기업들은 작업장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서 자동화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내 하청기업을 만들고, 비정규직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다.3

사회적·정치적 조정기제가 상실된 채 자본과 노동 간의 교착상태로 귀결된 87년 노동체제는 양자간의 신뢰를 고갈시키는 체제였다. 이미 지적했듯이 자본은 여전히 경영중심주의를 고수하면서 노동을 정당한 생산의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체 사회의 진화방향은 고숙련·고부가가치·고임금 체제로의 산업적 전환을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기업은 노자간의 생산성 연대를 추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노동자 또한 경제민주주의로 나아갈 길이 차단당해 있었다.

문제는 노동의 측면에서 더 심각했는데,87년 체제는 노동자들의 연대를 침식하는 체제였기 때문이다. 전체 노동운동에서 가장 강력하게 조직된 부문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이었고, 이 부문에서 보인 노동운동의 전투적 조합주의는 지속적인 임금상승으로 나타났다. 처음에 이 체제는 노동의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을 임금과 교환하는 체제였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일이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체제는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를 노동자들의 임금, 정확히 말하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교환하는 체제가 되어갔다.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형성된 전투적 조합주의와 연대투쟁 노선은 점차 전투적 경제주의로 퇴락해간 셈이었다.

이는 민주노총으로서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잘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조야말로 민주노총의 핵심토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계속해서 조직원들의 직접적이고 단기적인 경제적 요구 충족과 장기적이고 계급적인 이익 및 연대 추구라는 두 과제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으며, 이는 민주노총 내부의 논쟁과 분파투쟁을 빚어냈다. 그리고 이런 ‘이중 구속’(double bind)이나 다름없는 상황은 7,80년대의 민주노조운동 속에서 단련된 단위노조의 현장활동가들에게도 관철되었다.

비정규직과 사내하청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만 상승할 수 있는 체제의 지속은 노동자간의 분열을 심화시켰을 뿐 아니라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 또한 야기했다. 경제의 활력을 좀먹는 주된 요인이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심이라는 보수언론의 십자포화가 대중적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사실 경제적 이익에 대한 집착이나 사내의 비정규직 혹은 하청기업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 노동자의 특권의식에 비추어볼 때, 그들의 이기심에 대한 비난이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4 하지만 그들이 더 고결한 연대의식을 갖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그들 탓만은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의 발목을 기업단위에 묶어놓는 87년 체제가 분비한 특성이기도 했다.

 

 

3. 97년 노동법 재개정과 외환위기 이후

 

87년 노동체제의 특성인 자본과 노동 간의 교착상태는 96년 김영삼정부가 설치한 노사관계개혁위원회(노개위) 하에서 전환국면을 맞이했다. 한편으로는 WTO체제의 출범으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본격화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95년 결성에 성공한 민주노총이 노조 조직률의 하락 속에서도 주요 사업장의 노조를 포괄하며 산하 조합원을 늘려가자, 정부 내 개혁적인 분파는 장기적으로 노동과 자본 모두의 이익을 침식하고 있는 87년 노동체제를 노개위를 통해서 혁신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부 내 수구세력과 재벌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노개위의 공익안과 최종 정부안에서 개혁적 색채는 크게 퇴색했다.96년 말 정부안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자 노동계는 시민사회와 연대하여 강력한 총파업투쟁을 전개했는데, 이 투쟁은 87년 이후 최대의 투쟁이었고 노동운동의 역량을 최대로 집결한 투쟁이었다. 격렬한 투쟁과 반대에 직면한 정부는 이듬해 봄에 노동법을 재개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97년에 재개정된 노동법에 따르면 노동측은 복수노조의 인정(민주노총 세력의 합법화), 노조의 정치활동 허용 등을 얻은 대신, 자본은 무노동무임금 제도와 변형근로시간제,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금지, 직권중재제도의 강화, 쟁위행위 장소의 제한과 대체근로의 허용 등을 얻어 작업장에서의 권력을 강화한 것으로 나타난다. 일견 주고받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전체적인 대차대조표를 작성해보면 얻은 것이 많았던 쪽은 자본이었다. 노동측은 97년 노동법을 계기로 전국적 노조, 산별 연맹, 단위노조라는 체제를 정비해서 정치적 수준, 사회적 수준, 작업장 수준에서의 노동정치의 틀을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산별체제로 전환할 수는 없었다. 이에 비해 자본은 노동을 여전히 기업별 노조체제에 묶어두는 동시에 단위노조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었다.

