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편혜영

편혜영 片惠英

1972년 서울 출생. 200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아오이가든』이 있음. fragmenta@naver.com

 

 

 

사육장 쪽으로

 

 

현관문을 열자 편지 한통이 팔랑거리며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는 도시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편지는 현관 문틈에 끼워져 있었다. 누군가 일부러 쑤셔넣은 듯 끝부분이 구겨진 채였다. 집 앞에는 새장 모양의 흰색 우체통이 있었다. 그럼에도 편지는 보란 듯이 문틈에 꽂혀 있었다. 별다른 무게감이 없었으나 바닥에 떨어진 편지는 시선을 끌었다. 겉봉에 씌어진 붉은 글자 때문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인근 피자집의 전단지이거나 새로 개업한 한의원에서 보낸 우편물일 거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는 붉은 글자를 보자마자 그것이 특별한 종류의 편지, 즉 경고장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천천히 편지를 집어들었다. 끝이 우그러진 편지봉투는 그들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집 안으로 쳐들어올 수 있다는 경고처럼 보였다. 배웅하러 나오던 아내가 그의 손에 들린 편지를 힐끗 훑어보았다. 이내 아내의 입에서 아 하는 짧은 탄성이 새어나왔다. 아내 역시 그들에게서 온 편지임을 알아차렸다. 아내는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 소리를 질렀다. 아악, 이제 어쩌면 좋아요. 당장 그들이 쳐들어오는 것처럼 겁먹은 목소리였다. 방 안에 있던 노모가 영문도 모르고 아내를 따라 소리를 질러댔다. 아내는 그 소리에 더욱 겁을 먹었다. 치매에 걸린 노모는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노모의 비명이 듣기 싫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들은 지난밤 도둑처럼 울타리를 넘어들어와 경고장을 꽂아두었다. 어쩌면 발부리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운 밤의 신작로에 숨어서 그가 귀가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는 숨어 있는 집행인을 쏘아보듯 마을 어귀로 이어지는 긴 신작로를 내려다보았다. 경고장을 꽂아놓은 사람이 아직 마을에 남아 그들 가족이 놀라는 꼴을 훔쳐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을은 여느 아침과 다르지 않았다. 단층주택의 가장들이 도시로 출근하기 위해 일제히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그들은 날마다 비슷한 시각에 차를 타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그 시각에 나가지 않으면 대개 9시로 정해진 직장의 출근시간을 맞출 수 없었다. 가장들이 탄 차가 순서대로 신작로 너머로 사라졌다. 그중에는 그의 차와 차종은 물론 색깔까지 똑같은 차가 서너 대 끼여 있었다. 다른 때라면 그 역시 고속도로로 향하는 행렬에 섞였을 터였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각에 집을 나서기 위해 같은 시각에 잠에서 깨어났고 그러기 위해서 날마다 비슷한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에게는 졸음이나 식욕, 성욕 따위도 시간을 지키며 찾아왔다.

아내들이 울타리에 기대서서 출근하는 가장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내들이 들어간 뒤에도 차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신작로 쪽을 쏘아보았다. 이른 아침의 신작로에는 산 쪽에서 내려온 안개가 희미하게 떠돌고 있을 뿐 경고장을 문틈에 끼워둔 이들이 숨어 있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안개 너머로 고속도로의 방음벽이 드러났다. 방음벽이 있어도 덜컹거리는 차 소리는 고스란히 들려왔다. 과적 화물차나 트레일러가 지나가고 있을 것이다. 신작로는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는 듯이 미세하게 떨렸다.

봉투는 텅 빈 것처럼 얇았다. 그는 이깟 얄팍한 편지 한통 때문에 일상이 어그러진 것이 못마땅했다. 편지가 아니라면 이미 신작로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접어들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는 봉투 상단에 고딕체로 인쇄된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럴수록 그 이름들이 낯설게 느껴졌고, 그런 느낌 때문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파산은 온전히 그의 탓이었다. 언제고 집행을 알리는 통지서가 도착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상 경고장을 받고 나자 참을 수 없이 화가 치밀어올랐다. 도대체 내가 잘못한 게 뭐란 말인가.

