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성혜령 成慧玲

1989년 경기 광명 출생.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

eve_adam@naver.com

 

 

 

물가

 

 

유안의 아이가 항암치료를 받는다고 한다. 처음 임신을 알렸을 때처럼 유안은 남의 이야기를 전하듯 메시지를 보냈다. 나 임신했대. 그때도 유안은 불쑥 말을 꺼내왔고 이상하게 화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임신부를 혐오하는 남자들이 있다는 거 알아? 유안이 물었다. 인셀(incel)들? 내가 말하자, 이름도 있어? 유안이 되물었다. 유안이 인터넷에서 어떤 글을 봤는데, 거리에서 임신부를 보면 자기보다 잘난 남자가 이 여자와 섹스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괴롭고, 그 임신부가 자기와는 섹스를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너무 화가 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에게 화가 날 수 있어? 유안은 내게 계속 물었다. 어떤 남자가 섹스를 못하는 게 어떻게 임신한 여자의 잘못이야? 아니, 섹스가 삶의 전부야? 이런 남자들, 인터넷에서만 떠들지 현실에서는 아무 말도 못해. 걱정하지 마. 내가 답하자 대화창이 잠시 조용해졌다. 유안이 조금 후에 답했다. 나는 걱정하는 게 아냐. 분노하는 거지.

유안은 지금 걱정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화가 나 있을까. 아이는 이제 막 돌이 지났다. 얼마 전에 유안의 메신저 프로필에서 떡이며 과일과 함께 연필, 실, 마우스 등으로 돌잡이 상을 차린 사진을 보았다. 아이가 뭘 잡았느냐고 물어본다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는데, 그 작은 아이 몸 안에 암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남편이 기저귀를 갈아주다 아이의 배 오른쪽에 딱딱한 멍울이 잡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내가 아이랑 더 오래 있었는데 나는 까맣게 몰랐어. 그게 갑자기 생긴 것도 아닐 텐데. 유안이 말했다. 유안은 아이의 정확한 병명도 아이가 입원할 병원도 알려주지 않았다. 단지 나에게 큰 부탁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뭐든 괜찮다고 바로 답하려는데 버스가 급정차하는 바람에 핸드폰을 떨어트렸다. 버스 경적이 길게 울렸다. 마감조만 하다가 오랜만에 낮 근무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창밖으로 늘어선 차들이 길어진 해를 받아 출렁거렸다. 핸드폰을 주워서 화면이 깨지지 않았는지 살펴보는 사이 유안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당분간 치약이 맡아줄 수 있을까?

치약이는 유안이 결혼 전부터 키우던 치와와였다. 유안과 남편 모두 앞으로는 집보다 병원에 더 많이 있게 될 것이고, 아이가 항암치료 후 퇴원하게 되어도 면역력이 약해져서 집에 치약이가 있는 게 좋지 않다고 의사가 권고했다고 한다. 오빠는 아예 입양을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하는데 내가 어떻게 그래. 유안이 말했다. 네가 당분간만 맡아줄 수 있을까? 괜찮아질 때까지만. 나는 유안의 메시지를 여러번 읽었다. 당분간은 얼마큼일까? 괜찮아질 때는 언제지? 아이의 치료가 모두 끝나는 때? 선뜻 그럴게,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나는 애완동물을 키워본 적 없었다. 유안이 결혼하기 전에는 종종 유안의 집에 가서 치약이와 놀아줬고 유안이 치약이 사진을 보내오면 호들갑스럽게 반응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치약이가 아플 때마다 유안이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퇴근이 아무리 늦어도 산책은 꼭 시켜주고 변이 너무 물러도 딱딱해도 걱정하며 습식 사료를 산다 건식 사료를 산다 얼마나 정성스레 돌봐주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저렇게 못해. 유안을 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치약이가 아무리 예뻐도 내가 아닌 다른 존재에게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와 돈을 쏟고 싶지 않았다.

임신기간 동안 유안은 내게 종종 인셀이 제목에 들어간 기사를 보내왔다. 총기난사, 묻지마 폭행, 안티페미니스트 시위…… 기사는 언제나 많았다. 딸이어도 아들이어도 걱정이야. 유안은 말했다. 아이가 아들인 것을 알게 된 후에는 한동안 기사를 안 보내는가 싶더니 다시 기사를 공유하면서 내가 그동안 세상을 너무 몰랐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나는 샌드위치 가게에서 여덟시간 동안 서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지하철역 근처 매장은 항상 붐볐고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취향대로 샌드위치를 주문하니 일하는 내내 재료를 잘못 넣지 않았는지 신경 써야 했다. 유안의 부모님은 노무사와 법률사무보조원으로 정년을 넘긴 나이까지 일을 하고 계셨다. 유안은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왔고 대학 졸업 후 외국계 무역회사에 취직했다가 임신 초기부터 휴직 중이었다. 남편은 공기업에 다닌다고 했다. 유안의 남편과 결혼 전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내게 적절한 질문을 던졌고 고기를 잘 구웠다. 너는 안전하고 좋은 세계에서 살고 있고 태어날 아이도 그럴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었다. 너는 샌드위치에 오이를 잘못 넣어서 몇번을 고개 숙여 사과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다. 이런 말 대신 나는 임신부가 자꾸 그런 기사 보는 건 좋지 않다고, 아기한테 안 좋은 영향이 갈 수도 있으니 좋은 것만 보고 들으라고 말했다. 나도 모르게 유안은 세상의 불행에서 비켜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는 유안의 부탁을 들어줘야 했다.

 

*

 

치약이는 수요일 오전에 유안의 남편이 데려다주었다. 그 주에는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이 하루밖에 없었다. 그날 오후에 유안의 아이는 병원에서 힘든 검사가 있다고 했다. 유안의 남편은 양손에 꽤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들고 사층 우리 집까지 걸어 올라왔다. 아직 5월이었는데 낮엔 한여름 같았다. 나는 유안의 남편 이름을 자꾸 까먹었다. 형우씨 아니면 현우씨였는데 매번 이름을 잘못 말해서 유안이 고쳐주곤 했다. 유안의 남편은 푸른색 반팔 셔츠와 회색 슬랙스 차림에 길이 잘 든 로퍼를 신고 있었는데 이후엔 회사에 잠깐 들어갔다 병원에 간다고 했다. 그리고 내게 수건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새 수건을 꺼내 냄새를 한번 맡아보고 가져다주었다. 원룸이 서북향이라 빨래에서 가끔 냄새가 났다. 그는 수건을 목덜미에 두르고 다시 내려가서 사료 포대와 간식이 담긴 박스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올라왔다. 이제 한번만 더 내려갔다 오면 돼요. 그가 수건으로 목덜미를 닦으며 웃어 보였다. 그에게는 아이가 아프고 아내가 힘들어해도 절대 손상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현관에 서서 좁은 복도를 거의 다 차지하고 있는 짐들을 내려다봤다. 이동용 가방, 사료, 장난감, 급수대와 배식대, 배변 패드…… 빛이 들지 않아 어두운 복도 천장에서 자동조명이 내 움직임에 따라 깜빡였다. 형우씨 아니면 현우씨는 마지막으로 치약이를 품에 안고 올라왔다. 치약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따금 캉캉 짖었고 나를 알아보는 것 같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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