자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노동체제의 재편은 곧이어 폭발한 외환위기를 계기로 더욱 심화되었다. 국가적 위기로 인해 노사정위원회에 끌려들어간 민주노총은 결국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를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내분과 지도력 약화와 조직이완을 경험해야 했다. 외환위기로 인한 대량 해고사태와 비정규직의 급증 대신에 노동측이 얻어낸 것은 거의 없었던 셈이다.

이에 비해 자본은 87년 체제를 자신에게 한층 더 유리한 체제로 재편했다고 할 수 있다. 외환위기 직후에 자본, 특히 재벌로 대표되는 독점자본은 엄청난 사회적 비판에 직면했고, 일부 자본은 해체되기도 했지만 삼성, LG, 현대자동차, SK로 대변되는 핵심집단의 힘은 더 강화됐다. 재벌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의 투명성에 대한 공세도 견뎌냈으며, 금융시장의 개방으로 인해 경영권 방어에 전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어느정도 조직과 재무구조를 합리화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 그리고 자본은 위기타개를 위해서 근본적인 경제구조의 개혁을 시도하기보다는 경기부양을 지향하는 정부의 타성에 힘입어 자신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외환위기의 위력은 이렇게 노동의 약화와 독점자본의 입지 재강화라는 세력재편에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외환위기를 통해서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압력은 전체 사회의 양극화를 초래했다. 사실 우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를 비롯해 제조업과 비제조업,IT산업과 비IT산업, 수출부문과 내수부문, 상위계층의 소득 상승과 하위계층의 소득 감소,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도처에서 양극화를 만나고 있다.

이런 양극화가 진행된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태는 더 우려할 만하다. 기업들은 거의 국내 신규투자를 하지 않고 있으며, 신용카드 남발로 인해 엄청난 수의 신용불량자가 생겨나고 내수는 극히 부진하다. 엄청난 순이익을 올리고 있는 것은 삼성전자·현대자동차·포스코·LG전자 같은 국제경쟁력을 가진 기업뿐인데, 이런 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산업연관은 매우 취약하며, 이런 기업의 수출증대에도 불구하고 고용이 늘기는커녕 감소했다. 한마디로 수출증대로 얻은 수익이 전체 사회에 배분되는 구조가 깨져버렸고, 성장이 일어나기는 하되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5

지난해와 올해 수출이 크게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조차도 대(對)중국 수출을 중심으로 한 증가이며, 그 내용도 국민경제적으로 보면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작년과 올해 대중국 수출이 증대한 주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대기업들이 설립한 중국 현지투자기업들이 우리나라로부터의 중간재와 부품재 수입을 늘린 것이다. 이런 중간재와 부품재의 현지조달이 점차 늘어날 것을 염두에 두면 수출증대가 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려우며, 제조업 공동화의 위험만 커지는 셈이다.6

이런 상황에서 IMF사태 이후 숱한 양보교섭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으로부터 국민경제와 노동을 위한 양보를 별반 얻어낸 것 없이 신자유주의적 시장규율만 더해진 노동의 처지는 매우 힘겨운 것이었다. 한마디로 87년 체제가 야기했던 노동의 위기는 크게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규직 규모는 줄었고, 일용직과 임시직 고용증가는 주요 산업부문이 아닌 열악한 써비스산업에서 이루어졌다. 청년실업률은 대폭 증가했고, 조기퇴직으로 인해 많은 중간층이 생활의 기반을 너무도 빨리 잃어버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은 노동의 단결을 가져오지도 않았다. 조직된 노동의 중심에 있던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연대의식은 이 과정에서 더욱 희박해졌다. 외환위기가 불러온 정리해고의 경험은 이들에게 평생직장에 대한 기대를 잃게 해서, 벌 수 있을 때 최대한 벌어야 한다는 생존의식만을 강화시켰던 것이다. 그들은 임금인상에 집착하는 경제주의에 더욱 깊숙이 빠져들었다. 노조의 보호능력이 약해지고 연대감이 상실될수록 경제주의적 이기심은 강화되었고, 경제적 이기심이 다시 연대능력을 잠식하는 악순환은 계속되었다. 더불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대기업 노조원들이 임금인상을 추구할수록 이들을 기득권 집단으로 몰아가는 보수언론의 공세는 거세졌고 노동운동의 대중적 고립도 강화되었다. 한편 노조의 조직력에 크게 의존하는 민주노총의 지도력으로는 정규직 노동자를 계급적 연대로 이끌기에는 역부족이었다.

