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기호 李起昊

1972년 강원 원주 출생.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소설집 『최순덕 성령충만기』 『김 박사는 누구인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장편 『사과는 잘해요』 『차남들의 세계사』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등이 있음.

antigiho@hanmail.net

 

 

 

장편연재 3

싸이먼 그레이

 

 

 

4-7. 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일년

· 싸이먼의 사후, 동명의 단편소설 「싸이먼 그레이」를 쓴 소설가 이기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소 긴 분량의 ‘작가노트’를 남긴 바 있는데, 다음은 그 글의 일부분이다.

 

—(…) 나는 실제로 싸이먼과 각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각별함이 다 소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각별함 때문에 나는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내가 그에 대해서 쓰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의 노트북 속 인터넷 즐겨찾기 목록에서 낯선 블로그의 주소를 발견하고 거기에 올라와 있는 글을 다 읽고 난 뒤의 일이었다. 2006년 처음 개설된 그 블로그의 주소는 ‘siren2006.egloos.com’, 바로 김주희의 개인 블로그였다. 싸이먼은 그 블로그에 올라온 모든 글을 읽기 위해서 한국까지 오고, 또 더듬더듬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거겠지. 나는 싸이먼 그레이에 대해서 썼지만, 또 썼다고 믿었지만, 다 쓰고 보니 그건 이상하게도 김주희의 이야기로 읽혔다. 내가 뭘 잘못 썼나? 나는 마치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은 것처럼 의아했지만, 끝내 소설을 고치진 않았다. 그게 바로 싸이먼 그레이의 의지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1

 

· 기록에 의하면 김주희가 두바이를 경유해 아일랜드 더블린에 입국한 것은 2011년 1월 3일이었다고 한다. 더블린에서 다시 골웨이까지 버스로 이동해 GLS어학원에 등록을 마친 것은 1월 6일, 유학원에서 소개해준 시티 센터 인근 노부부가 운영하는 홈스테이에서 보름 가까이 머물다가 코리브강 근처에 위치한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것은 1월 20일이었다고 한다.

 

· GLS어학원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김주희의 생년월일은 1980년 9월 27일, 출생지는 대한민국 광주광역시 남구, 영어 이름은 ‘줄리 김’(Julie Kim)이었다고 한다. 그외 사항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 김주희가 세를 얻은 셰어하우스는 싸이먼이 살던 스튜디오와 직선거리로 15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노란색 삼각지붕을 얹은 삼층짜리 다세대 주택으로 지은 지 삼십년도 더 된 건물이었다고 한다. 삼층 302호. 방 두칸에 작은 거실과 부엌, 욕실이 딸린 구조였으며, GLS어학원까지는 도보로 이십오분 정도 걸렸다고 한다.

 

· 처음 골웨이 시티 박물관에서 김주희를 본 이후, 싸이먼은 그해 1월 말부터 자전거로 출근하다가 종종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어학원 층계에서도 몇번 마주쳤고, 냉동피자를 사기 위해 들른 식료품점에서도 맥주나 생수 따위를 고르고 있는 그녀의 프로필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밤 코리브강에서도 조용히 쪼그려 앉아 있거나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고.

 

· 당시 김주희는 브라질 친구 두명, 이딸리아 친구 한명과 함께 지냈는데, 매일 밤 코리브강을 거닐다가 친구들이 잠들 시간이 다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2 그게 전부였다고 한다. 물론 싸이먼 그레이는 그 사실을 몰랐고.

 

· 싸이먼 그레이는 김주희에게 처음 말을 건넨 순간을 이렇게 기록했다.

