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은희경 殷熙耕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상속』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중국식 룰렛』,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그것은 꿈이었을까』 『마이너리그』 『비밀과 거짓말』 『소년을 위로해줘』 『태연한 인생』 『빛의 과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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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영화와 사진 속에서 그 도시는 언제나 빌딩이나 공원에 둘러싸여 있었다. 높고 현란한 전광판이 몇겹으로 겹쳐져 있기도 했고 전세계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복잡한 지하철 계단을 바쁜 걸음으로 오르내렸으며 야외 분수대 앞에 거리공연이 펼쳐졌다. 누군가 그 도시를 여행했다고 말하면 대개는 경찰차와 노란 택시들, 멋진 공원과 수준 높은 공연장, 베이글이나 스테이크 식당, 미술관과 박물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증권거래소, 이런 것들에 대해 물을 것이다. 어쩌면 도심 한가운데의 소란스러운 작은 술집들 혹은 화려한 다리의 야경 등에 대한 끊임없는 자랑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승아에게서는 그중 어떤 이야기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승아가 그 도시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끔찍한 더위, 가로막힌 창문들, 저녁 거리에 쌓여 있는 검은 쓰레기봉투의 냄새, 시간을 지키지 않는 우편물과 길고양이들, 그리고 친구네 집 벽에 걸린 통근용 자전거 같은 것이었다.

 

 

1. 토요일

 

그 도시에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열네시간이나 타야 했다. 두번의 기내식을 먹고 날짜변경선을 지나고 갖가지 형태의 구름과 검은 밤과 황금빛 여명 속을 통과하는 긴 시간 동안 승아는 계속해서 깨어 있었다. 실내등이 꺼진 뒤 와인을 청해 마셔보았지만 끝내 잠은 오지 않았다. JFK공항에 내렸을 때는 약간 몽롱하면서도 긴장된 상태였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하는 일은 걱정했던 것보다 쉬웠다. 이민국 공무원은 예상대로 세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얼마 동안, 어디에. 승아는 친구를 방문하러 왔으며 열흘 동안 그녀의 집에서 지낼 거라고 준비된 대답을 했다. 이국의 공항에서 영어로 말하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자 그제서야 떠나왔다는 것이 실감되었다. 하지만 이 여행을 위한 승아의 준비는 거기까지였다. 영어도 서툴렀고 길눈도 어둡고 돈도 별로 없었다. 사실은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막연한 기대만으로 떠나온 셈이었다. 수하물을 찾아 세관을 통과한 그녀는 백팩 속에서 명품 로고가 선명한 썬글라스를 꺼내 썼다.

게이트 앞에 서 있는 마중객들 속에서 승아는 민영을 쉽게 찾아냈다. 구겨진 민소매 셔츠에 평범한 검은색 슬랙스. 언제 잘랐는지 긴 머리가 단발로 바뀌었는데 앞머리가 눈을 가릴 만큼 흘러내려와 있었다.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자유롭고 들뜬 듯한 모습과는 달리 표정도 건조하고 피곤이 느껴졌다. 오랜만이다. 민영이 다가와 담담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응. 머리 위로 흔들던 손을 아래로 내리며 승아도 짧게 대꾸했다.

둘이 마지막으로 만난 건 재작년 여름, 민영이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유학생으로서 마지막 방학을 보내러 서울에 왔을 때였다. 승아는 민영을 서촌에서 만나 길게 줄이 늘어선 떡볶이집으로 안내했고 한그릇에 만이천원이나 하는 빙수 까페에도 데려갔다. 그때 민영은 남의 나라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어려움과 수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이비리그를 졸업해도 외국인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하는 민영은 이미 수없이 많은 거절을 당해 기운이 빠진 것 같았다. 한국은 맛있는 것도 많고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하고 사람들도 다 세련되고 능력 있어 보인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취업에 집착하는 이유도 독립을 위해서라기보다 거기 계속 머무르려면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인 듯했다. 그리고 지금 민영은 전세계의 문화와 사람과 돈이 모여든다는 이 도시의 직장인이었다.

그거 이리 줘. 민영이 캐리어 위에 올려놓은 승아의 백팩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안 무거워. 그래 그럼. 등을 돌려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민영을 뒤따르기 위해 승아는 급히 목베개가 달랑거리는 백팩을 메고 캐리어를 밀기 시작했다. 게이트를 빠져나오니 건물 밖에는 여름 한낮의 햇살이 하얗게 내리쬐고 있었다. 승아가 처음 만나는 이 도시의 햇빛과 공기였다. 민영은 도심으로 가는 공항열차를 탄 다음 지하철로 갈아탈 거라고 말하면서 햇빛 때문에 눈을 찡그렸다.

