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손원평 孫元平

2017년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받으며 작품활동 시작.

장편소설 『아몬드』 『서른의 반격』 『프리즘』 등이 있음.

 

 

 

타인의 집

 

 

가늘게 뜬 눈 틈으로 빛을 바라본다. 벽면을 아름답게 수놓은 작은 세모 조각들이 바다에 비친 햇살처럼 현란하게 반짝인다. 블라인드 틈새로 들어온 햇살이 벽에 만들어낸 문양이다. 블라인드 자체는 빛바랜 푸른색으로, 낡고 허름해서 외면하기 십상이지만 한낮의 태양이 빚어내는 빛의 물결만은 언제고 나를 설레게 한다. 홀로 있는 낮 시간, 임동혁의 「라 발스」가 격정적으로 공간을 메운다. 3년 전 산 구형 스마트폰의 보잘것없는 스피커로도 그의 악마적인 재능과 굳이 겸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스스로도 안다는 듯한 예술가적인 젊은 영혼을 숨기는 건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나는 새삼 감탄하며 커피를 들고 거실로 나간다. 환하디환한 햇살이 창밖으로 보이는 음울한 뒷산과 대조를 이뤄 광휘로 가득한 쓸쓸함을 빚어낸다. 풍경과 빛과 음악, 그리고 고독한 내 존재는 완벽을 이룬다. 절망과 비관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때도 있지만 어쩌면 삶이란 꽤 괜찮은 건지도……

머릿속의 생각을 맺기도 전, 두 귀가 쫑긋 선다. 반갑지 않은 소리가 한순간 모든 걸 망쳐놓는다. 아무리 큰 소음 속에서도, 건반을 강타하는 임동혁의 역동적인 선율 속에서도 영혼을 쪼개는 도어록의 날 선 금속성 소리는 기어이 틈을 비집고 들어와 존재감을 과시한다. 나는 총성을 들은 한밤의 야생동물처럼 한달음에 달려 들어와 도어록이 해제되기 전 방문을 닫는 데 가까스로 성공한다. 사이칠, 팔오일, 이팔공일. 삼삼칠 박수처럼 간격을 띄는 걸 보면 이건 희진이다. 여덟번째 숫자가 들릴 때 나는 이미 방문에 등을 기대고 할딱대고 있다. 순식간에 내 공간은 집의 사분의 일만큼 줄어들었다. 오늘의 평화는 조금 더 길 줄 알았는데 완벽한 오산이었다. 희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 손을 씻으며 간간이 트림을 내뱉는 소리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채 나는 가빠진 숨을 깊은 들숨으로 진정시켜본다.

화장실 밖으로 나온 희진이가 쿵쾅거리며 냉장고로 향한다. 사실 나는 희진이를 한번도 호칭으로 불러본 적이 없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 얹혀살던 백수 삼촌을 떠올리게 하는 희진이는 따지고 보면 이 집에서 내가 가장 말을 덜 섞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내 마음속에서 그가 항상 ‘희진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이유는 웹툰 작가인 그의 필명이 본명을 딴 ‘희진이’이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히도 그는 그림보다는 소리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데 더 소질이 있는 듯, 상상력 빈곤 수준인 나 같은 사람조차 그가 내는 소리를 들으면 모든 행동이 눈앞에 그려지듯 선명해진다. 그 장면들은 상쾌함과 정반대 지점에 있으며 일일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가장 불쾌한 소리’ 하면 떠오르는 모든 것을 망라한다. 꽉 닫힌 문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는 가차 없다. 지금도 나는 그가 냉장고 속의 바나나를 꺼내 먹는 모습을 보지 않고도 본다. 바나나와 입안의 침이 빚어내는 진득한 점액질의 소리는 입을 클로즈업해 음량을 최대로 올린 것처럼 쓸데없이 실감난다. 이럴 때면 이 집이 오래된 집이라는 게 여실히 드러난다. 겉은 번드르르해도 우리의 구획은 얇은 마분지로 나뉘어 있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그렇게 오후의 호사는 희진이의 등장으로 막을 내리고 이제 나는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 방 안에 콕 틀어박혀 있을 예정이다. 살짝 답답하긴 해도 내 방에 있을 건 다 있다. 책상, 미니 책장, 간이 옷장, 해가 드는 커다란 창과 빛을 허용하면서도 과한 햇살을 막아주는 블라인드, 무려 퀸 사이즈의 푹신한 침대와 그 곁의 협탁, 내가 가장 애정하는 ‘내돈내산’ 미니 냉장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망의 화장실까지. 물론 나는 행동과 소리에 조심한다. 이어폰을 빼고 음악을 듣는 건 집이 비었을 때뿐이고 화장실을 쓸 때도 물을 트는 건 필수다. 공동생활에서 종종 발생하는 난감한 일을 줄이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은 소리를 줄이고 존재를 최대한 감추는 거다. 그건 배려라기보단 이 집에 사는 이들과 같은 부류가 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저녁이 되자 또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문을 여닫는 느린 속도와 조심스럽지만 신경질적인 발걸음으로 냉장고로 직행하는 건 다름 아닌 재화언니다. 시민단체에서 일한다는 그녀와 몇마디 말을 나눈 적은 있지만 이 언니와도 친하다고 하긴 어렵다. 냉장고를 확인한 재화언니의 툴툴대는 소리가 이어질 때쯤 나는 지겨운 긴장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리고 기어이 언니가 어휴, 하고 숨을 뱉고 발걸음에 가속도가 콩콩콩 실리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심정으로 작은 전쟁의 시초를 예감하는 것이다. 오늘만큼은 언니가 희진이의 방문을 두드리기 직전 에어팟을 두 귀에 꽂고 유튜브를 트는 데 성공한다. 예고편으로 됐으니 본편은 생략하기로 한다.

