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김윤영 金倫永

1971년 서울 출생. 1998년 「비밀의 화원」으로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 입선.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

 

 

희완이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저녁 무렵 독서실에서였다.

출출하다 싶어 휴게실로 가 컵라면 물을 받아놓고 앉아 있을 때 아이들이 모여서 쑤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직접 보고 왔다는 둥, 백차가 순식간에 와서 싣고 갔다는 둥, 두서없는 수군거림이었지만 희완은 무슨 얘긴지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같은 학교 1학년들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복팔이라는 이름을 입에 올릴 리 없었다. 2,3학년들은 보통 그를 똥독이라고 불렀다. 혹은 씹탱이 똥독이라고 불렀다. 희완은 그에게 계속 수학과외를 받아오다가 최근 학원 강사로 바꾸었다. 그러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라면이 다 익은 것 같아 희완은 라면 몇가닥을 후루룩 먹어보았다. 물을 좀 많이 넣었군, 하며 남은 라면 가닥들을 후후 불며 마저 삼켰다. 똥독이 없으면 누가 수학을 맡지, 그 생각이 퍼뜩 떠올랐지만 누가 맡든 어차피 큰 변화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또 들었다.

똥독은 희완의 담임이었다.

 

호이호이분식 주인 심씨는 이 한적한 일요일날 웬일인가 싶어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학교 담장을 마주보고 있는 이 외진 골목엔 가게도 몇 되지 않을뿐더러 그나마 일요일에 문 여는 데는 심씨네밖에 없었다. 담장 끝 공터에서 시체가 발견되자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심씨네로 경찰들이 들이닥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비명소리 같은 걸 듣지 못했느냐, 가게를 비운 적이 없느냐, 피살자가 누군 줄 아느냐, 그런 취조 아닌 취조를 받으면서도 심씨는 불편한 마음보다도 말로만 듣던 살인사건이 코앞에서 일어났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지은 죄도 없는데 몸이 자꾸 떨렸다. 형사들이 그에게 그닥 혐의를 두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 소리도 못들었다는 게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눈치들이었다.

─이런 가게도 장사가 잘돼나? 손님도 없을 것 같구만, 안 그래, 엉?

나이도 어린 형사가 반말 비스름하게 하는 게 거슬렸지만 심씨는 이런 놈들에게 찍혀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해 최대한 공손하게 대답했다.

우리 집이 보기엔 이래도 단골이 꽤 많다. 추석이랑 설 빼고 삼백육십일 가게문을 연다. 배달도 꽤 된다. 4시 넘어선가 배달을 한번 갔다오긴 했다. 가까운 데긴 한데 단골이라 좀 노닥거리다 보니─정확히는 모르겠지만─한 20분 걸렸으려나? 그리고 그렇게 피범벅인 얼굴을 보고 어떻게 누군지 알겠는가? 본 적 없는 것 같다. 요 근처 사람이나 가게에 들렀던 사람은 왠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말해놓고 형사들이 간 다음에도 심씨의 마음은 계속 찜찜했다.

그거 참 신기하네. 분명히 요 골목에서 당했다는데 어떻게 아무 소리도 안 들렸지…… TV 소리가 너무 컸나? 그럼 진짜 내가 배달갔다온 사이에 그랬나? 아이구 끔찍해라. 가만, 그러고 보니…… 하필 왜 그 시간에 배달을 시켜? 아니지…… 내가 아예 없었던 게 차라리 낫던 거지…… 아이구 생각을 말아야지…… 재수가 없으려니까…… 소금이라도 뿌려야겠네.

김형사와 서형사는 현장에서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한데다가 목격자도 확보하지 못해 서장에게 볶일 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선배님, 저 만두가게 주인, 너무 떠는 것 같지 않아요?

─너무 쫄아서 그렇지. 위생계에다 뭐라고 찌를까봐 그럴 거야.

김형사의 심사는 약간 복잡했다. 이 작은 도시에서 살인사건이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강도나 치정에 의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면, 게다가 이런 점잖은 양복 차림의 피살자라면 수사는 간단치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건 현장이 바로 학교 앞이란 것도 마음에 걸렸다.

 

두 사람이 서에 도착하자마자 서장이 그들을 찾았다. 다행히 피살자의 신원은 확보되어 있었다. 예상대로 그는 바로 코앞에 있던 그 고등학교의 선생이었다. 서장은 왜 아무것도 건진 게 없냐고 습관대로 포악을 떨었고, 김형사는 근처 불량배들 탐문해보면 나오는 게 있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서장은 피살자 부인이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성깔을 부렸다.

서장은 불안했다. 아주 불안했다.