지하철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민영은 피곤한 듯 눈을 감았다. 두어 정류장쯤 지났을까. 다시 눈을 뜨더니 승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진짜 올 줄은 몰랐어. 왜? 다들 바쁘니까. 바쁘긴 하지. 민영의 말에 애매하게 대꾸한 다음 승아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뒤에 민영이 승아의 팔을 가볍게 건드렸다. 다음에 내려. 민영은 그 지역이 그리스 이민자들이 정착한 동네라 지중해식 음식점이 많다고 말한 뒤 거기서 이스트강을 건너면 맨해튼이라고 짧게 덧붙였다.

민영의 집은 지하철역에서 세 블록 떨어져 있었다. 신호등을 여섯번 건너고 모퉁이를 네번 꺾어 도는 그리 길지 않은 동선에서도 승아는 민영을 놓칠세라 캐리어 손잡이를 붙잡고 종종걸음을 쳐야 했다. 샌들끈 사이로 햇볕에 노출된 발등이 금세 따가워졌고 등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그 거리의 풍경에 민영의 인스타그램에 등장하는 하늘을 찌르는 빌딩숲이나 공원을 배경으로 한 브라운스톤 건물은 없었다. 좁은 길 양쪽으로 드문드문 잡화점과 식료품점과 작은 식당들이 들어섰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승아의 머릿속 뉴요커와는 거리가 있었다.

승아는 신도시 아파트에서 성장하고 푸드코트와 영화관이 갖춰진 대학교를 다니고 논현동의 고층건물에 있는 잡지사에서 일했다. 그녀의 눈에는 이 거리의 모든 것이 낡고 칙칙하고 구닥다리이고 영세했다.

민영의 집이 있는 4층 아파트 역시 지은 지 백년은 넘었을 만한 모습이었다. 시멘트 벽의 갈라진 틈으로 잡초가 비어져 나왔으며 계단 옆의 손바닥만 한 앞마당에는 녹슨 재활용 쓰레기통 몇개와 망가진 소파가 놓여 있었다. 숄더백에서 묵직해 보이는 열쇠꾸러미를 꺼내 그중 한개를 현관문의 구멍에 꽂으며 민영이 말했다. 4층이야. 아래층에 관리인 할머니 사니까 캐리어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올라가.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더러운 카펫이 깔린 그 집의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올라가는 동안 승아는 세번이나 계단참에 캐리어를 내려놓고 헐떡이는 숨을 진정시켜야 했다. 가까스로 꼭대기 층에 닿았을 때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프랑스제 핸드크림을 꼼꼼히 발랐던 손은 갈퀴 모양을 유지한 채 한동안 펴지지가 않았다.

아파트는 생각보다 좁았지만 밝고 깨끗했다. 들어서자마자 새로 페인트칠을 한 깔끔한 주방이 나타났고 그 너머 거실에는 2인용 패브릭 소파와 크림색 책장이 놓여 있었다. 유리 갓을 씌운 스탠드 등과 관엽식물 화분 몇개가 아늑한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벽에 걸린 마띠스 액자는 모마에서 산 프린트이고 아즈텍 조각상은 멕시코 여행의 기념품임을 승아는 알아보았다. 출퇴근용으로 쓴다던 은색 자전거와 헬멧 역시 눈에 익은 물건이었다. 급히 청소를 마친 듯 구석에 청소기가 전기 코드가 꽂힌 채 놓여 있었는데 그것을 빼고는 모든 것이 ‘cozy’나 ‘my place’에 해시태그를 붙여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 그대로였다. 민영은 아주 가끔 사진을 올렸지만 승아는 하나도 빠지지 않고 보고 있었다.

승아의 눈길은 뒷마당으로 나 있는 커다란 창을 향했다. 그곳으로 아낌없이 햇빛이 쏟아져 들어와서 마룻바닥과 벽과 책꽂이의 책등 하나하나까지 골고루 환하고 편안한 느낌을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영이 다짜고짜 창으로 다가가 커튼을 닫아버렸으므로 그 빛은 금방 차단되었다. 저 새끼들, 또 저러네. 민영에게서 처음 들어보는 거친 말투였다. 건너편 창가에 담배를 피우면서 이쪽을 염탐하는 남자들이 있다고 말하는 민영의 이마에 세로 주름이 깊게 새겨졌다. 청소 땜에 열어놨는데, 집에 있을 땐 커튼을 닫아야 해. 특히 너 혼자 있을 때. 총이라도 쏘는 거니? 그건 아니지만, 재수가 없으면 별일이 다 생기는 데니까. 승아가 던진 어설픈 농담에 민영은 뜻밖에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민영이 인스타그램에 새로 이사 갈 집에 페인트칠을 하는 사진을 올린 건 한달쯤 전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임대기간이 한달 가까이 남아 있는데도 새집이 마음에 들어 이사를 앞당기게 되었다는 글과 함께였다. 룸메이트가 없어서 결정하기 쉬웠다고도 씌어 있었다. 이 도시의 높은 월세를 생각한다면 그것은 새집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고 동시에 민영이 그만큼 경제적 여유를 갖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두가지 모두 승아를 자극했다. 집 좋다. 당장 갈 테니 내 자리 비워놔. 누군가가 달아놓은 댓글 아래 민영은 환영!이라고 답을 달았다.