 

 

4. 너무도 더딘 산별노조의 건설

 

IMF 구제금융 결과로 전국민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사회적·정신적 굴복을 강요당하고 노동의 힘이 약화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진영이나 노동문제에 관심을 가진 진보적인 이론가 집단은 어떠한가? 이들이 신자유주의적으로 강화된 노동체제의 덫에서 어떤 방향으로 벗어나야 하는지 전혀 몰랐던 것은 아니다.7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조직화와 연대투쟁이라는 모델의 잠재력이 고갈되었으며, 영향력 강화와 정치화의 방향으로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한다는 진단은 나와 있었다. 그것에 따르면 노동운동은 한편으로는 정치세력화를 이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산별노조체계를 수립하여 자본에 대해 산별교섭체계를 요구해야 했다.

‘국민승리 21’부터 시작된 정치세력화를 향한 노력은 2004년 총선을 통해 민주노동당이 10명의 의원을 국회에 진출시키는 성과로 나타났다. 작지 않은 성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몇가지 문제점이 눈에 띈다. 먼저 현 국회구조에서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이 노동계에 실익을 가져다줄 가능성은 아주 적다는 점이다. 활동 여하에 따라 언론매체로부터 주목을 끌어낼 수 있고 사안별로 상당한 정치력을 발휘할 수는 있겠지만, 민주노동당이 노동자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제도를 법제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민주노동당이 국회 안에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선 오히려 노동운동의 역량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민주노총 산하 노조원의 민주노동당 참여는 매우 부진하다. 민주노동당의 형성 초기에는 민주노총이 적극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그런 주도권을 현재까지 제대로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당명이 민주노동당임에도 불구하고, 민주노총 산하 조합원 가운데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사람의 숫자는 3~4%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은 민주노총이 민주노동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어 있지 못함을 말해준다. 사실 원내정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의 힘이 극히 제약되어 있다면, 민주노총의 정치화 전략은 민주노동당을 대중정당으로서 정립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런 방향으로의 활동의 전개는 아직 대단히 미약하다.

정치화 노력의 방향이 그렇다면, 민주노총의 영향력 강화 전략은 어떠한가? 사실 97년 노동법 재개정에서 노동운동이 제 살을 깎아내며 얻어낸 것이 민주노총―산별연맹―기업별 노조라는 틀의 합법화였다. 민주노총은 97년 노동법에서 얻은 이 한줌의 성과를 통해서 영향력 강화 전략의 핵심인 산별노조 건설을 추구해왔다. 산별노조체제의 형성이 관건인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산별체제는 기업별 노조체제 하에서 형성되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협소한 이익추구를 넘어서서 노동자들의 계급적이고 장기적 이익을 담보할 수 있게 해준다. 산별체제에서는 낮은 수준의 노조조직률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산별협상은 그 범위를 넘어서는 적용범위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별협상에 의해서 형성된 사회적 기준은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미조직 노동자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근로조건과 임금을 개선하면서도 노동자 내부의 분화와 분열을 제어할 수 있다.8한마디로 87년 노동체제의 핵심인 기업별 노조체제가 연대를 잠식하는 체제라면 산별노조체제는 연대를 확대해낼 수 있는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민주노총 산하 연맹들이 이런 산별노조 건설에 주력해온 결과는 2004년 하계투쟁의 새로운 풍경으로 앞에서 거론한 병원노조와 금속노조의 산별협상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효과는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총 산하 노조 가운데 산별체제를 형성한 데는 겨우 두 업종에 불과하다. 이런 정도의 산별노조화는 너무도 더딘 것이다. 더구나 병원노조의 경우 조직부문을 거의 다 포괄하는 산별노조이기는 하되, 미조직 사업장과 영세병원 및 중소병원이 너무나 많다. 그렇기 때문에 산별협약에도 불구하고 단위사업장에서 분규가 일어난 것이다. 금속노조의 경우는 조직노동자의 핵심영역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17만명이 넘는 금속연맹 산하 조합원 가운데 4만여명만이 산별노조로 전환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산별로 전환된 사업장은 대체로 중소 사업장이고 주요 대기업 노조는 여전히 기업별 노조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금속연맹 산하의 대기업 노조가 산별로 전환되지 못한 것은 기업측의 방해공작도 작용했지만, 여전히 대기업 노조원이 현 체제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도 노동운동은 신자유주의적 공세까지 가세한 ‘87년 노동체제’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5.‘사회적 대화’의 위험

