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2564

이기호 李起昊

1972년 원주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장편소설 『사과는 잘해요』 등이 있음. antigiho@hanmail.net

 

 

 

이정(而丁)

 

 

그녀가 아들에게 개명(改名)에 대해서 처음 말한 것은 11월 하순의 일이었다. 아들이 국립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후, 함께 지리산 근처로 여행을 다녀온 직후의 일이기도 했다. 여행에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던 딸도 동행했다. 말하자면 가족여행인 셈이었다. 그 여행을 위해서 딸은 과외 아르바이트와 여론조사 설문기관 아르바이트 일정을 어렵게 조정해야만 했고, 그녀 또한 칠년째 일하고 있던 한과 공장 사장 부부에게 사정을 설명해야만 했다. 1956년생, 그러니까 그녀와 같은 해에 태어난 사장 부인은, 강정 라인과 유과 라인을 옮겨다니며 함께 일을 하곤 했는데, 어딜 갈지 아직 정하지 않았다면, 하면서 지리산 화엄사 바로 아래에 있는 콘도 이용권을 내밀었다. 그녀는 사장 부인에게 손사래를 치면서 이렇게까지 하실 필욘 없다고 했지만, 끝내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말았다. 그래서 그들 가족의 여행 목적지는 지리산이 되었다.

콘도 앞 산채비빔밥 전문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그들 가족은 화엄사 일주문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왼쪽에는 아들이, 오른쪽에는 딸이, 각각 그녀의 팔짱을 끼고 걸었다. 늦가을 바람은 선선했지만 햇살은 따사로웠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따금씩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고, 오래된 낙엽에선 튀밥을 튀기듯 고소한 냄새가 났다. 그들은 천천히 걸었고, 자주 멈춰서서 산 아래를 바라보았으며, 그녀는 이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후회도, 미련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는 그때까지만 해도 두달 후, 자신이 또다시 같은 생각에 빠지게 될 것이라곤 짐작도 하지 못했다. 두달 후, 그녀는 후회와 미련 때문에 죽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히게 된다.

 

화엄사 경내로 들어서기 전, 그들 가족은 검푸른 이끼가 낀 부도와 그 맞은편에 있는 공적비 하나를 보게 되었다. “아, 이게 이 사람 공적비구나.” 사회학을 전공하고 있는 딸이 검은 대리석으로 된 공적비 가까이 한 걸음 더 다가가며 말했다. 한국전쟁이 끝난 후 사망한 한 경찰 총경을 기리는 공적비는 고은 시인이 쓴 것이었다. ‘이제 해원의 때가 무르익었으니 천하의 영봉 지리산을 생사의 터로 삼아 동족상잔의 피어린 원한을 풀어 그 본연으로 돌아감이 옳거니 여기 근본법륜 화엄사 청정도량에 한 사람의 자취를 돌에 새겨 기리도록 함이라……’로 시작된 문장은 ‘백척간두의 상황 중에 서로 이념을 달리하는 핏줄 하나라도 구출하자는 숭고한 인간애를 낱낱이 보였으며 전설적인 상대였던 이현상의 시신을 정중하게 장사 지내기도 하였거니와 조계종 통합종단 초대 종정 이효봉 대종사로부터 감사의 뜻을 받기도 하였던바 새삼 그의 유덕을 길이 전하는 까닭을 이에 밝혀놓으니 지나는 길손이여 한 겨를 머물러주소서. 산은 여기 있고 물은 먼 데로 흘러감이라’로 마무리되었다. 딸은 소리내어 공적비 내용을 읽었고, 그녀와 아들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전쟁 때 화엄사를 소각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지만, 법당 앞에서 문짝 두개만 태우고 만 일, 덕분에 쌍계사와 선운사와 백양사도 무사하게 된 일들이 거기 씌어져 있었다. “너, 이 사람이 더 놀라운 게 뭔 줄 알아?” 딸은 아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들은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고 말았다. “이 사람 죽음에 관한 것인데……” 딸의 설명에 의하면, 젊은 시절 좌익 계열인 조선의용대 소속으로 항일유격전 활동을 한 바 있는 공적비의 주인공은, 한국전쟁 발발 이후 경찰에 특채되어 빨치산 토벌에 혁혁한 전공을 세운다. 하지만 휴전 이후, 조선의용대 경력과 이현상의 장례를 치러준 사실 때문에 좌익 혐의로 조사를 받고, 좌천도 당하게 된다. 그리고 1958년 금강 곰나루로 가족과 함께 물놀이를 나갔다가, 아들을 바위 위에 세워둔 채 「볼가강의 뱃노래」를 부르면서 뚜벅뚜벅 강으로 걸어들어갔다는 것. 그게 그의 마지막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흘 후에 강바닥에서 이 사람 시신을 찾았는데…… 전쟁 때 침수된 인민군 탱크를 꼭 끌어안은 채 죽어 있더라는 거야.”

“그럼, 그 사람도 좌익이었던 거야?”