회사 앞 스타벅스에 팀원들의 커피를 사러 나왔던 계약직 사원 승아는 진동벨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SNS에 접속했다가 그 글을 보았다. 그녀는 핸드폰 액정 속의 환영이라는 단어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너무 흔하고 일상적인 말이었지만 그때의 승아에게는 왠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승인과 호의가 담긴 유의미한 단어로 여겨졌다. 눈앞에서 문이 닫히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고 어딘가에 환영이라고 적힌 다른 문이 있다. 그것이 마치 어떤 계시처럼 느껴졌던 승아의 눈에는 그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시차를 계산해본 승아는 민영이 잠 깰 무렵까지 열시간을 기다렸다가 문자를 보냈다. 나 진짜 갈까. 답장을 받은 것은 다시 하루가 지난 뒤였다. 잠자리가 불편할 텐데 괜찮아? 방이 하나뿐이라. 그걸 읽자마자 물론 상관없다고 곧바로 답문자를 보냈다. 전자여권은 이미 갖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탕발림이었지만 회식 자리에서 편집장이 기회가 되면 해외출장에 데려갈 수도 있다고 한마디 던진 뒤 바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항공권이 급했지만 여행사에 다니는 친구에게 부탁하면 구할 수 있을 것 같았고 2년 부은 적금도 깰 생각이었다. 그동안은 엄마의 성화에 억지로 끌어왔지만 어차피 계속 불입할 능력도 없었다.

승아도 알고 있었다. 그런 무분별한 추진력이었다면 남동생처럼 집안 눈치 보지 않고 어학연수를 보내달라고 졸랐을 것이고 어중간하게 몸을 사리다가 남자친구를 놓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야근과 휴일 근무가 예사이면서 제대로 대우해주지 않는 회사를 진작에 박차고 나왔을 것이다. 그녀는 무책임한 낙관과 자기연민에 빠진 비관 둘 다를 경계해왔다.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 주어진 조건에 순응해왔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언제까지나 그런 사람만은 아니란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자신에게. 열흘이나 휴가를 낼 수 있냐고 민영이 물어왔을 때 승아는 안 쓴 월차를 합하면 얼추 맞출 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다음 주면 계약기간 2년을 채우게 되고 정규직으로는 채용되지 않을 테니 쫓겨날 게 뻔했지만 그것까지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민영이 미리 얘기한 대로 방은 하나였다. 사철 옷이 걸린 행어 한개와 거울이 얹혀 있는 단출한 서랍장이 놓였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침대가 방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결혼하는 친구가 줬는데, 이 방에 좀 크긴 해. 민영은 변명하듯이 말한 다음 침대에 걸터앉는가 싶더니 시트 위에 그대로 몸을 눕혔다. 승아는 침대와 서랍장 사이 바닥에 캐리어를 펼쳤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공간밖에 남지 않았다. 그제서야 승아는 잠자리가 불편할 거라는 민영의 말이 무슨 뜻인지 깨달았다. 승아와 달리 민영은 유치원 때부터 자기 방이 따로 있었고 누구와도 한 침대에서 자지 못했다. 아무리 침대가 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열어젖힌 캐리어의 맨 위에 민영에게 줄 선물이 놓여 있었다. 승아는 그걸 사기 위해 몇시간 동안 포털에서 ‘유학생 선물’을 검색하고 눈알이 빠지도록 인터넷 쇼핑몰의 후기를 뒤졌다. 그러나 농축시킨 뒤 말려서 가루로 만든 사골 국물과 유기농 해물 다시팩 따위를 민영이 반기지 않으리라는 걸 이제는 알았다. 조금 전 주방이 깨끗하다는 승아의 말에 민영은 지난주부터는 요리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던 것이다.

승아가 샤워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민영은 이불을 덮고 잠들어 있었다. 서랍장 위에 개켜져 있던 담요와 여름 이불을 가져와 바닥에 깔고 승아도 자리에 누웠다. 잠든 민영을 건드릴까봐 침대 위에 놓인 여분의 베개 대신 목베개를 벴다. 한참을 뒤척이긴 했지만 워낙 오랜 시간을 깨어 있었으므로 결국 잠들 수 있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해가 한참 기운 시각이었다. 민영은 침대 위에도 거실에도 화장실에도 없었다. 그리고 한시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배가 고파 왔으므로 하는 수 없이 승아는 싱크대 아래 칸에서 냄비를 찾아 사골 가루를 물과 함께 끓이기 시작했다. 냉장고 안에서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담긴 파스타를 발견했지만 언제부터 거기 들어 있었는지 알 수 없게 말라붙어 있었다. 즉석밥을 국에 말아 배를 채운 승아는 다시 거실 소파로 가서 앉았다.