 

단위노조―산별연맹―총연맹의 3단계 조직 가운데 단위노조가 약해지고 있고, 중간 허리인 연맹의 산별노조화 또한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전투적 조합주의에 근거한 연대파업의 힘은 약해지고 있으며, 개별 사업장에 따라서는 무분규를 선언하며 노사협조주의로 돌아서는 경우도 꽤 생겨나고 있다. 더불어 민주노총의 지도력도 예전과 같지 않다. 이런 때에 민주노총으로서는 무언가 제도적 타협을 통해서 노동운동을 한단계 진전시키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운동이 좀더 사회적 의제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문제의식도 심화되었을 것이다. 여러가지 위기의 징후는 노동운동의 내적 역량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것들이라는 인식도 커졌다.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한 지 이미 오래된 민주노총이, 민주화 이후 대화와 타협을 사회문제 해결의 일반적 기제로 여기며 어떤 측면에서는 그것을 맹신하기조차 하는 전체 사회·문화적 분위기를 마냥 외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런 정황들이 올해 출범한 이수호 위원장의 민주노총 제4기 지도부가 노·사·정 간의 사회적 대화를 추구하게 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대화에 대한 논의가 잦아지는 것은 자본과 국가에도 그 필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자본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간의 노동체제 변화과정은 그리 불만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비정규직과 사내하청을 늘려 정규직의 임금부담을 전가함으로써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한 노동 내부의 분열도 자본으로서는 마다할 일이 아니었으며, 외환위기를 통해 확보된 해고권한은 경기변동에 대응하여 수량적 유연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달콤함에 댓가가 없지는 않았다. 노자간의 불신을 제도적으로 고착시키는 현 체제는 작업장에서 숙련의 잇점을 얻어낼 수도 없고, 노동자의 기업에 대한 헌신도를 낮추고 통제비용을 증가시키는 체제이며,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자본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체제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독점자본에 한정될 뿐 중소자본은 현재 재생산의 위기에 처해 있다.

국민경제적 관점을 회피할 수 없는 국가의 입장에서도 현재의 상황은 문제적이다. 앞서 지적했듯이 사회적·경제적 양극화는 심화되고 있으며, 그것은 고스란히 사회적 안전망 구축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전체 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춘 소수 대기업의 수출에 의존하는 체제 또한 매우 불안정한 경제체제이다. 따라서 국가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서 국민경제를 경쟁력있고 건전하게 만들 수 있는 노동체제를 창출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는 노동계가 현 노동법의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생각하는 직권중재라는 카드를 꺼내들었고, 이에 사회적 대화 분위기는 급격히 식어버렸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의 분위기는 다시 조성될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노·사·정 3자가 서로 만족할 만한 타협으로 나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말이 대화이고 타협이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투쟁은 매우 격렬할 것이며, 자본과 국가 사이에 이해관심의 차이가 생겨나긴 했어도 양자간의 신자유주의적 동맹은 아직 매우 강력하다. 따라서 노동의 입장은 전혀 유리하지 않다. 더구나 민주노총은 노동계 지분을 보수적이고 타협적인 한국노총과 분점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안정 및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문제 해결, 산별노조화에 대한 보장 등을 선결조건으로 내걸지 않고, 노사정위원회의 구성 및 권한 재조정만을 거쳐 조건없이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운동에 다시 한번 덫으로 작용할 위험이 크다. 현재의 국면에서 새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는 것을 전술적인 것으로 격하하면서 참여를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노사정위원회를 일단 탑승했다가 잘못 탔음을 알고 다음 모퉁이에서 내릴 수 있는 버스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느슨하고 애매하긴 해도 대중의 시선과 그것에 근거한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오히려 노동운동이 오랫동안 상실해온 사회·문화적 영향력을 복원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이념적 하향평준화를 겪으며 경제주의에 갇혀온 노동운동이 사회운동적 성격을 회복하고, ‘영향력―정치화’ 노선의 함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6. 노동운동의 사회적 영향력 확대하기

