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대전환, 어디서 시작할까
수구의 ‘롤백 전략’과 시민사회의 ‘대전환’ 기획
이남주 李南周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정치학. 저서로 『중국 시민사회의 형성과 특징』『동아시아의 지역질서』(공저) 등, 편서로 『이중과제론』(창비담론총서 1) 등이 있음. lee87@skhu.ac.kr
“그럼 이제 독일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나요?” 내가 물었다. “나치의 쿠데타, 아니면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날까요?”
베른하르트가 웃었다. “열정을 아직 잃어버리지 않았네요. 정말! 난 그저 그 질문이 당신에게처럼 내게도 중대해 보이기를 바랄 뿐이에요……”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베를린이여 안녕』, 272면
크리스토퍼 이셔우드(Christopher Isherwood)의 『베를린이여 안녕: 베를린 이야기 2』(성은애 옮김, 창비 2015)는 동성애자이면서 외국인(영국인)인 작가가 “셔터를 열어놓고. 생각하지 않으며, 수동적으로, 기록만 하는” 태도로 나치가 권력을 장악하기 직전의 베를린 풍경을 묘사한 작품이다. 위의 인용문은 작가(나)와 이미 나치로부터 협박편지를 받고 있던 유대인 백화점 관리인(베른하르트) 사이의 대화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평소의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벗어나 당시 베를린의 정치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며, 베른하르트의 반응에 “요새 같으면 충분히 중대한 문제로 보일 텐데요”라고 반박을 하려다 말기도 한다. 나치운동에 동참한 이들과 일부 공산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이 소설의 다른 독일인 등장인물들이야말로 시종일관 당시 상황을 말 그대로 수동적으로 바라만 보거나 이를 수용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지금 관찰자 시점이라는 우위에 서서 이들에게 어떤 다른 선택이 가능했을까라고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에게 같은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면 다른 반응과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한다.
1. 위기의 심화와 위기담론
박근혜정부 3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국가는 심각한 위기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경제의 돌파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사이에 나쁜 분배와 저성장의 악순환이 고착되었다. 새해 들어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는데 우리 경제의 높은 해외의존도를 고려하면 이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둘 이상의 태풍이 충돌하여 그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현상)을 몰고 올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북의 4차 핵실험으로 남북관계와 동북아질서의 토대도 변했다. 북한 핵능력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는 수준을 향해 발전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여전히 제재강화라는 낡은 방송만 되풀이하며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실행 가능한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제든 우발적인 군사충돌이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 국민의 삶과 생명이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국가위기라는 현 국면에 대한 진단에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위기담론의 확산은 민주개혁세력에 유리하게만 작용하지 않는다. 위기의식이 정권에 의해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담론은 야권 및 시민사회는 물론이고 정부·여당에 의해서도 호출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골든타임”이라는 표현을 남발한 지 오래되었고, 김무성(金武星) 새누리당 대표도 올해 신년기자회견에서 “위험과 불안의 시대”라는 화두를 들고 나왔다. 정권심판론을 정치심판(사실상 야당심판)론으로 덮고 국가적 위기상황을 정국 주도의 호재로 만들려는 낯익은 시도이다. 새해 들어 야당심판론을 총선의 핵심 의제로 부각하려는 의도가 더욱 노골화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총선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더 심화될 가능성이 높은 국가위기의 책임을 야당과 시민사회에 돌리려는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민주개혁세력은 박근혜정부가 저지른 그동안의 각종 실정을 비판하고 반대하는 활동을 부지런히 펼쳤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크게 넓히지는 못했다. 각종 여론조사에 나타난 박근혜정부의 지지율은 여전히 40% 전후로 안정되어 있다. 높은 지지율은 아니지만 의회와 야당의 지지율보다 높다는 이유로 정치적 주도권을 계속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이다. 더구나 의석수에서 여당 내 압도적 다수를 점할 뿐 아니라 여당의 풍향을 좌우하는 영남에서의 지지도는 전국 기준보다 훨씬 높다. 따라서 여당의 시녀화를 강요하고 이를 통해 의회와 야당까지 무력화하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킬 수 있다. 국가위기의 심화 속에서도 위기에 일차적인 책임이 있는 세력들의 정치적 지배력이 더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이다. 가장 심각한 위기는 여기에 있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진행되는 실천이 좋은 성과를 얻기는 어렵다.
이러한 상황이 출현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민주개혁세력의 비판이 현 국면에 대한 과학적 분석에 기초하기보다는 “박근혜정부는 원천적으로 ‘악’이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이미지와 박근혜 대통령 자신의 유신시대에 대한 향수, 권력기관의 선거개입과 그 덕을 본 후보자의 당선이라는 정통성 문제 등이 적지 않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러한 전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다수 국민과 유권자에게 설득력이 있는 비판은 아니며 진영논리에 갇힌,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비치는 경우가 많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정부는 근본적인 원칙에 대한 문제마저 정파적 견해들 사이의 지루한 다툼으로 전락시키는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무디게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은 종편 등의 지원을 받아 꽤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는 나아가 위기의 책임을 야당과 시민사회에 돌릴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
따라서 현재 국가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규명하는 것이 박근혜정부를 효과적으로 비판하고 나아가 위기극복 방안을 만드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할 야당은 그때그때의 반사이익에 기대어 현상유지를 하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아니, 대국적인 현실인식과 대안적 비전의 결여로 전반적인 무기력증에 빠져 정치인 개인이나 계파의 이익 이상의 것을 생각할 여력을 상실한 것도 같다. 지난 1월 문재인(文在寅)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근혜정부 3년이 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일갈했지만 상황의 심각성이 얼마나 전달되었는지는 의문스럽다. 이 역시 야권의 상투적 비판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만약 야권이 위기의 본질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이를 극복할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면 정치권의 분열도 지금처럼 확산되지 않았을 것이고, 설사 선거를 앞두고 분열상이 나타나더라도 정치적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정치권에서 앞으로도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이에 대한 논의를 시급히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수구세력의 ‘롤백 전략’ vs. 대전환
현재 위기국면은 이명박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과정에 우리 사회에서 민주적 거버넌스(governance)가 어디까지 진전될 수 있는가 혹은 어느 정도까지 용인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대립이 다시 전면화되었다. 우리 헌법이 주권재민을 원칙으로 하고 국가의 성격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주적 거버넌스는 원칙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1987년 6월항쟁을 거친 이후에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자체가 매우 논쟁적인 개념이고 여기에 거버넌스라는 개념이 추가되면 사태는 더 복잡해진다. 특히 권력의 구성과 구성된 권력에 의한 통치 사이의 관계에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