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금희_fmt

김금희 金錦姬

1979년 중국 지린성(吉林省) 주타이시(九台市) 출생. 2007년 『연변문학』 주관 윤동주신인문학상으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가 있음. kimkemhi@naver.com

 

 

 

옥화

 

 

여자가 떠났다. 아니, 떠났다고 한다.

“언니, 정말이에요. 아까 기차 안이라고 제게 전화 왔더라구요.” 정아가 말했다. 오후나절의 해가 아직 남아 있어서 귀갓길의 그림자가 땅바닥에 길게 드리워 있을 때였다.

“갔으니까, 이제 됐어요 언니. 내일 기도모임 나오시죠?” 정아는 뭔가 칭찬이라도 바랐다는 듯 한참 들까불다가 이내 전화를 끊었다.

‘이제 됐어요’라니? 뭐가 됐단 말인가? 얘는 말을 참 이상스레 하네, 하고 홍은 생각한다. 아파트 입구가 가까워온다. 1층에 사는 리따예가 자기 집앞 뙈기밭에서 궁싯궁싯 걸어나오고 있다. 손에 들린 물조리 뒤로 금방 옮긴 듯한 오이모며 토마토모가 줄느런히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그냥 사서 드시지, 허리도 안 좋으시면서……” 그네 앞을 지나치며 홍은 알은체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잉, 밭이라구 있는디 그놈을 걍 놀리믄 워디 쓰겄나? 머라도 심궈 먹어야지.” 리따예는 구부정 구푸렸던 허리를 최대한 뒤로 곧게 펴며 벙싯 웃는다. “하여튼 간에, 한시름은 놓았겠네요 이젠.” 홍도 웃었다. 모처럼 만에 리따예의 펴진 허리를 보니, 홍 자신도 모르게 같이 허리를 쭉 펴며 숨을 들이마셨다.

겨우 여자가 떠났다는 말에 이리 시름이 놓이다니, 한심한 것. 홍은 금방 들이켰던 숨을 다시 훅 내뱉는다. 그렇다면 여자가 있었던 동안은 정말 짐스럽고 힘들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어두컴컴한 계단을 터덕터덕 올라가며 홍은 생각한다. 여자의 툭 불거져 나온 광대뼈와 꺼진 볼살과 찌르는 듯한 눈빛이 다시금 떠오른다. 여자 생각만 하면 마음속 어딘가 찝찝해지고 껄끄러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왜? 여자가 불법체류 탈북자라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구제대상이라는 것 때문에? 아니면 그 까칠한 표정이며 진위를 가릴 수 없는 변명이 싫어서였을까?

철컥, 현관문을 연다. 거실바닥 소파 앞에서 마구 뒹구는 남편과 아들녀석의 옷가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런 이유들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기 바쁘게 홍은 맥없이 널부러진 빨랫감을 주섬주섬 주워 모은다. 남편 바지주머니 안에서 뭔가가 만져진다. 꽤 빳빳한 푸른색 종이, 돈이다. 그래. 따지고 보면 이런 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미안해요, 점말 미안함네다.” 하고 여자가 홍을 불렀었다. 구역에서 수요 기도모임을 마치고 막 나오던 길이었다. 홍은 멈춰서서 그녀 뒤에 약간 처져 따라 나오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올백으로 념겨 묶은 머리 때문에 여자의 얼굴은 더 길고 눈꼬리는 더 찢어진 듯 보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겐가? 여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홍은 슬금슬금 불안해했다. 교회에 나온 지는 2년 정도 되었다지만, 이 기도모임에 나온 지는 고작 2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은 여자를, 홍은 잘 아는 편이 아니었다. 여자는 홍의 반응을 미리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생각보다 차분한 어투로 말했다. “이땀에, 내 한국 가믄 절대 갚을 거니께, 돈 쫌 꿔주시라요?”

빨래를 돌려놓고 홍은 밥솥을 부신다. 싱크대 안에는 마른 밥알이 들러붙은 공기며 반찬을 담았던 그릇이며 찌개를 끓였던 냄비까지 꽉 차 있었다. 가게가 멀어서 매일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홍은 아침 설거지를 거의 하지 못하는 편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먼저 들어온 까닭에 남편의 귀가는 물론 아들녀석의 하교시간도 한참 남았다. 작으나마, 남편과 함께 일궈온 건축자재가게 덕에 중고 아파트도 사고 봉고차도 한대 장만했다는 말은, 기도모임 중에 홍 자신이 얼결에 뱉었을 것이다.

