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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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 출생.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로 작품활동 시작.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인간적이다』, 장편소설 『왕을 찾아서』 『위풍당당』 『단 한 번의 연애』 등이 있음. songsokze@hanmail.net

 

 

 

장편연4(마지막회)

투명인간

 

 

역사에 기록될 엄청난 일과 역사책에서 절대로 볼 수 없는 신기한 일이 내 집에서, 내가 보는 중에 일어나다니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기로 예정된 날짜를 일주일가량 앞두고 수도방위사령부 특공부대에서 두명의 병사가 탈영했다.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군 보안사령관 출신으로 하극상의 꾸데따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한국의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그 바람에 수도권 일대 군부대에 삼엄한 비상경계태세가 갖춰진 상황에서 특공부대의 특등사수였던 하사관이 상병 하나와 함께 개인화기와 실탄,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채 부대를 빠져나온 것이다.

그들은 소풍이라도 나온 듯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가다가 우리 동네에서 산을 하나 사이에 둔 계곡의 유원지에서 내렸다. 택시기사가 신고를 할 것에 대비해서 지체없이 산속으로 들어갔고 산중턱에 있는 무속인의 집 빨랫줄에서 옷을 훔쳐 입은 다음 산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어서 새벽에 계곡을 따라 내려와서는 우리 동네의 여관에 잠입했다. 여관 주인은 오전에 보일러실에 들어갔다가 잠이 들어 있는 그들을 발견하고 여관을 뛰쳐나와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 이런 사실을 나는 물론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대한민국 99.99퍼센트의 국민처럼 그들이 탈영한 사실조차 몰랐다.

신고를 받은 관할 경찰서 기동타격대 오분대기조가 십이인승 승합차에 나눠 타고 출동했다. 오분대기조가 탄 차량은 비상등을 켜고 싸이렌을 요란하게 울리며 여관 앞 대로까지 달려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차들은 정상적으로 도로를 통행하고 있었고 도로변 이층에 있는 우리 식당에는 손님들이 네댓명 있었다. 싸이렌 소리에 창가로 가서 내려다보던 손님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옴마야, 저기 뭐꼬! 총이다, 총!” 하고 외쳤다.

뭡니까? 왜 그래요?

내가 창가로 다가서자 처음 듣는 날카로운 금속성이 들려왔다. 기동타격대의 승합차가 길에 서 있었고 운전석의 문이 열려 있었는데 거기서 뛰쳐나온 운전자가 낮은 포복으로 도로 건너편으로 기어오는 게 보였다. 총탄은 무차별적으로 도로와 거리, 골목을 가리지 않고 쏟아졌다. 상당수는 기동타격대의 차량에 집중됐다. 몇명이 총에 맞았는지 도로 바닥에는 기다란 핏자국이 나 있었다. 지나가던 차량들은 물론 행인들도 순식간에 모두 사라졌다. 총소리의 계엄령이 지배하는 시공간은 순식간에 새 한마리 날지 않는 부동의 세계로 변했다.

계단에서 구둣발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식당 안으로 정복 차림의 경찰관 예닐곱명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손님을 모두 내보낸 뒤 여관이 가장 잘 바라다보이는 곳이라는 이유로 우리 식당이 대책본부가 되었다고 내게 통보했다. 내가 얼떨떨해할 사이도 없이 다시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경찰관들이 들고 있는 무전기에서 쉴 새 없이 말이 쏟아져나왔다.

과장님, 지금 서연대 정문에서 미하나께서 꽃잎들이 대열을 지어서 정문으로 엄청나게 하나여섯 중인데 탈영병 난동 때문에 통신 마비된다고 정보과 기동대 제외하고 무기 채널을 에프엠투로 바꾸라고 난립니다.

아, 여긴 또 어쩌라고. 지원병력은 더 안 오나? 본서고 파출소고 할 것 없이 전부 다 지원 요청해.

지금 여유병력은 하나도 없습니다. 거의 다 차출돼서 학생들 시위 막으러 갔습니다. 교통과도 다 나갔는데요.

이것들은 탈영을 했으면 좀 멀리라도 가지 하필이면 우리 관할로 와, 오기를.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구만.