 

—춥고 시린 밤, 한 여자가 자전거 전용도로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는 게 보였다. 그 앞엔 반쯤 허물어져나간 낡고 녹슨 철제 난간이 있었고, 철제 난간 너머엔 떠내려온 나무둥치와 덩굴과 풀이 뒤섞인 수풀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그 뒤론 코리브강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와 2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쪽으로 자꾸 시선이 갔다. 또도르는 한해 전에 태어난 막냇동생의 생일을 맞아 불가리아에 가고 없었다. 그는 한달 뒤에나 돌아온다고 했다. 유난히 잔물결이 많은 밤. 수온이 낮고 바람이 거세다면 어차피 민물장어는 잡히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몸이 자꾸 앞뒤로 까딱까딱 흔들렸다. 술을 마신 것일까? 저러다가 난간 쪽으로 쓰러지기라도 하면… 나는 몇번을 망설이다가 낚싯대를 내려놓고 천천히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매서운 강바람을 견디고 있는 가로등의 몸통에선 낮고 작은 휘파람 소리가 났다. 대기에선 이상하게도 박하 냄새가 났는데, 그래서인지 주변 공기가 더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다. 주위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녀는 계속 같은 자세로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몰랐는데 작게, 내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저기요.”

내가 말을 걸자 그녀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올려다보았다. 며칠 전 한번 본 얼굴이었다.

“왜 그러시죠?”

“위험해 보여서요.”

“안 되나요, 여기 있으면?”

“아래가 꽤 깊거든요.”

그녀는 다시 강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금방 돌아갈게요.”

나는 그녀의 태도에 조금 무안해져 터벅터벅 다시 낚싯대가 놓여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왜 화를 내지? 나는 낚싯대를 들어 새로 캐스팅을 하며 어두운 코리브강을 노려보았다. 괜한 짓을 했군. 한참을 그렇게 찌만 바라보고 있다가 퍼뜩 내 머리 위 헤드랜턴이 계속 켜져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말았다. 놀라서 다시 그녀가 앉아 있던 쪽을 바라보았으나, 이미 거기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3

 

· 김주희는 그 만남에 대해서 따로 기록해두진 않았다고 한다. 그 만남뿐만 아니라 그해 3월 중순까지도 그녀의 블로그엔 싸이먼의 이름 자체가 아예 등장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2월 하순에 올라온 글 중 ‘여기 이 나라에도 이상한 인간은 많다. 어딜 가나 다 똑같겠지’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소설가 이기호는 그 ‘이상한 인간’ 중 한명이 바로 싸이먼 그레이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 어학원에서 김주희의 담당 교사를 맡았던 마이클 맥거번은 그녀에 대해 ‘읽기와 듣기는 어느 정도 되는 거 같았는데 말하기와 쓰기는 잘 안 되는 학생’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4 그녀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하루 다섯시간씩 강의를 들었는데 주간 테스트를 빼먹기 일쑤였고, 일대일 스피킹 테스트 또한 계속 시간 약속을 어겼다고 한다. 특히 과정이 끝나는 마지막 한달은 아예 어학원에 나타나질 않았다고 한다.

 

· 그해 초부터 GLS어학원에서는 매월 첫째주 목요일 오후 다섯시부터 ‘국제학생교류의 밤’ 행사를 개최했는데, 학원 강사들과 수강생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서로에 대해 좀더 폭넓은 이해의 시간을 갖자는 취지로 기획되었다고 한다.5 말하자면 어학원 야외 주차장에 모두 모여 시종일관 빠르고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은 채 술 마시고 고기 구워 먹으면서 둠칫둠칫 몸을 흔드는 시간이었단 소리다. 어학원 원장인 토빈 히스는 행사 중간에 수강생들 한명 한명을 가운데 작은 원형 무대에 올라서게 한 후 스탠드 마이크에 대고 짤막한 자기소개를 하게 했다고 한다. 물론 영어로. 대부분의 학생들은 몸을 배배 꼬면서 짧게 인사를 한 후, 다른 친구들의 환호를 받고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었다고 한다. 물론 시키지 않았는데도 웃통을 모두 벗어버린 채 춤부터 춘 브라질 남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여간 이런 애들은 세계 공통으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 싸이먼은 그날 처음으로 김주희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고 한다. 기네스 병맥주를 왼손에 든 채 무대에 오른 김주희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자신은 한국에서 왔으며, 여기엔 한국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너무 좋다고 조금 쑥스럽게, 그러나 분명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래를 불렀는데 조금 느리고 슬픈 한국 노래였다고 한다.6 그 노래를 하도 열심히 불러대는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