왜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 황선생이야. 종만이 놈 대학 갈 수 있게 해준다고 나한테 뜯어간 게 얼만데…… 골픈지 뭔지 그거 한다고 쏟아부은 게 얼만데…… 그 돈 다 어떻게 되는 거야. 연결시켜준다는 사람들은 코빼기도 못 봤는데…… 가만, 가만,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니지. 그럴 때가 아냐. 피살자 돈줄 밝히다 내 이름 나오면 그게 더 골치 아파지지. 아이구, 내 처음부터 그 선생 인상이 맘에 안 들더라……

바로 그때 피살자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자지러진 황복팔의 부인을 다른 사람들이 부축해서 데리고 온 것이다. 그녀의 아우성은 요란했다. 당장 범인을 잡아와라, 내가 갈아마셔주겠다, 어떡하나 불쌍한 우리 남편, 훈장질 20년 한 끝에 이렇게 죽다니, 호강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갈 걸 그렇게 아등바등……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난리를 떨다가 서장을 보곤 의식적으로 눈길을 돌리는 듯하더니 슬그머니 돌아갔다.

그날 밤 늦은 시각, 대략적인 사망 원인과 정황, 시간들이 나왔다. 김형사의 예상대로 둔기와 칼이 다 사용됐고 사망시간은 며칠 뒤 더 정확히 나오겠지만 신고한 시간과 그닥 멀지 않은 걸로 추정되었다. 오후 네다섯시 정도. 김형사의 흥미를 끈 것은 전문 깡패들의 소행으로 보이면서도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주는 흔적들이었다. 시체에도 격이 있는 법이다. 솜씨있는 살인자가 급소와 상관없는 곳은 건드리지 않고 최소한의 손놀림으로 시체의 품위를 유지하게 한다면, 이 시체처럼 수십 군데를 일관성없이 쑤시고 찔러 피살자의 고통을 극대화한, 품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미 숨이 끊어졌거나 충분히 분풀이를 했음에도 어떤 연민이나 자책도 없이 감정이 남아 있는 이런 경우를, 김형사는 거의 보지 못했다.

 

다음날, 수사는 계속됐는데 알 만한 근처 건달들에게선 단서가 될 것이 도통 나오지 않았다. 전날 다녀간 부인 말대로 특별한 원한 관계나 돈 문제도 없어 보였다. 아니, 돈 문제가 없다고 볼 순 없었다. 일개 선생의 명의로 건물과 주식과 채권이 너무 많았다. 황복팔의 부인은 원래 물려받은 유산이 꽤 될 뿐 아니라 황복팔이 재테크에 능하고 쓸데없는 돈은 쓰지 않아서라고 했다.

더 조사를 하려고 하자 서장이 그만하면 됐다면서 다른 쪽을 알아보라고 했다. 김형사는 평교사 재산이 그리 많은데 왜 그만하면 됐다는지 이해가 안됐지만 서장이 둘째아들 때문에 이 바닥 선생들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게 생각나 가만히 있기로 했다. 서장의 둘째아들놈은 공부도 공부지만 아버지 얼굴에 먹칠할 짓만 골라 하고 다녔다. 서장을 보고 있으면 자식 키우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란 생각이 들곤 했다. 김형사의 딸아이는 이제 겨우 여섯살이었다. 서장은 망나니 아들 때문에 심심찮게 학교 선생들에게 돈을 먹여 입을 막고 정학을 막고 소문을 막아왔다. 서장도 돈 문제에 있어선 남 못지않게 한가닥하는 인물이었다.

김형사는 서장 눈치를 봐서라도 황복팔의 재산 문제는 일단 보류해두고 그의 주변 인물들이나 다시 조사해보리라 생각했다. 신출내기 서형사와 함께 황복팔의 주변을 샅샅히 훑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수사는 별 진척이 없었다. 황복팔은 그 흔한 고향이나 학교 친구 같은 친분관계가 놀랍도록 적은 인물이었다. 그나마 수십년씩 보지 않은 사이가 숱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별볼일 없는 섬마을 편모 밑에서 자란 황복팔은 고학으로 겨우겨우 대학을 나와 시골학교를 전전하다가 10여년 전 드디어 서울에 입성했다고 한다. 그후 목 좋다는 강남에서 화려한 교사생활을 했고 그후는 너무도 바빠 통 사람들에게 얼굴 비출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시시한 촌친구들은 까놓고 무시했던 작자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았다. 그는 속칭 촌지교사 과외교사였다. 잘나갈 땐 돈을 갈퀴로 긁어모았다고들 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황복팔의 부인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다가 입을 다물어버렸다.

 

더이상 수사에 진척이 없자 김형사와 서형사는 일단 학교를 다시 방문하기로 했다. 사건 다음날 잠깐 들르긴 했으나 워낙 경황이 없었다.

학교로 들어가면서 김형사는 수위실에 들를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지난번 수위실에 처음 들렀을 때 김형사는 이렇게 늙은 수위가 무슨 경비를 설 수 있을까 솔직히 놀랐다. 요즘 학교에선 수위 대신 잡일 하는 기사를 둔다고 하던데 이 학교엔 환갑도 넘었을 듯한 늙은 수위가 교문 앞에 떡 버티고 있었다. 그는 사건 당일 분명히 학교에 있었지만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퉁명스럽게 대꾸할 뿐이었다. 그때 나눈 대화는 이러했다.

─그래도 뭐 생각나는 일 없으세요.

