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박서련 朴曙孌

1989년 강원 철원 출생. 2015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호르몬이 그랬어』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장편소설 『체공녀 강주룡』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 『마법소녀 은퇴합니다』 등이 있음.

hugmedarling@naver.com

 

 

 

나, 나, 마들렌

 

 

나는 목이 잘려 죽는다. 언젠가. 오늘은 아닌 미래에. 멀거나 머지않은 미래에. 그렇게 믿는다는 말은 언제나 부족한 느낌이 든다. 나는 이 사실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확실하게 감각한다. 마치 이미 나 자신이 목 잘려 죽는 걸 목격한 적 있는 것처럼. 다른 방법으로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또 그 꿈 꿨어

라고 말하려고 했다. 잠에서 깨어나 막 머리가 목에 잘 붙어 있다는 게, 그래서 목소리가 목을 지나 입으로 새어나갈 수 있다는 게 어색하게 느껴졌다. 나는 목 잘리는 꿈을 자주 꾼다.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지. 나는 어릴 때부터 참수몽을 꿨다. 목이 잘리면 키가 컸다. 성장이 멈춘 후에도 수백번 머리를 잃었다. 마들렌은 내가 이런 꿈을 꾸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좋아한다. 그다지 특이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내가 꿈만은 조금 색다른 걸 꾼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말해주려고 했는데. 잠이 덜 깬 머리는 간신히 마들렌이 집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마들렌은 교대역 근처 친구네 집에 하루 신세를 지기로 했다. 아침 일찍 변호사 사무실에 갈 예정이었다.

차츰 머리가 맑아지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지금, 내 팔에 닿아 있는 이 미지근한 건, 누구 살이지……

전날 밤 나는 분명 혼자 누웠다. 무척 피곤했기에 맑은 정신으로 누웠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술은 한방울도 마시지 않았다. 내겐 실수를 저지를 만큼 가까우면서 물리적으로도 가까이에 사는 지인이 없다.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넬 만한 담력도 없다. 혹시 마들렌이 마음을 바꾸어 돌아와 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옆에 누워 있는 사람은.

상대방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린 나는 나와 동시에, 같은 속도로 내 쪽을 쳐다본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거울을 보듯이. 거울을 향해 돌아눕듯이.

소리를 지를 뻔했을 때, 상대방의 손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동시에 나도 상대방의 입을 막았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그쪽도 나와 똑같은 크기로 눈을 키웠다. 내가 옆사람 입에 대고 있던 손을 가져오자 내 입도 자유를 되찾았다. 나는 자유로워진 입으로 누구세요 묻는 대신, 되찾아온 손으로 뺨을 힘껏 내리쳤다. 꿈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내 곁에 누워 있는 낯선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나와 똑같이 생긴 얼굴을 나와 똑같은 손으로 후려친 다음 아파하면서, 동시에 나처럼 놀라고 불안해하면서 나를 보고 있는 나의 존재가 꿈이 아니었다.

문학이 위대한 이유는 아무리 형설하기 어려운 사건이라도 이미 그것을 상상한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게 유일한 이유는 아닐지라도, 또 정확히 이런 상황을 예견한 건 아닐지라도. 프란츠 카프카 식으로 말하기: 어느날 아침 목 잘리는 꿈에서 깨어난 나는 자신이 침대에서 두개의 몸으로 분화한 것을 알아차렸다. 마르셀 에메를 인용하기: 그녀는 동시에 도처에 공재 가능했다. 즉 그녀는 자기 자신을 여럿으로 불어나게 할 수 있으며 원하는 장소들마다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육체뿐 아니라 정신까지도.

나와 나는 동시에 천장을 올려다보는 평평한 자세로 누웠다.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고 소용도 없었다. 나와 나는 둘 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지 못했고 알고 싶었다. 조금이나마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이런 일이 생긴 지금 마들렌은 집에 없다는 것. 나와 나는 똑같이 그렇게 생각했고 똑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의 나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히 알았고 완전히 일치하는 반응을 동시에 했으며 따라서 그게 생김새만 닮은 타인이라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나는 나였고 나도 나였다. 나는 맞은편의 내가 스스로를 원본이라 여기는 듯한 기색이 불쾌했고, 그쪽 나도 이쪽 나에 대해 같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복수의 1인칭이기 때문에 나와 나의 집합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은 일어나기로 했다. 무언의 합의를 통해 우리는 소모적인 감정 다툼, 예를 들어 어느 쪽이 원본인지나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책임 소재 따지기 등을 생략하고 일단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들을 우선하기로 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마침 잘됐다고 볼 수도 있었다. 나에게는 당장 가야 할 곳이 두군데 있었고, 몸이 둘이 아니고서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내가 출근을 할게. 너는 법원에 가.