 

조직화―연대투쟁의 노선을 대치하는 것으로 임영일이 제시했던 영향력―정치화라는 노선은, 정치화의 경우 민주노동당과 연계되고 영향력의 경우 산별노조 및 산별교섭과 연계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하지만 영향력―정치화라는 말은 매우 풍부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포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조직 확대를 통한 투쟁력 강화에 주력하는 것보다 산별교섭 등을 통해 사회적 가이드라인을 형성하고 그것을 전체 노동현장에 확산해나가는 것에 ‘영향력’이란 말을 한정하는 것은 너무도 폭이 좁은 것이다. 이 말은 노동운동 자체가 사회적인 수준에서 영향력 내지 헤게모니적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일 수 있으며, 그럴 필요가 있다. 그럴 경우 그것으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는 함의는 다양하다.

노동운동에서 가장 잘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현재 노동운동 전체의 조직적·물질적 토대이지만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장에서 노동운동 전체를 곤혹스런 위치로 빠뜨리는 존재이기도 하다. 올 여름 투쟁에서도 LG칼텍스 노조의 10.5%의 임금인상 요구는, 그들이 내건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나 다국적 석유자본인 셰브론텍사코의 과실송금 문제 같은 것을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고 노동운동의 고립을 야기시킨 한 원인이 되었다. 물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얼마나 유해한 환경에서 일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상대적 고임금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상당한 근속연한과 야근·특근을 밥먹듯이 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에 대해 사회가 눈감고 있다고 그들은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물가가 오르고 집값이 오르고 교육비가 치솟는 사회에서 임금인상이라고 해봐야 실질임금 수준에서 상승이 있다고 말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이데올로기적 정황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엄정한 사실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으며, 그런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강한 절제심을 보여야 한다. 예컨대 임금인상 요구를 극도로 자제하고 비정규직이나 사내 하청기업 노동자의 처우개선 같은 쟁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혹자는 바로 그런 것이 산별노조를 통해서 이룩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산별노조는 연대를 생성할 수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연대를 생성하도록 하는 제도형성 과정 역시 매우 강력한 연대에 의존한다. 연대란 단순한 동류의식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가 어떤 사회적 빚을 지고 있다는 자의식에서 비롯된 도덕적 의무감을 이르는 것이다. 정규직의 상대적 고임금과 비정규직의 저임금은 동전의 양면이다. 물론 이 양면을 결합하게 하는 동력은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자본으로부터 나오며, 그 격차를 줄이는 자원 또한 자본으로부터 나와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것을 압박하고 요구할 수 있는 힘은 정규직의 연대감 없이는 불가능하다.산별노조의 건설과 확장 또한 이런 연대감에 기초를 두며, 이런 연대감의 입증을 통해서만 이데올로기적 덫에서 빠져나와 영향력을 확장할 수 있다.

정규직 노동자에게 임금인상의 자제 내지 동결 요구는 물론 매우 가혹한 것일 뿐 아니라 실제로 노동현장에서 이런 주장이 지지를 얻어내기는 몹시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인상 절제를 보완하는 사회적 임금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주택문제, 교육문제 그리고 의료문제 등의 개선이 그런 것이다. 사실 주택과 자녀의 교육비용은 어렵게 벌어들인 임금을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수렁이나 다름없고 그런만큼 이런 사회문제는 사실 노동문제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이런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요구와 투쟁은 노동문제의 사회화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사회적 의제들은 노동자와 중간층 간의 연대가 중요한 관심사가 됨을 시사하며,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 필요성을 제기한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은 사안별로 협력해왔다. 하지만 암암리에 노동운동 진영에는 시민운동을 언론플레이에나 능한 명망가 중심의 개량주의 운동으로 폄훼하는 분위기가, 시민운동 진영에는 노동운동을 이미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적 이익집단운동으로 무시하는 분위기가 있어왔다. 하지만 노동운동은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사회문제와 노동문제의 연관 지점에서 새로운 운동을 전개해야 할 싯점에 있고, 시민운동은 자신의 토대인 개혁적인 중간층의 생활이 하강 일로에 있기에 노동문제와 빈곤문제를 도외시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따라서 시민운동의 진보적 분파와 노동운동이 불신을 거두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누어야 할 때이다.

