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초점
이 계절에 주목할 신간들
강경석 姜敬錫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모든 것의 석양 앞에서: 지금, 한국소설과 ‘현실의 귀환’」 등이 있음. netka@hanmail.net
송종원 宋鐘元
문학평론가. 주요 평론으로 「사실, 역사, 그리고 시」 「텅 빈 자리의 주위에서」 등이 있음. renton13@hanmail.net
조해진 趙海珍
소설가.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와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이 있음. glala95@hanmail.net
강경석 안녕하세요. 겨울호에서는 초대손님으로 특별히 젊은 여성 소설가 한분을 모셨는데요, 올봄 소설집 『목요일에 만나요』(문학동네 2014)를 출간하신 조해진 작가와 함께 올해의 마지막 좌담 진행하겠습니다. 조선생님은 2004년에 등단해 장편소설 3권, 소설집 2권을 펴냈고 젊은작가상,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우선 어려운 걸음 감사드리고요. 그동안 봐오신 ‘문학초점’에 대한 인상기를 포함해서 간단한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조해진 올해 개편한 ‘문학초점’에서 딱딱한 형식을 벗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듯 작품을 소개해주시니까 잘 읽혔던 것 같아요. 이 자리에 대한 느낌이라면…… 부담스럽다는 것이겠죠.(웃음) 저는 비평과는 상관없는 창작자기 때문에 부담감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작품을 평가하는 눈이 아니라 작가, 그리고 독자로서 배우는 입장에서 이번 좌담을 준비했습니다.
강경석 감사합니다. 오늘 다룰 작품들은 올 7~10월 출간작 중에서 골라봤습니다. 늘 그렇듯 작품의 성취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만, 잡지좌담의 특성상 최근의 경향이나 쟁점을 다양하게 반영하려다보니 미처 다루지 못하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생깁니다. 고심 끝에 이기호(李起昊) 장편 『차남들의 세계사』(민음사 2014), 천명관(千明官) 소설집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창비 2014), 김솔 소설집 『암스테르담 가라지세일 두번째』(문학과지성사 2014), 신미나(申美奈)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창비 2014), 김현(金炫) 시집 『글로리홀』(문학과지성사 2014), 김행숙(金杏淑) 시집 『에코의 초상』(문학과지성사 2014) 이렇게 여섯권을 선정했습니다. 처음으로 다뤄볼 『차남들의 세계사』는 오늘 다룰 작품들 중에서 유일한 장편인데요. 조선생님께선 어떻게 읽으셨는지요?
이기호 장편 『차남들의 세계사』
조해진 『차남들의 세계사』는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자의인 동시에 자의가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떠밀려들어간 어수룩한 인물 나복만의 일대기인데요. 기존의 이기호 소설이 갖고 있는 익살과 유머가 유지되다가 2부에 이르면서는 오히려 비극이 증폭되는 구조였던 것 같아요. 3부는 서사를 정리하는 역할을 하고요. 작가의 직전 소설집 『김 박사는 누구인가?』(문학과지성사 2013)에 수록된 「화라지송침」이나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데, 인물의 과거와 맞물려진 역사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최근 높아진 것 같다는 유추도 해볼 수 있었어요. 특이한 것은 서술자의 태도였어요. 절대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교훈적이고 유머까지 있는 서술자가 등장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사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위험하고 부담스런 유형의 서술자인데요. 저는 이런 서술자를 내세워 소설을 쓰라고 한다면 못 쓸 것 같아요. 자칫 교훈적이 되거나 너무 뻔한 얘기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기호 소설에서 이런 서술자는 단점이 아니라 장점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유머러스하고 상황을 재단해서 보여주는 서술자가 소설을 느슨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사건이 구조적으로 잘 연결되어서 끝까지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강경석 서술자에 대한 말씀이 흥미로운데요, 송종원 형은 어떻게 읽으셨나요?
송종원 이기호 특유의 위트과 유머가 잘 살아있는 작품인 것은 확실해요. 하지만 한편으로 다 읽고 난 뒤 허전한 느낌이 없지 않았어요. 매카시즘을 동원한 80년대 공안정권의 어처구니없는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조롱이라든가 부조리한 정황의 한복판에 놓인 한 인물의 수난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면 무언가 더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국가로부터 배제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복만과, 자신의 생존을 위해 그의 수난에 동조하거나 또는 그의 수난에 소극적으로 대처함으로써 죄책감을 가진 사람들, 다시 말해 극히 평범하면서도 리얼한 ‘차남들’의 삶을 형상화했다는 의의도 있겠지만, 앞서 말씀하신 대로 서술자의 위상이 꽤나 큰 화법을 채택한 것에 비해 풀어놓은 이야기의 규모는 좀 작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강경석 두 분 말씀이 상반되면서도 다 일리있는 말씀이네요. ‘차남’은 잘 드러나지 않는 존재잖아요. 그래서 자기만의 이야기를 따로 갖고 겉돌기 마련인데 이런 인물들을 다루면서 서술자의 위치를 멀리 잡으니까 역사나 개인의 삶이 희극적으로 그려지는 거죠. 인생이라는 게 멀리서 보면 다 희극이라고 하잖아요. 다만 이런 서술자의 위치로 인해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을 겁니다. 어수룩한 주인공을 내세웠음에도 이만한 서사를 감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된 반면 개별사건들에 대한 분석의 밀도는 조금 떨어지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이야기의 규모가 아쉽다는 지적을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어쨌든 전지적 서술자가 단순한 교훈의 전달자가 되는 것을 저지하면서 끝까지 긴장을 유지한 것은 퍽 인상적이었어요.
송종원 작품 중간중간 서사를 이끄는 서술자의 추임새 같은 것이 등장할 때 작가가 꽤 고투하며 이야기를 이끌고 있다는 인상도 들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술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색다른 분위기의 많은 화소(話素)들을 적극적으로 작품에 배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어요. 저는 이 소설이 바탕에 깔아놓은 웃음의 톤이 무너지는 지점들이 좋았거든요. 가령 안기부 요원 정남운이 선배로부터 조언을 듣는 장면이 있잖아요. 간첩 조작사건 속에 활용하기 쉬운 이들로 고아를 지목하면서, 한국전쟁을 통해 고아가 된 이들이야말로 조작사건의 주요인물로 적절하다고 일러주는 부분은 모골이 송연해지더라고요. 80년대의 부조리함에는 더 큰 역사적 틀에서 보자면 분단체제에서 비롯된 맥락이 있다는 것을 짚어주는 화소로서 적절한 기능을 한다고 봤어요.
또 하나 흥미롭기도 하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나복만의 아버지 나성국과 관련한 에피소드입니다. 나성국은 월북을 했다가 북의 체제에도 만족을 못하고 다시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인물이잖아요. 남한에 두고 온 아들의 간첩혐의에 관한 소식을 접하고는 국가의 법과 친족의 도덕 사이의 갈등을 겪을 상황에 놓이는데, 이 인물의 갈등이 너무 쉽게 봉합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또한 나성국이 극작가로서 자신이 속한 국가의 이념과 어긋난 작품을 발표하고 곤란에 처한 상황 등도 재미있는 부분이었어요. 나성국의 희곡이 비판받는 지점, 그러니까 ‘세계관도 불분명하고 무사상적인 인물들이 나온다’는 지적은 『차남들의 세계사』의 성격을 연상시키기도 해서 흥미로웠고요.
조해진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나성국 서사가 작품 속 세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작가의 욕망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었어요. 결국 진정한 낙원은 없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 에피소드였던 것 같습니다. 한때는 일본에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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