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

 

분단과 갈등을 넘어서기 위하여

『만인보』 완간의 문학사적 의의

 

염무웅 廉武雄

문학평론가, 영남대 명예교수. 저서로 『민중시대의 문학』 『혼돈의 시대에 구상하는 문학의 논리』 『모래 위의 시간』 등이 있음. mwyom@ynu.ac.kr

 

* 이 글은 2010년 4월 9일 한국프레스쎈터에서 열린 ‘『만인보』 완간 기념 심포지엄’에서 기조발제문으로 발표된 원고를 필자가 수정·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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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에 첫걸음을 내디딘 『만인보』 대장정이 4반세기의 노정을 끝내고 마침내 대미에 이르렀다. 그동안 고은(高銀) 시인이 보여온 예측불허의 생산력을 감안하더라도 이 대작의 완성은 경탄을 자아내기 족하며, 문단의 범위를 넘어서는 축하를 받는다고 해서 조금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전체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제20권의 발문에서 김병익(金炳翼)은 『만인보』에 ‘민족사적 벽화’라는 적절한 찬사를 보낸 바 있지만, ‘민족사적’이란 수식어에 어울리는 이 대작을 위해 수많은 낮과 밤을 원고지 앞에서 보낸 시인의 공력과 노고는 오직 경의에 값한다. 일제 식민지시대부터 분단과 전쟁을 거쳐 치열한 민주화투쟁의 시점에 이르는 한국현대사의 파란만장한 흐름을 배경으로 민족의 고난과 민중의 생명력을 대규모의 서사적 화폭 안에 담아낸 작품의 완성을 두고 민족문학의 위대한 성취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일 수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 근대문학의 역사에서 서사적 성격의 장시는 낯선 장르가 아니다. 주지하듯이 1920년대 중반에 발표된 김동환(金東煥)의 『국경의 밤』과 『승천하는 청춘』은 식민지 민족현실의 형상화를 시도한 ‘서사시’로서, 감정표현 위주의 자유시가 주류를 이루었던 초창기 우리 시단에 하나의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 업적이었다. 그러나 카프 결성에 따른 문단의 분화로 말미암아 김동환의 문제의식은 그 자신에 의해서나 다른 좌우파 시인들에 의해서나 더 진전된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서사시’가 오랜 잠복기간 끝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신동엽(申東曄)의 『금강』(1967) 출간이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김지하(金芝河)의 「오적」(1970)을 비롯한 일련의 ‘담시’와 신경림(申庚林)의 「새재」(1978) 「남한강」(1981) 등 역작들이 잇달아 발표됨으로써 이런 유형의 ‘서사시’는 당시 고조되던 민족·민주운동에 호응하는 민중문학 발흥의 지표로서 문단과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시기적으로 좀 뒤지만, 고은의 『백두산』(1987~94)과 이동순(李東洵)의 『홍범도』(2003)는 구한말 의병투쟁부터 일제시대 독립전쟁에 이르는 민족운동사의 근간을 장대한 규모의 서사시로 승화시킨 역작으로서, 이같은 창작의 흐름이 어떤 절정에 이른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장편소설과 달리 장시는 독자가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장르가 아니다. 장편소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대중의 통속적 취향을 기반으로 발전했고, 활자문화가 번창함에 따라 오늘의 영화나 연속극처럼 자본주의적 유통구조를 매개로 소비되는 대중적 인기상품으로 되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토지』 『장길산』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은 더이상 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1 반면에 서사시는 장편소설의 역사적 전신(前身)이었다는 데서 짐작되듯 고대·중세에 있어 민족국가 형성의 고난과 영광을 노래하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짐하는 제의적 요소를 지닌 장르로서, 개인적 독서가 아니라 집단적 향수의 대상이었다. 키르기스스탄 같은 나라에서는 지금도 영웅서사시 「마나스」가 축제 때 마나스치(Manaschi)라고 불리는 전문적 창자에 의해 군중 앞에서 반주에 맞추어 낭송된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 경우에는 식민지시대와 분단시대를 거치는 동안, 한편으로 민족의 집단적 기억이 대다수 민중에게 강제되는 ‘서사시적’ 현실을 살면서, 다른 한편 산업화·개방화·도시화의 과정을 통해 농촌공동체의 해체와 구비문학 전통의 소멸을 경험하고 있다. 이것은 시인에게 민족문학적 영감을 고취하고 『금강』이나 『백두산』 같은 서사시의 창작을 촉구하는 현실과 그런 장편서사시의 대중적 향유를 방해하는 현실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하나의 공간 안에서 공존·충돌하고 있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떻든 세계화현실의 본격도래와 더불어 이제 서사시와 대하소설 같은 ‘무거운’ 장르들의 역사적 소임은 종말에 가까워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백두산』과 함께 『만인보』가 처음 구상된 것은 저자가 여러 곳에서 밝힌 대로 1980년 겨울 육군형무소 감방 안에서였다. 지극히 억압적인 상황 한가운데서 도리어 호방한 문학적 상상력이 작동한 셈인데, 실은 한국의 1970~80년대는 군사독재의 광풍을 온몸으로 헤쳐나간 고은 같은 시인에게만이 아니라 폭압의 현실과 역설적 관계를 맺었던 문인들에게도 일찍이 없던 ‘거대서사’의 시대였다. 그런데 고은의 경우 주목할 것은 두 작품의 기획이 동일한 근원에서 출발한 것임에도 문학적 형상화의 방식에서는 아주 대조적인 길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현실의 질곡과 시의 질곡이 하나라는 사실로 인식됨으로써 나는 시가 역사의 산물임을 터득한 것이다”(『만인보』 1권 ‘시인의 말’)라는 언명과 “이제야 나는 고려의 자식이다. 이 시와 더불어”(『백두산』 1권 머리말)라는 고백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에 근거한 동일한 체험의 표현이다. 이 나라에서 유신체제의 강행부터 6월항쟁의 승리에 이르는 십수년의 기간은 그만큼 역사와 문학의 분리가 힘들었던 일치의 시대였다. 그러나 앞의 ‘시인의 말’에서 이미 시인은 “서사시 『백두산』은 사람을 총체화하는 것인 반면 『만인보』는 민족을 개체의 생명성으로부터 귀납하는”작품이라고 명백하게 구별하고 있다. 거대서사의 영광이 황혼에 이른 오늘의 시점에서 돌아본다면 인간의 총체성을 목표로 했던 서사시가 넘기 힘든 절벽에 부딪쳤던 것과 달리 개체의 생명성으로부터 민족을 귀납하고자 했던 시도가 우람한 성취에 이른 것은 역사현실의 상황과 문학형식의 선택 사이에 개재된 연관의 불가피성을 확인케 한다.