본편에서 벌어지는 일은 보지 않아도 뻔하기 짝이 없다. 둘의 언쟁은 주로 희진이가 단초를 제공하고 재화언니가 반격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장소는 희진이의 방 앞, 내용은 대부분 냉장고 음식의 배분이나 화장실 청결 등에 관한 것들이다. 다다다 쏘아붙인 재화언니가 희진이의 방을 마주 본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닫는 것으로 전쟁은 끝난다. 오늘은 아까 희진이가 먹은 재화언니의 바나나가 이유였을 것이다.

둘을 보면 뭘 저런 걸로 싸우나 싶다가도 대학 졸업 후 지냈던 고시텔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면 이해 불가한 일도 아니다. 나도 문간방에 살았다면 똑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을 거다. 새삼 내 방 안의 미니 냉장고가 든든하고 기특해진다. 부대껴 산다는 점에서는 고시텔과 다를 바 없어 보여도 이 방 안에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치상 안방인 내 방은 ‘마주 보는 문간방 형국’인 희진이와 재화언니의 방과는 격 자체가 다르단 말씀이다. 그러니 지금 내 마음의 여유는 곳간에서 인심 나는 격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더 맞으려나.

재화언니마저 방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뒤 나는 고양이 걸음으로 살그머니 나온다. 거실 냉장고에 있는 미니 무화과파이를 옮겨놓는 것을 깜박했기 때문이다. 재화언니처럼 떡하니 보이는 곳에 음식을 놔두고선 그걸 건드리는 사람을 탓하는 건 안일하다. 조용히 득을 취하는 게 진정 현명한 판단이거늘. 고추장통 뒤에 숨겨놓은 내 무화과파이는 검은 비닐로 싸여 있어 엄마가 보내준 오래된 강된장쯤으로 인식된다. 파이를 소중히 들고서 새삼 거실의 기괴한 풍경을 한번 바라본다. 냉장고 옆으로는 테이블이 하나 있고 소파가 있을 자리엔 작은 망이 쳐져 있다. 그곳이 쾌조씨, 내가 집세를 지불하는 사람의 공간이다.

쾌조씨의 본명은 재욱이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를 처음 알게 된 아이디인 쾌조씨라고 칭한다. 쾌조씨는 뭐랄까, 설명하기 복잡한 인물이다.

파이를 들고 돌아선 순간 테이블 밑에서 툭 튀어나온 팔 한쪽이 눈에 들어왔다. 팔이 꿈틀거리더니 테이블 밑에서 나온 쾌조씨가 한잠 푹 잤다는 듯 기지개를 켜며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종일 집을 비운 줄 알았는데 내내 여기 있었다는 건가. 그렇다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임동혁의 「라 발스」와 그 음률을 따라 하는 내 허밍을, 문 닫지 않고 내린 변기물의 소리를 이 사람과 공유했다는 말인가. 온몸이 돌처럼 굳어 움직일 수조차 없던 그 순간, 시의적절하게 터진 쿠쿠 밥솥의 증기 내뿜는 소리가 나 대신 맘껏 비명을 질러주었다.

 

쾌조씨를 처음 본 자리는 기괴했다. 아니, 어쩌면 그 당시 내게 일어난 일들이 하나같이 기괴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팩트만 요약하면 애꿎은 한줄이라, 애인과는 파토 나고 회사에선 잘리고 살던 집에선 월세 인상에 못 이겨 쫓겨났다는 정도. 그때 겪은 감정의 나락을 복기하느니 차라리 그렇게 요약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다.

어쨌든 곡절과 방황의 소용돌이 끝에 내가 서 있던 장소는 집 구하기 앱에 올라온 글이 안내해준 시내의 스타벅스였다. 글이 풍기는 냄새는 적잖이 수상쩍었지만 집의 상태가 너무도 탐나 이끌리듯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미팅 비용은 오천원. 집 정보를 받는다는 이유로 내 쪽에서 지불해야 하는 돈이었다. 내 앞엔 대기자들이 네명이나 됐는데 글을 올린 이는 나와 등지고 앉아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돌아서는 면접자들의 얼굴은 모두 마스크로 가려져 있었으며 그들도 그 점을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다.

면접 자체는 평범했다. 신상에 대한 간단한 구술과 통장의 잔액을 보여주는 게 전부였다. 쾌조씨는 내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스마트폰에 간단하게 메모했고 확인사항이었던 통장잔액도 액정 너머 슬쩍 확인했을 뿐이었으므로 개인정보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은 안심이 됐다. 이 말도 안 되는 만남에 사람이 몰린 이유는 쾌조라는 아이디로 올라온 글이 싼값으로 시내 아파트에서 살 사람을 구하는 일종의 세입자 면접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집은 높은 언덕 위에 세워진 30년 된 아파트였지만 내부는 몹시 깨끗했고 도심 한중간에 위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격이 합리적인 걸 넘어 터무니없이 싼 쪽에 가까웠다. 설명에는 수익을 위함이 아니라 젊은이들의 품격 있는 공동체 생활을 꿈꾸기 때문이라는 말과 원래 살던 사람 중 한명이 나가게 돼서 충원한다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높은 경쟁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방을 직접 볼 수는 없나요.

—1차 면접에 통과하면 보여드리겠습니다.

용기 내 물은 질문에 대한 쾌조씨의 답은 차갑지만 쾌활했다. 먼저 신상을 확인하고 집을 보여주겠다는 게 이 면접의 공식적인 이유였지만 그에게선 아쉬울 것 없다는 자신감이 드러났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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