우왕좌왕하던 경찰들은 별을 세개 단 장군이 십여명의 장교를 거느리고 들이닥치는 바람에 조용해졌다. 이어 소총만 한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들어왔고 식당의 탁자와 의자가 한쪽으로 밀어붙여졌다. 바깥의 스피커 달린 차량에서 미리 준비를 해둔 듯 탈영병들의 어머니와 애인이 탈영병을 설득하는 선무방송이 시작됐다.

학수야, 보고 싶은 학수야. 너 거기서 왜 그러고 있니. 온 식구들이 다 걱정한다. 제발 자수해라. 나오기만 하거라. 네가 총을 버리고 나오기만 하면 아무런 죄도 묻지 않고 집으로 보내준다고 군단장님, 사단장님, 연대장님, 대대장님이 모두 약속하셨다. 내가 보는 앞에서 맹세를 하셨다. 학수야, 제발 이 늙은 에미를 살려다오. 네 동생들하고 몸이 아픈 아버지를 생각하거라. 어린 동생들이 불쌍하지 않으냐. 네가 그리 좋아하는 막내 영주가 오빠 보고 싶다고 그렇게 운다. 학수야, 학수야, 제발 이 에미를 살려다고. 살려다고. 나오너라. 제발 총을 버리고 나오너라.

이어서 젊은 아가씨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자신의 마음이 변한 게 아니고 오직 당신만을 영원히 사랑할 것이니 어서 나오라고 상병을 설득했다. 여관 쪽에서는 잠시 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듯 총소리가 멎었다.

그러는 동안 삼성장군을 비롯, 두명의 장성과 영관급 장교에 경찰 간부가 포함된 군경 대책회의가 즉석에서 열렸다. 최대한 빨리 탈영병을 제압하는 방법이 토의됐다. 수도군단 사령관인 삼성장군이 공병대를 불러서 여관 전체를 폭약으로 날려버리는 방안부터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정복에 무궁화 셋을 달고 있는 경찰은 입을 떡 벌렸다. 별 두개짜리 사단장이 조심스럽게 공병대 부르는 데 시간이 다소 걸릴 거라고 난색을 표했다. 중고생이나 쓸 육두문자가 사령관의 입에서 쏟아져나왔다.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날파리만도 못한 탈영병 둘 때문에 무산되게 생겼는데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사령관의 군홧발이 부하들의 정강이를 강타했다. 먼저 정강이를 맞은 장군들이 아픈 정강이를 어루만지면서 물러서자 그 아래 영관급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대며 정강이를 차이기 위해 사령관 앞에 다가들었다. 그들은 차인 정강이를 어루만지지도 못했다. 경찰들은 돌아서서 못 보고 못 들은 척했지만 웃음을 참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마침내 대령 한사람이 나서서 자신의 예하부대에서 탈영한 병력들이니 자신들이 무조건 책임을 지겠다고, 이미 준비를 마친 특수요원을 투입하겠으니 기회를 달라고 했다. 이 모든 과정이 꽉 짜여 돌아가는 연극처럼 느껴졌다.

내 옆에는 전경 하나가 무전기를 든 채 서 있었다.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군인들처럼 그 또한 풀빛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김만수’라고 명찰에 새겨진 흔한 이름과 견장의 작대기 네개짜리 계급장은 검은색이었다. 눈짓으로 누구냐고 묻자 그는 교통계 소속이라고 속삭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상황을 파악해 무전기로 보고하는 듯했다.

잠잠하던 여관 쪽에서 다시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방향을 정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연발사격을 가했다. 탈영병이 수류탄을 던진 듯 개천에서 엄청난 물보라가 일었다. 이어 천둥 치는 듯한 폭음이 연속으로 들렸다.

생난리구만. 전쟁 난 거 같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쟤들 쓰고 있는 총이 최신형 케이투 같은데. 명중률이 우리 군대 있을 때 쓰던 씩스틴하고 비교가 안된다고 하더라고. 소리가 다르잖아.

수방사에서도 백발백중의 저격수 출신이야. 맘만 먹으면 다 쏴 죽이겠구만.

무장탈영하면 순서가 다 정해져 있는 거 아냐. 저렇게 난리치다가는 살아남기 힘들지. 죽은 놈은 말이 없잖아. 시기적으로나 사안으로 보나 잡혀서 시간 끌다 총살당하느니 화끈하게 끝내는 게 낫지. 쟤들도 충분히 알고 있을 거야.