 

 

7. 정치를 확장하고 심화하기

 

노동계에서 정치의 문제는 오랫동안 독자적인 정치세력화의 문제로 고민되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실현되었다. 하지만 현 민주노동당의 정치적 힘이 노동자들의 비상을 위한 날개가 돼줄 수준이 아님은 지난 몇달간의 국회 풍경을 곁눈질로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몇번의 총선을 더 거쳐야 그렇게 될까? 아마도 총선을 거듭함에 따라 사정은 나아질 것이며, 더 빨리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이상의 정치를 동시에 생각해야 할 때이다. 요컨대 정치를 확장하고 심화해야 할 때이다. 정치의 확장과 심화를 생각하기 위해서 오래된 단어들을 불러들여보자.19세기부터 노동운동은 언제나 노동해방과 인간해방을 추구해왔다. 그런 해방은 어느 순간 갑자기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해방과정의 해방성에 의해서 차츰 가다듬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동운동의 자기이익 추구의 밑바닥에 비록 가늘다 하더라도 해방된 삶에 대한 추구가 숨쉬고 있다면, 그것은 대안적 형태의 삶을 추구하는 운동이기도 해야 한다.

이 점에서 조주은의 『현대가족 이야기』(이가서 2004)는 매우 시사적이다. 그녀는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부인들의 삶을 분석함으로써 대기업 노동자의 생활이 쉽사리 빠져나오기 어려운 재생산 메커니즘 속에 있음을 보여주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기본급은 낮다. 그들이 중간층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야간근무와 주간근무를 1주씩 교대로 수행해야 하며, 주말 특근과 잔업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이런 강도높은 노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업주부의 철저한 배려가 필요하다. 대공장의 강력한 노동규율이 강력한 성별분업과 가족생활에서의 가부장제를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여성들에게 매우 제한된 삶을 강요하는 동시에 남성노동자가 자녀와 아내를 위해서 힘겨운 장시간 노동을 감내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노동자는 오직 자신의 가족생활이라는 좁은 테두리 안에 갇혀버리게 된다. 그들의 삶은 결국 그들이 속한 한국사회의 부정적 모습에 짓눌려 있는 것이며, 겨우 얻은 소박한 경제적 안정 유지와 가족의 미래에 대한 투자에 여념이 없는 안타까운 삶이다.

