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규정 李圭正

1937년 일본 쿄오또 출생. 경남 함안에서 성장. 1977년 『시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당신 손에 맡긴 영혼』, 장편소설 『먼땅 가까운 하늘』 등이 있음. kj9432@yahoo.co.kr

 

 

 

매헌 오팔삼 약전

 

 

1

 

매헌(梅軒) 오팔삼(吳捌森) 선생이 목욕탕에서 쓰러진 것은 지난 3월 9일 새벽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일본의 전·현직 정치인의 망언소식을 접하면 그만 목뒤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 한동안 눈앞이 캄캄해지곤 했다. 심하면 손발이 저리고 가슴 두근거리는 증세까지 곁들여졌다. 목욕탕에서 쓰러지기 전날 그는 망언기사를 신문에서 봤다. 일본이 심심하면 하는 소리지만 독도가 일본 영토란 것이었다. 게다가 한일합방은 조선 정치인들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고, 그 결과 한국이 발전했으므로 한국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는 망언도 있었다. 기사를 읽는 순간 뒷골이 당기면서 손발 저리는 증세가 또 나타났다. 그러나 늘 그랬듯이 그 증세는 시간이 지나자 사라졌다. 하지만 쉽게 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여태까지의 망언 중 가장 자존심 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원해서 한일합방이 된 것이라니! 천벌을 받을 놈들! 그의 얼굴은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아무리 혼자 달래려고 해도 분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오후에 여암(餘巖)을 불러 남천동 식당에서 맥주를 한잔했다. 여암은 대구사범 선배이면서 옥살이를 함께한 동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울적한 심기만 발동하면 그를 만나곤 했다.

“그따위 왜놈들 망언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닌데 매헌은 뭘 그리 흥분하는지 원……”

“어허, 여암 선배는 언제부터 달관한 것처럼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네. 속은 나보다 더 안 편하면서.”

“그런 말 듣고 속 편한 사람이야 없겠지. 하지만 왜놈들의 그런 시답잖은 소리에 흥분하면 건강만 해치니까 하는 소리지.”

여암은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왜놈들이 아무리 헛소리를 해도 세계의 운세가 우리한테로 몰리고 있어. 우리 민족에 바야흐로 세계의 길운(吉運)이 도래하고 있다는 말이지. 영화만 해도 일본은 물론 영화의 본산지인 미국을 앞지르고 있고, 젊은 가수들 노래도 그렇다고 하더만. 소위 한류(韓流)열풍이 온 아시아를 석권하는 것만 봐도 그래. 그리고 중국이 소위 동북공정이란 정책으로 고구려 역사를 자기네 역사로 편입하려는 것도 우리의 욱일승천의 운세를 두려워해서 그러는 거 아니겠어? 이제 일본의 운세는 한물간 것이니 정신나간 왜놈의 말 신경쓸 것 없어요.”

오팔삼은 말없이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그렇게만 된다면야 오죽 좋으랴 생각했다. 그는 요즘 우리의 정쟁(政爭)이 한일합방 무렵의 정쟁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해가 지자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어둡기 전에 들어오라는 할멈의 당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는 어두워지면 바깥출입을 삼간다. 낮에는 괜찮다가도 어둠만 깔리면 아랫도리가 휘둘리면서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 여느날과 같이 텔레비전 뉴스를 시청했는데 온 얼굴을 찡그리며 혀를 끌끌 찼다. 일단 뽑힌 대통령에 대해서는 승복해야 하는데,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늘 헐뜯고 걸핏하면 탄핵 운운하고 있으니 도대체 저것들이 국민을 염두에 두고 있기나 한지 의심스러웠다.

다음날 새벽, 늘 하던 대로 산책을 했다. 산책이라지만 아침마다 걷기운동을 하는 것이다. 한 삼사십분 동안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몸에 땀이 밴다. 그런 다음 목욕탕에 가서 샤워를 하면 말할 수 없이 상쾌해진다. 샤워기의 꼭지를 돌리려는데 갑자기 팔이 이상했다. 겨우 팔을 들었으나 이번에는 꼭지를 돌릴 수가 없었다. 운동을 나설 때부터 약간의 현기증이 있었고, 가슴에 경미한 통증이 있었다. 그런 통증은 처음이었다. 오래전부터 심장약을 먹고 있었고 좀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겼다. 겨우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려는데 그때부터는 손이 영 말을 듣지 않았다. 왼쪽 가슴이 아주 많이 아프기 시작했다. 면도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탈의실로 나오려는데 그만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목욕탕에는 오팔삼이 아침마다 보는 낯익은 얼굴들이 많았다. 그중 한사람이 급히 오팔삼의 집으로 연락하고 구급차를 불렀다. 오팔삼의 부인이 목욕탕으로 달려온 얼마 후에 119 구급차가 싸이렌을 울리며 도착했다. 오팔삼은 차에 실렸고, 부인 마리아씨는 사위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오팔삼은 참으로 오래간만에 할머니를 뵈었다. 할머니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반가운 나머지 엎드려 절부터 하려고 하자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면서 매정하게 말했다.

“절은 무슨 절! 니가 여기는 웬일이고? 여기는 안죽 니가 올 데가 아니니 썩 돌아가거라!”