창문이 있는 벽에 기대앉은 기자들이 낮은 소리로 말을 주고받았다. 찬밥 신세가 된 경찰 중에서도 제일 계급이 높은 늙수그레한 교통과장은 바깥을 살피다가 신음 소리를 냈다.

저기 하천 건너편에 주민들 완전히 사선에 노출돼 있잖아. 뭔 구경이 났다고 목숨 걸고 저러고들 있나.

별 하나짜리 장군이 교통과장에게 쏘아붙였다.

어이 경찰 나부랭이들, 거기는 비 맞은 뭐마냥 쭝얼대지 말고 민간인들이나 철저하게 막아. 도대체 뭐 하고 자빠져 있는 거야? 당신네들이 등신짓 할수록 우리 책임만 커진다고. 병력 있으면 오합지졸 같은 민간인 통제를 하란 말이야. 새끼줄이라도 치고 못 나오게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으라고.

여관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다리 건너 주택가 골목에 사람들이 나와 있는 게 보였다. 여관에서 직선거리로 이백 미터쯤 되는 거리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특등사수의 조준사격 범위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십여명의 남자들은 각자의 군대 시절 경험을 돌아가며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고 예닐곱명의 여자들도 고개를 내밀고 각자의 호기심을 채우느라 부산했다. 그들 중에는 내 식당을 자주 드나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당장은 눈앞에 있는 위험을 알릴 방법이 없었다. 식당과 그들 사이의 도로는 차도 사람도 볼 수 없게 씻은 듯이 깨끗하니 그곳을 지나가다가는 곧바로 탈영병들의 먹잇감이 될 게 분명했다. 그들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서는 또다른 다리가 있는 상류쪽을 한참 우회해서 건너가야 했으나 그전에 그들에게 총알이 날아갈 가능성이 높았다. 한마디로 대책이 없었다.

그때 전경이 밖으로 소리없이 빠져나갔다. 대책회의를 열던 사람들은 지도에 열중했고 침투루트를 짜느라 전경의 존재와 움직임 자체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기자들은 카메라의 줌렌즈를 끼웠다 뺐다 하며 신형 기종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골목에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수다를 떨거나 팔짱을 낀 채 바깥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식당과 골목, 탈영병이 있는 삼각점 사이 공간에는 고압선 주변의 공기처럼 엄청난 전하의 위험이 채워져 있는 듯 했다.

나는 보았다. 여관의 삼층 계단실에서 반짝하고 빛나는 총신을. 그건 분명히 골목 안에 있는 사람들을 알아챘다는 신호였다. 나도 모르게 서쪽 창 바깥으로 고개를 내밀 뻔했다. 어떻게 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이 어떤 위험에 처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내가 정말 고개를 내밀었더라면 탈영병의 총구가 식당을 향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순간에 나는 스스로를 제어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전경이 골목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식당에서 내려간 뒤 저격수들의 시선에 몸을 노출한 채 곧바로 차도를 따라 달려가지 않고는 다다를 수 없는 시간이었다. 하천의 상류에 있는 다리로 우회해서 갔다면 최소한 십분은 걸렸을 것이었다. 그동안에도 총소리는 계속 나고 있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무사히 거기까지 갈 수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전경이 총알보다 빨랐거나, 투명인간이라도 되었다면 몰라도.

그는 주민들에게 집 안으로 들어가라고 설득하는 듯 무전기를 든 팔을 휘두르며 뭐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전경의 제지를 뚫으려고 몸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그 바람에 전경의 몸이 바깥으로 밀쳐지며 골목 바깥으로 완전히 노출됐다. 철판을 쇠끌로 긁을 때처럼 까까가가가각, 하며 연발사격으로 긁어대는 총소리가 났다.

나는 보았다. 전경의 몸이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이 펄쩍 솟아오르는 것을. 이어 소리도 없이 바닥으로 무너져내리는 것을. 그의 군복의 등 부위 빛깔이 짙어져가는 것을. 그제야 사람들은 썰물처럼 골목에서 빠져나갔다. 남자들은 포복으로 재빨리 기어갔고 여자들은 팔을 휘저으며 미친 듯 달아났다. 전경은 그들 뒤에 혼자 쓰러져 있었다.

저 개자식들 저거, 전경 애 보고 저희 잡으러 온 줄 알고 쏜 거 아냐? 무기라고는 무전기 하나밖에 없는 앤데. 쟤 죽은 거야?