조주은의 연구는 이런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 자체가 정치의 대상이 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것을 이렇게 구상해볼 수 있다. 남성노동자들이 다소 임금 삭감을 각오하더라도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얻어진 시간은 아내의 사회생활과 노동을 보조하는 가사노동에 할애하는 한편, 사회화된 활동, 예컨대 지역사회 활동이나 노조활동 그리고 NGO 활동 등에 투여하는 것이다. 이런 노력은 일자리 나누기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시에 가족문화의 가부장성을 극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요컨대 노동자들이 임금과 시간의 교환을 통해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게 되면,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여성·평화·환경·복지·지방자치 같은 의제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이웃과 함께 그런 의제에 대해 씨름하는 경험은 노동자의 삶을 새로운 수준으로 승화시켜갈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전국적인 지지를 받지만 지역정치의 토대를 결여한 민주노동당을 발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이 정당정치와는 다른 수준의 정치, 즉 다른 지방의 정치를 발견하도록 할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 과정에서 연대의 범위를 지역사회로 확장하며, 여기서도 다시 한번 시민운동(이번에는 풀뿌리 시민운동)과 만나게 될 것이다. 너무 예가 구체적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노동자들의 정치가 생활의 정치, 지역의 정치로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영향력과 정치화의 노선을 발전시켜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며, 그것을 위해서 전과 다른 새로운 발상과 새로운 언어 그리고 새로운 행동이 요구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런 새로운 언어와 사고와 행동은 위기에 대한 깊은 자각으로부터 움터나올 것이다. 부디 노동운동이, 팽팽히 긴장한 날갯짓으로 사냥꾼의 올무를 피해 날아오르는 새처럼 현재의 위기를 이겨내고 비상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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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리고 산별교섭은 아니지만 자동차산업의 경우에는 예년과 달리 짧은 파업기간을 거쳐 곧장 단체협상이 체결되었으며, 한국자동차공업협회와 금속연맹 사이에 자동차노사협의체가 만들어져 산업공동화 방지, 고용창출, 친환경 차량과 인적자원 개발 등에 대해 합의했다.이런 자동차산업의 업종별 협의가 산별교섭으로의 전환을 직접적으로 예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징후로 볼 수 있다.
  2. ‘87년 노동체제’는 87년 이후 형성된 국가·자본·노동 간의 구조화된 상호작용 패턴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노중기에 의해서 처음 쓰여진 이후 비교적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노중기의 개념화보다는 좀더 폭넓게 사용했다. 현재 우리 사회가 87년 민주화 이행을 통해서 형성된 사회체제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87년 노동체제’ 개념을 확장하여 전체 사회체제로서의 ‘87년 체제’를 규명하고 이를 통해 ‘87년 노동체제’를 전체 사회체제와 연관해서 다시 설명할 필요가 있다.
  3. 박준식 『세계화와 노동체제』, 한울 2001, 제2장 참조.
  4. 정이환 외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노동복지』, 인간과복지 2003, 제10장 참조.
  5.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경제양극화의 원인과 정책과제」(2004.7) 참조.
  6. 물론 제조업 공동화가 현재 뚜렷이 일어나고 있다고 단언하기는 쉽지 않다.2000년 이후 자주 논의되는 제조업 공동화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공세로서의 제조업 공동화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의 투자전략의 결과로 실제 진행되는 제조업 공동화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이데올로기적 공세였다. 하지만 2002년 이후 최근 상황은 자본의 투자전략의 결과로서 제조업 공동화가 일어날 위험이 감지되고 있다.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대한 직접투자의 동향은 국내에서 임금경쟁력을 잃은 중소기업 중심에서 대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 자본의 투자전략으로서의 제조업 공동화는 이제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수출입은행 「우리나라의 대중국 투자 현지법인 경영현황 분석」(2004) 및 신용상 「우리나라 수출입 구조의 변화와 정책시사점: 고용정체형 성장에 대한 의미」(2004년 3월 19일 한국은행 기자단 쎄미나 자료) 참조.
  7. 노중기 「한국의 노동정치체제 변동,1987~1997년」, 한국산업사회학회 『경제와 사회』 1997년 겨울호(36호),128~56면; 임영일 「한국노동체제의 전환과 노사관계」, 『경제와 사회』 1998년 겨울호(40호),102~24면; 김유선 「민주노조운동의 혁신을 위한 제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노동사회』 제125호(1998),16~31면; 조돈문 「민주노조운동의 조건과 과제」, 노동조합기업경영연구소 『민주노동과 대안』 제70호(2004),118~41면 참조. 이밖에 이들의 다른 글 역시 참조할 만하다.
  8. 임영일은 산별협약이 가진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산별 최저임금제를 예로 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산별노조가 ‘산별 최저임금’을 추진하면 구체적으로는 대략 이렇게 될 것이다. 즉 조직 내부의 임금분포를 조사한다. 토론을 통해 하한선 기준을 정한다(다른 나라 사례를 보면 대략 조직 내부의 하위 20%를 기준으로 한다). 이를 산별 최저임금선으로 해서 요구안을 만든다. 사용자들은 반대할 것이다. 밀고 당기고 하는 과정이 있겠지만, 처음인만큼 노조가 좀 양보해서(안하면 좋겠지만) 하위 10%선으로 합의했다고 하자. 이 하위 10%의 기업 조합원은 산별노조의 최저임금 설정에 따라 협약임금과 상관없이 혜택을 받는다. 만일 해당 사업장이 경영이 어려워 결사적으로 안된다고 한다면 인쎈티브를 줄 수 있다. 예컨대 산별 최저임금 유지를 위한 노사공동기금을 만들자고 하든지(노조도 좀 출연하면 된다), 하청 단가를 좀 올려주자고 하든지, 아니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 요청해서 해당업체들에 대해 세제혜택이나 한시적 보조금을 좀 주자고 한다든지, 이렇게 하는 것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해보면 알 것이다.”(임영일 「어떤 노동교육의 경험담: 산별교섭, 산별협약」, 『연대와 실천』 116호 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