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평

 

오철우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동아시아 2016

과학행위만으로 밝히기 어려운 천안함 침몰원인

 

 

이필렬 李必烈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prlee@knou.ac.kr

 

 

175_413천안함이 침몰한 이유에 대한 조사는 이미 종결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북한의 어뢰공격이 원인이라는 ‘최종’ 결과에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종종 종북으로 매도된다. 하지만 절반가량의 한국인은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정부 천안함 조사, 47.2%가 불신」, 뉴스타파 2015.3.25) 좌초설, 기뢰폭발설, 잠수함 충돌설 같은 설들도 여전히 은근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천안함 사고가 일어난 지 7년이 되었지만, 이 설들은 문서뿐만 아니라 동영상의 형태로도 계속 유포되고 있다.

『천안함의 과학 블랙박스를 열다: 분단체제 프레임 전쟁과 과학 논쟁』은 가장 최근에 나온 천안함 침몰 관련 문서이다. 그러나 또다른 침몰원인을 보태거나 기존 설 중 하나를 보강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정부가 발표한 침몰원인에 대한 불신이 널리 퍼지게 된 이유를 분석한 학술서로, 과학기술학 이론을 동원하고, 광범위한 일차자료를 분석하고, 관련자들을 널리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그러니 제목만 얼핏 보고 책 속에서 천안함 침몰의 진실이 블랙박스를 열고 튀어나올지 모른다고 기대하는 독자는 크게 실망할 것이다. 책 어디에도 명확한 침몰원인을 시사하는 대목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꺼운 박사학위논문을 수정한 것이기에 읽어나가는 일도 만만치 않다. 무언가 진실의 실마리를 얻겠다거나 원인 논쟁을 조망해보겠다고 가볍게 덤볐다가는 중도포기하기 십상일 것이다.

그래도 저자의 출판의도와 상관없이 이 책을 집어드는 독자의 주된 관심은 학술적인 면보다는 천안함의 침몰원인이나 그것이 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 이유에 있을 터인데, 이에 비추어서도 이 책은 꽤 성공적이다. 침몰원인이 오리무중인 이유는 한마디로 합동조사단(합조단)의 조사가 졸속이고 부실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었으나 합조단이 이에 방어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의문들은 해소되지 않고 더 심화되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보수언론은 어뢰추진체의 발견과 연평도 포격으로 북한이 범인이라는 것이 분명해졌기에 의문에 계속 대응하는 것이 불필요하다거나 의문 제기자들을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를 보였다. 그 결과가 국민 절반이 정부 발표를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비접촉 수중 어뢰폭발로 인한 침몰이라는 ‘최종’ 결과에 대해 제기된 의문을 하나하나 소개한다. 이때 그는 합조단과 그 비판자들의 과학행위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수중폭발로 생성된 버블에 의해 천안함이 동강나는 과정의 시뮬레이션, 천안함 우현 프로펠러가 안쪽으로 휘어들어간 원인에 대한 시뮬레이션, 어뢰추진체 ‘1번’ 글씨의 연소 가능성, 백색 흡착물질의 정체, 지진파·공중음파와 버블주기의 연관성 등이 방대한 발표자료와 인터뷰 등의 분석을 통해 하나하나 파헤쳐진다. 분석에는 합조단 참여자들과 비판자들이 모두 등장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지 않고, 그야말로 블랙박스를 열어젖히는 자세가 견지된다. 물론 왜 블랙박스를 여는가에 대한 해명도 나온다. 정부가 과학적 조사를 통해 ‘최종’ 결과라고 발표한 보고서에 숨겨진 과학실행 과정과 비판자들의 과학활동을 과학기술학의 방법을 활용해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논쟁 및 갈등을 완화하거나 해소하는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저자는 정부의 과학활동도 이미 나와 있는 성급한 결론을 정당화하려는 면이 강했지만, 비판자들의 활동도 분과적인 해석에 집중함으로써 논쟁을 수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분단체제 이데올로기가 논쟁을 크게 위축시키는 제약도 있었지만, 비판자들이 토론과 합리적 의사소통을 하려는 자세를 충분히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논쟁은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이해관계에서 독립적인 조사활동”(514면)을 거치면 해소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관련 학계의 동의를 거쳐 독립적인 조사단을 구성하여 충분한 시간을 두고 원인을 찾아가는 과학활동을 수행하면 침몰원인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평자는 천안함 침몰을 둘러싼 과학논쟁이 벌어질 때 의식적으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백색 흡착물질과 1번 글씨같이 언론의 조명을 받은 문제들이 과학적 분석으로도 해결되기 쉽지 않고, 설사 해결된다 해도 현 분단체제에서 범인이 북한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확정되는 일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저자와 견해가 달랐던 것이다. 저자는 미국 군함 아이오와호 선상폭발 사례를 들면서 천안함의 경우도 재조사로 많은 의문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이오와호 사고의 경우 미국 해군의 부실한 조사결과에 대한 의문이 커지자 독립적인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재조사가 결정됐고 이를 통해 사회적으로 수용될 만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그렇다면 이 책에 상세하게 소개된 천안함 사고의 과학적 의문점 중에서 어떤 것들이 재조사의 핵심 대상이 되어야 할까? 카이스트의 송태호 교수와 버지니아대 이승헌 교수가 논쟁을 벌인 1번 글씨는 쟁점이 아니고, 결론도 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이 내려진다 해도 재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의문은 계속 제기될 가능성도 높다. 반면 백색 흡착물질은 중요한 조사대상이고, 과학계에서 수용 가능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개의 실험실에서 에너지 분광, 엑스선 회절, 전자현미경 등 각종 물질분석 기술을 이용해서 분석한 결과를 서로 맞추어나가면 흡착물질의 성분을 확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어뢰추진체와 선체 곳곳에 부착된 흡착물질의 성분이 동일하고 그것이 알루미늄 화합물이라면 비접촉 수중폭발이 일어났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성분이 동일하지 않다면 수중폭발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수중폭발이 확인된다면, 그다음 핵심조사 대상은 지진파와 공중음파일 것이다. 폭발로 생성되는 버블의 수축팽창 주기와 폭약의 양을 확정하기 위한 결정적 자료이기 때문이다. 지진파와 공중음파 중에서 버블주기 확정에 적합한 것을 판정해내고, 이 파동으로 버블주기와 폭약을 계산하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진파가 더 적합하다면 버블주기는 0.99초, 폭약의 양은 136kg이 되고, 어뢰폭발이 아니라 기뢰폭발이 유력한 원인으로 떠오른다. 버블주기 계산에 공중음파를 적용해야 한다는 판정이 나오면, 어뢰폭발이 신빙성을 얻게 된다.

좌초설을 제기하는 비판자들은 프로펠러의 휨도 핵심 조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백색 흡착물질의 분석 결과 수중폭발이 없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안으로 휘어 있는 우현 프로펠러가 핵심대상이 되어야 하고, 좌초도 유력한 침몰원인으로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잠수함 충돌설은 천안함의 쪼개진 부분을 면밀히 분석해야 실마리가 얻어지겠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물론 당시의 훈련참가국들이 훈련과정을 밝히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밝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의문과 설만 더 커질 것이다.

결국 저자가 제안하는 투명하고 독립적인 과학조사도 정권이 바뀌고 분단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동아시아 정세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범인을 밝혀내는 데 크게 기여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재조사의 전제조건은 분단체제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가진 민주주의 정권의 창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