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인터뷰

 

여성운동의 중심에 물음표를 매긴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정현백 대표와의 대화

 

 

정희진 tobrazil@naver.com

 

지금 한국사회에서 젠더(gender)는 일상생활부터 국가정책, 사회운동, 국제관계, 지식사회에 이르기까지 가장 첨예한 논쟁 주제 중 하나다. 세계적으로도 페미니스트들은 자기 공동체에서 새로운 지식 생산과 대안적 사회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여성학회와 이화여대가 공동 주최하여 성황리에 치러진 제9차 세계여성학대회의 주제는 ‘경계를 넘어서’(Embracing the Earth)였다. 경계(b/order)와 연대에 관한 사유인 여성주의는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 국가, 지역 같은 기존 질서에 의문을 제기한다. 여성주의는 인간과 사회현상을 ‘온전히’파악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상상하는 데 있어서, 자기 성장과 사회변화를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정치학으로 부상하고 있다.

鄭鉉栢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주요 저서로 『민족과 페미니즘』 『노동운동과 노동자문화』 등이 있음.

특히 1990년대 이후 한국 여성운동의 급속한 발전은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 UN등에 ‘군위안부’문제를 보편적인 인권의제로 제기하는 데 성공했고, 계층과 세대를 아울러 여성운동이 가장 활발한 사회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급격한 주류화·제도화에 따른 국가와의 관계정립, 계급 등 여성들간의 차이, 성인지적 관점(genderperspective)에서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 그리고 여전한 남성중심적 일상문화와의 투쟁 등 산적한 과제를 앞두고 논쟁과 모색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성장통의 한복판에서 지난 20여년간 여성운동을 주도해온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연)의 정현백 대표를 만났다. 나는 말이든 글이든 ‘지당하신 말씀’이나 ‘홍보용 멘트’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다행히 ‘도전’인터뷰라는 지면의 특성상 기탄없는 논쟁적 대화가 가능했다. 인터뷰를 통해 여성운동의 주장을 알리기보다는 여성들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고 싶었다. 차이가 발생시키는 긴장이 여성운동의 힘과 가능성이 되리라 믿는다.

 

정희진•선생님을 처음 뵌 것은 제가 1992년 ‘여성의전화’에서 상근자로 일할 때였어요. 예전 신촌 석탑노동상담실 건물에서 여성운동 강의를 하셨는데, 독일 예를 들면서 가부장제는 얼마든지 변화가능하다고 말씀하셨죠. 독일남성들은 가사노동에 많이 참여하고 특히 요리를 잘하는데, 그건 독일의 음식조리법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책자를 보고 곧바로 식사준비가 가능하다,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인상적이었어요. 한국음식은 조리가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죠. 계량화도 쉽지 않고. 오늘 인터뷰를 이 얘기로 시작해볼까요? 사회마다 일상문화의 차이가 구조적 성별 권력관계를 다르게 구성하잖아요. 다시 말해, 가부장제는 초역사적인 것이 아니라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사회적 산물임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회 여성의 삶은 우리 사회의 가부장제를 상대화할 수 있는 상상력과 용기를 준다고 봅니다.

鄭喜鎭
연세대 여성학 강사.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 주요 저서로 『페미니즘의 도전』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가정폭력과 여성인권』 등이 있음.

정현백•네, 그 강의 기억합니다. 저는 한국 사회운동이 여전히 일상적 실천에 대해 둔감하다고 봅니다. 예컨대 요즘 양극화 해소방안에 대한 논의가 많잖아요.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지면 국민들이 만족할까요? 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잘사는 것’에 대한 개념이 변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개인이 문화적 실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요. 남성이 밤 10시, 11시에 퇴근하는 한 가사분담이 어렵지요.

정희진•지금 유럽에서는 주5일제 근무로 부부갈등이 심해지고 이혼율이 높아질 조짐이라고 합니다. 주5일제로 배우자들이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까 가사분담 갈등이 생기는 거죠.

정현백•그렇죠. 하지만 이혼율이 높아져도, 구소련처럼 동일노동·동일임금을 실시하면 재혼도 많아집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비판할지 모르지만, 저는 우리나라의 소비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국민소득이라는 것이 참 허구적이라고 생각해요. 국민소득이 3천 달러 정도인 에스토니아나 리투아니아에 가보면 사람들이 얼마나 절제있고 교양있게 사는지가 거리에서도 느껴지거든요. 우리는 사회운동조차 모든 것을 경제와 정치의 문제로 환원해버립니다. 물론 정치와 경제가 문제해결의 기본구조가 되기는 하지만 정작 행복해지는 방법은 다른 데 있다는 거죠.

정희진•한국이 술, 담배, 의류, 화장품 소비수준이 세계 1위라던데요.

정현백•그래요, 우리는 자신의 소비욕망이 굉장히 높은 것 자체에 불감증이 있습니다. 이 얘기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한국이 어려울 때 노동운동을 지원해주던 ‘인간의 대지’라는 독일 NGO가 있어요. 저와 친한 그 단체의 활동가가 이런 얘기를 해주었어요. 자기랑 같이 68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꼽아보니까 나중에는 3분의 1 정도가 자살했더래요. 68운동이 실패하고 자본주의 씨스템이 완벽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 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들은 자기 삶의 의미에 대해 상당히 치열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아버지, 어머니 때문에 살아야 하고, 자식 때문에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할 이유가 굉장히 많죠.(웃음)

정희진•재미있는 얘기인데요.