─뭐, 늘 그냥 그렇지. 낮에 농구하러 온 애들이 한 댓명 있었고…… 아 글쎄, 그놈들이 전부라니까, 왜 자꾸 두 번씩 말하게 만들어? 학교가 이렇게 변두리에 뚝 떨어져 있는데 뭐 좋다구 애들이 일요일까지 기어오겠어? 그리구 이 학교 선생들은 숙직하는 날에도 왔다가 다 일찍 가. 시험 때도 아니고 말야.

─황선생에 대해선 잘 아세요?

─잘 알긴, 그 양반, 이 학교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 서울서 온 실력있는 수학선생이라나 뭐라나.

─특별히 기억나는 거 없으세요?

─뭐, 그 양반 인사성은 별로 좋지 않지. 늘 누렇게 떠가지고 종종거리고 다니고 뭐가 그렇게 바쁜지…… 그런데 작년 가을인가, 새로 바꾼 차를 애들이 하도 긁으니까 나한테 좀 뭐라고 하데. 근데 내가 뭐 지 차만 볼 수 있나? 그러니까 소주팩 한 박스를 갖다주데. 잘 좀 감시해달라고. 뭐 꼭 그런 걸 얻어먹어서가 아니라, 요즘 애들이 원체 싸가지가 없잖아. 선생 말도 안 듣는 놈들이 내 말을 듣겠수? 그런데 딴 선생들 차는 아무 탈 없는데 꼭 그 양반 차만 유난히 긁히고 타이어 빵구나고 카바 찢기고 빽미러 깨지고 그러데. 뭐, 좀 차가 눈에 띄긴 했지. 제일 삐까번쩍하구. 뽑은 지 얼마 안된 것 같더구만…… 그리고 그 선생은 일직 같은 걸 서는 일이 없데. 퇴근도 굉장히 빨라. 원 인사해도 받을 시간이 없는 것 같더라구. 아이구, 난 더이상 몰라. 나 풀 뽑아야 되니까 그만 물어봐.

김형사는 그날 농구하러 온 애들이 혹시 누군지 기억나냐고 물었지만 늙은 수위는 내가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다 기억하냐며 벌컥 화를 냈다. 농구대와 수위실이 그리 멀지도 않은데 보면 알지 않겠냐고 하자, 그제서야 두고 다니던 안경이 없어져서 잘 못 봤다고 했다. 그게 전부였다.

김형사가 곧장 교무실로 들이닥치자 선생들은 상당히 긴장하는 눈치였다. 제일 먼저 교감이 달려와 그를 맞았다.

─아이고 수고하심다, 뭐 좀 수사에 진척이 있습니까.

─뭐 불량배들 소행 같은데 아직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다른 것도 수사할 게 많고 그래서요. 하여간 시계랑 돈이 몽땅 털린 걸로 봐서 단순 강도 같기도 하고……

김형사는 교무실 안을 슬쩍 둘러보았다. 황선생 자리라는 곳은 금방 눈에 띄었다. 다른 선생들 책상 위엔 무슨 기록부니 걷어놓은 노트니 프린트니 하는 것들로 수북했지만 황선생 책상엔 흰 국화 한다발만 을씨년스럽게 놓여 있었다. 너무 시들어서 이제 그만 내버려도 될 듯싶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황선생 자리 바로 옆에 앉은 젊은 남자선생이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그는 김형사를 흘깃 보더니 하던 일에 코를 박고 못 본 척했다. 김형사는 교감에게 슬슬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난번엔 교장선생님만 잠깐 뵙고 갔습니다. 그래서 교감선생님께 몇가지 더 여쭤볼까 하는데요, 황선생님이 학교에선 어떠셨나요.

─예, 마 아주 실력있는 훌륭한 선생님이셨죠. 마, 요번 스승의 날엔 도내 ‘올해의 교사상’도 받으실 예정이었구요. 마 학생의 일을 항상 자기 일처럼 생각하시고 이 시대 참교육을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하셨지요. 예? 아 예, 다른 얘기를요? ……마 하여간 황선생님이 우리 학교 오셔서 수학 평균이 많이 올랐습니다. 이 시대에 귀감이 될 만한 교육자셨지요.

김형사는 거기서 얼른 말을 자르고 황선생과 가까이 지낸 선생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감은 김형사를 3학년 주임에게로 데려갔다. 그러면서 교감은 생각했다.

아니 왜 학교를 들락거리는 거야…… 내가 뭐 실수 안했나 모르겠네. 사실 내가 뭐 많이 먹길 했나, 황가가 조금씩 준 거 챙긴 거밖에 없지. 가만…… 괜히 올해의 교사상 얘길 했잖아. 내가 황가에게 주려고 교무실서 대판 싸웠던 걸 알게 되면 괜히……

김형사는 3학년 주임선생에게도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는 교감과 달리 말수가 적은 인물이었다.

─글쎄요. 저랑 특별히 친하다기보다는 다른 분들과 좀 소원했죠. 들으셨겠지만 새로 오신 선생님들이 워낙 적어서요. 사립학교가 다 그렇죠. 황선생 수학 실력은 전에 가르치던 선생들보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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