동시에 말한 후에 우리는 둘 다 놀랐다. 내가 이렇게나 자진해서 출근하고 싶어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으니까. 할 수 없지, 그럼 법원에는 내가 갈게. 내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둘 다 나인데 둘 중 누가 더 껄끄러운 곳에 갈 것인지를 두고 아웅다웅하는 건 조금도 의미가 없었고, 우리 둘 다 이런 상황이 처음임에도 그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알았어, 수고해. 빠르고 원만한 합의에 도달한 우리는 차례대로 씻고 옷을 입었다. 정장을 옷장 어디에 두었는지 내가 따로 귀띔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알아서 잘 찾아 입고 나갔다. 공판 방청을 하려면 아홉시 반까지 법원에 가야 했다.

 

마들렌은 나의 과자친구. 나는 마들렌의 감자친구. 어느날 마들렌은 이제부터 여자친구 대신 과자친구라 불러달라고 말했고, 자기도 나를 여자친구 대신 감자친구라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자기는 왜 귀엽게 과자친구고 나는 왜 텁텁하게 감자친구인가? 나는 듣자마자 느낀 불만을 토로하는 대신 알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 엄마가 제과공장에 다니고 너는 강원도 출신이니까. 물어보지 않았지만 마들렌은 이유를 알려주었고 물론 나는 그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었다. 우리 집은 농사 안 짓는데? 굳이 마들렌에게 그걸 상기시키지는 않았지만.

과자친구로도 여자친구로도 마들렌은 나의 첫번째다. 종종 나는 아무래도 양성애자인 것 같다고 떠들고 다니긴 했지만 실제로 여자와 사귀어본 것은 서른을 갓 넘어서가 처음이었다. 반면 나보다 네살이나 아래인 마들렌은 같이 살아본 여자 중에서도 내가 세번째라고 했다. 여자끼리 사귀면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아도 같이 사는 게 자연스럽다는 게 마들렌의 주장이었다. 그러고 보면 구두로 같이 살기로 한 적은 없는데 언젠가부터 마들렌이 집에 가지 않기 시작했고, 마들렌의 짐이 우리 집에 차곡차곡 쌓이더니, 엄벙덤벙 같이 사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 나는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하니 돌아가달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모질지 못했고, 본인이 인정했으니까 말이지만 마들렌은 아무래도 염치가 좀 없는 편이었다. 그래도 그래서 귀엽지?라고 마들렌이 물을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마들렌은 정말 귀여운 과자친구니까.

나와 마들렌은 소설 창작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우리 둘 다 무척 좋아하던 소설가가 지방대학 강사직을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와 오랜만에 다시 연 사설 강의였다. 선착순으로 수강생 여덟명을 받는 수업에 열일곱명이 몰려들었다. 나를 비롯해 운 좋게 커트라인에 든 여덟명의 수강생이 모인 첫주 강의에서 소설가는 이런 말을 했다: 진지하게 소설 쓸 사람만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인스타 작가, 웹소설 작가 잘나간단 얘기만 듣고 나도 투잡 한번 해볼까 하는 분들은 제 강의가 맞지 않을 거예요.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나는 과연 치열하게 쓰고 냉정하게 고칠 수 있는 사람인가? 소설가의 말이 마음을 움직여서든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서든 두명이 수강료를 환불받아 갔고 두번째 주에는 예비 순번을 받아두었던 새로운 수강생 두명이 들어왔다. 그중 한 사람이 바로 마들렌이었다.

나 언니네 집에 가면 안 돼요?

마지막 12주차 강의가 끝나던 날에는 뒤풀이가 있었다. 2차로 옮긴 술자리 중간쯤, 토할 것 같다는 마들렌을 화장실로 데려다주었더니 마들렌이 그렇게 말했다. 한참 토하고 나와서 입을 헹군 다음, 창백하고 물에 젖어 애처로운 얼굴로. 그렇게 시작했기 때문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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