정현백•그런데 제가 꼭 자살을 권장하는 것 같잖아요.(웃음)

정희진•선생님이 권장하지 않으셔도, 이미 우리나라 20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입니다.

정현백•서구에서는 좌파들이 자살도 많이 하고 이혼도 많이 해요. 현실에서 타협을 못하는 거죠.

정희진•우리나라는 좌파 지식인이 이혼하면 아웃일걸요. 진보진영도 굉장한 가족주의 사회죠. 그럼 이제 ‘준비해온’질문을 시작할까요.(웃음) 선생님께서는 ‘여성학’과 ‘여성운동’양 진영에서 활동해오셨고, 여성사에서 평화운동까지 관심사도 상당히 다양합니다. 또한 여성운동계에서는 ‘대표적’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여성주의자에게 ‘이론’과 ‘실천’의 관계는 기존 지식인에 있어서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요, 서구의 경우 여성학의 아카데미즘화가 심각하지만, 저는 여전히 ‘강단 좌파’는 있어도 ‘강단 페미니스트’는 드물다고 봅니다. 여성주의는 보편성의 철학이자, 자기 일상을 정치화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정체성의 정치이기 때문이죠.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여성학과 여성운동의 충돌?

 

정현백•여성학자들이 남성 진보지식인에 비해서 실천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희진 선생 의견은 별로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요. 사실 운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성학과 여성운동 사이에 일정한 거리감을 느낍니다. 여성운동가는 현실에 책임을 져야 하거든요. 안 그러면 운동은 망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여성학자는 주로 글쓰기를 통해 실천하기 때문에 부담이 적죠. 그래서인지 여성학 쪽에서 이상적인 얘기를 하면서 운동을 비판하거나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운동을 평가하는 경우가 있어요. 또 우리 사회는 학자는 많은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은 얻기 힘들 때가 많아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FTA에 관한 여성대책위원회를 만들었는데, FTA가 여성에게 어떻게 성별화된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해 외국 사례를 분석한 논문 한편이 없고, 주변에 그 주제를 연구해 글을 쓸 여성학자가 없어요. 실천이 없으면 이론도 역동적으로 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에, 여성주의자는 실천을 병행해야 합니다.

정희진•말씀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선생님 논지는 자칫 “여성학과 여성운동이 만나야 한다”는 당위적인 이야기가 되기 쉽지 않은가 생각하는데요. 저는 이론과 실천의 개념과 이들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급박한 ‘현장’에서 요구되는 지식이 분명히 있지요. 그러나 그것이 담론화되고 이론화되기에는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합니다. 사실 지식, 교육, 언어, 담론 이런 것 자체가 이미 계급적 산물이고, 여기에 운동과 언어의 시간차가 발생합니다. 이론과 실천의 구분 자체에 의문을 제기해보면 어떨까요? 이론, 언어 자체가 물질적인 힘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어떤 면에서는 선생님과 반대로, 여성의 변화된 현실에 비해 여성주의 담론이 빈약하다고 보고, 이것이 운동에 제약을 가져온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에게 근대교육이 ‘허락’된 지 겨우 한세기 정도가 지났지요. “여성이 글을 배우기 시작하자 여성문제가 생겨났다”는 말이 있잖아요? 여성주의 지식은 급진적이거나 이상적인 것 혹은 시기상조가 아니라, 운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현백•그렇기는 하지만, 일단 운동과 이론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면은 지적되어야 합니다. 이건 좀 논쟁적인 문제인데, 저는 여성학 이론 전공자들이 너무 정체성의 정치나 쎅슈얼리티에 집중하는 탓에, 우리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사회구조와 여성문제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하지 않은가 생각해요.

정희진•글쎄요, 그 얘기를 하려면 일단 쎅슈얼리티가 무엇인가부터 얘기해야겠죠. 저는 쎅슈얼리티가 몸에 관한 사회적 해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개입되지 않은 정치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여성노동은 성애화(sexualization)되고, 성문화 자체가 매춘화된 지구화시대에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쎅슈얼리티를 빼놓고 논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정체성의 정치적 의미는 문맥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국남성과 이야기할 때는 ‘페미니스트’가 되지만, 미국여성과 만날 때는 ‘민족주의자’가 되죠. 여성들이 여성운동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적 구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논리는, 여성문제(gender issues)는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문제라는 인식이 전제된 게 아닐까요? 이런 논리대로라면 미국의 여성학자 오드리 로드(Audre Lorde)는 흑인, 여성, 레즈비언, 장애인이니까 네 가지 운동을 모두 해야 하죠. 이렇게 말하기는 싫지만, 지금 우리 여성운동이 공적 영역 이슈 중심이기 때문에, 사적인 문제로 간주되는 쎅슈얼리티에 대해 불편한 시각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정현백•쎅슈얼리티를 몸에 관한 사회적 해석이라는 좀더 광범한 의미로 사용한다면, 앞에 내가 한 발언은 수정해야겠네요. 그러나 그렇게 정의를 내리는 데도 토론이 필요할 텐데, 이 문제는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군요. 그런데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