할머니는 깨끗한 모시적삼에 모시치마를 입은 젊은 시절의 모습이었는데 절을 받기는커녕 무서운 얼굴을 하고 얼른 돌아가라는 말만 했다. 참으로 서운했다. 절대로 그럴 할머니가 아니었다. 오팔삼이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어머니를 이별하자 할머니는 동냥젖을 얻어먹이기도 하고 암죽을 끓여먹이기도 하며 그를 키웠다. 그렇게 애지중지 어렵게 키운 손자를 보고도 쌀쌀맞게 대하다니! 이번에는 청년 너댓 사람이 안에서 줄레줄레 나와 그를 에워싸더니 한마디씩 했다.

“야, 완산지호(完山志鎬)! 자네 참 오랜만이네그려.”

“완산지호가 아니라 오팔삼이지 오팔삼. 그래, 한밭감옥에서 헤어진 후로 처음이니 이게 얼마 만인가!”

“그래, 자네가 평생을 후진교육에 힘썼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 일 다 마치고 여길 왔는가?”

“허 참, 완산지혼지 오팔삼인지 자네는 할 일이 더 있을 텐데 벌써 여길 왔어?”

이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면서 오팔삼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자 영화에서 희미한 윤곽이 차츰 또렷해질 때처럼 하나하나 얼굴이 되살아났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대전감옥에서 고생하다가 옥사한 동지인 강두안, 박찬웅, 장세파, 박제민, 서진구가 아닌가. 그는 반가운 나머지 그들을 얼싸안고 소리쳤다.

“어, 동지들……”

그는 하도 반가워 뒷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완산지호’는 대구사범학교 시절 일본인 검도선생이 지어준 이지호의 창씨개명이었다. 전주 이씨라고 해서 그 관향과 관계있는 완산을 일본식 성으로 썼다. 그러나 조선인 학생들은 이 넉자의 일본식 이름을 한번도 일본식 발음으로 부르지 않았다. 오팔삼도 친구들의 창씨개명을 일본식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일본 지명이나 인명을 일본식 발음으로는 절대 부르지 않는다.

오팔삼(吳捌森), 이 이름은 이지호가 스스로 붙인 자신의 별명이었다. 대전감옥에서의 죄수번호가 583이어서 성은 오(吳)로 하고, 온 나라의 숲〔森〕이 모두 깨지는〔捌〕 판이라는 심정에서 생각한 별명이었다. 숲이란 젊은 혈기와 정의감으로 항일운동에 앞장선 생명력 넘치던 학생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 별명에 숨겨진 뜻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출옥하고 나서도 이 이름을 계속 썼다. 어쩐지 본명보다 더 정다웠다. 동지들 중의 하나가 말했다.

“그래. 자네는 조모님 말씀을 듣게. 아직 여기에 와서는 안될 몸이야. 우리 대신 해야 할 일이 좀 많은가. 온 국민이 정신을 잃고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소식 우리도 다 아네. 도대체 나라에 제 노릇을 하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거든. 허 참,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 모진 고문과 감옥살이 끝에 옥사했던가! 그러니 자네라도 남아서 생각 짧은 인간들을 꾸짖고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해. 진정한 어른노릇을 하라는 말이네.”

그러자 또 누가 거들었다.

“옳은 말이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을 바로 차리라고 했는데, 지금 우리 국민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 진정으로 잘사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모르고 있어. 잘 먹고 즐기면 잘사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어. 민족의 줏대나 정체성을 잃어버렸단 말이네. 온 국민이 우리말과 글자를 중시하고 있는가?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자도 있다더군. 이런 얼빠진 민족이 이 지구상에 또 어디에 있는가. 우리 다섯 사람말고도, 우리 글과 말을 지키려다 순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선열의 정신을 잊어버린 놈들이 3·1절과 광복절 기념행사는 왜 해? 앞뒤가 안 맞는 노릇이지!”

“맞는 소리네. 요새 일부 젊은층은 아예 민족이란 개념을 생각지 않으려 한다니, 이런 낭패가 있는가? 국민에게 민족의 자존심이란 게 온통 사라지니 너도나도 이민을 가는 거고, 애 밴 계집들은 다투어 미국에 가서 해산을 하는 거 아닌가. 이러니 자네라도 남아서 우리가 못하는 따끔한 말을 해야 하네!”

평소에 아무리 말해봐도 듣는 사람이 없었는데, 자신의 동조자를 여기서 만나다니! 오팔삼은 너무도 감격스러워 눈물이 맺혔다.

“동지들 말씀이 일일이 언즉시야(言則是也)요마는 동지들 만난 김에 여기서 조금만 더 놀다가 돌아갈라오.”

“그런 게 아니라니까! 여기는 오래 있을 곳이 못돼. 그러니 지금 바로 돌아가게!”

선배인 박찬웅이 명령조로 말한 뒤 심상찮은 눈짓을 하자 동지들이 득달같이 오팔삼의 몸을 번쩍 들어 문밖으로 던져버렸다.

“할매애!”

그는 어릴 때부터 ‘엄마’란 말 대신 ‘할매’만 불렀다. 그때 누가 오팔삼의 몸을 흔들면서 말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인자 정신이 좀 드능교?”

오팔삼은 긴 잠에서 깨어난 듯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생명의 3월, 눈부신 햇살을 가린 병실의 연녹색 커튼이었다. 어리둥절해 눈을 돌리자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할멈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어, 여기가 어디요?”

말을 하는데 어쩐지 소리가 신통치 않았다. 코끝에 산소호흡기 호스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박서방 병원 아잉교.”

“가만있자, 내가 여기는 어찌 왔을꼬?”

“그만 되기 만번 다행이요. 아침에 목욕탕에서……”

아침에 목욕탕에서? 그랬구나! 어제 왜놈의 망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