“돈이요?” 하고 홍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묻자, 여자는 기계적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모도 다 바빠 하는 거 암네다. 기래도 상점 한다니께, 딴 사람들보다는 쫌 안 바빠 할 거 같아서요.” 어른의 손에 들린 과자봉투를 바라보는 아이처럼 여자는 홍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글쎄, 우리도 뭐, 외상장사라 늘 빚에 시달리니까. 우리 아저씨가 뭐랄지……” 홍은 여자의 집요한 눈길을 피하며 두서없이 주절댔다. 왠지 경찰로부터 심문받는 죄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여, 이런 난처한 일이 내게 오다니요,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홍은 당장 집 안으로 되돌아가 구들에 엎드러져 처음부터 다시 기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머 점말 없다먼야, 기래도 거저 한 4천원이래도 안되나요? 내 진짜 무신 궁리가 없어서 기래요. 집값은 석달치 못 줬구, 내는 허리가 아파서 일도 못 나가니께……” 말을 끝낼 즈음에 여자는 홍을 집사‘님’이라고 불렀다(여자는 목사님도 항상 ‘목사’라고 불렀었다). “쫌 방조(帮助)해줘요, 집사님……”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것을 주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야고보서 2장의 구절이 머릿속에서 필름처럼 지나갔다.

그래서 홍은 그랬다. “4천은 힘들 거 같은데…… 암튼 주일날 봬요.”

 

4천이나 3천이나 기왕에 줄 것 같으면 사실 오십보 백보 아닌가. 그런데도 굳이 여자가 원하는 액수에서 얼마만큼이나마 깎아서 주고 싶은 심보는 무엇 때문일까?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마치면서 홍은 내일 있을 기도모임을 생각한다. 여자가 기도모임에 나오기 전에는, 아니 여자가 돈 얘기를 꺼내기 전에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던 모임이다. 가게에서 일꾼들과 점심을 해 먹고 바로 떠나면 시간이 얼추 들어맞아서 남편의 눈치가 덜 보여 딱이었다.

서로를 위로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기도시간도 좋았지만, 기도하기 전 커피 한잔씩 마시면서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 얘기며 무뚝뚝한 남편 때문에 속상한 얘기와 시집식구 친정식구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두루 꺼내놓고 수다 겸 교제하는 시간이 홍은 참 좋았다.

여자가 홍한테 돈 얘기를 꺼낸 뒤, 홍에게는 이상스레 그 기도모임에 가지 못할 피치 못할 사정들이 생겨났다. “집사님, 요즘 많이 바쁘셔요? 통 얼굴 볼 새가 없네.” 무단결근한 직원 대신 전화통을 붙잡고 스트레스에 싸여 있는 홍에게 박사모님으로부터 두번인가 문안전화가 왔다. “그러게요.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자꾸 터지니 계속 빠지게 되네요. 기도해주세요.” 아무런 눈치도 못 챈 듯한 박사모님에게는 일단 그 정도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 혹시 말이야, 그 북한 자매님, 언니한테도 돈 꿔달라고 얘기했어?” “………” 여자를 보기로 한 주일 하루이틀 전에 정아에게 연락이 와서야 홍은 피해자, 아니 여자의 ‘자외선 망’에 걸린 이가 자기만이 아님을 알게 되였다. “그지? 그럴 줄 알았어. 그 자매님, 원래 장년1팀에 있었잖어. 알아보니까 거기서도 몇천원 모금했더라구. 그것두 이번에만. 한 2년 거기서 신앙생활 했었다니까, 그전에 찔끔찔끔 도와준 거는 숫자도 없고…… 이번엔 한국으로 간다고 교회측에서도 얼마 구제금으로 내놓은 모양이야. 주보에 광고가 나가서 그 자매님 앞으로 들어온 헌금도 있었다나…… 아 참, 그리고 박사모님이 제의해서 우리 기도모임 멤버들도 성의껏 했었는데……”

정아는 전화를 끊으면서 그랬다. “언니 말고도 개인적으로 부탁한 사람들이 또 몇명 있어. 나한테도 얘기하더라구. 나는 뭐, 원래 없으니까, 없다고 했어. 차비나 하라고 200원 쥐여주고. 그니까 언니도 알아서 해.”

가게 사장들이랑 한잔하러 간다는 남편은 늦어지고 있고, 아들녀석은 저녁 먹기 바쁘게 제 방으로 들어가서 숙제에 열중이다. 남편이 가져다둔 장부를 펼쳐 들고 홍은 거실에 있는 책상 앞에 마주 앉는다. 오늘은 배달이 세건 있었다. 반품도 두건 있었다. 물론 수금은 한 계절이 지나가거나 연말이 되어서야 일부분 가능하다. 수금할 기일이 다가오면 유난히 까탈스러워지고 무례해지고 연락도 쉽게 끊어지곤 하는 가게 사장들이 떠오른다. 생각 같아서는 좀 적게 벌더라도 현금치기 장사를 하고 싶지만, 이 바닥에서 외상은 이미 정해진 룰, 그게 싫으면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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