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권채운 權彩運

1950년 충북 진천 출생. 2001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 작품 「겨울 선인장」 등이 있음. st_625@hanmail.net

 

 

 

단꿈

 

 

벌써 한달째다. 오늘만 해도 졸다가 두 번씩이나 고꾸라질 뻔했다. 특히 손님이 몰리는 서너시만 되면 쏟아지는 잠을 주체할 수가 없다. 맞은편에서 과일장사를 하는 김씨가 딱해서 못 보겠는지 그만 좌판을 걷으라고 성화다.

정숙은 부스스 일어나 커피 자판기가 있는 건물 모퉁이로 간다. 그녀는 전대에서 동전을 꺼내들고는 잠시 망설인다. 그냥 버텨볼까.

“아줌마, 커피 안 뽑아요?”

머리를 파랗게 물들인 녀석이 그녀를 밀쳐버릴 듯이 목소리를 높인다. 그녀는 슬그머니 비켜선다. 그 바람에 졸음이 달아난 것 같다. 그녀는 약방에서 피로회복제 두 병을 사서 한 병은 그 자리에서 단숨에 들이켠다. 정신이 반짝 나는 듯도 하다. 밍밍한 맛이 영 입에 맞질 않아 여간해서는 마시지 않는 피로회복제였다. 그런데 어제 과일장수 김씨가 한 병 건네주는 것을 사양하다가 그깟 일로 승강이하기도 무엇해서 마지못해 마셨더니 잠시나마 개운했던 것이다. 말없이 피로회복제를 내미는 그녀를 바라보는 김씨의 시선은 종잡을 수가 없다.

정숙은 따끈따끈한 쇠의자 아래에 놓아둔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들어내어 불길을 낮춘다. 아침에 쇠의자에 물을 넣었던가. 요즘 들어 부쩍 깜박깜박한다. 그녀는 빈 물병을 들고 지하철역의 화장실로 간다. 물을 뜨러 간 김에 볼일도 본다. 휴지를 챙기지 못해서 닦지 않은 아래가 꿉꿉하다. 오줌줄기가 시원스레 내뻗지 못하는 것도 갱년기 증상인 것 같다.

그토록 기다려졌던 폐경이었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예상치 못한 여러가지가 그녀를 괴롭혔다. 시도때도 없이 얼굴이 화끈거리고 통증이 가슴을 치받아오르는 것이야 잠시만 견디면 스르르 없어졌고, 괜스레 울적해지는 기분은 으레 그러려니 했지만, 불면증만은 사람을 어떻게나 볶아대는지 갱년기 클리닉인가 하는 데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지기도 했다. 나이 들어 자연적으로 오는 현상을 굳이 병이라며 치료를 해서 어쩌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살다보면 예정에 없던 일들이 느닷없이 앞을 가로막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폐경이야 어떤 여자도 피할 수 없는 과정이고, 또한 남다르게 고대해왔던 일이 아니던가.

“물 뜨러 갔었구먼. 방금 진주가 내게 전화했는데, 엄마 휴대폰이 안된다구 무슨 일 있느냐기에 아무 일 없으니 걱정 말라구 했어.”

김씨가 큰일이라도 한 것처럼 생색이다. 죽은 남편과는 형님 아우 하며 각별하게 지내던 사람이라지만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말을 놓아버린 김씨의 친절은 불편하기만 하다. 그녀는 오리털파카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을 꺼내본다. 화면이 꺼져 있다. 배터리가 다된 모양이다. 그녀는 전대를 뒤져서 배터리를 찾아 갈아끼운다. 달랑 두 식구인데 그마저도 떨어져 있는 날이 많으니 식구랄 것도 못된다. 하기는 일찌감치 혼자 사는 연습을 해두는 것도 앞으로 남은 날들을 지내는 데 약이 될지 모를 일이다. 딸이 올 봄에 대학을 졸업하고 스튜어디스로 취직을 했을 때는 이제 모든 근심이 사라진 듯 가뿐했었다. 그러나 자식이야 다 크면 떠나는 것이 순리라고는 해도 요즘 진주가 하는 꼴을 보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그녀는 쇠의자의 등받이 한쪽에 내놓은 구멍에 물을 붓고 헝겊으로 살짝 막는다. 조금 있으면 뜨거운 김이 솔솔 올라 가습기 역할까지 할 것이다. 1.5리터 한병이면 온종일 끄떡없다. 소한 추위라지만 폭신한 털모자를 푹 눌러쓴 뒤 오리털파카에 달린 모자까지 덮어쓰고 따끈따끈한 쇠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면 남 보기엔 추워 보여도 그런대로 지낼 만하다. 외갓집 부뚜막에 앉아 고구마 익는 냄새를 맡으며 자꾸 솥뚜껑을 열어보다가 외할머니에게 부지깽이로 얻어맞던 일이 생각난다. 이건 부뚜막이 아니라 숫제 솥뚜껑 위에 올라앉아 있는 셈이다. 길바닥에서 지내기는 여름보다 겨울이 한결 수월했다. 한여름의 찜통더위야말로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페트병에 가득 얼려온 얼음물을 노상 입에 달고 살아도 그때뿐이었고, 밤이 되어도 식지 않는 아스팔트의 열기에는 데쳐놓은 시금치 꼴이 되기 마련이었다. 열대야라고들 하던 그 잠들 수 없는 밤들은 끔찍했다.

