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평

 

올해 5회를 맞은 창비장편소설상에는 총 248편의 작품이 응모되었다. 장편소설 출간과 각종 공모가 활발한 최근의 소설적 흐름을 알려주듯이 해마다 응모작이 늘고 경향도 매우 다양해지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 가족해체와 폭력의 문제,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갈등, 성과 욕망의 문제, 예술의 존재의미, 미래사회의 상상력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청년이나 소년 시점의 성장담과 가족서사는 여전히 중요한 소재로 다루어지고 있다. 형식적으로도 다양한 장르적 요소를 변주하는 응모작이 많았는데, 아쉬운 점은 스토리의 다양성에 비하여 그것을 이끌고가는 새로운 시각이나 언어미학의 개성이 두드러진 경우는 흔치 않았다는 점이다.

심사위원들이 예심을 거쳐 본심 대상으로 올린 작품은 기준영 『와일드 펀치』, 김종옥 『늑대인간의 귀환』, 박향 『에메랄드 모텔』, 우대희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전제경 『이별, 더럽게 아리다』, 정범종 『중모리 워킹』, 조남주 『고마네치 날아』 이상 모두 7편이었다.

김종옥의 『늑대인간의 귀환』은 현실과 환상을 뒤섞는 개성적인 서술형식으로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시대현실 속의 청춘을 돌아보는 과정이 주로 인물들의 주관적 기억이나 대화를 통해 관념적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아쉬움을 주었다. 박향의 『에메랄드 모텔』은 모텔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군상의 고달픈 사연을 엮은 작품이다. 소외된 삶을 바라보는 진지한 시선이 내장되어 있으며 문체도 안정적이지만, 모텔 여주인이 아이를 맡아 기르게 되는 작위적인 결말이며 작품 전반을 압도하는 진부한 세태묘사가 문제가 되었다.

우대희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은 한국사회의 재벌가라는 소재와 고전적인 패러디 형식의 회고록이 흥미로웠으나, 소재의 특이성에 비해 자본이 인간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는가를 깊이있게 추적하지 못한 한계를 보여주었다. 전제경의 『이별, 더럽게 아리다』는 다양한 문화적 기호들과 수사를 통해 청춘의 분노와 우울을 경쾌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청년의 시선이 돋보이는 재기발랄한 매력이 있었지만, 문체와 구성 등에서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정범종의 『중모리 워킹』은 창극과 패션, 다도(茶道) 등을 소재로 하여 삶과 예술의 문제를 진지하게 탐구하려는 의도가 보였지만, 그것을 포착하는 문체나 구성에서 새로운 서술방식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수상 가능성을 두고 오랫동안 논의한 작품은 조남주의 『고마네치 날아』와 기준영의 『와일드 펀치』였다. 『고마네치 날아』는 코마네치처럼 유명한 체조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철거와 재개발이라는 사회적 문제와 연결시켜 흥미롭게 풀어간다. 성장서사의 안정된 형식과 매끄러운 문체, 뚜렷하게 부각된 주제의식 등이 큰 장점으로 다가온 작품이었다. 그러나 체조선수의 꿈이라는 소재를 주요한 갈등 해결까지 작위적으로 연결하는 단조로운 구조가 한계로 지적되었다. 안정적이고 매끄러운 이야기라 하더라도 상황을 바라보는 작가의 새로운 시선이 없다면 평범한 세태담을 벗어나지 못한다.

『와일드 펀치』는 겉으로 보기에 뚜렷한 중심사건이 존재하지 않는 듯한 독특한 플롯과 분위기를 지녔다. 어느 부부의 집을 중심으로 각자의 고단하고 아픈 사연을 지닌 낯선 타인들이 서서히 모여들고,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들의 우연한 만남은 서로를 향한 교감과 소통으로 변모해간다. 이 가운데 중산층 부부의 집이라는 공간은 타인들이 드나들어 새로운 만남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열린 장소로서의 상징성을 획득한다. 집과 가족, 사랑과 결혼, 성장의 고통에 얽힌 곡진한 사연들이 사소한 대화의 축적을 통해 섬세한 파장을 형성해가며, 고통을 과장하지 않는 담담하고 절제된 대화는 행간의 여운과 여백을 형성하며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 사물과 상황을 장악하는 문체의 아우라에서 소설가의 개성이 축조된다고 본다면, 이 작가는 매우 돋보이는 재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인물들 간의 사연을 연결하는 세부적 구성의 측면에서 보완해야 할 지점들이 엿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고단한 일상의 무게를 담담하게 견뎌내는 성숙한 소설적 시선은 이 작품이 지닌 가장 큰 미덕으로 다가왔다. 인물들의 개별적 사연을 자기만의 목소리로 끝까지 조율하면서 현대인이 실감하는 관계의 소통의 문제로 서사적 울림을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이 작가의 역량과 가능성이 발견된다.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갈 수상자에게 아낌없는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응모해주신 많은 분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권여선 백지연 윤성희 정지아 한기욱|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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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영

1972년 서울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 전문사 졸업. 2009년 『문학동네』 신인상 수상.

 

 

 

 

걸어온 시간, 만났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여태까지와 마찬가지로 나는 앞으로도 좀 변덕스럽고, 성깔도 부리고, 돌연한 질문과 느닷없는 상냥함으로 당신들을 때로 어리둥절하게 만들겠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실은 이만큼 사랑하고 있는 것이라고 남길 수 있어서, 기쁘다.

소설 속 인물들이었지만, 쓰는 동안 짐작보다 많이 정들었다. 잘 살고 있는지, 다니며 뭘 했는지, 웃었는지, 울었는지, 궁금하고 때로 그리웠다. 그들을 아직 나만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기분이 문득 이상하고 낯설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창비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김홍준 선생님, 이제 새 운명을 갖게 될 등장인물들에게 마음의 약속을 보낸다. 어떤 진심은 일종의 에너지 같은 것이어서, 미지의 시간, 미지의 당신과 사고 치듯 격하게 만나지는 것이면 좋겠다. 다가올 우연과 필연, 새로운 이야기들, 함께할 풍경과 시간, 공기와 온도, 냄새와 소리들에도 미리 인사를 전한다.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