책장의 책은 모두 영어였고 티브이도 없었다. 방전된 핸드폰을 가져와 전원을 연결했지만 로밍을 하지 않은 탓에 할 수 있는 건 사진 파일 열어보기와 다운로드된 게임뿐이었다. 그런 일로 시간을 때울 만큼 느긋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혼자서 집밖으로 나가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조금씩 어두워져가는 실내에서 승아는 자신이 왜 커튼조차 열 수 없는 이국의 낯선 방에 혼자 앉아 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떠나오기 전 그녀는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을 밀어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떠나온 지금은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인 민영에게 거부당하는 기분이었다.

민영이 돌아온 것은 밤 열한시가 넘어서였다. 소파에서 잠깐 잠이 들었던 승아는 문 여는 기척에 곧바로 눈을 떴다. 너 진짜 잘 자더라. 샌들의 고리를 풀며 민영이 말했다. 첫날 안 자고 버텨야 시차적응 빨리 하는데. 민영은 손에 들고 있던 종이봉투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몇시간은 들고 다닌 듯 심하게 구겨져 있었다. 멀리 나갔다 왔니? 응, 뭐 잠깐 전해줄 게 있어서. 민영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봉투를 가리켰다. 베이글이랑 수프야. 그리스 식당에서 사 온 거야? 아니,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승아는 이 도시에 대해 그다지 정보가 없었지만 그곳이 레스토랑과 까페가 모여 있고 재즈바 ‘블루 노트’가 있는 맨해튼 도심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민영의 옷차림은 공항에 나왔을 때와 달랐다. 목이 파인 블라우스와 산뜻한 시폰 스커트 차림이었다. 넌 안 먹어? 민영의 등 뒤에 대고 승아는 다시 말을 붙여보았다. 먹고 왔어. 그 말을 끝으로 민영은 욕실로 들어갔다.

그날 밤 민영은 꿈이라도 꾸는지 자주 뒤척이고 이따금 낮은 신음소리까지 냈다. 그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누워 있었지만 승아에게 더이상의 잠은 남아 있지 않았다. 핸드폰 검색으로 한국 시간이 오후 세시인 것을 확인하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 그러고는 한밤중 식탁에 앉아서 이 도시의 첫 음식을 먹었다. 수프는 고기 냄새가 느끼하고 짰다. 뉴욕 베이글 역시 소문과 달리 딱딱하고 퍼석했는데 서울에서 새벽배송으로 받는 빵보다 훨씬 맛이 없었다.

속도가 느리긴 했지만 민영이 와이파이를 연결해주었으므로 승아는 이제 할 일이 전혀 없진 않았다. 그녀는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곳의 뉴스와 친구들의 SNS를 몇시간 동안이나 들여다보면서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민영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일요일 정오 무렵에는 또다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이번에도 민영은 승아를 깨우지 않았다.

 

 

2. 월요일

 

출근 준비를 하며 민영은 승아에게 열쇠 두개를 주었다. 하나는 1층 현관문, 다른 하나는 집 열쇠였다. 랜드로드 할머니가 손님 오는 걸 싫어해. 쓰레기통 옆에 소파 봤지? 거기 앉아서 드나드는 사람 다 감시하거든. 혹시 써블렛을 줬나 의심하는 거야. 승아의 얼굴이 불안해졌다. 갑자기 문 따고 들어와보는 거 아냐? 민영이 고개를 저었다. 세입자한테 미리 연락 안 하고 들어오면 불법이야.

승아는 민영이 냉장고에서 식빵 두장을 꺼내 그 사이에 땅콩잼을 두껍게 바른 뒤 누런 종이봉투에 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텀블러에 커피를 따라서 함께 숄더백에 넣는 걸 보니 도시락인 모양이었다. 승아의 머릿속에 점심시간마다 메뉴를 바꿀 수 있었던 회사 근처의 맛집 식당들이 스쳐갔다. 이곳의 점심시간이 짧다고 듣긴 했지만 땅콩잼만 바른 샌드위치라니.

아침은 먹었어? 승아의 물음에 민영이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했다. 원래 안 먹어. 저기 커피 내려놨고, 봉투에 베이글도 남았어. 승아는 민영을 현관까지 따라 나갔다. 신발장에서 굽이 닳은 단화를 꺼내 신던 민영은 승아의 배웅이 어색한 듯 뒤를 돌아보았다. 오늘 어디로 나가볼 거니? 글쎄, 너 집에 오면 몇시쯤 돼? 난 좀