그는 봉투를 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안에 든 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봉투째 갈기갈기 찢었다. 그의 이름과 주소, 붉은 글자의 경고문과 집행 날짜, 집행인의 이름이 여러 조각으로 나눠졌다. 깜짝 놀란 아내가 그를 쳐다보았다. 비명을 지르던 노모도 그를 쳐다보았다. 아내의 치마폭에 매달려 있던 아이도 그를 보았다. 아이는 이유도 모르고 분위기에 짓눌려 울음을 터뜨렸다. 아내가 멍한 얼굴로 아이의 등을 토닥였다. 가족 중 누구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편지를 찢는 그의 얼굴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호해 보였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태도는 묘하게도 아내를 안심시켰다. 아내는 그의 단호함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족이라고 해서 편지를 찢는 그의 손이 떨리고 있음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그는 편지를 찢자마자 곧 후회했다. 집행인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알 도리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찾아가 집행을 미뤄달라고 부탁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는 자신이 후회하고 있는 것을 들킬까봐 찢어진 편지 조각들을 화장실 변기에 넣었다. 물을 내리자 여러 조각으로 찢긴 경고장이 소용돌이치며 빨려내려갔다. 쿨렁거리며 종이를 삼킨 변기에는 다시 말간 물이 고였다. 그는 여전히 떨리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어 감췄다.

그들은 언제 오는 거예요?

아내가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거실의 커튼을 걷었다. 미처 철거되지 않은 공장 굴뚝이 드러났다. 마을은 중화학 공장 단지를 폐기한 자리에 들어섰다. 택지 조성을 하느라 공장이 철거되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건물 일부와 굴뚝이 남아 있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이 보였다. 야산 쪽에서 내려온 안개이거나 흩어진 구름일 것이다. 가동되지 않는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날 리 없었다. 안개가 걷힌 신작로는 텅 비어 있었다. 아침 햇살 때문에 집 안을 떠도는 먼지들이 내비쳤다. 아내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그것이 햇살 때문인지 그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인지 집행이 시작된다는 경고 때문인지 헛갈렸다. 그는 알 수 없다는 듯이 아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아내는 침울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분명한 것은, 그는 햇빛 때문에 하얗게 보이는 아내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리는 조만간 이 집에서 내쫓기게 된다는 거야.

그는 자신이 완전히 파산하였으며, 두말할 나위 없이 빈털터리가 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죽어서도 갚을 수 없을 정도의 빚이 있었다. 은행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에게도 돈을 빌릴 수 없을 거였다. 손을 벌릴 가족이나 마땅한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럴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해도 돈을 빌리기 위해 파산의 이유를 장황히 설명하고 훈계를 듣는 것은 성가신 일이었다. 참고 훈계를 듣는다고 해도 돈을 빌리지는 못할 것이다. 몇가지 생각이 어수선하게 떠올랐으므로 그는 일의 순서를 정리하고 싶어졌다.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이라고 중얼거리다가 자신이 아직 출근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그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출근해야만 했다. 파산통보를 받은 날까지 시간에 맞춰 서둘러 출근을 해야 하느냐는 자조어린 생각은 들지 않았다. 돈을 벌어봤자 그들에게 다 빼앗길 테지만 일상을 지키는 것은 중요했다. 힐끗 벽에 걸린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다른 때라면 이미 톨게이트 근방에 도착했을 시간이었다. 이렇게 늦어진 것은 다 그들이 보낸 경고장 때문이었다.

집행이 시작되려면 조금 여유가 있을 거야. 그동안 살 집을 마련하면 돼. 구겨진 검은 구두에 서둘러 발을 꿰어넣으며 그가 말했다. 구두는 안쪽 굽이 닳아서 조금만 걸어도 허리가 아팠다. 아내는 대꾸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내를 향해 씨익 웃어주었다. 집행은 경고장을 보내는 것으로 시작되어 이후 파산자의 재산을 압류하는 적법한 절차를 거칠 것이었다. 집행인이 언제 들이닥칠지 그로서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쩐지 집행이 늦춰질 것이며, 그사이 새로운 주거지를 찾게 될 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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