노점으로 나앉은 뒤로 단 한번 단잠을 잤다. 남편이 죽고 나서 매일 매일 어김없이 지속되는 불면의 밤들은 그 단 한번의 단잠에 대한 벌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다리를 멀거니 바라본다. 다리 중의 하나가 그녀의 좌판 앞에 멈춘다.

“이거 얼마예요?”

손가락이 양미리 무더기를 가리킨다.

“삼천오백원요.”

“그거 주세요.”

그녀는 검은 비닐봉지에 양미리를 쓸어담아 내밀고 돈을 받아 전대에 넣는다. 고개를 쳐들지 않는 한, 손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굳이 단골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는다. 손님들 역시 단골을 하려고 않는다. 공연히 얼굴을 익혀놓으면 불편하다는 거다. 외상거래를 하는 것도 아니니 서로 그게 편하다. 하지만 그녀에게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거의가 정해져 있다. 조금 비싸더라도 손질이 잘된 물건을 찾는 사람들이다. 이제 장사는 자리가 잡혀서 그렇게 버둥거리지 않고도 살 만하다. 다 남편 덕이다. 남편이 이렇다 저렇다 아무런 말도 없이 가버릴 때 그녀 역시 아무 말도 못했다. 단지 너무 졸렸고, 달게 한숨 푹 잤던 것뿐이었지만 남편은 떠나버린 뒤였다.

 

6년 전에 남편은 근근이 지탱하던 비디오가게를 걷어치우고 남의 가게 앞의 한평 남짓한 장소에다 엄청난 자릿세를 내고 노점을 시작했다. 지하철 역세권인데다 바로 앞에는 과일노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먹자골목’으로 돌아들어가는 커브길이라 목이 좋다고는 해도 오천만원이나 들여서 노점을 한다는 게 가당치 않아서 그녀는 당신이나 혼자 실컷 해보라며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게 보기에는 우스워도 비디오가게를 할 때보다 되레 수입이 나아서 그녀의 마음이 풀어지려고 할 즈음에 남편은 굶어죽으면 죽었지 노점은 않겠다는 그녀를 억지로 끌어다가 길바닥에 앉혀놓고는 바람이 들어 나돌았다. 무엇에 씌었는지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종당에는 병을 얻고 말았다. 돌아다니다가 병을 얻었는지, 병을 얻고 나서 돌아다녔던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미심쩍다. 그녀는 남편이 가정을 팽개치고 돌아다니다가 병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해서 그렇게 몰아붙인다. 말이 쉽지 노점은 어지간한 사람들도 배겨나지 못한다. 버젓이 자릿세를 내고 하는데 누가 뭐라느냐며 남편은 큰소리였지만, 자릿세야 남의 가게 앞을 가로막은 댓가로 치른 것이었고 인도는 엄연히 구청 관할이었다. 인도를 거지반 차지하고 벌여놓은 좌판은 걸핏하면 구청직원들의 발길질에 박살이 나곤 했다. 큰길로 높은 양반이 지나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공치기 일쑤였고, 한 정거장 위쪽에 자리잡은 종합운동장에서 무슨 행사라도 하게 되면 그 전날부터 구청에서 나와 설쳐댔다.

프로야구 개막식이 있던 날이었다. 구청직원들과 한바탕 악다구니를 하고 난 뒤 집에 들어와 이제는 정말 때려치우고 말겠다고 자릿세나 챙겨오라고 하려는데, 두번째 집을 나가 한달 만에 얼굴을 들이민 남편이 선수를 쳤다. 남편은 살 날이 석달밖에 남지 않았노라고 했다. 누구를 놀리느냐고, 생각없이 아무 소리나 막 해도 되는 거냐고, 그녀는 분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남편은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 있었다. 그렇게 장난처럼 한마디 툭 뱉어놓고 남편은 또 집을 나갔다.

남편이 다시 연락을 해온 것은 병원의 응급실에서였다. 남편이 입원해 있던 한달 동안에도 그녀는 매일 노점을 지켜야 했다. 남편이 막무가내로 그녀를 몰아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가는 마당에서까지 이렇게 박대할 수가 있나, 그녀는 이를 갈며 좌판을 지켰다. 도무지 수그러들 줄 모르는 더위까지 합세해서 그녀를 지치게 했다. 죽을 만치 피곤했지만 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밤마다 그녀는 남편이 입원해 있던 병원의 휴게실에서 밤을 새웠다. 집에 가서 잠을 자라고 한사코 등을 떠미는 남편은 벌써 그녀를 떠나고 있었다.

아침부터 땀이 줄줄 흐르는 후텁지근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