사진기자 하나가 줌렌즈를 늘였다 줄였다 하며 말했다. 목숨이 걸린 줄도 모르고 구경하던 사람들을 목숨 걸고 뜯어말리다 총에 맞은 전경은 땅바닥에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그러는 사이 진짜 특수부대의 진짜 요원들이 도착해 작전에 들어갔다. 그들은 각자 개머리판이 없는 짧은 소총 하나를 몸에 바짝 붙인 채 시가지 전투의 모범을 보이듯 몸을 은폐해 여관으로 접근했다. 전경이 쓰러지고 나서 다시 선무방송이 시작됐다. 탈영병들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였다.

요원들이 여관의 계단으로 사라지고 난 뒤 선무방송은 중단됐다. 다시 끈적한 적막이 공간을 채운 듯했다. 식당 안에서는 물론이고 바깥에서조차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도로의 횡단보도 신호등이 푸른빛에서 붉은빛으로 또 푸른빛으로 바뀌었다. 잠시 뒤 투타타타, 하는 총소리가 들렸다. 이어 이삼분 동안 침묵이 이어지더니 옥상에서 수십발의 총탄이 발사됐다. 소리로 보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분명했다. 신형 소총의 날카로운 총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장군의 옆에 선 무전병의 무전기로 침투한 요원으로부터 짤막한 보고가 날아들었다.

상황 종료.

모든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고는 악수를 나누고 각자의 서류를 챙기고 일어서던 그 순간, 나는 골목 끝에 방치돼 있던 전경의 손이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변소에 달려 있는 오촉짜리 작은 전구가 깜빡이듯 손은 보였다 말았다 했다. 마치 손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날숨 때는 사라지고 들숨 때는 나타나는 식이었다. 그렇게 멀리서 그렇게 작은 부분이 어떻게 그리 세세하게 보였는지 설명할 길이 없다.

살았구나. 개죽음은 면했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무방송을 하던 차가 자리를 떠나는 것과 함께 구급차가 달려왔다. 전경은 가장 늦게 구급차에 실렸다.

다음 날 신문에는 수도권 일대를 휘젓고 다니던 탈영병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노라는 짤막한 기사가 났다. 누가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에 대해서는 언급이 전혀 없었다. 목숨 걸고 사람들을 구하고 대신 총에 맞은 전경 하나가 어떻게 되었는지도.

형은 군대에 간다고 집을 떠나간 지 여섯달 만에 첫 휴가를 나왔다. 그런데 전경 월급이 고시 출신 고위 공무원 수준이라도 되는지 시퍼런 돈다발을 가지고 왔다. 그뒤로 형은 수시로 집에 들러서는 돈을 놓고 갔다. 내게 앞으로 생활비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했다. 옥희에게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대학에 가라고, 뒷바라지는 책임지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돈만 주고 간 게 아니었다. 삼수 끝에 대학에 합격한 내게 축하한다며 수제 클래식 기타를 사주었고 옥희에게는 학원이나 교회에 다닐 때 입고 다닐 사복을 사주었다. 동네 슈퍼 뚱뚱이 아줌마한테 돈을 맡겨놓고 양식과 반찬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잘 보살펴달라고도 했다. 웃겼다. 웃지는 않았다. 모르는 체했다.

가장 웃긴 건 교통경찰을 보조하면서 ‘삥땅’을 쳐온 돈으로 우리들을 월세방에서 전셋집으로 옮겨가게 한 것이었다. 날림으로 지은 연립주택이긴 했지만 방이 세개였고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에서 ‘순간 온수 가스보일러’로 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신혼집처럼 티브이와 세탁기, 전기밥솥, 전기다리미까지 들여놓았다.

어릴 때부터 집 밖에서는 쉽게 용변을 볼 수 없는 증세가 있어서물론 거름이 될 똥오줌을 반드시 집에다 눠야 한다는 아버지의 강요 때문이다연립주택으로 이사를 가기 전에 나는 대학에 가서도 아침마다 대문간에 있는 재래식 변소를 썼다. 여름에는 파리와 구더기가 기어나오는 변소에서 용을 쓰다 나오면 학교에 가서는 내 몸과 옷에 밴 냄새가 걱정되어서 여학생들과 멀찌감치 거리를 유지해야 했다. 이사를 하고 나서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세탁기로 빨래하고 ‘짤순이’(탈수기)로 물을 뺀 뒤 다리미로 빳빳이 줄 세워 다린 옷을 입고 머리에서 레몬 향이 나는 샴푸 냄새를 풍기면서 마음껏 캠퍼스를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최고였다.