아들이 덤덤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모르지…… 그냥 그래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얘기야.”

“나는 왜 그 사람이 꼭 아들 앞에서 그래야 했는지…… 그게 더 궁금한데?”

그녀는 딸과 아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그녀가 개명에 대해서 처음 생각한 것은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아들은 대학 진학과 동시에 ROTC 지원서를 내겠다고 말했다. 장기복무 지원을 하면 장학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아들의 설명이었다. “뭐야, 그럼 군인이 되겠다고? 차라리 육사를 가지?” 콘도 거실에 비스듬히 누워 사과를 먹던 딸이 말했다. “육사는 여름에 지원을 하거든. 그땐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고……” 아들은 잠깐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지금은 고민이 다 끝났거든.” 그녀는 사과를 깎다 말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들은 반쯤 고개를 숙인 채 주먹으로 툭툭 제 종아리를 두들기고 있었다. 신중하고 반듯한 아이였다. 아버지 없이 자랐지만 한번도 원망이나 서러움을 내보인 적이 없었다. 또 그것을 농담으로라도 쉽게 넘기려 든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들이 수학여행을 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자습했다는 사실을 후에 담임교사와의 통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학원에서 강사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강의를 들은 사실 또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꼭 그런 아들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한달에 한번 있는 공장 회식에서 술은 입에 대지도 않고 항상 아홉시 이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가끔 아들이 아버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등록금 때문이라면…… 그럴 필요 없다.”

그녀는 아들의 얼굴을 보지 않은 채 말했다.

“엄마도 다 생각이 있으니까.”

“꼭 그것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에요.”

아들은 사과 한조각을 집어들면서 말했다.

“직업군인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서 그래요. 어차피 갈 군대고……”

“엄마 때문에 그러니?”

“그냥 이것저것 다 생각해보고 결정한 거예요.”

그녀는 소리내지 않고 작게 한숨을 한번 내쉬었다.

“몸도 약한 애가 어떻게……”

“그리고 아직 어떻게 될지 몰라요. 그것도 경쟁률이 꽤 높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은 그렇게 말한 후, 허리를 뒤로 활처럼 구부리면서 스트레칭을 했다. 그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 있던 딸이 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어휴, 참 대단한 모자네. 이건 뭐 하나밖에 없는 딸을 한순간에 이기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니. 참 나……”

아들은 그 말을 듣고 농담으로라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슬쩍 미소만 지어 보였을 뿐이었다.

 

그녀는 지리산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이 지난 후, 아들에게 개명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책상에 앉아 원동기 면허시험 문제집을 보고 있던 아들은 허리를 세운 채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이름을 바꿀까 하는데……”

“이름을요?”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곤 손에 쥐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았다.

“엄마도 나중에 안 건데…… 엄마 이름이…… 그 사람 호랑 똑같다고 하더라.”

그녀의 이름은 최이정(崔而丁)이었다. 그건 박헌영의 호와 똑같은 이름이었다. 그는 한때 ‘조선의 레닌’으로 불리던 인물이었다.

“그건 그냥 우연 아닐까요? 동명이인도 많잖아요?”

아들은 책상에서 내려와 그녀 앞에 앉았다.

“그게…… 나도 네 아버지한테서 들은 얘긴데…… 한자까지 똑같다고 하더라. 그런 한자로 이름을 짓는 경우는 흔치 않다고도 하고……”

그녀의 이름을 풀어보면 ‘고무래가 되겠다’라는 뜻이었다. 그것 또한 남편에게서 들어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녀는 처음으로 아들에게 남편 이야기를 하게 된 셈이었다.

“아버지랑 헤어진 것도 그것 때문인 거예요?”

그녀는 아들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농촌진흥청에서 일했던 사람이었다.

“그럼, 외할아버지가…… 그쪽이셨던 건가요?”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그랬던 거 같아. 엄마 다섯살 때 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얼굴도 잘 기억 안 나고…… 술만 드시다가 무슨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만 들었지, 뭐.”

아들은 방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외할머니 말로는 저쪽에서 무슨 학교를 다녔다는 거 같은데…… 그 이상은 나도 몰라. 네 외할머니도 일찍 돌아가셨고 나도 곧 고향을 떴으니까.”

아들은 한참 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천천히 말했다.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장기복무 때문에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니?”

“이젠 연좌제 같은 건 없대요. 저 때문에 그러실 필욘 없어요.”

“그래도 군인인데…… 신원조회 같은 건 할 거 아니니? 엄마 이름을 알아보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만약 그게 문제가 된다면…… 개명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을 거예요. 어쨌든 기록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번엔 그녀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녀는 괜스레 손가락으로 방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써보았다.

“그래도 엄만 이번 기회에 바꾸고 싶어. 네 외할아버지가 무슨 뜻으로 이렇게 딸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젠 싫다. 더이상 이름 때문에 불안하게 살기도 싫고.”

아들은 잠시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곤 알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저자의 다른 글 더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