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 제13회 창비신인평론상 당선작

 

장자(長子)의 그림, 처남(妻男)들의 연주

문태준·황병승론

 

 

김종훈 金鍾勳

1972년 서울 출생.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 박사과정 수료. splive@chol.com

 

 

 

1. 두 사내 이야기

 

나무에 둘러싸인 사람이 사내1이다. 사내1의 주위에는 가죽나무, 팽나무, 개복숭아나무, 아카시아나무, 배나무, 팥배나무, 탱자나무, 호두나무 등이 있다. 그곳은 삼림욕장이나 식물원이 아니기 때문에 숲이나 마을 어귀이며, 관람객이 지나치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사람들은 토착인이다. 토착인들이 살기 때문에 그곳은 도시가 아니고, 도시가 아니기 때문에 농촌이다. 농촌이 대개 그러하듯, 그들은 아마 사내1의 친족들일 것이다. 사내1의 친족들은, 그들이 함께 사는 농촌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기 때문에 대개 사내1의 기억 속에 사는 과거의 사람들이다. 과거의 사람들 사이사이에 서 있는 나무들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거나 삶을 떠나기 이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현재의 나무들이다.

사내1에 1의 번호를 매긴 것은 사내2가 있기 때문이다. 사내2는 다카하시 미츠, 니노셋게르미타바샤 제르니고코티카, 여장남자 시코쿠, 주치의 h, 메어리, 앨리스 부인, 프랑스 이모, 고양이 짐보, 대야미의 소녀 등에게 말을 건넨다. 이들이 사는 곳은 현실이 아닌 듯하다. 사내2는 지금 이들이 등장하는 책이나 비디오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 같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들과의 대화이기 때문에 그의 말은 독백이며, 독백이기 때문에 그는 골방에 있다. 그는 골방에 있기 때문에 자연을 호명하지 않고, 자연을 호명하지 않기 때문에 도시에 산다. 사실 그는 자신이 도시에 사는지 교외에 사는지 시골에 사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앨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에 있기 때문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는 친구가 없으며 가족이 없으며 과거가 없다. 그를 사내라고 불렀으나 사실 그의 성(性)은 확실치 않다. 친구에게, 누나라고 불러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사내라고 짐작해본다.

사내1과 사내2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이들을 낳은 시인이 문태준(文泰俊)과 황병승(黃炳承)1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한명은 서정시의 중심에 서서 문단의 찬사를 한몸에 받고 있으며, 다른 한명은 서정시의 주변부에서 시의 전통에 무관심한 일군의 젊은 시인들과 함께 서 있다. 어쩌면, 사내1과 사내2의 대비는 문태준과 황병승의 대비를 넘어 전통시와 실험시의 대비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정작 이 글의 관심은 이들의 시가 지닌 힘과 그 힘에 내재하는 공통된 시의식에 있다.

 

 

2. 걱정 많은 장자와 불쌍한 처남들

 

문태준의 사내1은 장자로, 보인다. 사내1이 직접 이야기한 적은 없으나 그리 짐작해본다. 가족에 대한 장자의 책임감은 부모의 범위를 벗어나기 마련이며, 사내1의 책임감이 그와 같기 때문이다. 화령 고모(「화령 고모」), 외할머니(「옛 집터에서」 「맷돌」), 조모(「그믐이라 불리던 그녀」), 외할아버지(「사라진 뱀 이야기」), 큰아버지(「태화리에서 1」) 들을, 그는 시에 불러낸다. 또한 「가재미」에서 그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큰어머니이기 때문에 병원을 찾는다.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가재미」 부분

 

친척들은 장자를 존중한다. 사후에 그들은, 적어도 그들의 부모는, 장자에 의해 모셔진다. 자신의 뿌리가 보존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들은 생물학적 죽음이 주는 당혹감에서 탈출한다. 자신의 피가 뿌리를 매개로 자신의 육체를 우회하여 다른 가지로 뻗어나가리라 추측하면서, 그들은 재생을 믿게 된다. 그들의 유일한 밑천인, 그러나 그들이 가지고 사라져야 하는 삶의 기억들도 보존되는 피에 얹혀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장자는 친척들에게 종교적 제사장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가재미」의 장자도 이러한 친척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는 죽음이 임박한 그녀의 현재에, 그녀의 생생한 이력들을 끌어내어, 그녀의 과거와 지금 이 순간에 놀라운 활력을 부여한다. 죽음만을 보고 있는 그녀의 옆에 누워보는 행위는 위로이자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록 같은 자세를 취하더라도 죽음을 목전에 둔 이와 그것을 바라보는 이의 거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는 누워 가자미가 되어보지만 곧 일어나 병실을 나갈 것이다. 그러나 죽음을 목전에 둔 그녀 앞에서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의 이력을 이끌어내고, 그녀가 걸은 “오솔길”과, 그녀가 들었던 “뻐꾸기 소리”와, 그녀가 삶던 “가늘은 국수”를 떠올렸을 때 그녀의 과거는 장자의 입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흡사 죽은 자의 목소리를 꺼내는 무당과도 같은 그에게 홀려, 그녀는 생물학적 죽음 앞에서 복원된다.

그런데, 그녀의 죽음 직전에 마지막 삶의 불꽃이 타올랐던 이유 한편에는 사내1이 자신을 직접 장자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있다. 장자라는 인식이 상징계에서 각인되기보다는 무의식의 차원에 놓여 있어서, 적어도 그에게는 의식적으로 장자가 지닌 일반적 상징을 전용할 의도가 없는 듯하다. 이러한 시의 화자처럼, 시의 대상들도 일반적이고 관습적 의미를 배제한 채 새로운 감각을 획득하려 한다. 가령 큰어머니는 대모신(大母神)이 아니라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누워 있는 환자이며, 그녀가 지닌 저 기억들도 시 밖에서 의미를 가져오지 않는다.

 

세상 한곳 한곳 하나 하나가 저녁에 대해 말하다

 

까마귀는 하늘이 길을

  1. 이 글에서 다루는 텍스트는 문태준 시집 『수런거리는 뒤란』(창비 2000) 『맨발』(창비 2004) 『가재미』(문학과지성사 2006), 황병승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중앙 2005)이다. 작품을 인용할 때는 작품명만 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