나는 진저리 치지 않을 수 없었다. 형이 준 돈으로 얻은 작은 편익에 감지덕지하는 내게, 주인이 던져준 뼈다귀를 허겁지겁 핥으며 꼬리를 흔들어대는 강아지처럼 반응하는 나라는 종자에 대해. 어느때부터인가 내가 만수를 형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게 증거 중 하나였다.

대학에 입학해 만난 나이 어린 선배들을 형이라고 부르는 일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무렵, 만수를 형이라고 부르는 게 만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호칭에 있어서만큼은 유아기 상태에 머물러 있는 나를 적당한 자리로 가져다줄 거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논리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가족관계, 특히 어린 시절부터 한핏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아웅다웅 싸워가며 만들어진 동기간의 미묘한 감정에는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나는 되도록이면 만수를 부르지 않았다. 아예 부를 일이 없게 했다.

그러던 것이 군대에 간 만수가 휴가 때에 돈다발을 들고 금의환향함으로써, 툭하면 외박을 나와 돈봉투를 두고 가게 되면서, 근처 지나가는 길에 수시로 집에 들러 밥을 먹은 뒤 가계부에 만원짜리 지폐를 끼워놓고 가면서 완전히 상황이 바뀌었다. 조건이 인간을 바꾼다. 돈이 이십년을 끌어온 버릇도 고친다. 호칭 역시 조건이다.

형, 그냥 가지 말고 다시 앉아봐. 할 말이 있어.

돈봉투를 방바닥에 내려놓고 일어서서 가려는 만수를 내가 부르자 만수는 놀라고 당황해했다. 제복에서 사삭, 소리가 나게 빨리 앉더니 모자를 벗고는 땀을 닦았다. 내 눈을 마주 보지 못하고 손바닥을 방바닥에 문지르면서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 순간 내 마음속에 상처의 딱지를 떼낼 때처럼 잔인하고 강렬한 쾌감이 느껴졌다.

‘그냥 한번 불러봤다. 자식, 형이라고 한번 해주니까 거 되게 좋아하네. 네가 나한테 형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너 자신을 그렇게 몰라?’

이런 식으로 또다시 ‘형’이라는 단어가 내 입으로 발음되는 걸 듣기 위해 귀를 곤두세우고 있는 만수에게 지옥을 경험하게 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만수를 ‘형’이라고 불러줌으로써 그의 희열과 감동을 경멸하는 정도로 그치기로 했다. 그 또한 조건이 내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형, 내가 그동안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은 거, 미안했어. 내 마음 알지? 내가 형을 좋아하고 존중하지만 버릇이 잘못 들어서 그랬다는 거. 앞으로는 계속 형이라고 부를게.

만수의 눈이 빨개졌다. 눈에 물기가 돌았다. 몸이 앞으로 확 기울어지는가 싶더니 팔이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이런 젠장.

고맙다.

만수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나는 속으로 이건 아니라고 외쳤다. 이런 개떡 같은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나 또한 만수를 마주 감싸안고 말았다. 만수의 실팍한 어깨와 가슴에서 전해지는 떨림,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내 마음의 현을 진동시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생똥을 밟은 기분이었다.

바로 그 형이 완전히 돌아왔다. 제대를 서너달 앞두고 총에 맞아서 의병(依病)제대를 할 뻔했는데 사회 나가면 불이익이 있을까봐 경찰병원에 누워서 만기전역을 맞았단다. 세상에 교통경찰 보조를 하던 전경이 총에 맞다니.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맞서다가 돌에 맞고 화염병에 맞았다면 이해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총에 맞았고 입원치료를 받았다고 할 뿐, 어디서 누구에게 왜 총을 맞았는지에 대해서는 보안서약을 해서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아무튼 총알이 머리를 뚫고 들어간 건 아니고 장기를 상하게 한 것도 아니며 팔다리를 못 쓰게 만든 것도 아니고 다소간의 출혈 끝에 치료를 받아서 후유증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형은 총에 맞은 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입대 전처럼 세차장에서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금희 누나가 자기 멋대로 결혼을 하고 우리를 떠나간 뒤 우리 남매들의 생계조차 막막해졌을 때 형이 제대로 된 일을 하기 시작한 곳이 세차장이었다. 은행에 다니던 주인집 아저씨가 소개해준 세차장은 은행 지점 바로 곁에 있었다. 무역을 하든 중소기업체를 운영하든 사업하는 사람들이 은행 같은 금융기관에 돈을 빌리러 갈 때는 과시용으로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가게 마련인데, 은행에 가기 전에 반드시 세차장을 거쳐갔다.