어떻든 『만인보』는 민족사의 총체적 인식을 겨냥하는 서사시적 충동과 거대서사의 해체를 압박하는 세계사적 현실 간의 화해불능의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고안된 독특하면서도 야심적인 실험인 셈이었다. 애초의 구상보다 훨씬 줄여 3천명의 인물을 시로 쓴다는 첫 발표 때의 계획만도 믿기 힘든 것이었는데, 실제로는 계획보다 훨씬 더 늘어나 우리 역사상 유례없는 대작이 되었다. 이 4천편의 작품들 모두가 개별작품으로서의 독립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만인보』는 집합명사이지만, 동시에 4천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로 응집되어 일종의 서사적 통합을 이루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만인보』는 한 작품을 지칭하는 단수명사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수많은 개인들의 갖가지 행적과 이력, 운명과 개성을 각각의 독립적 서정시 안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만인보』는 독립된 단시들의 모음, 즉 하나의 거대한 시집이다. 따라서 우리는 딴 시집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무데나 펼쳐서 한편 한편을 그것 자체의 자기완결성을 전제로 읽을 수 있고 굳이 통독의 의무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시집 전체는 단시들의 누가적(累加的)인 축적을 통해 개인들의 사적 일상과 개별적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공동체의 보편적 운명에 귀속되도록 배치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만인보』는 독특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 물론 서사적 구성과 거리가 먼 보통의 서정시집에도 은연중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정서적 또는 방법적 일관성이 있게 마련이고, 또 반대로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성이 어느정도 분명한 장편소설에서도 ‘부분의 상대적 독자성’이 인지되는 수가 적지 않다. 하지만 『만인보』의 이중성은 전혀 이와 다른 의식성의 소산인 것으로 보인다. 되풀이하자면 시집의 각 편들은 독립적 단시들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은 개별성에 손상받음 없이 시집 전체를 포괄하는 또다른 차원에 연결되며, 이 새로운 차원과의 결합을 통해 더 넓은 시공간적 좌표 즉 더 높은 역사성과 사회성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만인보』의 거대한 규모는 당연히 이

  1. 일찍이 벽초의 『임꺽정』(1928~40)이 대하소설의 전범으로 제시된 이후, 많은 작가들이 허다한 역작을 발표했다. 주요 작품을 연재완료 또는 완간 순으로 나열해보면 다음과 같다. 『남과 북』(홍성원, 1970~77), 『지리산』(이병주, 1972~78), 『객주』(김주영, 1979~81), 『장길산』(황석영, 1976~84), 『갑오농민전쟁』(박태원, 1977~86), 『타오르는 강』(문순태, 1975~89), 『태백산맥』(조정래, 1983~89), 『늘푸른 소나무』(김원일, 1993), 『토지』(박경리, 1969~94), 『녹두장군』(송기숙, 1981~94), 『혼불』(최명희, 1981~96), 『변경』(이문열, 1986~98) 등. 이 대하소설들과 『금강』 『남한강』 『백두산』 등 우리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장시들이 주로 1970~90년대에 씌어졌다는 사실과 그 시대가 민족·민주운동의 고조기라는 사실 사이에는 중대한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