형은 뭔가를 씻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씻다보면 점점 물이 맑아지는 게 좋다고. 집에서도 우리 세 남매의 옷 빨래와 청소, 설거지를 도맡아했다. 제가 좋아서 한다니까 말릴 일도 아니고 거들 일도 없었다. 그렇게 씻는 걸 좋아하더니 결국 세차장 아르바이트가 형이 전문학교에 다니는 동안 주업이 되었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형의 손은 늘 세차 일로 불어 있거나 부르트고 갈라져 있었다. 언젠가 지나가던 중에 형이 세차를 하는 것을 몰래 지켜본 적이 있었다. 바깥만 깨끗이 하는 게 아니라 엔진 룸이며 트렁크까지 말끔하게 청소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타이어의 바람을 넣고 엔진오일 빛깔까지 살폈다. 헐거워진 부분을 찾아서 조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닥의 염분, 녹을 제거하기도 했다. 결국 간단한 정비까지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차를 돌봐주면 내가 차 주인이라도 팁을 주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 같았다.

형은 세차장 주인이 불안해할 정도로 손님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형이 제대하고 나서 세차장으로 돌아가자 과거의 단골손님들이 형을 다시 찾아왔다. 형이 곧 자동차부품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고 하니까 세차장 주인은 그깟 공장에 말단 사원으로 가봐야 쥐꼬랑지만한 월급 가지고 동생들 공부시키고 장가가고 하겠느냐고, 세차장 규모를 두배로 늘리고 중소기업 과장 대우를 해줄 테니까 함께 일하자고 했단다.

군부독재정권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삼저호황을 맞아 수출이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고 국민소득 또한 높아지고 있었다. 몇년 있으면 어중이떠중이들까지 차를 사서 타고 다닐 가능성이 있긴 했다. 세차장 사업은 그만큼 전망이 밝았다. 하지만 형은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평범한 부속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군대 시절 알게 된 상관인지 경찰 간부인지가 자기 친구인 자동차부품회사 사장에게 소개해줬는데 은혜가 고마워서 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 잘난 회사가 주는 월급은 많지 않은지 세차장에서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세차든 회사 종업원이든 결국 씨스템 하부에 예속되는 종노릇을 하는 것이다. 나는 죽었다 깨나도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정당한 실력으로 경쟁해서 위로 올라가 세상에 군림하고 싶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 드는 비용을 대기 위해 형이 세차를 하든 공장의 부속품이 되든 남의 뒤를 닦아주든 상관없었다. 형에게 타고난 노예근성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 형이 있다는 건 나의 운이다.

 

내가 나온 공고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똑똑한 공돌이들이 모인다는 공립이었고 웬만한 인문계 고등학교보다 커트라인이 훨씬 높았다. 그래서 아이들 자부심도 대단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뭔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삼학년 때 동계전형으로 대학에 가는 걸 완전히 포기하고 나서 방황을 좀 하다보니 성적은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한 동기들이 잘나가는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을 초조하게 지켜보다가 마지막에 얻어걸린 게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이었다. 말이 중소기업이지 생산라인 근무인원만 오백명이 넘었고 대졸 사무관리직과 경영진 등을 합치면 육백명 가까운 사원이 있었다. 게다가 자동차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전기 분야의 전문부품을 독과점적으로 생산하고 있으니 회사의 전망은 밝았다.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도 쇳덩어리처럼 단단한 회사라고 사장은 설명했다.

사장이 내가 다닌 공고를 이십년 전에 졸업한 선배이고 회사 전체가 생산을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기술직, 생산현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생산라인에서 나 같은 일류 공고 출신은 군대의 사관학교 출신처럼 엘리트 대접을 받았다. 대기업보다는 이런 데서 더 빨리 출세할 것이라는 기대도 생겼다.

회사의 소유주는 회사에서 생산하는 부품을 전량 납품하는 자동차회사의 설립자 딸이라고 했지만 먼발치에서 몇번 본 게 고작이었다. 그 설립자는 사장의 첫번째 직장 상사이기도 했고 십여년 전 자동차회사가 경영난에 빠졌을 때 회사를 남의 손에 넘긴 지 삼년 만에 죽었다고 했다. 내가 사장, 회장 될 것도 아닌데 그런 거야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에게 맞는 곳이면 되었다.

회사에서는 제때 월급 나오고 추석, 설, 김장철, 연말 해서 일년에 네번 보너스를 주었다. 돈을 받아봐야 특별히 쓸 데도 없고 집에서는 장가갈 때를 대비해서 저축을 하라 했지만 나는 월급의 대부분을 입고 먹고 마시고 노는 데 썼다. 공장에서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돈까스 먹고 맥주 마시고 청바지, 운동화 같은 걸 사는 것으로 풀었다.

주말에는 공단 바깥의 디스코텍이나 나이트클럽에 가서 발바닥에 땀나게 뛰고 놀았다. 잠깐씩이라도 여자들을 만나려다보니 술값, 밥값, 옷값이 또 만만찮게 들어갔다. 입대 전에 이런 식으로 먹고 마시고 입고 놀고 하다보니 돈이 모일 수가 없었다.

군대에서 만기제대하고 회사에 돌아오니 전에는 못 보던 김만수라는 친구가 있었다.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오년제 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와서 나보다 나이가 한살은 많았지만 나는 생산직 4급인데 그 녀석은 같은 4급이라도 관리직이었다. 그것도 생산관리부 소속이라서 품질관리니 공장 새마을운동이니 노사협의회니 하는 현장의 안건 때문에 안 볼 수 없었다.

만수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디 하나 똑 부러지게 하는 것도 없이 희멀건 죽 같은 평범한 인상이었다. 실력이 있는 것도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사람 아니면 안되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며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그런 평균 수준 이하의 인간이 어떻게 4년제 대졸 출신이 대부분인 관리직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무슨 연줄이나 있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었다.

같은 제복을 입고 근무해도 생산직과 관리직은 각자 따로 놀고, 나이가 비슷해도 어중간한 인간은 비슷한 인간들끼리 어울리는 법이고 나처럼 엘리트 의식이 있는 부류는 또 우리끼리 어울리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만수 이 인간은 어쩐 일인지 관리직보다는 생산직, 그것도 나이가 있는 현장의 조장, 반장 같은 고참들하고 형, 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관리직 사이에서 전문학교 출신이라 개밥의 도토리 취급을 받아서 그런가. 이렇든 저렇든 간에 싫으면 모른 체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회사 앞 자주 가는 단골식당에서 친한 사람들과 함께 온 만수를 만났고 생산직 고참 선배들의 강요로 소주잔을 한번 박고 말 까는 친구가 되었다. 만수하고 같이 온 품질관리과 계장이 한마디 거든 게 두고두고 생각났다.

이름이 하나는 김만수, 하나는 이재수라 성은 달라도 어째 무슨 형제 같은 인연이 있지 싶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 두사람이 생산현장하고 관리직을 대표해서 잘 협조해가지고 회사를 발전시켜봐라.

자기는 형제 같은 생산직 사원이 없어서 그 나이에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서 회사에 빌붙어 있는 건가. 아무튼 그날 그 식당에서 만들어 내온 안주가 돼지 두루치기였다. 비계가 달린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서 채소와 갖가지 양념을 넣고 매콤하고 달착지근하게 지지고 볶아서 먹는 것 말이다. 고기가 두툼하고 씹을 때 입에 반쯤 차게 푸짐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국물도 좀 있는데다 고기 양도 많고 해서 배도 부르고 술안주로도 제격이었다. 결정적인 건 세상에 이런 음식이 있었나 싶게 맛이 있었다는 것이다. 공장 구내식당에서 군대 짬밥 같은 맛없는 밥을 먹는 게 고역이었는데 그다음부터는 그 식당에 이틀이 멀다 하고 가게 되었다. 거기서 만수와 마주치는 바람에 몇번 바가지를 쓴 적이 있었다. 하도 맛있어서 그렇게 아깝지는 않았다.

만수하고 여기저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